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22/12/30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12. 30.
반응형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 네 손으로 벌어 네가 먹으리니, 너는 행복하여라, 너는 복을 받으리라. 너의 집 안방에 있는 아내는 풍성한 포도나무 같고 너의 밥상에 둘러앉은 아들들은 올리브 나무 햇순 같구나.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렇듯 복을 받으리라. 주님은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너는 한평생 모든 날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리라.

 

2022년 12월 30일 (금)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2년 12월 3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집회서 3,2-6.12-14)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아버지를 공경한다.

  • 오늘 복음
    (마태오복음 2,13-15.19-23)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12월 30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기도

 

하느님, 성가정을 통하여 참된 삶의 모범을 보여 주시니 저희가 성가정의 성덕과 사랑을 본받아 하느님의 집에서 끝없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복음
마태 2장 13-15절, 19-23절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

 

13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14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9 
헤로데가 죽자, 꿈에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20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 

21 
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갔다. 

22 
그러나 아르켈라오스가 아버지 헤로데를 이어 유다를 다스린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러다가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래아 지방으로 떠나, 

23 
나자렛이라고 하는 고을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로써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2년 12월 30일 (금)
김성현 마르코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2년 12월 30일 (금)
이길재 베드로 신부 집전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2년 12월 30일 (금)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길을 걷는 순례자

 

오늘 복음은 두 가지 사건, 곧 예수님 가족의 이집트 피신과 이스라엘 귀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두 사건은 마태오 복음서에는 떨어져 있지만, 축일 전례 독서에서는 연결되는 이야기로 선포됩니다. ‘헤로데’라는 인물의 위협과 죽음, 그리고 ‘이집트’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피신과 귀환의 여정은 떨어져 배치된 두 사건을 하나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가정을 ‘길을 걷는 순례자’로 묘사합니다. 아기 예수와 마리아는 요셉의 안내를 받아 베들레헴에서 이집트로, 이집트에서 갈릴래아 나자렛으로 옮겨 갑니다. 그들은 아기를 죽이려는 헤로데의 위협 때문에 어느 한곳에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이 여정을 이끄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꿈’에서 요셉에게 당신을 드러내셨고, 천사를 통하여 요셉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일러준 대로 예수님과 마리아와 함께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길’을 걸었습니다. 하느님의 약속은 예수님과 그분의 가족을 통하여 실현되었고, 복음서 저자는 이 사실을 강조하려고 구약의 본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호세 11,1; 판관 13,5; 16,17 참조).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길을 걷는 순례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적대자들에게 배척당하시고 위협받으셨던 것처럼, 우리도 순례의 여정에서 같은 상황에 부딪힐 것입니다. 이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와 함께 길을 걸어가신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가정의 붕괴, 해법은 없는가?

 

오늘은 성가정 축일입니다. 가정이 붕괴하고 심지어 가정을 만들지도 않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며 가장 필요한 축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 결혼도 안 하려 하고 자녀도 안 낳으려 할까요? 집값이 비싸고 사교육비가 많이 드는 문제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이 모든 문제를 다 설명해줄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생활이 안정되어야 할 시기에 왜 황혼이혼은 더 늘고 있는 것일까요? 

일본 30대 남성 타카히토는 잘 나가는 은행원이었습니다. 많은 여성의 결혼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아내가 우울증이 왔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랐던 타카히토는 지금까지 자신을 이끌어주었던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했고 어머니는 아들에게 아내를 살해할 것을 종용합니다. 둘은 철저히 계획적으로 아내를 살해할 계획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완전범죄는 없는 법. 어머니와 아들은 결국 죄를 고백하고 맙니다. 

사람은 성장하려면 모델이 있어야 합니다. 이끌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동안 어머니가 자신을 이끌어주었고 이제 아내가 그러기를 바랐던 타카히토는 우울증에 걸린 아내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다시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이고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닮아가야 하고, 나를 이끌어줄 모델의 부재입니다. 이것으로부터 사람의 붕괴, 가정의 붕괴, 나아가 나라의 붕괴가 옵니다. 

가정의 끈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모델이 필요합니다. 아기는 부모가 필요하고, 가정은 사회가 필요합니다. 내가 무언가를 시작할 때, 목표 곧 닮고 싶은 모델이 없으면 방향을 잃고 맙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상운 저자의 『왓칭 2』에 이런 실험내용이 나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이 유리한가?’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입니다. 한 문제를 놓고 3부류로 나누어 실험에 참여합니다. 

1번 부류는 문제가 이미 풀렸다는 긍정적 상상을 하고 나서 문제를 접하게 했고, 2번 부류는 문제를 바로 직면하여 풀었으며, 3번 부류는 문제가 이미 풀렸다는 상상을 하게 한 다음, 그 문제가 어떻게 풀렸을지도 상상해보게 하였습니다. 

가장 문제를 풀지 못한 부류는 1번이었습니다. 문제가 쉽게 풀릴 거란 헛된 망상만 가지고 있으니 조그마한 어려움이 닥치자 금방 지쳐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문제를 효율적으로 잘 풀었던 사람들은 3번 부류였습니다. 풀릴 것이란 믿음과 함께 그 문제를 풀기 위해 겪어야 하는 어려움까지도 예상했기에 포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가정을 이루려는 젊은 부부들도 이 세 부류로 나뉠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 부류는 우리는 사랑하니까 무조건 행복할 것이란 무한 긍정의 부부입니다. 하지만 현실이 생각과 같지 않음을 알고는 곧 포기하고 맙니다. 두 번째 부류는 ‘닥치면 되지 않을까?’입니다. 일단 결혼해서 살다 보면 다 될 것 같다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경험은 쌓이되 후회도 많습니다. 

‘배우자에게 그러면 안 되었었던 건데, 혹은 자녀를 그때 그렇게 키워서는 안 되었던 것인데!’ 등과 같습니다. 경험 있는 사람, 혹은 미리 살았는데 잘 살았던 모델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 부류, 곧 하느님께서 성가정이 되라고 그 모범을 주시고 그 가정의 모델대로 변해가게 둘을 결합해주셨다고 믿는 가정입니다. 이 가정은 조금씩 성가정의 모습을 닮아가는 데서 기쁨을 느끼며 결국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가정이 됩니다. 

유태인들은 구약의 가정의 모델들을 많이 접합니다. 노아의 가정을 접하며 부모의 신앙에 순종하고 부모를 공경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집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을 보며 자녀가 자신의 것이 아닌 하느님의 선물임을 배웁니다. 이사악의 경우를 보며 배우자는 자신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운명처럼 정해주신다는 것을 배웁니다. 야곱의 경우를 보며 자녀를 많이 낳아야 복을 얻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모델들을 가지고 사는 이들이기 때문에 가정에 질서가 있고 또 자녀들도 잘됩니다. 

우리는 여기에다가 성가정의 모범도 있습니다. 요셉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 결혼하고 이집트로 갔다가 옵니다. 마리아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정결하게 자녀를 낳고 교육합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면서도 하느님의 뜻을 첫째로 여기고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목숨을 바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가정으로 만드시기 위해 혼인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모델을 가정의 모델로 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무한 긍정으로 결혼하여 절망에 빠지고 왜 살면서 배우려는 것일까요? 아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그 목적으로 나아가며 성장합니다. 

사랑의 성장은 모델 없이 불가능합니다. 모델이 없으면 모기나 기생충으로 남습니다. 진정 우리가 성가정을 모델로 삼고 혼인하여 닮아가려고 하는지, 아니면 실패가 보이는 길로 가는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모델이 없고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없으면 그 가정은 이미 붕괴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 마리아, 요셉이 성가정인 이유

 

2020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2021년에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평생 함께하실 것 같았던 부모님께서 1년 사이에 모두 하늘 나라에 가시니 마음이 먹먹해지고, 잘 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늘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부모님 물건을 정리하는데 큰 형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모님 재산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이니? 다른 사람들 보니까 재산 분할 문제로 싸움도 많이 하던데, 우리는 그럴 일이 없잖아.” 
 
사실 부모님께서 남겨주신 재산은 신앙심과 교육이었습니다. 주님 뜻에 맞게 사는 삶을 늘 강조하셨고, 또 한 가지는 끝까지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족 모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책을 손에 놓지 않으면서 생활합니다. 
 
많은 돈도, 세상의 높은 지위도, 그밖에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으로는 우리 가족 모임을 행복하게 할 수 있게 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가치가 가족들 간에 더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이 가정을 성가정의 모범으로 삼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가정이 부자였을까요? 아니면 세상 안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우선 이들의 가장인 요셉은 가난한 목수로 알려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정결 예식 때 바치는 제물도 가난한 사람이 바치는 비둘기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무런 고통과 시련이 없었을까요?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가족을 보면, 예수님의 잉태 순간부터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첫아기인데도 마구간에서 낳아야 했던 형편이었습니다. 에집트로 피난도 가야 했고, 12살 때 성전에서 예수님을 잃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요셉 성인께서 너무 일찍 하느님 곁으로 가신 것 역시 인간적 관점에서는 커다란 시련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들의 십자가 죽음을 십자가 아래에서 직접 봐야 했던 어머니의 아픔을 떠올리면 고통과 시련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고통과 시련이 없어야 성가정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성가정은 이 세상의 가치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하느님 나라의 가치로, 서로가 서로를 위한 사랑의 마음에서 성가정은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신앙의 일치를 성가정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또 고통과 시련이 없어야 성가정도 아닙니다. 사랑이 우리 가정에 있는가를 먼저 바라봐야 합니다. 그 사랑 안에 주님께서 함께하시면서 진짜 성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불행한 사람의 특징은 그것이 불행한 것인줄 알면서도 그쪽으로 가는 점에 있다. 우리 앞에는 불행과 행복의 두 갈래길이 언제나 있다. 우리 자신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되어 있다.

- A.링컨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

 

가족이라는 인연은 참으로 신비롭습니다. 기쁨과 아픔을 함께 겪습니다. 나자렛에서도 이집트에서도 함께하는 가족입니다. 성가정이 들려주려는 가정의 역사를 듣습니다. 큰 사랑이 가정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큰 사랑을 따라가다 보면 알게 되는 가족의 의미입니다. 함께 지나온 시간이 가정의 살이며 가정의 피가 됩니다. 갈등하고 아파하며 한 몸이 되어갑니다. 아무 것도 감출 수 없는 가정이라는 선물에 하느님께서 계십니다. 

가정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여정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신앙의 맥박은 가정에서 시작합니다. 돌보고 마주하고 깨어나고 기도하는 곳이 우리들의 신앙이며 성가정입니다. 갚을 수 없는 사랑을 뜨겁게 만납니다. 

사람이 되어오신 하느님께서도 가장 따뜻했던 사랑을 가정에서 체험하십니다. 가정의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이며 가정의 행복이 하느님의 행복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하느님의 구원은 다른 곳이 아닌 여기 이곳 가정 공동체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