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출산을 통하여 인류에게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으니 언제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시는 성모 마리아의 전구로 저희가 생명의 근원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게 하소서.
2023년 1월 1일 (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월 1일
성모마리아대축일
매일미사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민수기 6,22-27)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 제2독서
(갈라티아서 4,4-7)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다. - 오늘 복음
(루카복음 2,16-21)
목자들은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를 찾아냈다. 여드레 뒤 그 아기는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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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네.
복음
루카 2,16-21
목자들은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를 찾아냈다.
여드레 뒤 그 아기는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때에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16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17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18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19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20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
21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월 1일 (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조정래 시몬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1월 1일 (일) 12시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 집전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1월 1일 (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오후 3시 시작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말은 씨가 된다.
1953년 미국 예일대는 졸업생들에게 장차 이루고 싶은 꿈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3%만이 인생의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을 써서 제출했다고 합니다. 97%는 그저 생각만 하고 있거나 생각조차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조사했더니, 놀랍게도 3%의 졸업생이 나머지 97%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부와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1979년에 하버드대에서도 똑같은 조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같았습니다. 3%가 나머지 97%보다 무려 10배나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분명히 큽니다. 실제로 심리학에 ‘자기실현적 예언 효과’라고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발언하면 거기에 맞춰 자신의 태도를 변경하는 경향이 있어서, 실제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말은 씨가 된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목표를 세우고 이를 말로써 계속 밝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목표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목표 자체를 세우지 않아서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꿈을 현실로 만들면 멋질 것 같지 않습니까?
2023년 1월 1일. 계묘년이 밝았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많은 목표를 세웁니다. 그런데 그 목표가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뚜렷한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막연한 목표, 헛된 목표, 남과 비교하는 남의 목표만을 세워서 자기만의 뚜렷한 목표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며 성모님의 모습을 묵상했으면 합니다. 성모님의 목표 역시 아들의 목표인 인간 구원에 동참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 없는 하느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느님의 뜻에 철저하게 함께하셨습니다. 그래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 후에 있었던 모든 일에 대해 이렇게 복음은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
섣부른 판단보다는 늘 곰곰이 마음속에 간직하고 되새기면서 하느님의 뜻에 함께할 수 있기 위해 노력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과연 어떤가요? 자기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주님과 함께 할 것인가를 묵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만의 목표보다, 주님과 함께하는 목표를 곰곰이 마음속에 간직하고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여러 개의 꿈을 조율하고 변주해 가는 과정, 그러면서 때로 기뻐하고 때로 절망하는 과정이 성장일 것이다.
- 한지혜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하느님의 어머니를 공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늘은 새해의 첫날이고 그만큼 큰 은혜의 선물을 받는 날입니다. 그 은혜의 선물이란 하느님께서 성모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을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게 하시다니, 이 얼마나 벅찬 기쁨입니까? 우리가 하느님이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겁할 일인데 그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다니, 이 큰 사랑을 우리는 새해의 첫날부터 찬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낳으셨으니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교의는 네스토리우스 주교가 성모님은 그저 인간 예수나 그리스도의 어머니라 해야지 어떻게 하느님의 어머니라 하느냐는 주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네스토리우스는 단죄받았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을 인간이라고 해도 되지만, 그것은 너무도 당연해서 믿음이 있다면 하느님이라고 해야 합니다. 불붙은 떨기나무의 불과 나무처럼, 인성과 신성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숯불은 나무와 불이 서로 다른 두 본성이지만 결국 하나입니다. 숯불은 숯이기도 하고 불이기도 한 것입니다.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하느님의 자비를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그저 선악과 따 먹으면 벌을 줄 그런 분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 부모의 지위까지 올려주실 사랑을 가지셨습니다. 이것을 믿으면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 앞에서 숨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모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 부르면서 우리 자신이 하느님이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아담과 하와의 불신의 죄를 그대로 짓는 것입니다. 밀가루까지 하느님으로 만드시는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우리 안에 들어오신 신성은 우리 인성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이기도 하지만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믿지 않으면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라 부르는 것은 진심이 될 수 없습니다.
천연두로 얼굴에 지울 수 없는 흉터 자국을 가친 채 도시로 이사 온 그레이스는 친구들에게 ‘괴물’이란 놀림을 받았습니다. 엄마는 상처받아 울고 있는 그레이스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네가 어렸을 적에 천연두라는 큰 병에 걸린 적이 있었단다. 그 병은 네 오빠와 동생의 생명을 빼앗아 갔지. 이웃의 많은 아이도 죽었단다. 하지만 하느님이 너만은 살려주셨단다. 네 얼굴에 생긴 상처는 하느님께서 네가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표징이란다.”
그레이스는 엄마의 말을 믿었고 누구보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녀는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하였고 잘생긴 남학생과 결혼하여 미국 하원의원까지 지냈다고 합니다.
그레이스가 어머니를 공경하고 기념하는 방식은 무엇일까요? ‘나는 괴물이야!’라고 자기 비하를 하는 것일까요? 어머니의 말을 믿고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일이 아닐까요? 그런데 만약 우리는 인간에 불과하고 하느님은 될 수 없다고 믿으며 같은 인간으로서 하느님 어머니의 지위까지 올라가신 성모님을 공경한다면 말이 될까요? 성모님은 지금 인간이 어떤 지위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믿으라고 하십니다. 이 믿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머니를 공경하는 일입니다.
‘아수라’란 일본 애니메이션이 있습니다. 인육까지 먹는 사람이 생길 정도의 기근이 들었을 당시 한 어머니가 아기를 낳습니다. 어머니는 아기를 살리려는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길에 쓰러진 사람의 고기까지 먹습니다. 아기도 어쩔 수 없이 인육을 먹으며 자랍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아이 눈에는 모든 사람이 고기로 보입니다. 그래서 살인을 서슴지 않고 저지릅니다.
이때 그를 사람으로 만들어준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한 스님과 한 여인입니다. 스님은 제발 인간이 되라며 자기 팔을 잘라줍니다. 지금까지 그런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기에 아수라는 인육을 먹기를 거부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구해준 여인이 굶어 죽어가자 말을 죽여 고기를 가져다줍니다. 하지만 여인은 그 고기가 인육인 줄 알고 죽기까지 먹기를 원치 않습니다. 아수라는 굶어 죽으면서도 동물의 수준으로 내려가기를 원치 않는 여인과 자기가 그런 존재가 아님을 알려주기 위해 팔까지 자른 스님에 의해서 이제 타인을 구제하는 스님이 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위해 당신 아드님을 내어주셨습니다. 모기처럼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그러면 아수라가 짐승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자신을 위해 희생한 이들을 위한 공경이었듯이 우리도 하느님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모 마리아는 그 사랑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단순한 인간이기를 포기하셨습니다. 하느님을 품은 여인이요, 하느님을 낳은 여인이 되었습니다. 곧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하느님께 대한 최고의 공경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시기를 믿으신 분 앞에서 우리는 인간에 불과하다는 믿음으로 공경한다고 하는 거짓 기도를 하지 맙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새해가 아니라 새 시대를 여는.
“하느님, 온갖 좋은 일을 시작하시고 완성하시니 저희가 즐거운 마음으로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며 새 시대를 열어주신 하느님의 은총을 찬양하고 그 은총의 완성을 기뻐하게 하소서.”
오늘 축일의 이 예물 기도는 오늘 축일의 의미를 잘 담고 있습니다. 전부터 새해 첫날을 왜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지내는지 의문이 있었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의문의 한 실마리가 풀린 것도 같아 기쁘기도 합니다.
세상이 세상 달력으로 새해가 시작되었음을 기념할 때 우리는 교회 달력으로 새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기념하자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념해야 할 것은 새해가 아니라 새 시대이어야 하고, 우리에게는 새해가 열리는 정도를 넘어 새 시대가 열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새해가 열리는 것의 의미는 잘 알겠는데 새 시대가 열렸다는 것의 의미는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성탄 신비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느님이신 분이 이 세상에 탄생하심으로 인간인 우리가 신화하고,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거지요.
그런데 하느님이 인간이 되고 인간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연결 고리가 되시고, 그 중심에 계시는 분이 바로 성모 마리아십니다.
성모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심으로써 당신은 천주의 어머니가 되시고 당신의 아드님처럼 우리 인간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여신 겁니다.
이것을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씀과 연결하면 하느님이신 분이 성모의 아들이 되시고 인간이 되심으로써 우리가 종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새 시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새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우리는 종일 뿐 자녀가 아니었으며,,하느님을 주인님이라고 부를 뿐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고 당연히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아무런 상속을 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이는 옛날에 정실에게서 태어나지 않고 종에게서 태어난 서자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종의 자식으로 아무런 상속을 받지 못하던 것과 같은 거지요.
그런데 이 새 시대의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고작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가 아니라 새 시대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이겠냐는 말입니다.
작년에 못 이룬 또는 작년에 실패한 것을 올해는 이루고, 지금까지 하지 않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올해 시작하는 그런 정도를 넘어 죄의 종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뀐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했는데 새해를 맞아 이 새 시대의 삶을 본격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민수기의 말씀처럼 자신이 복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복이 되는 사람, 악마의 자식처럼 입에서 저주나 욕이 나오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답게 늘 축복을 해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지난 한해 저와 저의 <여기 선교 협동조합>에 베풀어주신 여러분의 모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새해에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새 시대를 열고 살아가는 한해가 되시고, 주님의 복 많이 받으시고, 받으신 복을 이웃과 많이 나누는 새해가 되시길 빕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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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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