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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5월 24일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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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2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부활 제6주간 화요일 -

 

 

2022년 5월 24일 (화)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감옥에 갇힌 바오로와 실라스는, 구원받기를 바라던 간수와 그의 가족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보호자 성령께서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5월 24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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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본기도

 

전능하시고 자애로우신 하느님, 성자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축하는 저희가 참으로 부활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요한 16장 5-11절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 


오히려 내가 이 말을 하였기 때문에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찼다. 


그러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10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11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김정원 스테파노 신부 집전

 

 

2022년 5월 24일 (화)
김정원 스테파노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2년 5월 24일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지난 주일부터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보호자’이시며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대하여 세상이 어떤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일까요? 특별히 ‘죄’와 관련하여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공동 번역 성서는 이를 좀 더 뜻을 살려 번역하였습니다. 

곧 “그분(성령)은 나를 믿지 않은 것이 바로 죄라고 지적하실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비윤리적 비도덕적 행동이 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바로 죄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것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당신의 삶과 죽음으로 보여 주시고 가르쳐 주신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 하느님께서는 무한한 자비로 우리를 용서해 주시는 분이시며, 우리가 회개하여 당신께 돌아오기만을 기다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이제 죄는 단순히 윤리적 도덕적 잘못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를 믿지 못하고 그 잘못에서 돌아서지 않는 것이 됩니다. 

실수와 잘못이라는 수렁 속에서 “나는 죄인이다.” “나는 구원받을 자격조차 없다.”라고 자책하며,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의 손길을 스스로 거부하는 것이 진정한 죄라는 것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실수와 잘못을 저지를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 하느님의 한없는 자비를 굳게 믿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 구원의 시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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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성령께서 죄에서 벗어나게 만드시는 원리

 

오늘 복음에서는 ‘성령’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시러 아버지께 가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우리의 어떠한 생각들이 변하게 되는지 살펴봅시다.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요한 16,8-11)

상당히 어려운 말처럼 들리지만, 성령의 역할을 알면 단순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저희는 어렸을 때 시골에 살아서 서리를 많이 하였습니다. 시골 아이들은 더 많은 서리를 한 것을 더 큰 자랑으로 여겼지, 그것이 죄가 되는 줄은 몰랐습니다. 저의 이 서리 하는 버릇이 사라지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학교에 갔다 오다가 과수원에 들어가 설익은 배를 훔쳐 집에 들어와 깎아 먹고 있었습니다. 아마 중학생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서리가 도둑질로 여겨져 하나 훔쳐 가면 일 년 치 도둑맞은 것을 다 물어주어야 한다는 팻말이 붙어 있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어머니의 무서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거 훔친 거지?”

엉겁결에 아니라도 둘러댔습니다. 어머니는 따지듯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과수원 아저씨가 다 보고 계셨어.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고 엄마한테 그러셨어. 지금 딴 거는 잘 먹고 앞으로는 남의 것에 손대지 마!”

서리하다가 들킨 적은 한두 번 있었지만, 그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습니다. 무서울 것만 같았던 과수원 주인이 우리가 따가는 것을 보면서도 참아준 것도 그렇고 어머니의 목소리가 점차 부드러워지는 것을 보아도 그랬습니다. 

이 일에서 예수님은 어머니이십니다. 우리 죄를 위해 대신 죗값을 치른 것입니다. 얼마나 창피했겠습니까? 어머니는 그것을 참아낸 것입니다. 과수원 주인은 하느님 아버지입니다. 그분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고 어머니의 창피함을 받고 우리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어머니의 창피함을 통해 우리에게 흘러들어오는 ‘용서’가 성령님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선 ‘죄’에 대한 생각이 바뀐다고 했음을 기억합시다.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면 저는 아직도 그때 서리 한 것이 죄인 줄 몰랐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했음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도 죄를 지으면서 그게 죄인 줄 모를 것입니다.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의로움은 죄의 용서를 나타냅니다. 죄의 용서를 위해 어머니는 과수원 밭의 주인에게 가서 창피를 당하고 어쩌면 꾸지람까지 받아야 하셨습니다. 만약 어머니의 개입이 없었다면 우리는 1년 치 손해를 다 배상해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의로워지기 위해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신들을 가렸습니다. 자기 행위로 의로워지기 위해 거짓말하고,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등의 행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용서받으면 우리 죄는 그리스도의 중재 덕분임을 알게 됩니다.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이 심판받는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숨고 가렸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아드님의 가죽옷, 곧 성령으로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대신 뱀을 심판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들어오시면 우리가 아닌 우리 안의 뱀, 그 뱀들이 만든 세상, 그리고 그 세상의 주인인 사탄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그들이 이미 심판받았고 나는 그 주인만 바꾸면 그만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합리화를 멈춥니다. 

죄는 성령을 받지 못해서 짓게 됩니다. 성령을 받으면 이렇듯 내가 아닌 이 세상이 심판받았고 이 세상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를 위로하기 위해, 내 죄를 용서해 주신 아버지께 너무 죄송해서 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죄에 대한 자기합리화는 다른 죄로 이어지지만, 성령으로 용서받은 죄는 그래서 죄가 거기서 끝나게 됩니다. 내 죄가 누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알고 또 내 죄 때문에 누구도 탓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죄가 사해지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 하는데, 성령을 받는 법은 우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씻어줄 능력이 있음을 믿지 못하면 내 죄는 계속 남습니다. 

어떤 나라의 큰 공을 세운 형이 살인죄로 감옥에 갇혀있는 동생을 위해 ‘사면권’을 받아왔습니다. 형은 동생에게 묻습니다. 

“동생아, 만약에 사면을 받게 되면 나와서 무슨 일을 하겠니?”

동생은 손으로 탁자를 치며 말합니다. 

“나에게 사형을 내린 재판관을 죽이고 나를 밀고한 인간도 찾아서 죽여야지.”

형은 돌아 나오며 사면권을 찢어버렸습니다. 

형이 그리스도이고 임금이 하느님입니다. 그리고 그 사면권이 성령이십니다. 아무리 형이 사면권을 주고 싶어도 동생은 형을 믿지 않습니다. 형이 자신을 위해 다른 재산을 포기하고 자신의 사면권을 받아온다는 것은 그로서는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을 인정하게 되면 자신이 한 행위가 ‘죄’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아무도 심판할 수 없는 처지가 되기에 이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만약 형을 믿고 사면권을 받는다면 동생은 죄의 탓이 자기 자신보다는 그런 환경에서 살았던 것 때문임을 알고 자신이 속해 있던 환경으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듯 자신의 노력으로 죄에서 벗어납니다. 

폴윤이란 목사는 미국 이민 가서 교회에 다니기는 했으나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갱단이 되었습니다. 마약이나 나쁜 짓은 기본이었습니다. 폴윤은 미국에서 추방당하여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역시 폭력배로 살았고 심한 마약 중독자였습니다. 또 감옥에 갔다 옵니다. 

그러나 ‘기도’를 믿었습니다. 주님께 마약 중독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죽기 살기로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몸이 회오리바람에 하늘로 치솟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너무 무서워 눈을 뜰 수가 없다가 간신히 눈을 뜨니 하느님 옥좌 앞이었다는 것입니다. 바닥은 정말 수정과 같았고 앞에서는 무지갯빛이 돌아가는 듯하였고 생명체들이 자기 주위에 있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그는 바로 마약을 끊었습니다. 자기가 죄인임을 하느님 옥좌 앞에서 깨닫게 된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을 얼마나 아프게 해드렸는지 알면 죄를 뉘우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그 자리에 올라오게 한 회오리바람은 자기 죄가 용서받았음을 믿게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일이 남습니다. 그도 한 달 뒤에 다시 유혹이 왔다고 합니다. 이제는 자기가 심판받은 이들과 함께 어울려서는 안 됨을 알고 목사가 되어 자기 주위를 선한 사람들로 채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먼저 내 죄를 인식하게 되고 그 죄가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받았으며 그래서 죄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 그것을 멀리하기 위해 그리스도 공동체에 머물게 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받아 주시는 성령으로 죄가 사해지는 원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내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3월 어느 주일 아침에 있었던 일입니다. 성지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습니다. 지금 임종하실 것 같으니 병자성사를 달라는 전화였습니다. 곧바로 가겠다고 했고, 병자 성유와 성수 그리고 예식서를 들고 운전해서 환자가 있는 곳으로 급하게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운전해서 가는 동안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솔직히 그날 몸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비염이 갑자기 심해져서 코가 막혀 말하기도 힘든 상태였거든요. 더군다나 병자성사는 보통 본당 신부님께 청하고, 환자분이 있으신 곳 근처에는 수도원과 신학교가 있어서 신부님도 많았습니다. 따라서 굳이 거리가 떨어져 있는 성지에 청할 것은 아니지 않나 싶었습니다. 코가 막혀서 말하기도 힘드니 더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환자가 있는 요양원에 도착하자마자 운명하셨고, 저는 유가족들과 함께 마지막 기도를 함께 바쳤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저를 찾아주신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인해 불평의 마음이 들었던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나의 몸 상태보다 분명 더 중요한 것은 마지막 성사를 드리며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만을 바라보고 있으니 가장 중요한 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부정적인 생각만 했던 것입니다. 
 
어떤 부정적인 마음이 들 때, 과연 그런 생각이 중요한 것인지를 먼저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삶을 살면서 커다란 기쁨을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 수난과 죽음의 시간이 가까웠고, 이를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이별은 제자들에게 커다란 슬픔을 가져왔습니다. 근심으로 가득 차서 정신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주님께는 이 이별이 영광으로 돌아가는 이별이며, 제자들에게는 주님 대신에 하느님의 일을 맡게 되는 시간을 알리는 이별입니다. 
 
지금 상태로는 주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제자들입니다. 그러나 이제 당신을 대신하여 세상을 구원의 길로 이끄실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성령은 세상이 저지른 죄를 꾸짖고 깨뜨린 정의를 되돌리고 그릇된 심판을 바로 잡아줄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떠나는 것이 제자들에게 오히려 이롭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처음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성령을 받은 뒤에는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알리는 중요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십니까?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절망에 빠지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외롭지 않다.

- 엘제파색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요한 16, 7)

 

언제나 최선을 다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다. 보호자이신 성령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시는 구원자이신 예수님이시다. 우리를 향한 구원의 역사는 어느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다. 끊어 주어야 새로워질 수 있고 떠나야 다시 만날 수 있는 삶의 기쁨이다. 

사랑은 끝이 아니라 늘 시작이다. 너와 나를 지켜주시는 성령이시다.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하는 우리들이다. 예수님께서는 떠날 수 있으시기에 어디로 가야할 지도 아신다. 아픔 없이 새 역사는 시작되지 않는다. 죽어버린 역사의 이야기가 아닌 살아계신 성령의 활동이 되신다. 

그릇되고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시는 성령이시다. 떠나보내야 오늘을 살 수 있는 우리들 삶이다. 성령과 함께 이르러야 할 곳은 구원의 자리이다. 과거와 현재가 살아계신 성령 안에서 살아있는 시간이 된다. 만남과 떠남으로 구원이 되어 오시는 성령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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