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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2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부활 제5주간 토요일 -
2022년 5월 21일 (토)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 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마케도니아에 관한 환시를 본 뒤 그곳에서 선교할 방도를 찾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미워한 세상이 이제 세상에 속하지 않는 제자들도 미워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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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세례로 새로 난 저희에게 천상 생명을 주시니 저희를 의롭게 하시고 불사불멸의 옷을 입히시어 완전한 영광에 이르도록 이끌어 주소서.
복음
요한 15장 18-21절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20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21
그러나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그 모든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박주민 바오로 신부 집전
2022년 5월 21일 (토)
박주민 바오로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2년 5월 21일 (토)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박문수 막시미노 신부
나 가진 재물 없으나
아홉 달만에 태어난 아기가 의사의 부주의로 뇌성 마비가 되었습니다. 의사가 아기 머리를 잘못 건드려 뇌가 손상되었고, 그 때문에 뇌성 마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로 자신의 인생이 시작부터 망가져 버린 것입니다. 아기는 열 살이 넘어서야 겨우 숟가락질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난한 집안에, 아버지는 결핵을 앓고 있었습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절망 속에서 아이는 하느님을, 부모님을 죽도록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우연히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그 만남에서 얻은 새로운 눈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며 글을 쓰기 시작하였고, 그의 글은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많은 이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라는 시로 유명한 송명희 시인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작품 가운데 ‘그 이름’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이 시에서, ‘예수’라는 이름에 엄청난 비밀과 사랑이 숨어 있으며, 자신의 마음속에 새겨진 그 이름이야말로 진정한 기쁨이자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라고 노래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당신 이름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고 박해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수많은 이들이 그 이름 때문에 고통당하고 모진 고문과 박해 속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렇게 숨져 간 이들 대부분이 자신의 죽음을 영광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름’이 이들을 세상에 속하지만 세상을 초월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송명희 시인이 노래하였듯, ‘예수’라는 그 이름이 우리의 삶에도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자 기쁨이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그 이름의 의미와 사랑을 마음에 새기며 세상이 아닌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오늘 복음은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를 뽑으셨기 때문이랍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뽑힌다는 것은 주님께로 뽑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상에서 뽑히어 더 이상 세상에는 속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밭에 있던 풀이 뽑히는 것과 같이 세상 밭에 있던 우리가 뽑히는 것이고, 그 이유는 우리가 천상 밭에 있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누가 이렇게 하는 것입니까?그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뽑으시는 것입니다.어제 복음에서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그리고 오늘 복음도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내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느님의 차지가 된 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라 하느님 선택에 의해 특별히 내가 뽑힌 것입니다. 이는 마치 선발 대회에 나가서 뽑힌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가 주님께 뽑히는 것을 선발 대회에 나가 뽑히는 것만큼이나 기뻐합니까?아니면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을 서러워합니까? 이 아침 저를 돌아봅니다.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나는 하느님께 뽑히는 것을 기뻐하는가? 그리고 프란치스코의 기도를 읊조립니다.
“주여,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 때문에 황송하옵게도 당신이 죽으셨으니 당신을 사랑하는 그 사랑 때문에 나도 죽을 수 있도록, 당신 사랑의 불과도 같고 꿀과도 같은 힘으로 내 마음을 하늘 아래 있는 모든 것에서 빼내어 차지하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사람이 독립적인 사람일까요?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사람이 독립적인 사람일까요? 아니면 남에게 의지하는 사람이 독립적인 사람일까요? 당연히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을 독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남에게 잘 의지할수록 더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언제든 날 도와줄 사람이 있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믿음이 사람을 더 독립적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나를 도와줄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으로 지금을 더 자신 있게 행동할 수 있게 합니다.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을 약한 사람 취급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나’를 믿는다고 말합니다. 상당히 독립적인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이 세상입니다. 나를 믿는다고 하지만 나의 한계를 깨닫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독립적이지 못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믿으며 의지하는 것이 우리를 약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도와줄 누군가가 있음에 큰 힘을 얻어 힘차게 살 수 있는 것처럼, 전지전능하신 주님께 의지할수록 더 독립적으로 지금을 잘 살게 해줍니다.
이렇게 주님께 대한 믿음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 믿음을 쓸모없는 것이라 말합니다. 주님의 계명인 사랑은 힘없는 사람의 외침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며 주님을 굳게 믿는 사람을 자신들과 다르다면서 배척합니다. 이는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이 하나를 이룬 것은 성부와 성자가 서로 주고받는 사랑이었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고 아버지를 앎으로써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기뻐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하느님 아버지를 모르고 그의 아들 예수님도 모르기 때문에 아버지를 미워하고 아들도 미워하지 않을 수밖에 없게 되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 미움은 사랑으로 하나가 된 제자들도 미워하게 했습니다.
만약 제자들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것을 자기들처럼 똑같이 추구했다면, 제자들을 자기네들과 한패로 생각했을 것이지만, 제자들은 철저하게 주님의 뜻을 따랐기에 세상의 미움을 받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과 주님의 뜻인 사랑의 실천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합니다. 세상과 구별되면서 주님의 진정한 편이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반대를 받겠지만, 진정한 행복으로 나아가고자 하면 그런 반대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철저히 주님의 편이 되어서 진정한 행복을 행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독립적인 모습으로 힘차게 살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당신이 2.0의 시력을 갖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면의 시력을 갖는 것이다.
- 오프라 윈프리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한 15, 21)
우리 마음을 두어야 할 곳은 하느님이시다. 보내신 분을 아는 것이 신앙의 참된 중심이다. 모든 출발은 중심에서 출발해야 한다. 참된 중심은 이와같이 우리 삶의 자리인 뜨거운 마음에서 마음으로 깊게 전달된다. 중심을 잃어버리면 사랑도 사라진다.
미움과 사랑 사이에 우리가 살고 있다.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은 사랑의 진리를 실천한다. 가장 적절한 사랑은 하느님께서 물려주신 우리들의 정체성이며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가장 좋은 실천이다. 보내신 하느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우리들 삶이다.
예수님의 삶을 통해 보내신 분을 알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미움과 박해의 현실적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사람에 대한 사랑과 참된 일치를 위해 역사의 현장 우리 삶의 현장으로 들어오시는 예수님이시다. 사람 속으로 사람 속으로 들어오시고 세상 속으로 세상 속으로 들어오시어 참사랑을 회복하신다.
미움으로 닫혀진 관계를 다시 사랑으로 여시는 분이시다. 이와같이 열리지 않고서는 사랑할 수 없고 사랑하지 않고서는 보내신 분을 알 수 없는 하느님과 우리들의 관계이다. 관계의 그 중심에 뜨거운 열림 사랑이 있다.
진짜 사랑이 있는 곳에 진짜 신앙인이 있다. 중심이 올바로 섰을 때 올바른 사랑도 따라온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참된 삶의 중심을 다시 잡아야 할 열림의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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