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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4월 26일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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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2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부활 제2주간 화요일 -

 

 

2022년 4월 26일 부활 제2주간 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오늘 제1독서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습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4월 26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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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사도 4장 32-37절

 

한마음 한뜻

 

32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33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34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36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인으로, 사도들에게서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르나바라는 별명을 얻은 요셉도, 

37 
자기가 소유한 밭을 팔아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주님은 임금님, 위엄을 입으셨네.

 

주님은 임금님, 위엄을 입으셨네. 주님이 차려입고 권능의 띠를 두르셨네. 주님은 임금님, 위엄을 입으셨네.

누리는 정녕 굳게 세워져 흔들리지 않네. 예로부터 주님 어좌는 굳게 세워지고, 영원으로부터 주님은 계시네. 주님은 임금님, 위엄을 입으셨네.

당신 법은 실로 참되며, 당신 집에는 거룩함이 서리나이다. 주님, 길이길이 그러하리이다. 주님은 임금님, 위엄을 입으셨네.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요한 3장 7ㄱ.8-15절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그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하자,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1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12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구원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이 거룩한 교환의 신비로 저희를 도우시어 저희가 이 세상에서 충실히 살아 마침내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박민우 알베르토 신부 집전

 

 

2022년 4월 26일 (화)
박민우 알베르토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2년 4월 26일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며 살아가는 방법은 두 가지.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삶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답변으로 제1독서는 초대 교회의 공동체 생활을 묘사합니다. 주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경험한 사도들은 성령 강림을 계기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 공동체의 삶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행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공동체 구성원은 실천적인 방식으로, 소유하고 있던 재산과 재물을 공유합니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만의 것으로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습니다. 

물론 여기서 증언하는 초대 교회의 모습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사회 체제 또는 이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잘 증언하고자 공동체 구성원들이 복음 정신에 따라 공동 소유를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입니다.

복음에서는 예수님과 바리사이 니코데모의 대화가 소개됩니다.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이나 지식만으로는 성령에 관하여 알기 어렵습니다. 인간은 성부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분, 곧 성자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로소 성령에 관하여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 안에서 받아들일 때,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립니다.

이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며 살아가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믿음으로 성령을 받아들이며 증언하는 것, 그리고 교회 공동체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구체적인 방식으로 복음 정신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아도 가난하지 않은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이 한동안 사랑받았고, 아마 지금도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을 겁니다. 그만큼 무소유의 삶이 아름다운 삶이고 가치있는 삶이라고 많은 이가 동의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나 그렇게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니, 거의 모든 사람에게 그 삶은 불가능할 겁니다. 왜냐면 소유해야 무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진정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그래서 진정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무소유할 수 없습니다. 

옛날 양로원에서 제가 잠깐 봉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 할아버지께서 온갖 쓰레기를 당신 사물함에 쌓아놓으셨습니다. 

먹을 것을 드려도 바로 잡숩지 않고 사물함에 두어 상하게 하시고, 밖에 나가 온갖 과자 봉지를 주워 와서 차곡차곡 쌓아두곤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은 한 달에 한 번 할아버지가 밖에 나가셨을 때 그 사물함 청소를 해드리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사물함 청소하고 나면 할아버지는 의욕을 잃고서 멍한 상태에서 며칠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또 쓰레기를 모으기 시작하십니다. 

왜 음식을 잡숩지 않고 쌓아놓고, 왜 그 쓸데없는 것들을 모으실까 생각하니 인생 말년에 당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인생이 너무 슬프고 가엾고 허전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되었고, 그래서 쓰레기로라도 당신 사물함을 채워놓으신 것일 겁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아도 가난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정말로 귀한 것을 소유한 사람이고, 그래서 그것으로 너무도 만족한 사람이요 아무 결핍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초기 교회 공동체 신자들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으로 생각지 않고 공동체에 내어놓은 것은 성령 충만의 결과입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이기도 한 루카 복음사가는 루카 복음에서 악한 아비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아는데 선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냐고, 성령을 주실 거라고 얘기합니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이 성령을 소유한 가난이 마태오 복음에서 말하는 영의 가난입니다. 

현재 우리 번역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번역하였지만 원래는 "영으로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번역했어야 했지요. 

우리는 흔히 버려야 가질 수 있다고 말하고, 소유욕을 버리고 가진 것도 버려야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소유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틀린 말이 아니지만 실제로는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소유해야 하느님 외에 다른 것은 모두 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더 맞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어떻게 하면 하느님 나라를 소유할 수 있을까요? 우물가의 여인처럼 아무리 뭣을 소유해도 갈증이 나고 그래서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갈망하면 되면 됩니다 그때 하느님께서 주실 터인데 그때 날름 받아 소유하면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빛이 되기 위해 살지 말고, 빛임을 증명하기 위해 살라!

 

예수님은 밤에 당신을 찾아온 니코데모에게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요한 3,7)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위에는 ‘하늘’이 있습니다. 그러니 ‘하늘로부터’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태어날 때 갖는 것을 ‘본성’이라고 합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은 ‘새로운 본성’을 가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본성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바로 빛의 본성과 어둠의 본성입니다. 빛의 본성은 하늘의 본성이고 어둠의 본성은 땅의 본성입니다. 빛의 본성은 창조자 하느님의 본성이고 어둠의 본성은 피조물의 본성입니다. 

본성을 알아보는 방법은 ‘욕구’를 통해서입니다. 피조물의 욕구가 있고 창조자의 욕구가 있습니다. 피조물의 욕구는 이 세상에서의 생존이고 창조자의 욕구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피조물의 생존 욕구와 대치됩니다. 예수님은 이 욕구를 변화시키는 방법이 ‘십자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14-15) 

하늘의 본성을 가진 이가 땅의 본성을 끌어올리려면 십자가에 죽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짐승 – 인간 – 하느님’의 세 단계로 탄생하기 때문에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의 본성으로 탄생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요한 3,12)라고 하시는 이유는 세상에서도 새로 태어남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이 새로 태어남은 동물의 본성으로 태어나서 인간의 본성으로 새로 태어나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때 부모는 하늘입니다. 하늘은 자녀들을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당합니다. 자녀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십자가의 희생이 아니면 자녀들이 어른으로 성장할 수 없음을 잘 압니다. 

하지만 인간도 여전히 피조물이라 생존 욕구의 노예일 뿐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인간 스스로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의 교리가 그렇습니다. 인간이 부처가 된다는 말은 인간이 노력하면 스스로 신적인 본성으로 승화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기가 부모 없이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나 본성은 본성에서만 나옵니다. 인간의 본성은 인간에게서 나오고 동물의 본성은 동물에게서, 그리고 하느님의 본성은 하느님에게서만 나옵니다. 

하느님 없이 하느님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지닌 이가 먼저 존재하지 않으면 어떤 방법을 통해서도 인간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빛이시고 그 본성이 하느님이신 이유는 인간 안에 사랑의 욕구를 심어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동물의 본성이 아닙니다. 동물도 그 사랑의 수준이 있습니다. 사랑이 있는 동물은 무리생활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일정 기간 부모에 의해 사랑을 배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시간에는 자신이 부모와 같은 본성이기 때문에 부모처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지배하는 시기입니다. 

그분이 나의 부모이고 내가 부모처럼, 부모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믿지 못하면 본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본성으로 태어나는 방식은 내가 그 새로운 본성임을 증명하는 삶을 통해서입니다. 

누구나 매일매일 자신의 본성이 무엇인지 증명하며 삽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창조자시라는 이유는 사랑이란 본성은 내가 창조자 하느님이라는 믿음이 아니면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에서는 사랑의 본성이 나오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피조물 안에 넣어진 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이웃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사랑입니다. 어떤 동물도 동료를 위해 대신 자기 생명을 바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태석 신부처럼 심지어 몰랐던 이들을 위해서도 생명을 바칠 수 있는 게 하느님으로 새로 태어난 인간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이심을 드러나는 것이고, 하느님이시기에 죽지 않으심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웃을 새로 태어나게 하려고 십자가를 지고 있다면 창조자의 본성으로 올라오는 중인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으로만 태어납니다. 빛은 빛으로만 태어납니다. 이 세상의 유일한 빛은 하늘에서 오신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빛일까요? 그러면 빛임을 증명하고 있을 것입니다. 

최근 애플 TV에서 발매한 드라마 ‘파친코’에서 이 장면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선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목사와 결혼하여 부산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사는 할머니입니다. 

선자의 손자는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미국의 잘 나가는 회사 직원이었으나 승진에서 제외당합니다. 그런데 일본 지사에 좋은 일거리가 있습니다. 한국계 할머니가 그들이 건물을 지으려는 땅에 알박기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그 일을 해결하고 오면 부사장 자리를 내어달라는 약속을 하고 일본에 건너옵니다. 솔로몬은 할머니에게 10억 엔을 주겠으니 집을 팔라고 합니다. 할머니는 막무가내입니다. 

그러자 솔로몬은 지혜를 냅니다. 바로 자기 할머니 선자를 그 할머니와 만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은행에 사인하러 옵니다. 일본인들은 깊은 인사를 하며 겉으로는 할머니를 공경하는 척합니다. 그러나 시선은 매우 따갑습니다. 솔로몬은 할머니에게 기쁜 얼굴로 말합니다. 

“할머니가 이겼어요. 오늘 대대손손 물려줄 큰돈이 생기는 거니까요. 오늘 내 할머니가 뭐 하시는지 아세요? 고향 떠나시고 처음으로 한국 가세요. 50년 전 여기 오실 때는 빈손으로 오셨는데 오늘은 일등석 타고 가신다고요.” 

그러나 할머니는 계약서 내용을 꼼꼼히 훑어봅니다. 그러자 처음에 친절했던 일본 사람들 눈빛이 바뀝니다. 어떤 임원이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님, 이 중요한 사람들을 다 기다리게 하고 계세요.” 

할머니가 여기서 사인하면, 그냥 돈 많이 벌려고 알박기하려던 한 조선족이 될 뿐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사인하려던 펜을 멈추고 유일한 한국 혈통인 솔로몬을 바라보며 이렇게 한국말로 말합니다. 

“처음 왔을 때 일본 사람들은 우리에게 집을 내어주지 않았다. 우리를 바퀴벌레라고 불렀지. 잘 생각해 봐. 그게 너한테 하는 얘기니까. 어디 한 번 들어보자. 네 할머니가 저 히죽대는 면상들 쳐다보며 여기 앉아 계시는데 그 몸속에 한 맺힌 피가 그 핏방울 하나하나가 이걸 못 하게 막는다 하면 뭐라 말씀드릴 거야? 그래도 사인하라고 하겠니?” 

솔로몬은 눈빛이 바뀌며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씀드렸을 거예요. 하지 마시라고.” 

솔로몬은 회사에서 잘립니다. 그런데 넥타이를 풀어 헤친 솔로몬은 비를 맞으며 길거리 버스커들의 음악에 몸을 맡깁니다. 정체성을 찾은 자유의 행복을 만끽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둠에 머물러 있게 만드는 본성이 있고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하고 싶은 욕망도 있습니다. 참 자유는 내가 하느님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행동이 나옵니다. 또 그렇게 하루하루 하느님의 본성에 가까워집니다. 

누구나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하며 삽니다. 이것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고 요한 복음이 줄기차게 말하는 믿음입니다. 나는 내가 사람임을 증명하며 삽니까, 하느님임을 증명하며 삽니까? 

그리스도임을 증명하며 삽시다. 그래야 조금씩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갑니다. 빛이 되려 하지 말고, 이미 빛임을 믿고 증명하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 핏속엔 이미 하느님의 핏줄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행복은 상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 시기에 벌어진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워 국민적 영웅이 되었고, 후에 황제에 직위 했습니다. 실각한 후 남대서양 외딴섬인 세인트 헬레나에서 보낸 6년의 세월을 제외하고, 그는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인생에서 행복했던 날은 일주일이 채 되지 않는다.” 
 
미국 작가인 헬렌 켈러는 시각, 청각 장애인이었습니다. 생후 19개월 되었을 때, 성홍열과 뇌막염으로 얻게 된 시각과 청각의 장애였습니다. 어렸을 때 얻은 이 장애로 얼마나 힘들을까 싶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인생에서 행복하지 않은 날은 없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스스로 불행하다고 말하고, 많은 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행복은 상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지금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행복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받아들일 때는 행복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바로 새로운 관점, 하늘 나라의 관점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라고 하십니다. 성령으로 다시 나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스라엘의 유명한 스승으로 알려진 니코데모는 알아듣지 못합니다. 만사를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던 타성에 굳어져서 영성적인 하느님 나라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라고 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과 전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나라는 믿음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할까요? 
 
믿는 그 사람이 원하는 모습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을 또 다른 표현으로 ‘사랑’이라고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랑하기에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제발 믿으라고, 또 제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세상의 일을 인간적으로만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주님의 자리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도 사라지고, 사랑도 찾기 힘들게 됩니다. 세상은 그 모든 것을 욕심과 이기심으로 채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사랑이라는 하늘 나라의 관점을 내 삶의 중앙에 위치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생각의 씨앗을 뿌리면 행동의 열매가 열리고, 행동의 씨앗을 뿌리면 습관의 열매가 열리고, 습관의 씨앗을 뿌리면 성격의 열매가 열리고, 성격의 씨앗을 뿌리면 운명의 열매가 열린다.

- 나폴레옹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요한 3,7)

 

십자가의 뜨거운 사랑을 따라가야 한다. 뒤따르지 않으면 위로부터 태어날 수 없다. 십자가는 삶의 가장 중요한 방향전환이다. 십자가의 생명력에서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리는 영적인 탄생이 있다. 십자가와 함께 호흡하는 것이 영적인 삶이다. 

영적인 삶은 우리의 생활을 하느님께로 들어 높인다. 생활의 밑거름이 곧 십자가의 사랑인 것이다. 십자가는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가 처음이자 마지막임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준다. 우리의 힘에서 벗어나야 하느님 사랑에 도달할 수 있다. 

우리 삶의 태도와 방식을 바꾸는 위로부터 태어나는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이다. 욕망과 욕심을 씻어내는 십자가이다. 악습을 버리지 않고서는 새로워질 수 없다. 십자가의 맑은 바람처럼 혼자 태어나는 삶이 아니라 우리모두 함께 태어나는 삶을 소망한다. 하느님의 참모습을 십자가에서 만난다. 

살아있는 생명과 참모습의 십자가와 십자가에서 흘러내리는 진리는 하나이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을 통해 진실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삶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영원한 생명의 십자가 그 십자가를 믿고 맡긴다. 두려움과 아픔을 봉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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