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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3월 7일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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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사순 제1주간 월요일 -

 

 

2022년 3월 7일 사순 제1주간 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오늘 제1독서

 

주님께서 거룩하시니 주님의 백성도 거룩해야 합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장 작은 이들에게 해 준 것이 당신께 해 드린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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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3월 7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레위 19장 1-2절, 11-18절

 

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11 
너희는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속여서는 안 된다. 동족끼리 사기해서는 안 된다. 

12 
너희는 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게 된다. 나는 주님이다. 

13 
너희는 이웃을 억눌러서는 안 된다. 이웃의 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너희는 품팔이꾼의 품삯을 다음 날 아침까지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14 
너희는 귀먹은 이에게 악담해서는 안 된다. 눈먼 이 앞에 장애물을 놓아서는 안 된다. 너희는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15 
너희는 재판할 때 불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너희는 가난한 이라고 두둔해서도 안 되고, 세력 있는 이라고 우대해서도 안 된다. 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16 
너희는 중상하러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 너희 이웃의 생명을 걸고 나서서는 안 된다. 나는 주님이다. 

17 
너희는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동족의 잘못을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그 사람 때문에 죄를 짊어지지 않는다. 

18 
너희는 동포에게 앙갚음하거나 앙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주님의 법은 완전하여 생기 돋우고, 주님의 가르침은 참되어 어리석음 깨우치네.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님의 계명 밝으니 눈을 맑게 하네.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주님을 경외함 순수하니 영원히 이어지고, 주님의 법규들 진실하니 모두 의롭네.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저의 반석, 저의 구원자이신 주님, 제 입으로 드리는 말씀, 제 마음속 생각, 당신 마음에 들게 하소서.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마태 25장 31-46절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33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36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37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41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44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46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이 성사로 몸과 마음에 힘을 얻고 비오니 저희가 천상 영약을 충만히 받아 구원의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이성구 사도요한 신부 집전

 

 

2022년 3월 7일 (월)
이성구 사도요한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2년 3월 7일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최후의 심판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공적 선포의 마지막 자리에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다섯 개의 긴 담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24─25장은 마지막 담화 부분입니다. 이 담화의 중심 주제는 마지막 날과 심판이며, 청자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제자들의 질문(24,3 참조)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으로 시작하는 이 마지막 담화는 26─27장의 수난 이야기를 준비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소개되는 ‘최후의 심판’의 구조는 단순합니다. 먼저, 심판 준비 상황이 묘사됩니다(25,31-33 참조). 마지막 날에 영광스럽게 오시어 옥좌에 앉으시는 사람의 아들은 심판자이시며, 그 앞에 모인 “모든 민족들”은 심판받을 대상입니다. 그다음으로, 심판 과정이 이어집니다(25,34-45 참조). 

임금이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이들과 각각 대화를 나누며 심판의 권한을 행사합니다. 임금의 질문에 대한 양쪽의 대답은 뚜렷이 대조를 이룹니다. 그러나 이들을 향한 심판의 기준은 똑같으며 분명합니다. 심판자인 임금에게는,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자선을 베풀었는지 그 여부가 가장 중요합니다. 

누군가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었다면, 그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의인’이라 불릴 것입니다. 반면에 그러지 못하였다면, 그는 영원한 벌을 받고 ‘저주받은 이’라 불릴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저마다 임금이신 주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마지막 날의 상황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날의 심판은 우리를 두려움으로 몰고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심판은 주님의 오심을 믿고 늘 깨어 자선을 베푸는 이들에게는 희망을 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느님 사랑에로의 도전

 

진정한 사랑은 동일화하는 것이라는 것이 오늘 가르침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진정 자신과 동일화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는 자식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진정 고마워하는데 자식에게 잘해주는 것이 마치 자기에게 잘해주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실로 부모는 자식의 모든 것에서 자신과 동일화합니다. 자식이 자랑스러운 일을 하면 자기가 한 것인 양 자랑스러워 하고, 자식이 부끄러운 짓을 하면 자기가 한 것인 양 부끄러워 하잖아요? 

반면에 남의 자식이 잘하면 부러워는 할지언정 자랑스러워 하지는 않고 남의 자식이 잘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욕을 하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요.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남을 자기와 동일시하는 것 틀림이 없고, 아예 남을 남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데 문제는 이런 사랑을 우리가 어떻게 지닐 수 있고 할 수 있느냐입니다. 

부모는 자기에게서 자식이 나왔으니 그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그럴 수 없는 것 아닐까요?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면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런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면 그렇겠지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적으로 그렇다면 인간적이지 않은 신적인 사랑을 지니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인간적인 사랑에 패배적으로 머물지 않고 하느님 사랑에로 도약하겠다는 불굴의 의지와 도전적인 의지가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사랑에 있어서만은 내가 감히 신이 되겠다는 도전적인 의지 말입니다. 

오늘 레위기의 주님께서도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이런 도전을 허락하셨습니다. 

교만의 도전은 악이지만 사랑의 도전은 선입니다. 교만의 도전은 하느님께서 꺾으시지만 사랑의 도전은 하느님께서 키우십니다. 당신처럼 사랑하려는 사람에게 당신 사랑을 주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에게 어디로 가라고 하실까요?

 

지금은 아동학대라고 하면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실험이겠지만, 13세기 독일의 프레드릭 2세는 아이를 대상으로 실험했습니다. 외부와의 접촉을 완벽히 차단해서 키우는 것입니다. 그때 어떤 언어를 말하고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안아주지 않고 말도 걸어주지 않았습니다.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국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고, 말을 할 나이가 되기 전에 대부분 사망했습니다. 끔찍하다고 할 수 있는 비윤리적인 실험이었지만, 신체적 접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친밀하고 행복한 사랑의 관계를 맺지 못하면 우리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육체적으로는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어도, 감정적으로는 무조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 안에서만 그럴까요? 이렇게 사랑의 관계를 맺지 못하면, 하느님 앞에 서서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점을 ‘최후의 심판’을 이야기하는 오늘 복음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천사를 거느리고 오시는 사람의 아들은 여기서 모든 백성을 심판하는 임금으로 나타나십니다. 그 앞에 세상을 살아온 모든 백성이 서게 되고, 각자 믿음과 그 실천에 관하여 심판받게 된다고 하십니다.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은 사람을 대하는 데 소홀히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임금이신 주님은 자신에게 하는 것보다 가장 작은 이들에게 해 준 것을 자신에게 해 준 것으로 여기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에서도 이렇게 강조합니다. 오늘 독서의 레위기는 이렇게 말하지요. 
 
“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레위 19,15) 
 
“너희는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레위 19,17) 
 
우리 주변에는 우리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이런 이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어야 곧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고 최고의 찬양을 드리는 것이 됩니다. 
 
자신과 이루는 모든 관계는 나를 살게 하는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왜 이 관계를 끊으려고 하십니까?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나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고…. 이런 식을 끊어버리면 이 세상에서도 그리고 주님 앞에서도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의 관계 중에 하나를 끊으면 또 다른 관계를 끊는 것도 쉽게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계속 관계를 끊다 보면, 심지어 주님과의 관계도 끊게 됩니다.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에게 어디로 가라고 하실까요?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행복의 원칙은 첫째, 어떤 일을 할 것. 둘째,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셋째, 어떤 일에 희망을 갖는 것이다.

- 칸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 25,39)

 

순간 순간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을 보게 된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함께해야 할 사랑과 이해의 소중한 사람임을 일깨워주시는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사람의 길을 보여주신다. 먼저 사람이 되는 길이다. 사람의 길은 돌보아 주는 사랑과 관심의 실천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사람의 길을 만드신다. 

사람은 사람에게서 삶을 배운다. 사람은 사람 속에서 사람이 되어간다. 모순된 삶을 바로잡아 주시며 가난한 이들 모두를 사람답게 살게하시는 예수님의 삶이다.  사순은 사람의 올바른 실천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의 시간이다. 모든 것들은 다 사라져도 하늘 나라의 사랑은 남는다. 복음의 가치는 실천의 가치이다.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그 사랑으로 우리또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쑥과 마늘을 먹으며 끝까지 사람이 되고자 한 이야기처럼 먼저 사람이 되게하시는 사순의 선물이다. 사순의 선물 보따리 안에는 사람의 굶주림과 목마름 외로움과 헐벗음 병듦과 수감의 고통이 들어 있다. 

이제 사순의 보따리를 풀어 하나 하나 함께해야 할 사순의 실천이다. 사람이 사순이며 사람이 섬겨야 할 우리의 예수님이시다. 보라! 가장 작은 사람 예수를. 사랑은 실천이다. 사람은 실천으로 사람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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