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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2월 14일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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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1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2022년 2월 14일 월요일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치릴로 성인과 메토디오 성인은 형제로 그리스의 테살로니카에서 태어나 터키의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두 형제는 전례서들을 자신들이 창안한 알파벳의 슬라브 말로 번역했습니다. 치릴로와 메토디오 형제는 체코 모라비아의 슬라브족에게 파견되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헌신적으로 일했습니다.

로마로 돌아간 두 형제 가운데 치릴로 성인은 수도 서원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869년 무렵에 선종했습니다. 메토디오 성인은 교황 특사로 모라비아에서 활동하다가 885년 무렵 선종했습니다.

 

 

✠ 오늘 제1독서

 

야고보는 시련에 굴하지 말고 인내로 이겨 내며 하느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으로 지혜를 청하라고 합니다.

 

 

✠ 오늘 복음

 

바리사이들의 불신앙에 실망하신 예수님께서는 그 세대가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2월 14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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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야고 1장 1-11절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그리하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이다.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가 세상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에게 인사합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그 인내가 완전한 효력을 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누구든지 지혜가 모자라면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너그럽게 베푸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의심하는 일 없이 믿음을 가지고 청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주님에게서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그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으로 어떠한 길을 걷든 안정을 찾지 못합니다. 


비천한 형제는 자기가 고귀해졌음을 자랑하고, 

10 
부자는 자기가 비천해졌음을 자랑하십시오. 부자는 풀꽃처럼 스러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11 
해가 떠서 뜨겁게 내리쬐면, 풀은 마르고 꽃은 져서 그 아름다운 모습이 없어져 버립니다. 이와 같이 부자도 자기 일에만 골몰하다가 시들어 버릴 것입니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주님,
당신 자비 저에게 이르게 하소서.
제가 살리이다.

 

고통을 겪기 전에는 제가 잘못했으나, 이제는 당신 말씀을 따르나이다. 주님, 당신 자비 저에게 이르게 하소서. 제가 살리이다.

당신은 좋으시고 선을 행하시는 분, 당신 법령을 저에게 가르치소서. 주님, 당신 자비 저에게 이르게 하소서. 제가 살리이다.

고통을 겪은 것, 제게는 좋은 일, 당신 법령을 배웠나이다. 주님, 당신 자비 저에게 이르게 하소서. 제가 살리이다.

당신 입에서 나온 가르침, 수천 냥 금은보다 제게는 값지옵니다. 주님, 당신 자비 저에게 이르게 하소서. 제가 살리이다.

주님, 당신 법규가 의로움을 저는 아나이다. 고통을 겪어도 저는 마땅하옵니다. 주님, 당신 자비 저에게 이르게 하소서. 제가 살리이다.

당신 종에게 하신 말씀대로, 자애를 베푸시어 저를 위로하소서. 주님, 당신 자비 저에게 이르게 하소서. 제가 살리이다.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마르 8장 11-13절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그때에 

11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13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모든 민족들의 아버지이신 하느님, 복된 치릴로와 메토디오를 기리는 저희가 한 분이신 성령 안에서 한 빵을 나누는 영원한 잔치에 참여하게 하셨으니 하느님의 수많은 자녀들이 한 믿음을 굳게 지켜 한마음으로 정의와 평화의 나라를 세우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이현섭 요셉 신부 집전

 

 

2022년 2월 14일 (월)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이현섭 요셉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2년 2월 14일 (월)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시련은 누구에게나 어떠한 형태로든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예상하지 못한 질병의 고통으로, 누군가에게는 불의의 사고로 자녀를 잃은 비통함으로 다가옵니다. 

어떤 이에게는 오랜 기간 공들인 수고와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허탈함으로, 어떤 이에게는 헌신적으로 일하던 직장에서 갑자기 쫓겨나게 된 상실감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런 시련이 왜 하필 나에게 다가온 것인지,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한 것인지 하느님께 따져 보기도 하지만, 그분께서는 침묵 속에서 우리를 방관하고 계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마치 십자가 위에서 절규하시던 예수님에게 아무런 응답이 없으셨던 하느님처럼 말입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르 15,34)

그런데 오늘 제1독서는 이러한 시련을 두고 우리의 믿음이 ‘시험’에 놓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들을 단련시키시는 과정이라는 것이지요. 사실 그 자녀들 가운데 으뜸이신 예수님께서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모진 시련을 겪으셨습니다. 승리자의 위풍당당함이 아닌 패배자의 무력한 모습을 선택하신 메시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참으로 끝까지 인내하셨습니다. 그 거룩한 인내는 마침내 부활이라는 완전한 결실로 이어지고, 온 인류는 구원을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혹독한 수난에도 끝까지 인내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하는 우리 신앙인들은 각자에게 다가온 시련에 좌절하기보다 오히려 그에 맞서 강한 믿음으로 인내하는 사람들입니다. 당신 제자들이 얼마나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지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위로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시련의 의미를 아는 인내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그 인내가 완전한 효력을 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부터 야고보서가 봉독되는데 시작부터 믿음의 시련에 대해 얘기합니다. 당시 믿는 이들이 믿음 때문에 시련 중에 있거나 하느님을 믿는데도 시련이 있었기 때문일 텐데 이 시련에 의미가 있으니 기쁘게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박해 시대처럼 믿는 것 때문에 박해를 받거나 하느님을 믿는데도 다른 사람에게처럼 고통이 닥치거나 하면 우리는 왜 하느님을 믿어야 하나, 굳이 하느님을 믿을 필요가 뭐 있나? 이런 식으로 믿음에 대한 의구심이 들며 믿음이 시련을 당하게 되지요. 

그런데 고통이나 시련은 이렇게 의구심이 들게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고통과 시련의 의미를 생각게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왜 내게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묻게도 하는 거지요. 

의미없는 고통이나 덧없는 시련은 정말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고통뿐인 덧없는 인생은 살 이유가 없고 살아낼 힘도 없기 때문에 반드시 의미가 있어야 하듯 고통이나 시련도 의미가 있어야 견딜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오늘 야고보서는 시련의 의미가 우리에게 인내가 생겨나게 하고, 이 인내가 온전한 효력을 발휘하게 되면 완전한 사람이 되게 한다고 얘기합니다. 

이것을 시련이 인내를 낳고, 인내가 완전한 사람을 낳는 것이라고 그 의미를 얘기해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한 것은 시련없이 인내나 인내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것이나 즐거움을 인내한다고 하지 않고, 인내라는 것이 본래 고통이나 시련을 견디는 것을 말함이니 고통과 시련없이는 인내나 인내력이 생길 수는 없는 거지요. 

이것은 이렇게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러나 인내가 모든 면에서 모자람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한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미련곰탱이처럼 무조건 인내하면 정말 모자람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까요? 

그렇지 않고 야고보서도 그런 뜻에서 말한 것이 아니라 인내가 완전한 효력을 낼 경우 그렇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완전한 인내가 완전한 인간이 되게 한다는 뜻일 겁니다. 

그렇다면 다시 완전한 인내가 무엇인지가 문제가 되겠는데 완전한 인내란 인내의 의미를 완전히 알고 하는 인내이고, 하느님 사랑으로부터 그 의미를 찾은 인내를 말함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고통이나 시련이 하느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그럴 때 우리는 겸손하게 인내하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인내하고, 하느님 사랑의 힘으로 인내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선거로 드러나는 나의 모습 : 바리사이의 선택, 신앙인의 선택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바리사이들과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는’ 그 세대를 두고 탄식하십니다. 왜 하느님을 믿기 위해 표징을 요구하는 것이 잘못일까요? 그 이유는 이미 표징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앞에서 4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당신이 아버지이시고 창조자이심을 보여주는데 이것만큼 큰 표징은 없습니다. 

만약 아이가 “아빠, 우리 아빠 맞아? 맞으면 한 번 날아봐!”라고 한다면 황당할 것입니다. 이 말은 아빠가 아빠이기를 믿기 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에게 어떤 이익이 되는가를 시험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아빠는 필요없고 슈퍼맨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자신 안에 이 세상에서 아빠의 덕을 보며 능력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로보트 기요사키’는 전 세계 베스트셀러가 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 유명한 사업가입니다. 그는 물론 가난한 아빠도 사랑하겠지만 그보다는 부자 친구의 아빠가 더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가서 어렸을 때부터 돈 버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을 키워준 아빠보다 부자 아빠를 따른 것을 더 잘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그의 마음 안에는 아빠의 따듯한 애정도 좋지만, 이 세상에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마음이 드러났습니다. 물론 자신을 키워준 아빠도 사랑하겠지만, 책 내용만 보면 그는 아빠를 ‘능력’으로 평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그를 키워준 가난한 공무원이었던 아빠의 마음은 어떨까요? 

어쩌면 우리도 하느님에게 능력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청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남편의 승진을 위해, 아이의 성공을 위해, 집값의 상승을 위해 기도하고 그 기도가 성취되면 하느님을 믿겠다고 한다면 하느님은 마음이 아프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버지’가 되시기를 원하는데, 우리는 이 세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챙겨줄 ‘슈퍼맨’을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아버지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줄 능력이 없는 것을 볼 때는 가차 없이 버립니다. 그러니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능력 있는 표징을 보여달라고 하며 자신들이 부려먹을 힘 있는 황소와 같은 하느님을 바라고 있었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살과 피가 섞인 ‘양식’만큼 하느님을 아버지로 믿을 표징은 없는데도 말입니다. 

우리가 타락한 세대인지 아닌지는 ‘선거’ 때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선거 때가 되면 후보자들은 각자 자신에게 어떠한 능력이 있는지 어필합니다. 이는 벌써 아버지와 같은 후보가 아닌 슈퍼맨과 같은 능력자를 원하고 있기에 우리 자체가 바리사이처럼 돈을 좋아하는 나라가 되었음을 드러나게 합니다. 

지도자의 자질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눕니다. 바로 ‘비전 – 통솔력 – 청렴함’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전입니다. 지도자는 마치 배의 선장과 같은데 길을 볼 줄 모르면 큰 사고가 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결단력 없는 선장 때문에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나올 수 있는지 우리는 세월호 사고 때 깊이 체험했습니다. 비전 없는 지도자를 따라가는 것은 지옥입니다. 

옛날에 한 청년이 커다란 성의 주인인 성주를 찾아가 성공비결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성주는 자신이 마시던 컵에다 포도주를 가득 따르고는 청년에게 건네주면서 별안간 큰소리로 군인을 하나 불렀습니다. 

“이 젊은 청년이 저 포도주잔을 들고 시내를 한 바퀴 도는 동안 넌 칼을 빼 들고 그를 따라라. 만약 저 청년이 포도주를 엎지를 때는 그의 목을 내리쳐라!” 
청년은 식은땀을 흘리며 그 잔을 들고 엎지르지 않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왔습니다. 임금님은 청년이 시내를 도는 동안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물었습니다. 청년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성주는 큰소리로 다시 물었습니다.

“넌 거리에 있는 거지도 장사꾼들도 못 보고 술집에서 노래하는 것도 못 들었단 말이냐?”

청년은 다시 “네, 저는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성주가 말했습니다.

“그렇다. 이것이 네 인생 교훈이다. 네가 거리를 한 바퀴 돌면서도 그 잔만 바라보고 정신을 집중시킨 것처럼, 너의 인생에 하늘이 원하는 뜻을 찾고 찾았으면 그 마음으로 나아가면 된다.”

자신의 인기를 위해서 어떤 때는 이렇게 하고, 어떤 때는 저렇게 하며 이랬다저랬다 하는 비전과 결단력이 없는 지도자는 뽑지 말아야 합니다. 

그다음은 ‘통솔력’인데,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일치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분열의 원인이 되는 지도자는 최악 중의 최악입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좁은 땅덩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동서남북, 남녀노소, 혈연지연 등으로 갈라져 일치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된 큰 영향이 정치인들입니다. 나라를 분열시키며 자신의 표를 얻겠다고 하는 사람이 어떻게 지도자가 되어 통솔력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잘 알듯이 칭기즈 칸은 아들이 다섯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룩한 엄청난 업적이 자녀들이 분열되면 곧 무너질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죽음 직전에 아들 다섯을 불렀습니다. 각자에게 화살 하나씩 주고 분질러보라고 하였습니다. 장성한 아들들은 쉽게 문질렀습니다. 이번엔 화살 다섯 개를 주고 한 번에 분질러보라고 했습니다. 누구도 다섯 개를 한 번에 분지를 수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아들들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분열시키는 지도자도 지옥을 만드는 지도자입니다. 

마지막으론 ‘청렴결백’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많은 대통령이 감옥에 갔다가 왔습니다. 그 큰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웠다는 데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지만, 어느 면에서는 잘한 것도 많습니다. 월남전 당시 미국 무기 수출업체인 맥도날드 더글라스 회사의 중역이었던 데이빗 심슨이 자신의 회고록에서 100만 달러와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된 이야기를 썼습니다. 

“나는 비서관을 따라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갔다. 아무리 가난한 나라지만, 그의 행색은 한 국가의 대통령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을 보는 순간, 지금까지의 그의 허름한 모습이 순식간에 뇌리에서 사라진 것을 느꼈다. 

‘각하, 맥도날드사에서 오신 데이빗 심슨 씨입니다.’

비서가 나를 소개하자 대통령은 ‘손님이 오셨는데 잠깐이라도 에어컨을 켜는 게 어떻겠나’라고 말을 꺼냈다. (박 대통령은 평소에도 집무실과 거실에 부채와 파리채를 두고 에어컨은 끄고 지냈다.)

‘각하, 이번에 한국이 저희 회사의 M16 소총 수입을 결정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한국의 국방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희 회사가 드리는 작은 성의입니다.’

인사말과 함께 준비해온 수표가 든 봉투를 대통령 앞에 내밀었다.

‘흠, 100만 달러라. 내 봉급으로는 3대를 일해도 못 만져볼 큰돈이구려.’

대통령의 얼굴에 웃음기가 돌았다. 순간 나는 그 역시 내가 무기 구매 사례비 전달로 만나본 다른 여러 나라의 국가 지도자들과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한 번 말했다.

‘각하, 이 돈은 저희 회사에서 보이는 관례적인 성의입니다. 그러니 부디 부담 갖지 마시고….’

그때 잠시 눈을 감고 있던 대통령이 나에게 말했다.

‘여보시오. 한 가지 물읍시다. 이 돈 정말 나한테 주는 거요? 그러면 조건이 있소’하고는 받았던 봉투를 다시 내 쪽으로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자, 이제 이 돈 100만 달러는 내 돈이요. 내 돈이니까 내 돈으로 당신 회사와 거래를 하고 싶소. 당장 이 돈만큼 총을 더 가져오시오. 이 돈은 지금 내 형제 내 자식들이 천리타향 독일 광산에서 그리고 멀리 월남 땅에서 피 흘리고 땀 흘려 바꾼 돈이요. 내 배 채우는 데 쓸 수 없소.’

‘알겠습니다. 각하, 반드시 100만 달러어치의 소총을 더 보내드리겠습니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한 나라의 대통령이 아닌 아버지(國父)의 모습을 보았다.”

[출처: 『어떻게 살 것인가』, ‘청렴은 공직자의 근본이 되는 의무’, 이충호, 하늘아래]

결국, 비전이나 통솔력이나 청렴결백은 ‘아버지’ 한마디로 요약됩니다. 제삼자의 관점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아버지로 볼 수 있었다면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또한, 아버지라면 무력으로 아버지가 될 수 없고 또 혼자만 끝까지 통솔하려고 하다가 불운을 자초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가족에 대한 비전이 있습니다. 가족을 살리고 교육해서 자녀들이 다 나은 세상으로 가게 놓아주어야 합니다. 나의 것으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잃으면 통솔력을 잃고 분열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솔직하지 못하게 됩니다. 

좋은 아버지는 비전이 없을 수 없고, 가족의 일치를 도모하지 않을 수 없으며, 또한 가족을 위해 청렴결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아버지처럼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비전’은 무엇일까요? 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자녀를 많이 낳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아담에게 주어진 첫 계명이 자녀를 많이 낳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자녀를 낳지 않으면 아무리 잘 살려고 해봐야 일본을 답습할 뿐입니다. 차를 살 사람도 없어지고, 옷을 입을 사람도, 놀이공원에 놀러 갈 사람도 사라집니다. 노인들도 연금을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산아제한을 하며 수많은 아이를 낙태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버지로서 태어나려는 아이들에게 할 행동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쩐지 지금 우리가 원하는 후보들은 ‘지금’ 우리가 돈을 많이 벌게 해 줄 표징을 찾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것에 맞춰 그들도 공약을 내놓습니다. 오로지 지금 투표할 사람들에게만 관심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 태어날 아기들은 투표권이 없기에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곧 나 자신이 바리사이인지, 신앙인인지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좋은 아버지와 같은 대통령이 나오기를 기도해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하는 이유

 

죽음에 자유롭지 못한 우리입니다. 사실 역사를 보면 죽음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을 사람들이 얼마나 기울였는지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진시황제의 불로초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오만가지 방법을 사용해서 죽음에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젊은 피의 수혈, 영약, 칼로리 섭취 제한, 채식, 마법의 혈청, 불가리아 요구르트, DHA 등등…. 이런 노력이 실제로 평균 수명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의 수명이 늘어난 것은 아닙니다. 뜻밖의 이른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정말 많습니다. 
 
19세기 실증주의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는 오래 살기 위해 엄격한 생활 수칙을 정하고 이를 철저하게 따랐습니다. 담배, 커피, 술 등을 포함해서 자극적인 음식을 삼갔고 식사량을 제한했습니다. 조금이라도 건강에 지장을 주는 것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콩트는 몇 세까지 살았을까요? 이토록 애를 쓰고서도 59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죽음 안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죽음을 지배하고 계신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인정하며,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 필요합니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이 표징의 요구 전에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사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빵의 기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또 다른 표징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예수님의 모든 기적을 단순히 사기꾼이 보여주는 요술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보고서도 믿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님에 대해 믿기 싫어하는 불신과 악의를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면 예수님의 말씀만으로도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표징을 외면하는 이 세대에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보여봤자 그들의 악한 마음만 더 커질 뿐 이로운 것이 없었겠지요. 그래서 그 자리를 떠나셨던 것입니다. 
 
죽음을 지배하는 전지전능하신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믿음이 주님의 말씀 안에서 놀라운 표징을 발견하게 할 것입니다. 오늘 독서의 야고보 사도의 말씀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그리하여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야고 1,3.4)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세상은 고난으로 가득하지만, 고난의 극복으로도 가득하다.

- 헬렌켈러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마르 8,12)

 

표징을 속이는 것은 표징을 요구하는 우리자신이었다. 언제나 사람의 표징은 사람이다. 끊임없이 표징을 요구하는 변덕스러운 우리들 삶이다. 자기 입맛에 맞지않으면 표징을 너무 쉽게 갈아타는 우리들이다. 가장 큰 표징인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우리들은 표징을 요구한다. 

표징을 먹고 사는 우리들이 표징을 죽인다. 예수님께서는 살리는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신다. 욕심 많은 자아가 무너져야 표징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표징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표징의 현주소는 우리의 회개로 다시 분명해진다. 표징의 요구가 아닌 표징과의 합일이 중요하다. 

표징의 십자가로 정신을 다시 차리게 된다. 표징이 가짜가 아니라 거짓으로 살아가는 우리자신이 가짜이다. 가짜가 진짜가 되게하시는 참된 표징의 이름으로 기도드린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표징이신 예수님과 함께하는 우리들 삶이다. 우리의 표징은 진정 무엇인가를 다시 묻고 따르는 오늘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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