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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2월 7일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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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5주간 월요일 -

 

 

2022년 2월 7일 (월)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오늘 제1독서

 

솔로몬은 주님께 당신께서 영원히 머무르실 웅장한 집을 지었다고 말씀 드립니다.

 

 

✠ 오늘 복음

 

병자들은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라도 손이 닿기를 청하는데 손을 댄 이는 모두 구원받습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2월 7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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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1열왕 8장 1-7절, 9-13절

 

계약 궤를
지성소 안에 들여다 놓았다.
구름이
주님의 집을 가득 채웠다.

 

그 무렵 


솔로몬은 주님의 계약 궤를 시온, 곧 다윗 성에서 모시고 올라오려고,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의 각 가문 대표인 지파의 우두머리들을 모두 예루살렘으로 자기 앞에 소집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에타님 달, 곧 일곱째 달의 축제 때에 솔로몬 임금 앞으로 모였다. 


이스라엘의 모든 원로가 도착하자 사제들이 궤를 메었다. 


그들은 주님의 궤뿐 아니라 만남의 천막과 그 천막 안에 있는 거룩한 기물들도 모두 가지고 올라갔는데, 사제와 레위인들이 그것들을 가지고 올라갔다. 


솔로몬 임금과 그 앞에 모여든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함께 궤 앞에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양과 황소를 잡아 바쳤다. 


그러고 나서 사제들이 주님의 계약 궤를 제자리에, 곧 집의 안쪽 성소인 지성소 안 커룹들의 날개 아래에 들여다 놓았다. 


커룹들은 궤가 있는 자리 위에 날개를 펼쳐 궤와 채를 덮었다. 


궤 안에는 두 개의 돌판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돌판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올 때, 주님께서 그들과 계약을 맺으신 호렙에서 모세가 넣어 둔 것이다. 

10 
사제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주님의 집을 가득 채웠다. 

11 
사제들은 그 구름 때문에 서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집에 가득 찼던 것이다. 

12 
그때 솔로몬이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짙은 구름 속에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13 
그런데 제가 당신을 위하여 웅장한 집을 지었습니다. 당신께서 영원히 머무르실 곳입니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일어나소서,
주님, 당신 안식처로 드소서.

 

보라, 우리는 에프라타에서 소식을 듣고, 야아르 들에서 그 궤를 찾았노라. 우리 그분 거처로 들어가, 그분 발판 앞에 엎드리세. 일어나소서, 주님, 당신 안식처로 드소서.

일어나소서, 주님, 당신 안식처로 드소서. 당신 권능의 궤와 함께 드소서. 당신의 사제들이 의로움의 옷을 입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환호하게 하소서. 당신 종 다윗을 보시어, 당신 메시아의 얼굴을 외면하지 마소서. 일어나소서, 주님, 당신 안식처로 드소서.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마르 6장 53-56절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53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55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하느님, 저희 모두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나누어 먹고 마시게 하셨으니 저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기꺼이 인류 구원에 앞장서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양우철 야고보 신부 집전

 

 

2022년 2월 7일 (월)
양우철 야고보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2년 2월 7일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의 꿈이기도 했던 성전을 완공하고서 그곳에 주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계약 궤를 모셔 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먼저, 다윗 시절에 계약 궤는 유다 바알라에 있다가 예루살렘의 다윗성으로 옮겨지게 되는데, 이를 너무도 기뻐한 다윗이 주님 앞에서 마치 아이처럼 흥겹게 춤을 추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입니다(2사무 6장 참조). 

오늘 독서에 등장하는 솔로몬도 정성을 다하여 마련한 성전에 드디어 계약 궤를 모실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감격스러워합니다.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양과 황소를” 제물로 봉헌하는 모습에서, 그리고 주님께 드리는 장엄한 기도를 통해서(1열왕 8,22-53 참조) 솔로몬의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약 시대의 두 임금에게서 주님을 가장 좋은 곳에 모시고자 하는 열망과 기쁨을 배웁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제 주님께서 새로운 계약을 통하여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우리가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점을 명확하게 지적합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1코린 3,16-17)

우리는 영성체를 통하여 다윗과 솔로몬도 누려 보지 못한 특혜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기쁨을 제대로 만끽하며 살고 있을까요? 평소 어떤 마음가짐으로 주님을 모시며 생활하고 있는지 성찰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을 가장 좋은 곳에 모시려면 늘 우리 마음을 가꾸고 보살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치유와 구원 중에서 나는?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오늘은 수많은 병자가 예수님께 몰려와 주님의 옷깃에 손을 대자 모두 치유되었다는 사실을 전하는데 참으로 이상한 것이 치유를 받았다고 하지 않고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왜 치유를 받았다고 하지 않고 구원을 받았다고 했을까요? 별 뜻 없이 그렇게 묘사한 것일까요? 

그런 것이 아닐 거라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병자들은 고작 치유을 받은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것임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왜냐면 주님께서는 구원을 주셨지 병만 고쳐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는 것은 주시는대로 받는 것이지 주시지 않은 것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구원은 주시지 않고 치유만 주시고자 하셨겠습니까? 예를 들어 부모인 우리도 사랑으로 돈을 주지 돈만 주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데도 자식은 돈만 받고 사랑은 받지 않을 수 있지만 자식이 그럴지라도 부모는 사랑하기에 돈을 준 것이지 돈만 준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치유와 구원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제 생각에 치유는 병의 치유라면 구원은 만남입니다. 치유가 존재의 한 부분이 치유되는 거라면 구원은 전 존재가 치유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육신의 병 하나만 치유되는 것은 구원이 아니고, 치유만 받고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도 구원이 아니며, 하느님을 만나서 육신 뿐 아니라 마음도 정신도 영혼도 치유돼야 구원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극단적인 상황을 상상해봅니다. 제가 지금 중병에 걸렸는데 주님께서 치유와 구원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시면 주님과의 만남 없이 병의 치유만 선택하는 나와 병이 치유되지 않더라도 주님과의 만남을 선택하는 나중에 나는 어떤 나일지.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월요일은 쉽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인간(人間)의 한자를 살펴보십시오.

 

인간(人間)의 한자를 살펴보십시오. 사람 인(人)과 사이 간(間)의 조합입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인간이 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사람이 둘 이상 모여 그사이에 공간이 형성되어야 비로소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 공간이 너무 떨어지면 외롭고, 이 공간이 너무 밀착되면 숨이 막힙니다. 
 
적절한 거리감이 중요합니다. 무관심은 사이 공간을 떨어지게 하는 것이고, 사소한 것 하나까지 간섭하면 숨 막혀 죽을 상황을 만들고 맙니다. 인정과 지지만이 적절한 거리감 형성에 도움을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사랑’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사랑한다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지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이름으로 거절, 부정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자녀에게 “절대 안 된다”라면서 그럴 바에는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치는 부모의 외침에 적당한 간격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다 너를 위한 것”이라는 부모의 말을 무조건 따르라고 말한다면, 숨 막히는 간격이 아닐까요?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황금률의 기초이며, 참 인간으로 사는 길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원칙을 따르셨음을 오늘 복음에서 봅니다. 예수님께서 도착하시자 그 지방 사람들이 알아보고는 동네방네 소식을 알리고 병자들을 앓고 있는 상태 그대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질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지요. 너무 사람이 많아 일일이 손을 얹어 주시거나, 한 사람 한 사람 축복해 주실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를 통해 중요한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병의 치유가 예수님의 관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자기네들 스스로가 믿음을 가지고 했던 행동(옷자락에 손을 대는 일)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갑곶성지에도 예수님의 발등을 잡고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알려지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미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대한 믿음을 표현했기 때문에 바람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주시기도 한다는 점에 기대어 보면 어떨까요? 진짜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게 꼭 필요한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사람들은 ‘증명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다만 ‘그렇게 된’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

- 고선웅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마르 6,56)

 

간절한 소망은 믿음이 된다. 믿음은 더 많은 사람으로 확대된다.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체험하는 보편적인 구원으로 넘어간다. 이와같이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접촉은 인생 전체에 걸쳐 필요한 해방의 참된 여정이 된다. 병에서 치유되고 죄에서 해방되고 죽음에서 생명을 체험하는 구원이 있다. 

우리 현실 안에서의 참된 구원이란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우리가 진실로 믿게되는 것이다. 믿기에 하느님의 자녀임을 깨닫게 된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전폭적인 선물이다. 구원을 통하여 우리는 생명이신 주님의 참기쁨을 알게된다. 하느님 은총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삶이다. 

은총은 주님께 순종하는 삶으로 이어진다. 구원은 참된 나눔이며 선(善)을 행하는 참된 실천이다. 먼저 구원을 실천하시는 예수님이시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삶의 변화로 우리를 이끈다. 맛보지 못했던 영적 자유를 우리가 체험하게 한다. 지금 여기서부터 구원이 시작되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 안에 구원이 있다. 이 구원이 사람을 끌어당긴다. 우리의 현실을 우리의 생활을 구원하시는 구원자께서 우리의 생활로 들어오셨다. 생각을 바꾸는 구원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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