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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2월 5일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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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

 

 

2022년 2월 5일 (토)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아가타 성녀는 이탈리아 남부의 시칠리아섬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녀는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고자 평생 동정으로 살았습니다. 아가타는 철저하게 동정을 지키려다 지방 관리의 청혼을 거절하여 혹독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데키우스 황제 박해 기간(249-251년)에 순교한 아가타 성녀에 대한 공경은 초대 교회 때부터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 오늘 제1독서

 

주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주시고 다른 축복도 약속하십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측은히 여기시어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2월 5일 (토)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1열왕 3장 4-13절

 

예로보암은
금송아지 둘을 만들었다.

 

그 무렵 솔로몬은 


제사를 드리러 기브온에 갔다. 그곳이 큰 산당이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그 제단 위에서 번제물을 천 마리씩 바치곤 하였다. 


이 기브온에서 주님께서는 한밤중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느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셨다. 


솔로몬이 대답하였다. “주님께서는 당신 종인 제 아버지 다윗에게 큰 자애를 베푸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당신 앞에서 진실하고 의롭고 올곧은 마음으로 걸었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는 그에게 그토록 큰 자애를 내리시어, 오늘 이렇게 그의 왕좌에 앉을 아들까지 주셨습니다. 


그런데 주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당신 종을 제 아버지 다윗을 이어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만, 저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서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당신 종은 당신께서 뽑으신 백성, 그 수가 너무 많아 셀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당신 백성 가운데에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어느 누가 이렇게 큰 당신 백성을 통치할 수 있겠습니까?” 

10 
솔로몬이 이렇게 청한 것이 주님 보시기에 좋았다. 

11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것을 청하였으니, 곧 자신을 위해 장수를 청하지도 않고, 자신을 위해 부를 청하지도 않고, 네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지도 않고, 그 대신 이처럼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청하였으니, 

12 
자, 내가 네 말대로 해 주겠다. 이제 너에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준다. 너 같은 사람은 네 앞에도 없었고, 너 같은 사람은 네 뒤에도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13 
또한 나는 네가 청하지 않은 것, 곧 부와 명예도 너에게 준다. 네 일생 동안 임금들 가운데 너 같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주님,
저에게 당신 규범 가르치소서.

 

젊은이가 어떻게 제 길을 깨끗이 가리이까? 오로지 당신 말씀 지키는 것이옵니다. 주님, 저에게 당신 규범 가르치소서.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찾나이다. 당신 계명 떠나 헤매지 않게 하소서. 주님, 저에게 당신 규범 가르치소서.

행여 당신께 죄를 지을세라, 마음 깊이 당신 말씀 간직하나이다. 주님, 저에게 당신 규범 가르치소서.

주님,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저에게 당신 규범 가르치소서. 주님, 저에게 당신 규범 가르치소서.

당신 입에서 나온 모든 법규, 제 입술로 이야기하나이다. 주님, 저에게 당신 규범 가르치소서.

온갖 재산 다 얻은 듯, 당신 법의 길 걸으며 기뻐하나이다. 주님, 저에게 당신 규범 가르치소서.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마르 6장 30-34절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았다.

 

그때에 

30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3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32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33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3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하느님, 성인들 가운데 복된 아가타에게 동정과 순교의 두 월계관을 함께 씌워 주셨으니 저희가 이 성사의 힘으로 모든 악을 용감히 이겨 내고 마침내 천상 영광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김우성 비오 신부 집전

 

 

2022년 2월 5일 (토)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김우성 비오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2년 2월 5일 (토)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만약 하느님께서 여러분이 바라는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다고 하면, 무엇을 청하시겠습니까?

 

하나만 선택해야 하니 심사숙고해야 하겠지요. 먹고 살 걱정에서 좀 자유로웠으면 하는 마음에 풍족한 재산을 청하겠다는 사람이 아마 가장 많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를,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를, 자기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두기를, 좋은 반려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를, 아프지 않고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기를 청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원들 대부분은 현세에서 누리는 안락이나 행복에 한정된 것들입니다. 죽음 뒤에도 지속될 것들은 아니지요. 그러나 영원한 삶을 희망하는 신앙인이라면 좀 더 값진 것을 선택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솔로몬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지혜’를 청하면서 우리의 시야를 넓혀 줍니다. 사실 성경에서 전반적으로 말하는 ‘지혜’는 인간적 현명함의 차원을 뛰어넘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지혜이며 그분께서 지니신 속성이기 때문입니다(지혜 7,22-27 참조). 

지혜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아 구원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런데 이를 직접 드러내고 가르쳐 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아드님을 통하여 아버지의 지혜가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몰려든 많은 군중을 가엾게 여기시고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처럼 구원을 갈망하는 이들을 가엾이 여기시는 주님께서는 날마다 당신 말씀으로 그들을 지혜롭게 성장시키십니다. 사실 생명의 말씀 속에 이미 구원에 필요한 지혜와 영적 자양분이 모두 담겨 있기에, 우리는 다만 그 안에 항구히 머무를 수 있는 은총을 청하기만 하면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초심

 

이제 독서는 다윗의 얘기가 끝나고 솔로몬의 얘기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들의 전 생애를 아는 우리는 다윗과 솔로몬의 차이를 느낍니다. 그리고 아버지 다윗이 아들 솔로몬보다 위대한 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다윗이 따듯하고 인간미 있으며 하느님께 충성스러운 왕이라면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라는 별칭처럼 지혜롭지만 냉철하고, 하느님께 충성스러운 왕이라기보다는 자기가 잘난 왕이며, 그래서 다윗이 솔로몬보다 위대한 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다윗과 비교하여 솔로몬이 부족하고 그래서 참으로 더 안타깝게 생각되는 점은 시작은 잘하였지만 그 끝이 죄와 실패로 끝난 점입니다. 인생의 성공은 처음이 아니라 끝에 달린 거잖아요? 

축구와 비교하면 아무리 공을 잘 몰고 문앞까지 갔어도 그 골문에 공을 차 넣지 못하면 그것은 다 헛것이고, 90분 경기에 89분 동안 경기를 지배하였어도 마지막 1분에 골을 허용하면 그 경기는 진 경기지요. 

이처럼 인생을 성공으로 끝내기 힘든 것이기에 그 지혜롭던 솔로몬도 그래서 남에게는 지혜로운 판결을 내리던 솔로몬도 정작 자기 인생은 말년에 실패로 끝나고 하느님 눈밖에 나게 된 것이지요. 

그러면 왜 인생을 성공으로 끝내는 것이 그리 힘들까요? 특히 처음에 잘 살던 사람이 끝까지 잘 사는 것이 힘들까요? 

그것은 초심을 잃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예를 보면 지혜를 청하던 겸손한 마음을 잃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는 자기는 아이에 불과하다며 아주 겸손했고 그래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청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백성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듣는 마음을 달라고 청합니다. 

"저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아서 백성을 이끄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겸손했던 솔로몬의 초심은 듣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듣는 마음을 잃은 것입니다. 

우리도 나이 먹으면 여러 가지 이유에서 말이 많아집니다. 그리고 그것은 들을 마음이 없기 때문인데 나이를 먹어 교만해지고 들을 마음을 잃는 사람은 대부분 잘나가던 사람입니다. 

솔로몬을 예로 들면 하느님께 청해 하느님으로부터 지혜를 얻은 그는 처음에는 통치를 잘하고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많이 받았을 겁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에 도취하여 하느님을 잊었을 겁니다. 

그래서 말년에는 지혜의 샘이 완전히 끊겼는데도 여전히 잘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자기 권력에 취하여 삽니다. 

그리고 듣기 좋은 말은 듣고 그렇지 않은 말은 들을 마음이 없으며 그래서 주변에는 아첨하는 사람이나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뿐입니다. 

사실 나이 먹어 듣기 싫은 말이나 충고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습니다. 어리거나 젊었을 때는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경험이 풍부한 지금은 들을 때가 아니라 해줘야 할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솔로몬의 얘기를 남의 얘기인 양 할 수 없는 나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므로 나이를 먹은 사람일수록 초심인 겸손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는 경각심을 더욱 가져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월요일 묵상을 쉬기로 한 이유 : “이 양들이 네 거니?”

 

복음을 전하고 돌아온 사도들이 예수님께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자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하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사도들이 쉰다고 양 치는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들을 따라서 수많은 사람이 몰려왔습니다. 외딴곳으로 사도들과 함께 쉬러 오신 예수님께서는 당신 친히 그들을 가르치십니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목자는 사도들을 가리키는 게 분명합니다. 사도들이 쉬어야 하기에 당신이 직접 그들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얼마 전에 혼자 개인 피정을 하였습니다. 본래 단체로 피정을 하기로 되어있었는데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취소되고 성당이나 사제관에서 혼자 피정하라는 지시가 왔습니다. 저는 심적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유튜브 강론을 무리하게 일주일 동안 두 개씩 미리 올리는 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피정하면서 하나씩 올리면 됐습니다. 

피정이 잘 됐을까요? 일주일을 혼자 사제관에서 지내고 났더니, 그냥 사람만 안 만났을 뿐이지 하루 일상이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유튜브를 올리는 시간이 일과의 매우 많은 시간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것까지 포함하여 동영상 하나 올리는데 4~5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하루에 하나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2개도 올립니다. 그러면 동영상 올리다 하루가 다 갑니다. 

덕분에 코로나 시작하고 유튜브를 시작한 지 아직 2년이 안 됐지만, 구독자는 2만 명이 넘었고 매일 복음 묵상을 들으시는 분도 만 명이 넘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제가 올린 동영상 개수도 천 개가 넘어섰습니다. 열심히 달려왔고 많은 분이 사랑해주셨습니다. 지금도 구독자 수는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만약 한 본당의 사제라고 생각한다면 매일 미사 나오시는 분이 만 명인 것입니다. 그런 본당 신부가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쯤 되니까 여러 신부님이 어떻게 하면 그렇게 인기 유튜버가 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사제가 유튜버라고 불리는 것이 옳은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한 것은 ‘매일’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저의 유일한 자랑이었습니다. 부모님도 우리 자녀들을 굶기지 않으려고 매일 열심히 일하셨듯이, 목자는 양들을 굶기지 않으려고 매일 양식을 제공해야 합니다. 하지만 피정을 하고 나서는 약간 허무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하는 피정을 유튜브 올리며 지내다니!’

물론 미리 일주일 것을 더 해놓고 다른 외딴곳으로 피정하러 다녀올 수도 있었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은 일이라 피정을 놓쳐버린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휴가를 내서라도 다른 곳에서 다시 피정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며 오늘 복음을 보니 ‘양 떼가 진정 그리스도의 것이 되는 때는 목자가 쉬는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자가 쉬면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묵상을 하루도 안 빠지고 올린 것은 양들을 굶기지 않으려는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며칠 올리지 않으면 꾸준히 들으시는 분들의 숫자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양들을 ‘나의 것’으로 여기고 주님께 맡기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주님이 가르치시려고 하는데, 사도들이 “아녜요, 제가 모은 양 떼는 제가 끝까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실 것입니다. 

“양들이 네 거니?”

전에 어떤 목사님이 10년 동안 열심히 목회하였는데 신도 수가 늘지 않아서, 목사직을 포기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기 위해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하였습니다. 그분은 “예수님, 저는 실패한 목사입니다”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실패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는 “제가 실패한 겁니다”라고 대답하자, 예수님은 “만약 성공했으면, 네가 성공한 거니?”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저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강론에서는 자녀들을 주님께 맡기라고 하면서 마음으로는 쉴 시간도 없이 양들을 나의 것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의 성공을 위한 목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월요일에는 묵상을 쉬고 휴가나 피정을 하러 갈 때도 쉴까 생각합니다. 또 7년이 되면 1년은 묵상을 쉬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지금 2년 정도 했으니 저도 안식년을 하면서 주님과 더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쉬는 시간이 저의 욕심을 내려놓고 양들을 주님께 봉헌하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마음으로는 어떤 분들이 ‘이제 좀 게을러지려고 하시나 보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분들도 제가 좀 그렇게 쉬기를 바라셨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신자분들은 언제나 착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유튜브에서 한 성공했다는 사람이 나와서 사람의 성실함은 성공의 25%밖에 안 된다고 말합니다.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살피는 게 더 중요하고, 장기적인 플랜도 중요하며, 자기 계발을 위한 시간을 쏟는 것도 중요하고, 하루 계획한 것을 제대로 마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책을 쓴 하완 작가는 40살이 될 때까지 성실함을 최선으로 여기며 살아오다가, 불현듯 회사를 나와 진정한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고자 한 사람입니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일하고 싶을 때 일하며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벌며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우리에겐 불편한 이야기입니다. 

하완 작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간신히 대학에 들어갔지만, 등록금이 없어서 학교를 빼먹으면서까지 강사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또 간신히 직장에 취직했지만 그렇게 앞만 보며 달리는 자신의 인생이 진정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사표를 던졌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그냥 또 쉬면서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글도 쓰고 한 것이 오히려 더 성공하게 된 경우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열심히만 살지 말고 쉬엄쉬엄 가라고 말해줍니다. 

좋은데 뭔가 불편합니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밥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게 우리 대부분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첫 책에 실린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태평양 한가운데에 조난 당한 한 남자가 튜브를 잡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서 똑같이 조난 당한 한 여자가 튜브를 붙잡고 헤엄쳐 옵니다. 그들은 나란히 바다 위에 떠서 둥둥 떠 있는 맥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눕니다.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눈 후, 다음 날 여자는 어딘가 있을 섬을 찾아 헤엄쳐 갔습니다. 남자는 그 자리에 남아 계속 맥주를 마십니다. 여자는 이틀 낮, 이틀 밤을 헤엄쳐 어딘가의 섬에 도착합니다. 남자는 그 자리에 남아 술에 취한 채 구조대에 의해 구조됩니다. 

몇 년 후 이 둘은 고지대에 있는 어느 작은 술집에서 마주치게 되는데 여자는 굉장히 혼란스러워합니다. 자신은 팔이 빠지라 헤엄쳐서 살았는데, 이 남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살아있다니! 여자는 헤엄치며 남자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남자는 살았습니다. 

이게 무슨 소릴까요? 노력하지 말라는 뜻일까요? 노력 하나 안 하나 비슷한 상황에서는 안 하는 것도 괜찮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신앙인으로 말하면 여자보다 남자가 하늘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여자가 섬을 찾은 것도 하느님께서 주신 행운이고, 남자가 구조대를 만난 것도 하느님께서 주신 행운입니다. 아마 속도보다 방향을 확인하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조금 지저분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어제는 고기를 먹어서 고기가 어금니 쪽에 끼었습니다. 요지를 찾을 수도 없고 치실로 빼보려 했으나 너무 어금니 쪽이라 치실을 끼우기가 어려웠습니다. 칫솔로 닦아보려 했으나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피까지 나왔습니다. 좀 불편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냥 잤습니다. 다음 날 아침 손톱으로 긁어서 빼낼 수 있을 정도로 그 찌꺼기가 옆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잇몸이 부어서 그 찌꺼기를 치아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할 일 중에 하던 일을 멈추고 쉬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그런 시간을 주문하였습니다. 외딴곳에서 쉬라는 말씀은 안식일, 피정, 안식년과 같은 휴식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때 오히려 내가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예수님께서 직접 신자분들에게 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저의 욕심을 내려놓는 좋은 시간이기도 하고 더 좋은 다른 것들을 접할 수 있는 시간이며 주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어떻게 해야 함께 잘 살 수 있을까요?

 

1889년 독일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연금제를 시행했습니다. 연금제는 일정 기간 기금을 내면 은퇴 후에 받는 것입니다. 이 연금제를 시행하기 전, 그는 통계학자에게 다음과 같은 자문을 구했습니다. 
 
“정년을 몇 살로 하면 국가의 부담이 없겠습니까?” 
 
“65세입니다.” 
 
당시 대부분이 이 나이가 되기 전에 사망했습니다. 따라서 연금은 매달 냈지만, 나중에 연금을 받아 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나이가 바로 65세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65세 전에 사망하는 것이 아닌, 20~30년 이상을 더 산다면 연금제는 밑 빠진 물 붓기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문제도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정년 나이를 늘리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젊은이들의 자리가 줄어든다고 할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할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새로운 삶의 자리는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함께 살기 위해 새로운 시선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해야 함께 잘 살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외딴곳을 찾아 제자들을 데리고 갈릴래아 호수를 건너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슨 의미심장한 일을 하시기 전에 늘 이처럼 고요한 장소를 찾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 바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우리는 빵의 기적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으로, 외딴곳에서 우리 교회 생활에서 말하는 일종의 피정을 하러 가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 계획을 수정하십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외딴곳에서 머무르는 것을 멈추고, 군중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랑의 기준에 따라 자신의 일정을 바꾸셨습니다. 어떤 원리원칙도 사랑의 기준보다 앞서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요? 혹시 원리원칙만을 내세우면서 가장 큰 사랑의 기준은 무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님의 일정을 바꾸게 했던 군중의 노력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시는 것을 보고 포기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육로로 달려가 예수님과 그 일행을 맞이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간절한 마음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함께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시선으로 나의 이웃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원리원칙을 내세워 그들을 판단하고 단죄하기보다, 사랑의 시선으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과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뜻은 아니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사람이 있는 걸 안다는 뜻이다.

- 김연수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마르 6,31)

 

창조하신 하느님을 알게되는 은총의 외딴 시간이다. 예수님께서는 휴식이라는 은총의 마음을 우리에게 주신다. 건강한 삶의 방식을 잃어버린 우리들이다. 건강한 삶의 방식은 주님과 함께하는 일과 휴식의 여정이다. 

휴식이 필요한 우리들 삶이다. 쉬어야 더 소중한 것을 깨닫게된다. 건강한 삶의 방식은 조화와 균형이다. 주님을 따르는 삶은 휴식도 포함된다. 주님 안에서 쉬고 어울리는 법을 다시 배우는 휴식의 주님이시다. 

삶에 소중한 것은 건강한 삶이다. 건강은 휴식을 동반한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을 다시 만나게 되는 휴식의 시간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멀리있지 않다. 쉬어주는 거기에서 만나게 되는 사랑의 기쁨이다. 

쉬어주는 외딴 곳에서 만나게 되는 하느님 나라이다. 지쳐있다면 모든 것 내려놓고 외딴곳에 가셔서 좀 쉬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이 행복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주님께 다시 우리 자신을 내맡기는 외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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