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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2월 4일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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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4주간 금요일 -

 

 

2022년 2월 4일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오늘 제1독서

 

다윗은 주님께 찬미의 노래를 부릅니다. 주님께서는 다윗의 죄악을 용서하십니다.

 

 

✠ 오늘 복음

 

헤로데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자신이 죽인 세례자 요한이 되살아났다고 여깁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2월 4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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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집회 47장 2-11절

 

다윗은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을 사랑하였다.

 


친교 제물에서 굳기름을 따로 떼어 놓듯 다윗도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에서 선택되었다. 


다윗은 염소 새끼들과 놀듯 사자들과 놀고 양들 가운데 어린양과 놀듯 곰과 놀았다. 


그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 거인을 죽여 백성의 수치를 씻어 주지 않았더냐? 그는 손을 쳐들어 돌팔매로 골리앗의 교만을 꺾었다. 


그가 지극히 높으신 주님께 호소하여 주님께서 그의 오른팔에 힘을 주셨던 것이다. 이렇게 다윗은 싸움에 능한 장수를 쓰러뜨려 백성의 사기를 높일 수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만 명을 물리친 다윗을 칭송하였고 그가 영화로운 왕관을 쓰게 되었을 때 주님의 복을 받은 그를 찬미하였다. 


사실 그는 에워싼 원수들을 무찔렀고 필리스티아 군대를 없애 버렸으며 오늘까지 그들이 힘을 쓰지 못하게 하였다. 


그는 모든 일을 하면서 거룩하고 지극히 높으신 분께 영광의 말씀으로 찬미를 드렸다.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찬미의 노래를 불렀으며 자신을 지으신 분을 사랑하였다. 


그는 제단 앞에 성가대를 자리 잡게 하여 그들의 목소리로 아름다운 가락을 노래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날마다 자신들의 노래로 찬미하였다. 

10 
다윗은 축제를 화려하게 벌였고 그 시기를 완벽하게 정리하였으며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미하고 그 찬미가 이른 아침부터 성소에 울려 퍼지게 하였다. 

11 
주님께서는 그의 죄악을 용서해 주시고 그의 힘을 대대로 들어 높이셨으며 그에게 왕권의 계약과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왕좌를 주셨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내 구원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느님의 길은 결백하고, 주님의 말씀은 순수하며, 당신께 피신하는 모든 이에게 그분은 방패가 되신다. 내 구원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주님은 살아 계시다! 나의 반석 찬미받으시리니, 내 구원의 하느님 드높으시다. 주님, 제가 민족들 앞에서 당신을 찬미하고, 당신 이름 찬송하나이다. 내 구원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주님은 당신 임금에게 큰 구원 베푸시고, 당신의 메시아 다윗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자애를 베푸신다. 내 구원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마르 6장 14-29절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그때에 

14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마침내 헤로데 임금도 소문을 듣게 되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15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는 엘리야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들과 같은 예언자다.” 하였다. 

16 
헤로데는 이러한 소문을 듣고,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하고 말하였다. 

17 
이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저희가 구원의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영원한 생명의 보증인 이 성사의 힘으로 저희 안에 참된 믿음이 자라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양우철 야고보 신부 집전

 

 

2022년 2월 4일 (금)
양우철 야고보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2년 2월 4일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다른 사람의 눈에 괜찮고 무난해 보이면, 정말 괜찮은 삶을 사는 것일까요?

 

오늘 마르코 복음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헤로데 임금은, 같은 내용을 전하는 마태오 복음의 헤로데와 조금 다르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마태오는 헤로데가 헤로디아의 일로 자신에게 불편한 말들을 늘어놓는 세례자 요한을 죽이겠다는 마음을 이미 품고 있었다고 전합니다(마태 14,3-5 참조). 반면에 마르코는, 헤로데가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을뿐더러 오히려 요한을 거룩한 사람으로 여기고 보호해 주며 그의 말을 기꺼이 경청하곤 하였다고 묘사합니다. 

이렇게 요한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던 헤로데에게 어느 날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헤로디아의 딸이 헤로데의 생일잔치에서 춤을 추며 손님들을 즐겁게 해 주었는데, 헤로데는 너무 기뻐 그녀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약속하며 맹세까지 한 것입니다. 딸은 어머니의 바람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합니다. 헤로데는 괴로웠지만, 사람들 앞에서 호기롭게 약속한 자신의 체면을 생각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요구를 들어주고 맙니다.

비판받아 마땅한 헤로데의 처신임에도, 우리 또한 그와 비슷한 모습을 보일 때가 의외로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또는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하는 염려 때문에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신념이나 가치를 저버리고, 내키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지요. 그런데 그렇게 다른 사람의 눈에 괜찮고 무난해 보이면, 정말 괜찮은 삶을 사는 것일까요? 그런 모습만 좇다 보면 결국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신 삶의 주도권을 남이 아닌 나 자신이 쥘 수 있도록, 사람들의 시선에서 좀 더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참 부럽다.

 

우리 교회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배열했는지 모르지만 오늘 독서와 복음은 공교롭게도 두 왕의 얘기를 하고, 두 왕은 공교롭게도 여자 때문에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왕들입니다. 

사실 왕들치고 살인을 안 저지른 왕이 있고, 치정살인을 안 저지른 왕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죄 짓지 않은 인간이 없듯이 살인을 안 한 왕이 없다 정도로 이것을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은 것 또는 살인을 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뿐인 것이 문제이고, 그것으로 끝난 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인간이기에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업적을 남길 수도 있고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오늘 집회서는 다윗이 남긴 위대한 업적들을 찬양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어린 나이에 골리앗을 쳐죽였고, 왕이 된 다음에는 주위에 원수들을 다 물리친 것에 대한 겁니다. 

그러나 다윗에 대한 집회서의 진정한 찬양은 원수를 물리치고 나라를 강건하게 한 것에 대해서만이 아닙니다. 그런 것만이라면 비록 헤로데는 못했을지라도 알렉산더나 징기스칸 같은 왕이라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찬양받을 진정한 이유에 대해 집회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는 모든 일을 하면서 지극히 높으신 분께 영광의 말씀으로 찬미를 드렸다.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찬미의 노래를 불렀으며 자신을 지으신 분을 사랑하였다." 

그렇습니다. 다윗이 진정 위대한 것은 원수를 다 무찌른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일을 하면서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집회서는 "그는 모든 일을 하면서"라고 얘기합니다. 

또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자신을 지으신 분을 사랑했다는 점입니다. 죄를 지은 인간이지만, 사랑을 한 사람이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사랑한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영웅 심리에서 위대한 업적을 세운 사람은 많습니다. 우리의 세종대왕처럼 백성을 위해 위대한 업적을 세운 왕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느님을 사랑하여 백성을 사랑하고 업적도 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기만 하느님을 찬미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도 하느님 찬미에 초대하고 그래서 성소가 찬미로 가득 차게 합니다. 

"그는 제단 앞에 성가대를 자리 잡게 하여 그들의 목소리로 노래하게 하였다. 다윗은 축제를 화려하게 벌였고 찬미가 이른 아침부터 성소에 울려퍼지게 하였다." 

참 부럽습니다. 죄에 무너지지 않고 죄를 딛고 사랑으로 올라선 다윗입니다. 

참 부럽습니다. 죄를 짓고 그 입으로 음울한 술타령이나 하지 않고 "주님, 제 입술을 열어주소서. 제 입이 당신 찬미 전하오리다."라고 한 다윗이.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사탄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사랑의 계명인 이유 :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기 때문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세례자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라고 말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기적을 행한 적이 없습니다. 헤로데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합니다. 그냥 진실을 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이유는 죄책감 때문입니다. 죄책감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현실을 왜곡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엘리야나 옛 예언자 중 하나로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누가 죄책감으로 장난을 칠까요? 양심일까요? 자아일까요? 양심은 그저 그것이 죄임을 알려주는 시스템입니다. 양심이 심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아가 심판하는 것입니다. 죄책감이 있어야만 자신이 자기 주인을 조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책감에 대해 자주 제가 사용하는 예화를 다시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한 아이가 할머니 집에 놀러 갔다가 새총으로 할머니가 아끼는 오리를 죽였습니다. 장작 사이에 죽은 오리를 몰래 감추어놓았지만, 이것을 여동생이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여동생은 오빠를 부려먹습니다. 자기가 해야 할 설거지나 심부름이 있으면 “오리를 기억해?”라고 하며 할머니에게는 “오빠가 다 하겠대요!”라고 말합니다. 며칠 동안 동생의 노예가 되어 살다가 너무 힘들어 할머니에게 모두 고백합니다. 할머니는 말씀하십니다.

“나도 다 알고 있었단다. 단지 네가 동생에게 어디까지 끌려다니나 보고 있었던 거란다.”

여기서 오빠는 우리 자신입니다. 그리고 여동생은 자아입니다. 자아가 오빠를 부려먹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인물은 할머니입니다. 오빠가 할머니에게 용서를 받으면 자신은 오빠에 대한 어떤 권리도 행사할 수 없습니다. 

동생은 일단 죄책감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그래서 할머니를 무서운 분으로 여겨야 자신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오빠가 할머니에게 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현실을 왜곡시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자비 자체이십니다. 에덴동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뱀이 죄짓게 하고 뱀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게 만드는 일이 ‘두렁이’를 만들어 부끄러움을 가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아가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려고 사용하는 위장막이 심리학에서는 ‘방어기제’입니다. 

방어기제는 무수히 많지만 대충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1. 억압
예전에 안 좋았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압해서 결국엔 잊어버리게 되는 것

2. 부정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병에 걸렸을 리가 없어’와 같은 상황입니다.

3. 투사
나의 감정을 타인에게 던져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를 싫어하면서 상대가 나를 싫어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4. 전치
나의 감정을 다른 이에게 푸는 것입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것입니다. 

5. 취소

과거에 한 행동을 보상하는 행동입니다. 아이를 때려놓고 미안해서 안아주는 행동과 같습니다. 

6. 합리화
자신의 환경 등으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이런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겠어?’라고 하는 것입니다. 

7. 신체화
감정이 해결되지 않을 때 그것이 몸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화병과 같은 예입니다. 

8. 행동화
감정을 바로 행동으로 표출하는 것입니다. 화가 났을 때 자신도 모르게 욕을 하고 벽을 치는 돌발행동을 합니다. 

9. 동일시
닮아가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폭력성을 닮아가며 자기를 합리화합니다. 

10. 반동형성
반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미운 상사에게 대들기보다 오히려 아부를 하거나 지나치게 공손하게 하는 것입니다. 
             
            
 [출처: ‘방어기제’, 유튜브, ‘정신과 말해주는 남자’]


더 세분화하면 방어기제는 50가지도 넘습니다. 자아는 우리를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만들어 이러한 것들을 해야만 한다고 시킵니다. 그런데 결국 그런 것들이 이웃과의 관계를 깨는 요인이 됩니다. 

우리는 헤로데의 행동 안에 위에 제시된 이 모든 방어기제가 들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방어기제는 현실을 왜곡함으로써 죄책감을 감소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과의 관계단절을 가져오고 더욱 큰 죄책감으로 빠지게 만듭니다.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헤로데는 더 양심과 같이 자신의 죄를 말해주는 요한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죽였습니다. 방어기제로 충분히 죄책감이 사라졌기 때문에 양심의 목소리는 더는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탄의 기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것부터 사랑하는 노력입니다. 모든 죄책감으로 인해 발생하는 방어기제는 사랑에 반대되는 것이기에 사랑하면 죄책감에서 해방됩니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서로 사랑했다면 두렁이를 만들어 입을 필요가 있었을까요? 서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면 하느님께도 알몸으로 나설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이 음란함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두렁이가 필요했고 그렇게 사랑은 변질하였습니다. 사랑은 십자가입니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1997)입니다. 주인공 멜빈 유달은 뉴욕에서 가장 잘 팔리는 로맨스 소설가로 강박 장애에 사로잡혀서 도로의 금도 밟지 않고 피해서 걷고, 매일 같은 식당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 아침을 먹는 인물입니다. 그를 유일하게 참아주는 여주인공이 있는데 레스토랑의 종업원 캐롤입니다. 하지만 유달은 표현력도 없고 그녀에게 고백할 자신도 없습니다. 

여기에서 그를 도와준 이웃이 등장하는데 유달의 아파트 이웃인 게이인 예술가 사이먼과 그의 개입니다. 사이먼은 강도 사건 중 폭행을 당해서 거의 죽을뻔합니다. 개 베르델을 돌봅니다. 처음에는 개 돌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강아지에게 감정적으로 애착하게 됩니다. 동시에 캐롤에게도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됩니다. 자신이 생긴 것입니다. 

유달은 강아지 주인인 사이먼이 부모에게 돈을 청하러 데려가 달라고 할 때, 어색함을 덜기 위해서 캐롤에게 같이 가자 초대합니다. 캐롤은 마지못해 그 초대를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표현력이 없는 유달에게 캐롤은 실망합니다. 뉴욕으로 돌아온 후 캐롤은 유달에게 더 자신의 인생에 들어오지 말라고 말합니다. 

유달과 캐롤 사이는 여전히 서먹한데 사이먼이 유달이 캐롤에게 고백을 할 수 있도록 설득을 합니다. 캐롤은 망설이지만 자신도 노력하겠다면서 고백을 받아들이고 유달과 캐롤이 함께 걸으며 영화는 끝납니다. 유달은 아침에 캐롤을 위해 페이스트리 가게 문을 여는데 도로의 금을 밟습니다. 그도 밟았다는 걸 알아차리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강박증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유달이 이 강박증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먼저 개를 받아들이고, 그렇게도 싫어했던 사이먼을 받아들이며, 결국에 가서는 캐롤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지금까지 사랑에 빠지지 못하게 만들었던 방어기제들이 힘을 쓰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방어기제를 만들어낸 것이 자기 자신임을 압니다. 결국, 모든 죄는 사랑함으로써 씻겨지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에게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양심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유달에게는 강아지와 이웃, 그리고 캐롤입니다. 이렇게 더 큰 사랑으로 나아가면 결국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만납니다. 그리면 애초부터 그분이 우리를 용서하고 계셨음을 믿게 됩니다. 하지만 헤로데는 나아질 생각이 없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문제인 것을 보기 원치 않았기 때문에 양심과 같은 이웃인 세례자 요한을 죽였습니다. 자아를 살리기 위해 양심을 죽인 것입니다. 

자아는 자신의 정체가 뱀임이 드러나는 것을 제일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사탄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이웃 사랑은 방어기제가 보이고 그 방어기제 속에 숨어있는 자기 자신을 보게 만듭니다. 방어기제가 무너지면 죄책감도 줄어듭니다. 죄책감이 사라지면 자아의 힘도 약해집니다. 그래서 사탄은 사랑을 제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내 옆에 있는 이를 진심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일입니다. 내 이웃이 바로 나의 양심이고 거울입니다. 

아내는 문제가 있을 때 눈을 쳐다보며 대화하기를 원하지만 나는 등산이나 낚시를 하러 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런 숨는 방어기제가 아내와의 관계를 계속 멀어지게 함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면 이렇게 방어기제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없어지기 시작하며 문제의 근본 원인이 자기 자신임을 발견합니다. 더 사랑하면 더 사랑할수록 그런 방어기제로 사람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자아의 압제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계명의 목적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그날과 그때를 모르기에 늘 깨어 준비할 수 있어야 해

 

1800년대 당시 평균 수명은 30~35세였습니다. 그리고 1900년대는 45~50세가 되었고, 현재는 1년에 세 달꼴로 수명이 연장되고 있습니다. 1800년대, 1900년대 사람들이 50대의 저를 보면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어이구, 장수하시네요.”

그런데 현대의 사람들은 50대면 한창때라고 하십니다. 지금은 100세 시대라고 하니까요. 분명한 것은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에게 늘 시간이 많이 남은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장수하는 것은 아닙니다.

갑곶성지에서 봉안당을 운영하며 안치 예식을 하면 다양한 죽음을 목격하게 됩니다. 100년을 넘게 살다 들어오시는 분도 있고,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주 어린 아이도 들어옵니다. 언제 죽을지, 언제 하느님 곁으로 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시간이 많다면서 허송세월하여서는 안 됩니다. 그날과 그때를 모르기에 늘 깨어 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헤로데 임금은 자기 자리에 연연하고 있어서 로마와 결탁한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자신에 대한 소문이 로마에 알려지면 자기 자리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염려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와 혼인한 것으로 문제 제기를 세례자 요한이 했던 것이지요. 자기 부인을 내쫓고 동생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삼는 것은 율법에 어긋난다면서 고발한 것입니다. 이 사실에 군중이 동요되어 폭동으로 이어지면, 로마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래서 세례자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고, 마침 헤로디아의 농간으로 헤로디아 딸의 춤값으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내어 준 것입니다.

헤로데 임금도 자기 잘못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권력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에 해서는 안 될 결정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소문을 듣고는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았구나.”(마르 6,16)라며 큰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다윗왕을 꼽습니다. 그의 삶에 잘못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온 마음을 다해 찬미의 노래를 부르고 자신을 지으신 하느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존경하는 것입니다(집회 47,8 참조).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께 충실한 사람은 올바르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하느님께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유가 됩니다. 헤로데 임금은 정반대였습니다. 오로지 순간의 만족만을 위해 살았고, 하느님 뜻보다는 자기 뜻을 내세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아직도 시간이 많다면서 나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닌가요? 주님 뜻인 사랑을 실천하며 언제 올지 모를 그날과 그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탐욕은 모든 것을 얻고자 욕심내어서 도리어 모든 것을 잃게 한다.

- 몽테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마르 6,16)

 

존중과 생명은 하나이다. 생명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로 존중이다. 제대로된 만남이 존중이다. 존중을 모욕하고 무시하는 결과는 언제나 관계의 파괴이다. 사람은 얼마나 파괴적인가.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인간에 대한 존중이 참으로 필요하다. 존중이 빠져버리면 생명은 죽음처럼 처참하게 가로막힌다. 생명은 모두가 평등하다. 정의의 길을 가는 사람을 막아서는 안된다. 생명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길은 존중을 회복하는 길이다. 사람을 살리기로 결심하는 시간이다. 

존중과 파괴 사이에 세례자 요한의 죽음이 있다. 복음은 다시금 모두가 존중받아야 할 소중한 생명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허세와 두려움을 버리고 존중으로 들어서는 새로운 날 되시길 기도드린다. 존중이 생명이고 존중이 복음이다. 만남은 존중으로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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