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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1월 10일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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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1주간 월요일 -

 

 

2022년 1월 10일 (월)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오늘 제1독서

 

엘카나의 아내 한나는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프닌나에게 괴롭힘을 당합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복음 선포를 시작하시며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1월 10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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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1사무 1장 1-8절

 

프닌나는
주님께서 태를 닫아 놓으신
한나를 괴롭혔다.

 


에프라임 산악 지방에 춥족의 라마타임 사람이 하나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엘카나였는데, 에프라임족 여로함의 아들이고 엘리후의 손자이며, 토후의 증손이고 춥의 현손이었다. 


그에게는 아내가 둘 있었다. 한 아내의 이름은 한나이고, 다른 아내의 이름은 프닌나였다. 프닌나에게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카나는 해마다 자기 성읍을 떠나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주님께 예배와 제사를 드렸다. 그곳에는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가 주님의 사제로 있었다. 


제사를 드리는 날, 엘카나는 아내 프닌나와 그의 아들딸들에게 제물의 몫을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한나에게는 한몫밖에 줄 수 없었다. 엘카나는 한나를 사랑하였지만 주님께서 그의 태를 닫아 놓으셨기 때문이다. 


더구나 적수 프닌나는, 주님께서 한나의 태를 닫아 놓으셨으므로, 그를 괴롭히려고 그의 화를 몹시 돋우었다. 


이런 일이 해마다 되풀이되었다. 주님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프닌나가 이렇게 한나의 화를 돋우면, 한나는 울기만 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남편 엘카나가 한나에게 말하였다. “한나, 왜 울기만 하오? 왜 먹지도 않고 그렇게 슬퍼만 하오? 당신에게는 내가 아들 열보다 더 낫지 않소?”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주님, 당신께
감사 제물 바치나이다.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구원의 잔 받들고, 주님의 이름 부르리라. 주님, 당신께 감사 제물 바치나이다.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께 나의 서원 채우리라. 당신께 감사 제물 바치며, 주님 이름 부르나이다. 주님, 당신께 감사 제물 바치나이다.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께 나의 서원 채우리라. 주님의 집 앞뜰에서,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에서. 주님, 당신께 감사 제물 바치나이다.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마르 1장 14-20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16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18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19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20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전능하신 하느님, 성체로 새로운 힘을 얻고 간절히 바라오니 저희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며 하느님을 충실히 섬기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김정남 보니파시오 신부 집전

 

 

2022년 1월 10일 (월)
김정남 보니파시오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2년 1월 10일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어제 우리는 주님 세례 축일을 지내며 성탄 시기를 마무리하고 연중 시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연중 시기의 전례 말씀은 공생활을 시작하시는 예수님의 걸음을 따르게 합니다. 그 시작에서 선포되는 예수님의 첫 말씀이 그분 공생활의 모든 것을 함축합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께서 직접 다스리시는 나라로, 하느님께서 몸소 우리에게 오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사실이 바로 ‘기쁜 소식’(복음)입니다. 이는 천지 창조 때부터 계획되고, 많은 예언자를 통하여 예언되었으며, 이스라엘 백성의 간절한 기다림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 나라에 응답하는 우리의 태도는 ‘회개’와 ‘믿음’입니다. ‘회개’는 잘못된 길을 걷다가도, 다시 하느님께 돌아오는 행위입니다. ‘믿음’은 가까이 온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회개와 믿음은 “나를 따라오너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명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에 대한 본보기로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들을 소개합니다. 시몬과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은 갑작스러운 예수님의 부르심에 갈등이나 망설임 없이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주저함이나 미련 없이 옛 삶을 포기하고(회개), 그 부르심에 곧바로 응답해야(믿음) 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언젠가 우리도 베드로처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마르 10,28)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 하신 말씀을 명심하며, 우리 앞에 놓인 연중 시기를 주님을 따르는 은총의 길로 만들어 갑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반인반수, 반인반신의 나?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오늘부터 연중 시기가 시작되며 주님의 공생활도 시작되는데 주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그 첫마디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외치십니다. 

이 말씀이 제게는 복음을 믿지 않으면 회개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으로 들리고, 복음을 믿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이미 가까이 온 하느님 나라도 나에게만은 아직 가까이 온 것이 아니라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회개한 사람은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것이 복음, 곧 기쁜 소식이며 그 복음을 믿음으로써 행복한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회개한 사람은 우선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 슬픈 소식이 아니라 기쁜 소식인 사람이고, 그러니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그 반대인 사람입니다. 

왜냐면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오면 이 세상 나라는 끝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단적인 예로 이 세상 삶이 끝나야 하느님 나라 곧 천국에 가잖아요? 

그런 것이기에 가장 간단한 저의 회개 테스트는 '지금 죽게 되면, 예를 들어 암 선고를 지금 받게 되면 나는 기쁠까?'입니다. 

저의 이성적 믿음은 그렇게 돼도 기쁘거나 적어도 담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그 상황이 되었을 때 제가 어떨지 아직 저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떨까 또 생각해봅니다. 

이 세상을 지금 바로 떠나는 것이 아직은 기쁠 정도가 되지 못했더라도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Life Style대로 사는 것은 어떨지 말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생활 양식이라면 수도자들이 살기로 서약하는 바로 그 복음 삼덕 곧 가난, 정결, 순명을 복음에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사는 것이지요. 

제 생각에 이것은 지금 즉시 그렇게 살겠노라고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살기로 이미 서약까지 한 저이지요. 하지만 이 또한 주님께서 가르치신 그대로는 아직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러니 저는 회개를 시작은 하였지만 아직 충분히 또는 완전하게 살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솔직히 인정해야겠지요. 

그렇습니다. 

제가 기쁘게 살고는 있는 편이지만, 하루하루 사는 것이 너무 기쁘고 너무 행복하다고 할 정도는 아직 되지 못했음이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반인반수라는 말이 있지요. 반은 인간이고 반은 짐승이라는 말 말입니다. 

어제 주님 세례 축일을 지내면서 세례를 통해 우리는 인성과 신성을 살게 됨을 얘기했지만 어쩌면 저는 반인반수이기도 하고, 반인반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때는 짐승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하느님스럽기도 하는 저는 앞으로 한참 회개의 여정을 가야 할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믿으면 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고 사람 낚는 어부는 세상에서도 존경받는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작하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4)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지금까지 그런 나라는 세상에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우선 ‘회개’란 우리가 추구하는 ‘재물에 대한 욕망, 육체의 즐거움에 대한 욕망, 힘과 명예에 대한 욕망’이 의미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임을 깨닫고 방향을 새로운 욕망으로 트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들이 ‘나의 생존을 위한 욕망들’이기에 새로운 방향은 ‘이웃의 생존을 위한 욕망’, 곧 ‘사랑’밖에 남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기에 나를 위한 삶이 ‘땅’을 향하는 삶이었다면 하늘로 오르는 삶은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길밖에 없습니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에 노랑 애벌레는 고치를 거쳐 노랑나비가 됩니다. 노랑나비가 되니 모든 애벌레가 나비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봅니다. 모든 애벌레 속에서 자신과 같은 나비를 발견합니다. 하지만 애벌레들은 각기 ‘세속-육신-마귀’를 쫓는 데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그렇더라도 그들을 모른 체할 수 없습니다. 양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비가 되었다면 나를 위한 삶이 가치 없음을 알기 때문에 더는 개인적인 욕심을 추구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러면 남는 일이 다른 애벌레들도 나비가 될 수 있음을 알리는 일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회개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일은 ‘선교’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세례받으면 누구나 가정을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선교사가 되어야 하느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내가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도 그 영혼을 살리려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의 목적이 우선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 세상에서도 실패하지 않습니다. 

‘어쩌다 어른’ 프리미엄 특강쇼에서 김경일의 인지심리학자는 전국 석차 0.1%의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특징은 ‘착한 것’이라고 합니다. 2010년에 EBS ‘학교란 무엇인가 – 0.1%의 비밀’이란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다급하게 김경일 교수를 찾아왔다고 합니다. 

분명히 이 프로그램은 공부를 잘하는 수재들의 비밀을 말해주어야 하는데, 전혀 그 비밀을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아이큐, 부모님 학력과 소득, 사는 지역, 특목고 여부까지 다 조사했는데 특징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김경일 교수는 이들이 분명히 착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그들의 일상을 찍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자신이 공부한 것을 더 많은 친구에게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물론이요, 공부를 아주 많이 못 하는 아이들에게까지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저의 교수님도 “구체적으로 모든 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알려주지 못하면 그건 네가 모르는 거다”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들은 남에게 가르쳐주면서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명확히 깨닫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메타인지’라고 합니다. 하지만 공부를 못 하는 아이들은 본인들이 잘 알고 있다고 믿거나 혹은 알고 있는 것도 모른다고 여겼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외롭다, 외롭다’를 반복할 때 한 친구가 “예수님이 너와 함께 있는데, 뭐가 외로워!”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철저한 개신교 신자였습니다. 아이큐가 98이고 쉬는 시간마다 공부 못하는 친구들이 그 친구에게 가서 공부했습니다. 저는 그 친구가 공부 못하는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등수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친구는 서울대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착해지면 잘 안 될 수가 없습니다.  ‘디팩 쵸프라’도 자녀들을 그렇게 교육했습니다. 

“너희는 남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만 생각해라. 나머지는 아버지가 다 책임질게.”

남을 많이 도와주었던 큰아들은 인도에서 큰 사업가가 되었고, 다른 이들의 공부를 도와주던 둘째는 아버지처럼 하버드대 교수가 되었습니다. 

세상을 사랑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사랑으로 살면 오히려 잘 됩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려고 한 것인데, 심지어 이 세상에서도 잘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먼저 하느님 나라를 구하면 나머지도 덤으로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진 자는 더 가지고 가진 것이 없다고 하는 자는 자기가 가졌다고 믿는 것마저 빼앗기게 된다는 말도 이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자신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제가 주일학교 교사를 할 때, 교안은 초등학교 대상이었습니다. 이때 수녀님은 하나하나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쓰지 못하게 고쳐주셨습니다. 이것이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더 소외된 이들을 도우려 하면 더 발전하게 됩니다.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를 만든 사람이 ‘스티브 사쏜’이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코닥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필름 카메라를 설명하다가 그 필름을 어린아이도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하는 순간에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필름을 보통 “빛에 노출되면 이미지를 형상화하기 위해 화학 반응하는 물질” 정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쏜은 “필름은 그릇이다”라고 말을 바꿔봅니다. 그렇다면 그릇이 굳이 필름일 필요는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는 카세트테이프에 이미지를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만듭니다. 그렇게 조금씩 디지털카메라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0.1%의 비밀은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어쩔 수 없이 우리를 ‘서로 사랑하라’로 가게 합니다. 이웃 사랑을 위해 세속-육신-마귀의 욕망을 버리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웃을 사랑해도 세상에서 저런 것들을 추구하는 이들보다 더 성공할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래야 성공합니다.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성공하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니까 성공하게 됩니다. 

도와주다 보면 내가 공부해야 합니다. 나의 부족함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더 도와주려고 더 노력합니다. 그러면서 성장합니다. 진정한 사람 낚는 어부는 그래서 행복합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누리는 방법입니다. 김연아 선수는 은퇴했음에도 전세계운동선수 선행왕 4위에 자리매김한 적이 있습니다. 2017년까지 기부액이 56억이었습니다. 가톨릭 신자이며 김수환 추기경의 바보 장학회 홍보위원이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믿으면 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됩니다. 사람 낚는 어부가 다 이태석 신부와 같은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웃을 위해 살기 때문에 하는 모든 일이 잘되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존경받습니다. 세상은 반드시 내가 주는 대로 되돌려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그렇게 되도록 가르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우리는 죽는 정확한 날짜를 몰라서 지금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닐까요?

 

사형수에 관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형 집행 날짜를 모르는 사형수는 너무 불안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반면 자신의 죽을 날짜를 알고 있는 사형수는 불안해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을 반성하며 슬퍼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삶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분명한 진실은 우리 모두 예외 없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죽습니다. 그런데 정확한 날짜를 몰라서 지금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며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고 하셨습니다. 회개는 곧 자기반성입니다. 자기반성으로 하느님께 되돌아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기 뜻만을 내세우는 삶이 아닌, 하느님 뜻이 드러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부르듯이,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면서 “나를 따라라.”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습니까? 
 
이에 대한 제자들의 모습을 우리가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시몬과 안드레아는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리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부모를 떠나 예수님을 따릅니다. 세상의 일과 가족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을 따르는 일임을 오늘 복음의 제자들은 보여줍니다. 
 
불의의 사고로 하늘 나라에 간 언니의 유품을 정리한 동생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유품을 정리하면서 깜짝 놀랐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짐이 없어서 유품 정리할 것이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정리할 짐들이 너무나도 많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은 언니보다 훨씬 많은 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나하나 사들였던 물건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정작 하늘 나라에 들어갈 준비는 하지 않고 이 세상이 영원한 것처럼 죽음 뒤에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들을 애지중지했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세상의 일이 제일 중요한 것 같지만 죽음 뒤에는 필요가 없습니다. 가족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가족들과도 이 세상에서 영원히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분명해집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가장 힘센 분이시고, 그분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자신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굳세게 밀고 나가라.

- 로잘린 카터

 

 

칭찬합시다.

 

오클랜드 대학교 교수 피터 다우릭은 신체장애가 있는 청년들과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2주 안에 조립을 완수하는 조건으로 청년들은 두 집단으로 나누었습니다. 
 
한 집단은 자신의 작업 모습을 녹화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실수하는 장면이나 작업 속도가 더딘 장면을 지운 영상이었습니다. 다른 집단은 작업량이 10% 늘 때마다 성과보수를 받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작업 영상을 본 집단의 생산성은 15%, 성과보수를 받은 집단의 생산성은 3% 증가했습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 최고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지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고의 자기 모습’을 발견했을 때, 의욕을 얻어서 생산성 높은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의 단점보다 최고의 자기 모습을 발견했을 때 의욕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하는 칭찬이 큰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잘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칭찬을 많이 해야 합니다. 칭찬이 전혀 없고 다른 이에 대한 부정적인 말과 행동이 많은 공동체는 절대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마르 1,27)

 

생명을 살리시는 생명의 권위이시다. 건강한 권위는 참된 가르침으로 드러나고 가르침은 권위의 주체이신 하느님을 향(向)한다. 권위 있는 가르침을 잃어버린 우리들 세대이다. 사람이 되어오신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의 권위가 되신다.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서 새롭게 가르쳐 주신다. 일깨움의 놀라움은 언제나 하느님께 있다. 꾸미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삶에서 권위를 만난다. 하느님의 가르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우리들 삶이다. 

삶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건강한 삶을 가르쳐 주신다.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하느님의 힘과 하느님의 능력을 우리가 믿는 것이다. 건강한 삶은 언제나 하느님을 향한다. 건강하지 못한 삶을 치유하시는 하느님이시다.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을 주시는 예수님께 건강한 삶을 묻는다. 소중한 삶으로 되돌려 놓으시는 주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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