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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실시간 성모마리아대축일 미사 (22/1/1 12:00)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

by 평화다방 2022.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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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1일
성모마리아대축일
실시간 생중계
명동성당 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2022년 1월 1일 (토)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교회는 해마다 1월 1일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께 ‘하느님의 어머니’를 뜻하는 ‘천주의 성모’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부여한 것은 에페소 공의회(431년)입니다.

지역마다 서로 다른 날짜에 기념해 오던 이 축일은 에페소 공의회 1500주년인 1931년부터 보편 교회의 축일이 되었고, 1970년부터 모든 교회에서 해마다 1월 1일에 지내고 있습니다. 

또한 바오로 6세 교황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1968년부터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는 ‘세계 평화의 날’로 정했습니다.

 

 

✠ 오늘 제1독서

 

주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당신께서 축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계시하십니다.

 

 

✠ 오늘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 오늘 복음

 

목자들이 아기에 관하여 들은 이야기를 알려 주자 마리아께서는 이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기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1월 1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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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민수 6장 22-27절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22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24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25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26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27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당신 얼굴을 저희에게 비추소서. 당신의 길을 세상이 알고, 당신의 구원을 만민이 알게 하소서.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당신이 민족들을 올바로 심판하시고 세상의 겨레들을 이끄시니, 겨레들이 기뻐하고 환호하리이다.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하느님,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세상 끝 모든 곳이 그분을 경외하리라.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매일미사 제2독서 (Second Reading)
제2독서 (Second Reading)

 

제2독서
갈라 4장 4-7절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다.

 

형제 여러분,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진정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그리고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루카 2장 16-21절

 

목자들은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를 찾아냈다.
여드레 뒤 그 아기는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때에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16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17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18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19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20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 

21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새해 첫날 우리도 이런 말로 서로 축복합시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민수 6,24-26)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

 

주님, 즐거운 마음으로 천상 성사를 받고 비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를 성자의 어머니요 교회의 어머니로 공경하는 저희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김주영 시몬 주교 집전

 

 

2022년 1월 1일 (토)
성모 마리아 대축일
김주영 시몬 주교 집전

 

 

명동성당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실시간 생중계 미사

 

 

2022년 1월 1일 (토) 12시
성모마리아대축일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2022년이 밝았습니다. 설렘과 희망 가득한 새해 첫날 우리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냅니다. 

한 해의 첫날을 성모 마리아 축일로 지내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늘과 땅을 영원히 다스리시는”(입당송) 그리스도를 낳으신 어머니께서 보여 주신 신앙의 모범을 따라 한 해를 걸어가자고 다짐하기 위함입니다. 몸소 그리스도의 잉태를 받아들이시고 십자가 죽음까지, 아드님 그리스도의 길에 함께하시는 그 어머니의 삶은 끊임없이 하느님의 뜻을 찾는 길이었습니다.

목자들이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방문하여, 천사에게 들은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합니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1). 마리아는 놀라워하면서,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깁니다. 성령으로 구세주를 잉태하리라는 천사의 말에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는 대답과 천사가 일러 준 대로 아기 이름을 예수라고 짓는 모습은, 온전히 하느님의 뜻을 찾는 마리아의 ‘믿음’을 보여 줍니다.

새해 첫날, 첫 번째 독서에서 우리는 축복의 말씀을 듣습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두 번째 독서 말씀도 우리에게 큰 축복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의 자녀가 되었고, 우리 마음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담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커다란 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한 해, 하느님의 복이 우리의 삶 안에 그리고 우리 이웃의 삶 안에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성모님과 함께 우리도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을 꿋꿋하게 걸어갑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올해 복덩이들이 되세요.

 

지난주 미사를 위해 한 수녀원에 갔을 때 성탄 선물을 준비하지 못하고 왔다고 하니 수녀님들께서 하시는 말씀인 즉 '신부님이 바로 선물이고, 신부님이 오신 것이 선물'이라는 거였습니다. 

이 말씀이 진심인지 듣기 좋으라고 하신 말인지 모르지만 진심이라면 이보다 더 저에게 듣기 좋은 말은 없겠지요. 

그러면서 아브라함에게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면 너는 복이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말씀이  생각나며 제가 선물 정도가 아니라 복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말로 하면 아브라함이 복덩이가 될 것이라는 말인데, 그런데 그가 복동이가 된 것은 복을 하느님으로부터 내리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새해를 맞이하는 오늘 독서들도 우리에게 전합니다. 

첫째 독서 민수기는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기를"이라고 함으로써 복의 원천이 주님임을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복덩이 돼야 함을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이런 가르침을 받은 우리는 새해 인사할 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막연한 인사 대신 모세와 아론처럼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기를"이라고 인사하고, 미사 때의 사제처럼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라고 인사해야겠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말씀처럼 남에게 복을 빌어주기에 앞서 해야 할 것은 내가 먼저 주님으로부터 복을 내리받는 것인데 둘째 독서와 복음은 그 복을 받아 우선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더 나아가 성모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는 거라고 합니다. 

오늘 갈라티아서는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여인의 아들이 되게 하심으로써 우리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심으로써 우리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고 얘기합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아들과 성령을 보내시어 기껏 아들이 되게 해주셨는데 우리가 올해 죄의 노예나 악마의 자식이 되면 안 된다고 하시는 거지요. 

그런데 우리가 만일 올해 죄의 노예가 된다면 이는 마치 부모가 자식을 기껏 감옥에서 빼내오니까 다시 감옥에 들어가고 범죄의 소굴에서 간신히 빼내왔는데 다시 그 소굴로 들어가는 것과 같지요. 

그리고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한 걸음 더 나아가라고 가르치시는 같습니다. 곧 하느님의 자녀에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는 길은 성모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요, 그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간직'과 '되새김'입니다. 우선 하느님의 말씀을 소중히 간직하는 것이고, 다음에는 그것을 계속 되새김질 하는 것입니다. 

이는 소가 많은 풀을 먹고서 바로 똥으로 내보내지 않고, 계속 되새김질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소가 엄청난 덩치를 풀만 먹고 유지할 수 있음은 엄청난 양의 풀을 먹기 때문이고, 그 풀을 바로 똥으로 내보내지 않고 영양분을 다 흡수하기 때문인데 그것이 바로 되새김질입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을 올해 읽고 묵상하고, 또 읽고 묵상하여 하느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자라나 실천으로 드러나게 되면 "표양으로 다른 이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하는 거룩한 행위로써 우리는 그분을 낳습니다."라고 프란치스코가 얘기하듯 거룩한 행실을 통해 우리도 사람들에게 주님을 낳아주는 천주의 모친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지난 성탄 때 성탄 인사를 하려고 댓글에 인사를 올렸는데 그때부터 댓글에 올리는 것에 실패를 했습니다. 오늘도 댓글로 새해 인사 올리는 것에 실패하여 강론에 이어서 새해 인사 올립니다. 

작년 한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베푸신 은혜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올해 주님의 복 많이 받으시는 여러분 되시길 기도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나라다.

 

오늘은 새해 첫날이기도 하며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 성모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새해 첫날 우리나라의 수호자이신 성모님이 하느님의 어머니이심을 고백하며 공경하는 대축일로 시작하는 것은 정말 좋고 큰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모님을 공경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만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목자들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왔습니다. 목자들을 부른 천사들은 지금으로 말하면 교회나 세례자 요한을 의미합니다. 목자들이 그 부르심으로 마구간에 들어왔을 때 아기 예수님을 먼저 경배했을까요, 아니면 성모 마리아의 허락을 받아야 했을까요? 성모님은 구세주의 어머니이십니다. 예수님이 아드님으로서 어찌 당신 어머니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주시고 싶으시겠습니까? 

언어를 배우지 않고는 외국인과 소통할 수 없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소통하시기 위해 마련하신 언어와 같습니다. 어떤 언어든 사용하실 수 있으셨다면 굳이 성모님을 선택할 필요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언어는 길과 같아서 그분이 우리에게 오시기 위해 내어놓으신 길을 그대로 걷지 않으면 그분께 갈 수 없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두 번째 길이고 하느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위해 마련하신 당신과 가장 밀접한 길은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모 마리아를 통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셨다면 우리도 당신께 다가오기 위해 성모 마리아를 통해 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힘들게 내신 길을 따르지 않고 각자가 원하는 길로 오려고 한다면 인격적으로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저도 지금의 제가 있게 된 것이, ‘하.사.시.’나 ‘십일조’, 그리고 ‘7기도’나 ‘성체조배’ 등이 큰 역할을 했음을 언제나 강조합니다. 하지만 만약 저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저는 어떤 마음이 들까요? 물론 그런 사람을 물리치는 일은 없겠지만, 저를 만든 이런 것을 무시한다면 아무래도 저도 그 사람에게 심리적 거리를 둘 것입니다. 저를 사제나 스승으로 여기지 않고 다른 목적으로 다가오려는 사람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에겐 이런 것들이 하나의 언어입니다. 하.사.시.를 읽은 사람과 말이 잘 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그 집에 몰래 숨어서 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주인이 원하는 길과 문으로 그 집에 들어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이 있음을 발견한다면 주인은 바로 경찰에 신고할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께 다다르는 가장 합법적인 길, 혹은 문은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하느님의 어머니로 공경할 때 성모님은 우리가 당신 아드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당신 아드님을 내어주실 것입니다. 

EBS 스페셜 프로젝트 ‘아빠 찾아 3만리’에서 아빠를 찾아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까지 단둘이 날아온 자매의 이야기가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아직 어린 자매는 공책에 필요한 말들을 적어왔지만, 한국인에게 길을 묻는 것이 두려워 계속 길을 헤매다 결국엔 울어버리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용기를 내어 공책에 적힌 것을 보여주며 인천 공항에서 아빠가 일하는 대구의 공장까지 찾아갑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다가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성모 마리아를 거쳐야 합니다. 그 길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실 수 있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물어보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언어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나라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 깊이 소통하기 위해 그 소통의 방법인 언어를 더 열심히 배우려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과 소통하시기 위해 사용하셨던 첫 번째 언어가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오신 통로가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우리가 다시 하느님께로 가기 위해 배워야 하는 언어가 있다면 성모 마리아입니다. 성모 마리아를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 감히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여러분 마음속에 떠오르는 걸 그려보세요.”

반 아이들은 가족, 동물, 자연 등 각자가 원하는 것을 도화지에 그렸습니다. 그런데 한 남자아이는 도화지를 온통 검게 칠했습니다. 선생님들도 부모들도 아이가 무엇을 그리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수십 장의 도화지를 그저 빈틈없이 검게 칠했던 것입니다. 

아이는 의사들에게도 무엇을 그리는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릴 뿐이었습니다. 아이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계속 도화지에 검게 칠했습니다. 이제 수백 장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은 아이의 책상에서 커다란 고래의 그림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그린 그림을 다 맞춰보니 커다란 고래의 모양이 나왔습니다. 아이는 그저 고래를 고래의 크기에 맞춰 그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이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은 온전한 크기의 고래 그림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시한다면 그 사람이 아이에게 다가가는 것은 아이를 정신병자 취급하며 다가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은 성모 마리아를 통해서였습니다. 성모 마리아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리스도께 간다는 말도 역시 그리스도를 어쩌면 “왜, 굳이 마리아에게 태어나셨어요?”라고 이해 못 하며 다가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계명 판이라면 성모님은 그 판을 담고 있는 계약의 궤입니다. 먼저 계약의 궤를 만나지 않으면 그 속의 십계명 판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모든 자녀의 나라는 어머니인 것처럼, 성모님도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그리스도를 온전히 만나고 싶다면 그분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선택한 성모 마리아와 먼저 소통해야 합니다. 

성모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습니다. 성모님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향해 사용하시는 언어와 같기 때문이고, 당신께 오는 길과 같기 때문입니다.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면 그분께서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이끄시고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행복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2022년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하시고자 하는 모든 일에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새해에 가족과 함께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족은 나와 가까운 사람들일까요? 먼 사람들일까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편할까요? 불편할까요? 당연히 가족은 가까운 사람들이며 편한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가족을 많이 봅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따라서 가족과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같이 지내면서 불편함을 느끼고, 점점 너무 먼 사람들처럼 여겨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나 이혼이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가정 폭력이나 아동학대도 많이 증가했습니다. 
 
많은 이가 가족을 나와 동일시합니다. 그러나 가족 역시 엄연히 타인입니다. 내 생각과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이라는 것입니다. 타인임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의와 격식입니다. 나와 가장 가깝고 편한 가족이라도 예의와 격식을 지키지 않는다면, 편함은 없어지고 거리가 더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의와 격식을 지키지도 않으면 “가족이면서 이것도 이해 못 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예의와 격식을 지켜나갈 때, 진짜 가족이 됩니다. 예의와 격식의 시작은 ‘감사’입니다. 감사의 마음만 갖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감사를 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오늘, 우리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봉헌합니다. 한결같이 우리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신 천주의 성모 마리아를 본받아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하고, 세계 평화를 기원하며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는 날인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 잉태의 순간부터 하느님의 놀라운 이끄심을 체험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을 오늘 복음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셨습니다. ‘곰곰이 되새겼다’라는 복음사가의 말은 성모님께서 자신이 본 일을 성경에서 장차 이루어지리라고 했던 이야기들과 연결해 생각해 보았다는 뜻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자기 뜻대로 또 자기를 드러내는 모습으로 살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을 함부로 판단해서 세상에 말하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자기 안에서 곰곰이 되새기셨을 뿐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이시지만 예의와 격식을 잃지 않으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가족 안에서 또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 예의와 격식을 갖춰야 합니다. 감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얼굴을 들어 태양을 보라. 그리하면 그림자는 뒤로 물러날 것이다.

- 지그 지글러

 

 

일상 삶 안에서의 또 다른 삶을 찾기.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게 되었다면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대부분 별다른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사과가 떨어지는구나’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런데 뉴턴은 고향 집 울즈소프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일반적인 사물과 사건 속에서 특별한 무엇인가를 보는 사람이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됩니다. 뉴턴의 사과만이 아닙니다. 제임스 와트는 물이 끓는 주전자를 통해 증기기관차를 만들었고, 프랭클린은 번개를 보고서는 어둠을 밝힐 전기를 만듭니다. 라이트 형제는 하늘을 나는 새를 보고서 비행기를 만들지요. 
 
일상 삶 자체가 또 다른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세히 바라보려고 하지 않고, 항상 똑같은 일상이라면서 지겹다고 합니다. 그러나 똑같은 일상 같지만, 100% 똑같은 일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어떤 시각을 갖느냐에 따라 매번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우리의 삶입니다. 이 삶을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루카 2,19)

 

희망의 빛은 어머니의 삶과 함께 뜨겁게 우리를 향하여 밝아온다. 해마다 우리는 간절한 기도와 함께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맞이한다. 

갈릴래아 하늘을 바라보던 한 여인이 하느님을 잉태하고 하느님을 낳는다. 하느님을 안고 하느님을 업고 하느님을 기르신다. 하느님께서도 사람에게서 당신의 집을 지으신다. 지극히 평범한 한 여인의 자녀가 되신다. 

사람의 사랑을 먹으며 자라나시는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참된 사랑은 소박하다. 가장 좋은 이름 우리의 어머니시다. 하느님때문에 눈물로 기도하시고 하느님때문에 전전긍긍하신다. 하늘은 어머님을 만드셨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어머니를 갖는다. 가장 큰 은총이다. 마음 속에 간직해야 할 진짜 사랑이다. 진짜 사랑을 보여주신다. 어머니를 통해 하느님을 알게되었다. 어머니의 삶을 만나는 시간이다. 

삶이 사랑과 함께 은총이 된다. 마음을 굳게 먹은 사랑의 한 여인이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다. 어머니를 통해 하느님을 믿게되는 신앙의 기쁨이다. 하느님의 탄생이 이루어졌다. 기쁨의 시작이다. 신앙은 어머니를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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