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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1월 3일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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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 -

 

 

2022년 1월 3일 (월)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오늘 제1독서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는 것을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알게 됩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1월 3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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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1요한 3장 22-24절, 4장 1-6절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22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23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4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알고 있습니다. 

4,1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 영이나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영을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한 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 않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하지 않는 영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적’의 영입니다. 그 영이 오리라고 여러분이 전에 들었는데, 이제 이미 세상에 와 있습니다. 


자녀 여러분, 여러분은 하느님께 속한 사람으로서 거짓 예언자들을 이미 이겼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시는 그분께서 세상에 있는 그자보다 더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세상에 속한 것을 말하고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고, 하느님께 속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진리의 영을 알고 또 사람을 속이는 영을 압니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내가 민족들을
너의 재산으로 주리라.

 

주님의 결정을 나는 선포하리라.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나에게 청하여라. 내가 민족들을 너의 재산으로, 땅끝까지 너의 소유로 주리라.” 내가 민족들을 너의 재산으로 주리라.

임금들아, 이제는 깨달아라. 세상 통치자들아, 경고를 받아들여라. 경외하며 주님을 섬기고, 떨며 그분 발에 입 맞추어라. 내가 민족들을 너의 재산으로 주리라.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마태 4장 12-17절, 23-25절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때에 

12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 

13 
그리고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 

14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5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16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17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23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24 
그분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졌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 간질 병자들과 중풍 병자들을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25 
그러자 갈릴래아, 데카폴리스, 예루살렘, 유다, 그리고 요르단 건너편에서 온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전능하신 하느님, 거룩하고 신비로운 이 성사의 힘으로 언제나 저희 생명을 보호하여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최석수 요셉 신부 집전

 

 

2022년 1월 3일 (월)
최석수 요셉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2년 1월 3일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회개는 하느님께 돌아가 그분께 속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어제 주님 공현 대축일 복음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는 동방 박사들의 방문을 전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예수님 공생활의 시작을 함축하여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에서 공생활을 시작하십니다. 왜 예루살렘이 아니라 카파르나움일까요? 첫 번째 이유는 성경 말씀이 실현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이 말씀은 구약 성경의 모든 예언이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가운데 즈불룬과 납탈리 지파는 갈릴래아 지역을 상속 재산으로 받았습니다(여호 19,10-16.32-39 참조). 그런데 이 지역은 이사야 예언자 시대에 아시리아에게 점령당하며 이민족들의 땅,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이 되고 맙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약속대로, 이 어둠의 땅에서 가장 먼저 하늘 나라의 빛이 떠오릅니다. 이 땅에 사는 이들이 참빛이신(요한 1,9 참조)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통하여 구원의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예수님의 선포는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이미 세례자 요한을 통하여 익숙한 이 선포는 하느님의 구원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는 인간이 기다리고 받아들여야 올 수 있습니다. 

높은 데서 오는 선포와 낮은 데서 이루어지는 응답이 만날 때에 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늘 나라의 선포에 앞서, 회개가 먼저 요청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회개 안에서 하늘 나라가 옵니다. 회개는 하느님께 돌아가 그분께 속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명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사랑으로 청하면 무엇이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청하는 것은 그분에게서 다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요한의 편지는 우리가 청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다 들어주신다고 얘기하는데 우리가 놓치거나 지나치지 말아야 할 것은 여기에 조건이 있다는 점입니다. 

조건이란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이고, 하느님의 계명이란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청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무조건 들어주신다는 믿음이 있고, 또 그렇게 해주시기를 바라는 희망이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믿음은 틀린 믿음이고, 그런 희망도 잘못된 희망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떤 믿음이어야 하고 어떤 희망이어야 합니까? 사랑의 하느님이라는 믿음이어야 하고, 사랑의 희망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증오에서 비롯된 청은 절대 들어주시지 않을 뿐 아니라 욕심에서 비롯된 청도 하느님께서는 절대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어제 제가 영적 보조를 하고 있는 형제회에 선거 총회가 있었는데 봉사자로 선출된 분들에게 저는 이런 취지로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이 사랑의 하느님이시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능력의 하느님이시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를 고르라면 사랑의 하느님을 고르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마찬가지십니다. 능력의 평의원이 아니라 사랑의 평의원이 되길 원하십니다. 

이렇게 사랑의 평의원이 되시면 다음에 하느님께서 다 주십니다. 능력도 주실 것이고, 무엇보다 복을 주실 것이며 그래서 봉사하면서 행복할 것입니다. 

봉사할 수 있는 손과 발이 있는 것이 우리의 행복이고 무엇보다 봉사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이 우리의 행복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사랑과 능력의 복을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한 탈란트를 묻어둔 사람에게는 하느님께서 게으르고 악한 종이라고 하시며 그 한 탈란트마저 뺏으시고, 두 탈란트와 다섯 탈란트를 가지고 더 번 사람에게는 착하고 충실한 종이라고 칭찬하시며 그 곱절의 탈란트를 주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사실 시간과 능력을 움켜쥐고 있는 사람은 가진 것만큼만 행복하거나 더 나아가 그것마저 뺏겨서 불행해질 수도 있습니다. 

둘이나 셋이 모여 청하면 다 들어주신다는 말씀도 우리는 이런 뜻에서 이해하면 좋을 것입니다. 사적인 욕심으로 청하지 말고 공적인 선을 위해서 청하라는 말씀으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도 이런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의 하느님 나라가 우리에게 임했다면 우리의 움켜쥔 손은 펴는 회개를 하고 사랑을 나누라는 복음을 실천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예수님 만나는 법 : 별은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밝게 빛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갈릴래아 지역에서 첫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당시 성전이 있었던 예루살렘에서 멀어질수록 이방 민족에 가깝고 어둠과 오류 속에서 산다고 여겼습니다. 다시 말해 진리를 가졌건, 가지지 않았건 자신이 더 오류 속에 산다고 여기는 사람이 빛을 보는 것입니다.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예루살렘이 있는 유다 지방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른 지역 사람보다 더 선택받은 사람들이라 여겨 교만하여져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빛이시기에 자신이 빛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 다가가시지 않습니다. 

어느 날, 원효대사가 외출했다가 분황사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갑자기 어떤 노스님이 길을 가로막더니 반갑게 아는 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반갑구려, 원효대사. 대사께서 쓴 글을 읽어보았는데 깊이가 정말 대단하더군요!”

“보잘것없는 글인데 송구스럽습니다.”

“대사!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저랑 같이 식사라도 하시지요.”

나이가 많아 보이는 그 스님은 원효대사를 데리고 천민이 사는 동네로 향했습니다. 솔직히 원효대사는 그때까지 천민이 사는 동네에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젊은 시절, 화랑이었을 때는 당연히 갈 이유가 없었고, 출가해 스님이 된 뒤로는 공부하느라 갈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노스님은 어느 주막집에 이르러 자리를 딱 잡고 앉더니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어이, 주모! 여기 귀한 손님 오셨으니 술상 하나 봐주게.”

그 순간 원효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수행하는 사람이 술상이라니!’

원효대사는 자리에 앉지도 않고 곧바로 뒤돌아 나와버렸습니다. 등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해버렸습니다. 이때 갑자기 그 스님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원효대사, 마땅히 구제해야 할 중생이 지금 여기 있거늘 어디 가서 별도의 중생을 구제한단 말이오!”

그 말을 듣는 순간 원효대사는 그 자리에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은 빛이라고 생각하면서 빛은 더 밝은 빛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빛이 있을 곳은 어둠입니다. 그래야 참 빛이 됩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원효는 자신의 공부가 부족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노스님은 이론에만 머물던 자신의 자가당착을 밝혀주는 작은 빛이었던 것입니다. 
원효는 승려들을 가르치던 스승 역할을 그만두었습니다. 남을 가르치고 글을 쓰는 대신, 머리를 기르고 신분을 숨긴 채 어느 절에 들어가 부목(負木)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부목 생활이란 사찰에서 땔나무를 마련하는 일 등 온갖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즉 젊은 승려들에게 무시당하며 땔나무를 구하고 아궁이에 불을 지폈던 것입니다. 

그 절에 꼽추 스님이 있었는데 다들 그 스님을 ‘방울 스님’이라 불렀습니다. 걸식할 때 아무 말 없이 방울만 흔들었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은 것입니다. 방울 스님은 공양 때가 되면 다른 스님들처럼 제때 와서 밥을 먹지 않고 꼭 설거지가 다 끝난 뒤에 부엌을 찾아와 남은 누룽지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목들은 그 스님을 귀찮아하고 무시하곤 했습니다. 

하루는 원효 스님이 마루를 닦다가 학승(學僧)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보아하니 ‘대승기신론’을 공부하면서 논쟁을 펼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원효가 그 논쟁을 들어보니 학승들이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원효는 자신도 모르게 “그건 이런 뜻입니다”라고 말하며 일깨우려 했습니다. 그러자 난리가 났습니다. 
“아니, 일개 부목 주제에 어디 스님들 공부하는 데 와서 이러니저러니 아는 체를 하는 게냐?”
그제야 원효는 고개 숙여 사과하고 다시 일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공부 판이 깨진 스님들은 스승을 찾아가 ‘대승기신론’이 너무 어려워 이해하기 힘들다며 하소연했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원효가 쓴 ‘대승기신론소’를 건네주며 공부해보라고 말했습니다. 학승들이 그 책을 읽어보니 깊이가 있음에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책에 나와 있는 똑같은 이야기를 한 원효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원효는 신분이 들통날 수 있다는 생각에 밤에 조용히 그 절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모든 스님이 잠든 시각 원효는 문을 살짝 열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이때 문간방에 있던 방울 스님이 방문을 탁 열고는 이렇게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원효, 잘 가시게.”

방울 스님의 이 한 마디에 원효는 그 자리에서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그는 천민들 가운데서 깨달음을 얻었고, 그들 가운데로 내려가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가장 핍박받는 스님만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빛은 어둠을 향해야 하고, 더 나아가 어둠만이 빛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을. 

[출처: ‘인생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 유튜브, ‘북올림’]

이태석 신부님이 가난한 톤즈라는 마을 한센인들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마더 데레사는 목마르다고 외치는 한 노숙인에게서, 그리고 김하종 신부는 한 냄새나는 지하 방에 사는 사람을 끌어안을 때 “나다. 두려워 마라”라고 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저는 신학교 들어오기 전 떠들며 술 마시다가 잠시 화장실에 들어왔을 때 그 고요함 가운데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문득 느껴서 수도원에 가 있는 친구에게 “화장실에서 만난 하느님”이란 글을 편지로 보낸 적도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빛이시다면 그분은 어둠 속에 계십니다. 별이 낮에 뜨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는 어둠이라고 여겨지던 갈릴래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어둠만이 빛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옳고, 내가 알고, 내가 잘살고 있다고 여기는 이들은 절대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습니다. 그 자체가 너무 밝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질레트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이유

 

20세기 초, 미국 질레트사의 창업자 질레트는 세계 최초로 안전면도기를 개발했습니다. 당시의 면도기는 비싸기도 했지만, 사용 전에 칼날을 갈아야 했기에 매우 위험했습니다. 따라서 질레트는 자신의 발명품이 전 세계인의 선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심각한 판매 부진이었습니다. 1년 동안 질레트사가 판 것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면도기 51개, 면도날 168개” 
 
세계 제1차 대전이 시작되었고, 그는 곧바로 군수 물품 조달 부서에 연락해 면도기를 원가에 보급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원가에 판매하면 남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까지의 적자 역시 당연히 메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커다란 손해를 보는 이 결정이 질레트사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돈 한 푼 쓰지 않고 엄청난 광고 효과를 본 것입니다. 그래서 1917년, 한 해에만 1억 3천만 개의 면도기를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손해 보는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손해 너머를 바라본다면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세상의 관점이 무조건 진리의 길은 아닙니다. 그보다 주님의 관점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관점을 따르게 되면, 어리석고 현명하지 못한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근시안적인 생각입니다. 조금만 더 멀리 바라보면 사랑의 삶을 사는 주님의 관점이 하늘 나라를 차지하게 되는 가장 올바른 결정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고 나서야 회개를 선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는 요한에 의해 옛 계약이 끝나고, 새 계약의 시작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의 가르침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확인하듯이 요한의 가르침을 이어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우리의 회개로 주님께서 얻으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세상의 관점으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말도 듣지 않고, 악으로 쉽게 기울어지는 우리를 보면 “꼴도 보기 싫다.”라고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의 관점을 따르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관점은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죄를 고백하여 죄의 얼룩을 모두 씻지 않는 한 아무도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은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드러났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죄의 얼룩을 모두 씻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모두가 어려운 일을 겪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매일 경이롭고 아름다운 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더글러스 케네디

 

 

기분 좋지 않은 말을 듣고 나서…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 기억납니다. 새벽 묵상 글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그로 인해 방송 출연과 외부 강의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선배 신부님을 만나 함께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조신부가 성실하게 글을 쓰는 것은 좋은데, 조신부 묵상 글은 깊이가 없어.” 
 
나름 그 깊이를 만들기 위해 책도 많이 읽고, 묵상 시간도 늘려가고 있는데 이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영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분 나쁘다고 화를 내면, 막돼먹은 사람으로 비춰질 것 같고 또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는 속 좁은 사람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좋은 조언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했지만, 솔직히 기분이 영 좋지 않았습니다. 
 
‘나’를 보고 관찰하고 판단하는 사람들과 우리는 함께 살아갑니다. 따라서 자신이 원치 않는 판단이 이루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철학가 샤르트르의 말처럼 ‘타인은 지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함께 산다는 것은 좋은 말만 들으며 산다는 것이 아닙니다. 나쁜 말도 들으며 나를 변화시키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빛이 떠올랐다. (마태 4, 16)

 

어둠 속에 앉아 있던 우리가 떠오른 빛을 보았다. 회개와 하늘 나라 사이로 빛이 오셨다. 하늘 나라는 회개의 방식이며 또한 빛의 방식이다. 빛은 감출 수 없다. 우리를 비출 뿐이다. 

빛이신 예수님께서 하늘 나라의 문을 여신다. 우리의 현실을 치유하신다. 빛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다. 우리의 일상을 이끌고 가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빛이다. 우리를 알아주시는 유일한 사랑의 빛이 뜨거워진다. 

빛이 만들어내는 사랑이 복음이다. 사랑을 믿지 않는 것이 우리들 어둠이었다. 빛을 통하여 아름다워지는 우리들 삶이다. 떠오른 빛이 우리를 치유하신다. 빛이신 사랑이 사랑을 치유하신다. 

처음으로 빛다운 빛을 본 사람들은 빛을 따라간다. 빛의 소명 빛의 역사가 구원의 역사이다. 세상을 살리는 빛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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