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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1월 2일 (일) 주님공현대축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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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2년 1월 2일
주님공현대축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022년 1월 2일 (일) 주님공현대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주님 공현 대축일

 

또 하나의 ‘성탄 대축일’이라고도 하는 주님공현대축일은 동방의 세 박사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러 간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를 통하여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탄생이 세상에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 오늘 제1독서

 

이사야 예언자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빛이 왔다고 하면서 민족들이 그 빛을 향하여 오리라고 합니다.

 

 

✠ 오늘 제2독서

 

바오로 사도는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약속의 공동 상속자가 되고 공동 수혜자가 된다고 합니다.

 

 

✠ 오늘 복음

 

동방 박사들은 베들레헴에서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고 예물을 드립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1월 2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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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이사 60장 1-6절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예루살렘아,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네게로 온다. 너의 아들들이 먼 곳에서 오고 너의 딸들이 팔에 안겨 온다. 


그때 이것을 보는 너는 기쁜 빛으로 가득하고 너의 마음은 두근거리며 벅차오르리라. 바다의 보화가 너에게로 흘러들고 민족들의 재물이 너에게로 들어온다. 


낙타 무리가 너를 덮고 미디안과 에파의 수낙타들이 너를 덮으리라. 그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주님,
세상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경배하리이다.

 

하느님, 당신의 공정을 임금에게, 당신의 정의를 임금의 아들에게 베푸소서. 그가 당신 백성을 정의로,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주님, 세상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경배하리이다.

저 달이 다할 그때까지, 정의와 큰 평화가 그의 시대에 꽃피게 하소서. 그가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끝까지 다스리게 하소서. 주님, 세상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경배하리이다.

타르시스와 섬나라 임금들이 예물을 가져오고, 세바와 스바의 임금들이 조공을 바치게 하소서. 모든 임금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모든 민족들이 그를 섬기게 하소서. 주님, 세상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경배하리이다.

그는 하소연하는 불쌍한 이를, 도와줄 사람 없는 가련한 이를 구원하나이다. 약한 이, 불쌍한 이에게 동정을 베풀고, 불쌍한 이들의 목숨을 살려 주나이다. 주님, 세상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경배하리이다.

 

 

매일미사 제2독서 (Second Reading)
제2독서 (Second Reading)

 

제2독서
에페 3장 2절, 3ㄴ절, 5-6절

 

지금은 그리스도의 신비가
계시되었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
약속의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나에게 주신 은총의 직무를 여러분은 들었을 줄 압니다. 


나는 계시를 통하여 그 신비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마태 2장 1-12절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11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12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동방 박사들은 별을 보고 먼 길을 떠나 마침내 베들레헴에 이르러,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만민의 빛이신 주님을 따르는 우리 교회도 이 땅에서 빛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네게로 온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

 

주님, 언제나 어디서나 저희를 천상 빛으로 이끄시니 저희가 받아 모신 이 성체의 신비를 올바로 깨닫고 성자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오세민 루드비코 신부 집전

 

 

2022년 1월 2일 (일)
주님공현대축일
오세민 루드비코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2년 1월 2일 (일)
주님공현대축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우리는 예수님께 무엇을 드리고 있습니까?

 

새해 첫 주일, 우리는 동방 박사들의 아기 예수님 경배를 기억하며,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냅니다. ‘공현’은 예수님께서 구약 시대부터 약속된 메시아이심이 공적으로 드러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별이 세 명의 박사를 멀리 동방에서 베들레헴의 어느 마굿간으로 인도합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님을 뵙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립니다. 

이방인인 동방 박사들의 방문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세상, 모든 이를 위한 메시아로 오셨음을 드러냅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티토 2,11). 

하느님께서는 나만의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의 하느님, 심지어 내가 미워하는 사람의 하느님이시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경은 모든 이의 메시아로 오신 아기 예수님께 동방 박사만이 아니라, 어두운 밤, 들판에서 양 떼를 지키던 가난한 목자들도 경배를 드렸다는 사실을 들려줍니다(루카 2,15-20 참조). 동방 박사들은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오신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고, 목자들은 찬양과 찬미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을 경배하고 찬미하는 일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무엇을 드리고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뵈려고 멀고 험난한 길을 걸어온 동방 박사들처럼, 우리도 새로운 한 해, 예수님을 용기 있게 찾아 나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삶 안에서 ‘공현’을 실현하는 첫걸음입니다. 신앙 여정은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나서는 길입니다. 우리가 걷는 그 길에 예수님께서 당신의 별을 비추어 주실 것입니다.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이사 60,1)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프란치스칸 선교 주일에.

 

“예루살렘아,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오늘은 주님의 공현 축일입니다. 주님의 성탄이 하늘의 주님께서 땅으로 파견되시고 선교를 오신 거라면 주님의 공현은 이 주님께서 베들레헴의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목동들을 넘어 동방의 이교 백성들에게도 나타나신 겁니다. 

그러니까 사적으로 드러나신 주님께서 공적으로 드러나신 것이고, 사적으로 계시되신 주님께서 공적으로 계시되신 것이며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인, 곧 주님을 모르는 이들에게도 알려지신 겁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이 오늘 이사야서에서는 어둠 속에 있는 이들, ‘암흑의 겨레들’인데 공현축일은 이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알게 하는 것이고, 하느님을 이미 알고 있는 빛의 겨레들은 땅으로 파견되어 선교 오신 주님을 암흑의 겨레들에게 파견되어 선교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공현축일을 이렇게 얘기 풀어가는 이유는 이 공현축일이 프란치스칸 선교 주일이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칸들은 주님께서 공적으로 알려진 이 날을 선교주일로 지내는데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이 하느님을 알게 해야 합니까? 선교사가 되어 외국으로 선교하러 나가야 하는 겁니까? 

그럴 수 있다면 제일 좋지만 그럴 수 없다면 파견된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고 후원하는 것입니다. 제가 평양에 평화 봉사소를 설립할 때 아주 훌륭한 3회 회장님께서 3회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선교사가 되어 북한에 가야 하지만 갈 수 없으니 우리 대신 선교하는 분들을 돕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선교라고. 

그렇습니다. 이 선교주일에 우리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고, 선교사들을 통해서 우리의 선교를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요 몇 년 전부터 해외 선교만 선교가 아니라는 주장을 합니다. 

선교는 몇몇 해외선교사들만의 특별 성소가 아니고, 하느님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해야 하는 보편 성소라는 말입니다. 

사실 내가 있는 곳에도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도 많으니 하느님을 나만 알고 있지 말고 그분들에게 하느님을 알게 하면 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에서 보편 성소인 선교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매일 미사를 드리면서 “미사가 끝났으니 주님과 함께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고 매일 파견을 받는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저는 3회원들에게 이런 보편 성소를 강조하는 선교특강이 준비되어 있으니 언제든지 필요하면 저를 불러 달라고 자주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가리봉에서 살고 또 선교 협동조합을 하려고 하는 것도 우리가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스스로 와 있는 하느님을 모르는 많은 분들, 암흑의 겨레들에게 하느님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이사야서는 예루살렘아 암흑의 겨레들을 위해 일어나 비추라고 하고, 복음에서는 암흑의 겨레들을 대표하는 동방의 박사들이 별의 인도를 받아 빛이신 주님을 만나는 얘기를 전해줍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압니까? 빛의 자녀입니까? 그러면 우리는 암흑의 겨레들에게 빛을 비춰야 할 새 예루살렘입니다. 

아직 나도 하느님을 모릅니까? 그러면 별의 인도를 받아 빛이신 주님을 찾아나서야 할 동방박사들입니다. 

프란치스코는 ‘표양으로 다른 이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하는 거룩한 행위로써’ 마리아처럼 주님을 사람들에게 낳아주라고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거짓말만 안 하면 절대 외로울 일 없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이시는가?’를 묵상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동방박사들과 헤로데가 대조되어 나타납니다. 헤로데는 동방박사들에게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마태 2,8)라고 ‘거짓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경쟁자 메시아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만나려면 먼저 ‘진실해야’ 합니다. 누가 거짓말하는 사람과 사귀고 싶겠습니까? 

깊은 산속에 유명한 절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절의 주지인 혜통대사에게는 두 제자가 있었는데 누구에게 주지 자리를 넘겨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지 스님은 두 제자를 불렀습니다. 

“오늘 너희에게 곡물 한 포대기를 나눠줄 것이다. 봄이 되거든 이 씨앗을 파종하여 정성껏 길러야 할 것이야. 또한, 가을이 되어 곡식을 거둬들이거든 나에게 가져오도록 하라.”

주지 스님은 이렇게 분부한 다음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마 곡식을 더 많이 거둔 사람이 미래 주지가 될 것이야.”

어느덧 시간이 흘러 곡식이 무르익자 제자인 ‘지능’은 곡식을 한 짐 가득 싣고 주지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다른 제자인 문원은 빈 지게를 지고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혜통대사가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너는 빈손으로 올라오는 것이냐?”

“스님, 송구스럽습니다. 제가 파종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곡식이 발아하지 못했습니다. 하여 쌀 한 톨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올라오는 길입니다.”

혜통은 그 대답을 듣고 그 즉시 문원을 미래의 주지로 지명했습니다. 이에 다른 제자인 ‘지능’이 그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혜통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스님, 분명 곡식을 더 많이 거둔 사람에게 주지 자리를 물려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어찌 쌀 한 톨 얻지 못한 문원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려 하십니까. 저는 스님의 결정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혜통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래 너희 둘에게 준 씨앗은 모두 삶았던 씨앗이다. 그런데 어찌 삶은 씨앗에서 싹이 날 수 있겠느냐?”

장자는 말합니다. 

“진실로 슬픈 사람은 소리 내지 않아도 슬픔이 느껴지고, 진실로 화를 내는 사람은 성내지 않아도 화가 느껴지며, 진실로 다정한 사람은 웃지 않아도 친근함이 느껴진다.”

이 말은 ‘진실’이 작용하는 공간이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관계는 육체적 관계, 정신적 관계, 마음적 관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육체적으로 자주 만나도 정신적으로는 싫은 사람일 수 있고, 아무리 정신적으로 추앙하더라도 심적으로는 멀리하고 싶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관계 맺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친밀한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가지 않게 만드는 것이 ‘거짓말’입니다.

‘거짓’이 발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기 영광’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왕으로 섬기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 수렁에 빠져있습니다. 이것을 원죄라 합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다 자기 생각 먼저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한 행동은 무엇이었을까요? 무화과 잎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은 거짓으로 자신의 영광을 잃는 것을 방어합니다. 예수님은 사탄을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요한 8,44)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나의 영광을 포기하여 진실해지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모송을 바칠 때 항상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진실해지기 위해 한 노력이 바로 세 가지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마태 2,11)

황금은 아기 예수님이 임금이심을 고백하는 것이고, 유향은 예수님이 ‘대사제’임을 고백하는 것이며, 몰약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희생’되실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또한, 몰약은 죽은 이의 몸에 바르는 것인데 곧 육체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유향은 대사제가 성소에서 향을 피울 때 사용하는 것인데, 이는 ‘자기 생각을 봉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황금은 지성소에서 하느님 뜻을 상징하는 십계명 판이 들어있는 계약의 궤를 덮는 데 쓰인 것인데 곧 ‘나의 뜻’, 또는 ‘나의 자유와 의지’를 봉헌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방박사들이 준비한 이 세 가지 선물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의 육체와 혼과 영을 내어주셨기에, 우리도 그분을 위해 나의 육체적 욕망과 정신적 교만, 그리고 나의 자유까지도 내어드리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게 되어있고 그러면 사람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닫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주소를 알려주지 않으며 놀러 오라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은 진실하십니다. 그래서 별을 보내셨습니다. 진실하지 않은 사람은 마음을 감추고 나아오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 마음 안에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어서 외로워집니다. 

“오늘 딸기는 산지에 비가 와서 평소보다 덜 달고, 조직이 다소 무릅니다. 수박, 참외는 아직 제철이 아니어서 덜 답니다. 구입에 참조하십시오.”

한 백화점의 식품매장에 실제로 걸려있던 안내문입니다. 이 백화점은 단순히 딸기를 파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팔았던 것입니다. 이런 솔직함이 진실한 관계를 원한다는 것을 우리는 다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백화점에 또 가게 될 것입니다. 

외로워지고 싶지 않거든 거짓말하지 맙시다. 육체와 정신과 마음의 영광을 포기합시다. 그러면 거짓말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거짓말을 하면 나의 영광을 위해 너를 이용하겠다며 다가가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사람이 고립되고 외로워지는 이유는 스스로 거짓의 가면을 쓰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큰 쓰임새가 있는 우리

 

어린 산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산양은 늘 슬펐습니다. 자신은 다른 친구 산양과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우선 풀을 잘 뜯어 먹지 못했습니다. 억지로 먹으려 했지만, 소화가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산양과 달리 너무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를 보고 다른 산양이 거리를 두고 가까이에 오지 않으려 했습니다. 
 
다른 산양과 어울리기 힘들 정도의 큰 차이 때문에 이 어린 산양은 다른 모습의 자신을 원망했고 또 자기를 낳은 부모를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숲에서 호랑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산양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호랑이였습니다. 
 
만약 이 호랑이가 계속 산양의 무리에 있으면서 스스로 산양이라고 생각했다면 자신의 재능을 전혀 살릴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누구인지를 찾으면서 제대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지금의 자리에서 능력을 발휘하기 힘들다면 나를 천천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자리에 있는 것인지를 따져 물어야 합니다. 남들의 기대와 사회적 시선 때문에 고민해서도 안 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나를 쓰시기 위해 이 땅에 창조하셨습니다. 큰 쓰임새가 있는 우리입니다. 
 
유대 지역은 로마인들에게는 보잘것없는 미미한 지방이었고, 헤로데는 로마 정부의 임명을 받아 그 지방을 다스리고 있었던 소임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속임수에 능하였고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왕권 노이로제에 걸려서 자기 외의 ‘왕’이란 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몹시 불편했습니다. 
 
모든 예언자가 그토록 예언하였고 모든 백성이 그토록 기다리던 구세주가 탄생했을 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그 백성들은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동방의 현자들이 찾아온 것입니다. 가스팔, 멜키올, 발타샬의 이름을 갖고 있었던 현자들이 유다인의 왕을 찾아왔습니다. 
 
언젠가는 유다인의 왕이 오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동방의 현자로부터 이 소리를 듣게 되니 온 이스라엘이 들썩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동방의 현자들은 당시의 대국 페르시아의 현자들이었으며 당시의 대 민족 아라비아인들이기에, 보잘것없는 나라라고 생각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술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왕권 노이로제에 걸려 있는 헤로데는 어떻겠습니까? 
 
그는 자기 자리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이기심과 사회적 시선만을 생각하면서 세상에 지워지지 않는 커다란 악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나의 자리를 잘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으며 하느님 뜻에 맞게 살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누구나 한 번쯤은 그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보았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깊이 생각하지는 않는다.

- 파트리크 쥐스킨트

 

 

코끼리 사슬 증후군

 

'코끼리 사슬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충분히 힘을 갖고 있음에도 주어진 한계를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서커스단에서 코끼리를 길들이는 방법에서 유래되었는데 어린 코끼리의 뒷다리를 말뚝에 묶어 놓습니다. 이 말뚝에서 벗어나려고 코끼리는 안간힘을 쓰지만 벗어날 수 없어서 결국 포기하게 됩니다. 이제 시간이 지나 어린 코끼리가 성장한 코끼리가 되었을 때는 어떨까요? 다리가 사슬에 의해 말뚝에 묶여있지 않음에도 말뚝 주변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힘을 써도 안 된다고 스스로 규정을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코끼리를 말뚝 근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던 사슬이 우리 자신에게도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할 수 없어.”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그 장벽을 뛰어넘어야 자신의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안 되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도 참 많습니다. 할 수 없다면서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도 있지 뭐~~”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강한 우리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마태 2,2)

 

밖에서 보면 성탄이고 안에서 보면 공현(公顯)이다. 찾아나가는 여정이 비워내는 성탄의 참기쁨이다. 버리지 않고서는 떠날 수 없고 찾을 수 없다. 성탄을 놓아야 성탄이 보인다. 그동안 너무 많은 것들을 움켜쥐며 살았다. 

가장 소중한 것까지 내려놓는 법을 다시 배우는 여정이다. 먼저 내려놓으신 하느님께서 비워낸 우리를 기쁘게 맞아주신다. 비워내는 길이 하느님을 만나는 은총의 길이다. 은총이란 채우는 것이 아닌 비우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성탄이다. 비워낸 곳이 시작된 곳이다. 비워내야 하느님께 돌려주어야 할 것들을 알게된다. 동방박사들은 하느님께 돌려주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았기에 하느님께 돌려드린다. 

비워야 하느님을 드러낼 수 있다. 비워야 이어질 수 있는 공현의 여정이다. 내려놓아야 깊어지는 사랑이다.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며 내려놓으신 하느님께서 아기의 모습을 드러내신다. 내려놓아야 할 대상이 바로 나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되는 공현 대축일이다. 

내려놓으니 편안한 일상이다. 내려놓으니 욕심이 아닌 성탄이 비로소 보이고 참된 겸손으로 하느님 앞에 다시 무릎을 꿇게 된다. 비우는 것이 성탄이고 나의 뜻을 내려놓음이 공현이다. 이 날을 함께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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