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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
2021년 12월 28일 (화)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헤로데는 권력을 유지하려고 자신의 정적들을 살해하는 잔인한 임금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탄생 무렵 왕권에 위협을 느껴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두 죽여 버렸습니다.
이때 억울하게 죽은 아기들의 희생을 교회는 오래전부터 순교로 이해하고 기억해 오다가 중세 이후에는 성대한 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이들이 아기 예수님 때문에 죄 없는 가운데 희생되었기 때문입니다.
✠ 오늘 제1독서
우리는 죄를 지으며 살아가지만, 빛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 오늘 복음
요셉은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간다. 자신의 왕권이 불안한 헤로데는 베들레헴과 그 근처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여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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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제1독서
1요한 1장 5-10절, 2장 1-2절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5
듣고 이제 여러분에게 전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하느님은 빛이시며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6
만일 우리가 하느님과 친교를 나눈다고 말하면서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7
그러나 그분께서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
8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9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10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2,1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화답송
사냥꾼의 그물에서
우리는 새처럼 벗어났네.
사람들이 우리에게 맞서 일어났을 때,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셨던들, 우리를 거슬러 저들의 분노가 타올랐을 때, 우리를 산 채로 삼켜 버렸으리라. 사냥꾼의 그물에서 우리는 새처럼 벗어났네.
물살이 우리를 덮치고, 급류가 우리를 휩쓸었으리라. 거품을 뿜어내는 물살이 우리를 휩쓸었으리라. 사냥꾼의 그물에서 우리는 새처럼 벗어났네.
그물은 찢어지고, 우리는 벗어났네. 우리 구원은 주님 이름에 있네.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네. 사냥꾼의 그물에서 우리는 새처럼 벗어났네.
복음
마태 2장 13-18절
헤로데는
베들레헴에 사는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13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14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6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에게서 정확히 알아낸 시간을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17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8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와 애끊는 통곡 소리.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거룩하신 성체로 저희를 기르시니 성자의 탄생으로 말도 못하는 죄 없는 아기들이 순교한 이 축일에 저희에게도 구원의 은혜를 풍성히 내려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유동철 리노 신부 집전
2021년 12월 28일 (화)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유동철 리노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1년 12월 28일 (화)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매일미사
서철 바오로 신부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하느님이시라면 도대체 뭘 하셨나?
마태오 복음사가는, 하느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구원의 위업을 예수님 안에서 계속하시고 그것을 완성하신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겪은 중요한 체험들에 참여하시어 새로운 ‘모세’로 제시됩니다.
파라오가 히브리 사내아이를 죽이는 가운데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살리시고, 피신시키시어, 이스라엘 백성을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땅으로 데려가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는 죄 없는 아기들의 죽음에서 예수님을 이집트로 피신시키시고 사람들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구원해 주시는 구세주로 보내 주십니다.
이어서 복음사가는 죄 없는 아기들의 학살로 말미암은 아픔과 비탄을 전합니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린다. 비통한 울음소리와 통곡 소리가 들려온다.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운다. 자식들이 없으니, 위로도 마다한다.” (예레 31,15)
라마는 예루살렘이 함락된 뒤에 유배자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가던 출발지로, 라헬은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과 유배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식을 잃은 모든 어머니의 눈물과 통곡을 대변합니다. 이 울부짖음은 하느님을 향한 외침이면서 아직 주어지지 않은 위로에 대한 요청입니다.
‘사실 하느님만이 이에 응답하실 수 있는데, 말을 능가하는 유일한 참된 위로는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만이 우리에게 참된 위로를 가져다주며, 우리의 기운을 북돋아 줍니다’(베네딕토 16세 <나자렛 예수 - 유년기> 157-158 페이지 참조).
어느 신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죄한 이의, 한 아이의 죽음, 상처와 아픔 앞에서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하느님이시라면 도대체 뭘 하셨나?’ 하고 끊임없이 물었습니다. 그렇게 묻다가 ‘사랑만이 전능하다고 믿으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힘이 아니라 ‘상처받는 사람 곁에서 더 힘들어하시고, 더 아파하시는 하느님’을 보았습니다. 문제를 풀어 주시고 해결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나보다 더 아파하시면서 내 곁을 지켜 주시는 아름다운 분을 만났습니다. 그 아름다운 분을 외면한다면 인간이 아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처럼 아름다워지려고 발버둥 칩니다.” .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느님 사랑 밖에 있는 일은 없다.
오늘 복음은 예언이 이루어지기 위해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얘기합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것이 말이 됩니까?
예언이 성취되기 위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는 말입니까? 예언이 어긋나더라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예언이 이루어지기 위해 안 좋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고, 오늘 복음의 말씀도 그런 뜻이어서는 안 되는데 그렇다면 이 말씀은 어떤 뜻입니까?
예언이란 미래를 내다보는 말이긴 하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것이고, 권력의 속성이란 자기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남을 죽이기에 권력 주변에서 이런 살상은 언제고 일어날 거라고 얘기하는 식이지요.
그래서 헤로데도 아기 예수가 미래 자기 권력에 위협 요소라고 생각하여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한 것이고, 죄 없는 아기들을 죽인 것이며, 복음은 그런 뜻에서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한 것이지요.
그런데 제 생각에 오늘 복음에서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말 안에는 더 중요한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참혹한 일이 일어났는데 그것에 대해 신앙적으로 아무런 얘기 없이 지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아기 예수 때문에 애꿎은 아기들이 죽은 사건에 대해 그것을 어떻게 주님을 위한 순교라고 얘기하느냐고 생각이 되고, 그러니 이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하지 않고 건너뛰고 싶습니다.
그러나 복음이나 우리 전례는 이런 곤란한 문제에 대해 피하지 않고 성실히 답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고, 그리고 하느님의 관심 밖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하느님과 무관한 일인 양 얘기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해 좋은 일도 예언하시고, 안 좋은 일도 예언하시며, 인간이 죄를 지을 것이라는 예언도 하시고, 그 죄를 씻으실 구세주가 오실 것이라는 예언도 하시며, 그 죄를 씻어 주시다가 오히려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예언도 하십니다.
죄 없는 아기들이 죽임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 헤로데에게 죽임당한 예수님 당시의 아기들뿐 아니라 지금도 철없이 임신하고 비정하게 버리는 부모들 때문에 죽임당하는 아기들도 죽임을 당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그 아기들이 죽음이 하느님마저도 무관심하고 아파하시지 않는 죽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월호 아이들이 죽었을 때 교회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도 얘기해야 하고, 선택의 자유를 주장하는 여성들에게도 피임이나 낙태 같은 문제는 어려운 문제이고 그래서 피하고 싶은 주제지만 얘기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 축일을 지내는 우리는 세상의 폭군들이 무고한 생명을 죽이고, 어미마저 제 젖먹이를 버려도, 그들이 하느님의 사랑 밖에 있지 않다고, 혹 어미는 버릴지라도 하느님은 버리지 않으신다고 예언해야겠습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야 49, 15)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위해 죽는다. 다만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모르는 게 문제다.
오늘은 죄 없는 아기 순교자 축일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는 헤로데에게 대신 죽은 순교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전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헤로데는 그때 아기 예수님이 죽었을 것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위해 희생된 어린 영혼들은 교회에서 순교자 지위에 오릅니다.
제일 문제 되는 것은 아기들이 자기 의지로 순교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공경받을 만 하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봅시다.
만약 내가 산길을 차를 몰고 가다가 웅덩이를 피하려고 차를 비트는 바람에 길가에 있던 어미 새를 치어 죽였습니다. 내려보니 둥지에 새끼 새들이 있습니다. 어미가 없으니 이들은 다른 동물들에 잡아먹힐 것이 확실합니다. 이때 나는 어떤 마음이 들까요? 그 새끼 새들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을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어쩔 수 없는 희생이 있어야 했고 그들의 영혼을 주님께서 책임져주셔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만약 어미 새가 독사에게 물려 죽었다고 하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그 독사는 새끼들도 잡아먹을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이 있는 하느님께서는 사랑도 있고 능력도 있으십니다. 그러니 당신 아드님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을 당하는 영혼들을 구원하십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에게 우리 죽음이 누구를 위한 죽음이어야 그 보상을 받게 되는지 잘 깨닫게 해줍니다. 나에게 사랑을 지닌 분이시고 그 보답을 해줄 능력을 지니신 분을 위해 목숨을 바칠 때 내 죽음이 헛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나 대신 죽어주고 싶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무언가를 위해 존재합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여러분 방 안에 있는 것들을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사 놓은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것들은 반드시 여러분을 위해 존재합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피조물은 하나도 없습니다.
‘매트릭스’(1999)란 영화에서 네오는 낮에는 평범한 회사원, 밤에는 해커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에게 모피어스란 자가 나타나 빨간 약과 파란 약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하라 합니다. 파란 약을 먹으면 그냥 이전처럼 침대에서 깨어나겠지만 빨간 약을 먹으면 진실을 알게 되리란 것입니다.
네오는 진리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빨간약을 먹습니다. 그랬더니 눈을 떴을 때 믿지 못할 현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세계는 기계에 의해 프로그램된 조작된 세상이었고, 기계들이 인간들이 그렇게 허상의 세계에서 사는 동안 인간을 빨아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네오는 이제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자아라는 기계를 위해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고 그것을 저지하려는 기계의 세력과 맞서 싸웁니다.
나를 위해 살 수는 없습니다. 착각입니다. 우리는 누구든 모두 누군가를 위해 살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과연 나의 생명을 바치는 값을 되돌려줄 대상인지 명확히 아는 게 중요합니다. 자아는 나를 이용할 뿐 나에게 자신을 위해 일한 값을 쳐주지 않습니다. 어차피 누군가를 위해 죽어야 한다면 내 죽음의 값을 되돌려줄 수 있는 분을 위해 죽어야 합니다. 그분이란 나를 만드신 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앞둔 딸이 무덤에서 외롭지 않도록 무덤 속에 누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국 아빠의 사연이 있습니다. 중국 쓰촨성에 사는 장 리용씨와 딸 신레이의 사연입니다. 리용씨 딸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지중해빈혈’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지중해빈혈’은 유전적 결함으로 인해 적혈구 내 헤모글로빈 기능에 장애를 일으키는 질병으로 중증의 경우 적극적인 수혈 요법이 필요하고, 15세가 되기도 전에 목숨을 잃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리용씨는 가난한 농사꾼이었지만 사랑하는 딸을 살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가며 딸의 비싼 치료비를 감당해 왔습니다. 그간 치료비로만 10만 위안(약 1680만원)을 사용했지만, 딸의 병세에는 차도가 없었습니다. 리용씨 부부는 의사에게 “제대혈(탯줄혈액) 이식을 통해 딸을 살릴 수 있다”라는 소식을 접하고 둘째 아이를 뱄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비싼 수술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결국 모든 치료를 포기했습니다.
엄마 뎅민 씨는 “우리에겐 이제 어떠한 선택도 남아 있지 않다”라고 토로했습니다. 부부는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별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리용씨는 딸의 묏자리를 알아보고 직접 무덤을 팠습니다. 이후 리용씨는 딸과 함께 이곳을 매일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딸이 죽은 후에도 이 장소를 무서워하지 않고 편하게 지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무덤 속에 누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리용씨는 “궁지에 몰린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다. 더 이상 돈을 빌릴 곳도 없다”라며 “2살 딸아이가 묻힐 이곳에 데려와 같이 놀면서 익숙해지게 하는 일 외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매일 같이 딸과 함께 이곳을 동행하는 것”이라며 “딸이 무덤을 편안하게 느끼도록, 죽는 순간이 다가오면 너무 두려워하지 않고 편히 잠들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리용씨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은 피어 비디오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온라인에서 퍼졌고 사연을 접한 중국 네티즌들은 신레이의 치료비를 위한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힘으로 딸의 병이 낫기를 바랍니다.
부모는 자녀가 죽을 때 그 책임을 느낍니다. 그래서 자신도 그 무덤에 함께 들어갈 수 있으면 그렇게 하려는 마음을 지닙니다. 그 마음을 지니신 분이 하느님이라면 어떨까요?
우리는 누구나 누구를 위한 죽음으로 나아갑니다. 나라를 위한 죽음일 수도 있고, 내가 믿는 신조를 위한 죽음을 수도 있으며, 가족을 위한 죽음일 수도 있고, 이도 저도 아니면 자기 자신을 위한 죽음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내 목숨을 바치는 대상이 나에 대한 사랑도 없고, 비록 사랑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에게 보답할 능력이 없는 대상이라면 나의 삶과 죽음은 헛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죽어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세상에 나의 죽음에 대한 보답으로 영원한 삶으로 되돌려줄 사랑과 능력이 있는 분이 하느님 외에 누가 있겠습니까?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심장이 썩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 심장을 하느님을 위해 썼기 때문일 것입니다. 파도바의 안토니오 성인은 혀와 성대가 썩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것을 주님 말씀을 전하는 데 썼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오른손과 발이 썩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선교하기 위해 그것들을 희생하였기 때문입니다.
온몸이 썩지 않는 분들도 많습니다. 십자가의 글라라 성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신의 심장에 받아들여 온몸이 수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찮은 새 한 마리를 어쩔 수 없이 죽였어도 그 새끼들에게라도 보답을 해준다면,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나의 목숨을 그리스도를 위해 희생해 볼 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A4 용지 접기 기네스북 기록
얇은 A4 용지 한 장이 있습니다. 이 종이의 절반을 접고, 또 절반을 접고 또 절반을 접습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절반을 접어 나간다면 몇 번까지 접을 수 있을까요? 그래도 10번은 접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직접 해보니 7번까지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 A4 용지 접기의 기록이 기네스북에 있습니다. 몇 번일까요? 9번이었습니다. 저보다 단 두 번 더 접을 수뿐이었습니다.
종이접기도 이렇게 어렵습니다. 하물며 우리의 마음 접기가 과연 쉬울까요?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 “네가 참아!”라고 말합니다. 쉽게 마음을 접을 수 있을까요? 물질적인 욕심이 커지는 상황에서 “돈이 전부는 아니야!”라는 말을 듣고 마음을 접을 수 있을까요?
마음을 접는 것은 종이접기보다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딱 한 번을 접기도 힘듭니다. 그러나 힘들다고 포기하면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한 번만 접을 수 있다면, 이것이 커다란 경험이 되어 접어야 할 것들을 계속해서 접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접는 것은 특별히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마음을 접는 것입니다. 그래야 잘못된 판단에서 벗어나 진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입니다. 헤로데 대왕은 점령군인 로마 정부가 정책적으로 세운 유다인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진짜 유다인이 아니었고 혼혈 유다인 취급을 받던 이두메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인들의 비호를 받으면서도 유다인들에게 자기도 유다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부서진 성전을 다시 짓는 등의 열성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문제는 이 모든 행동이 권력을 유지하려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헤로데 대왕의 나이는 70세였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70세이면 젊다고 말하지만, 당시에는 엄청나게 많은 나이였습니다. 그런데도 권력욕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동방박사가 말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난 아기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에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두 죽여버리는 악행을 합니다.
잘못된 마음을 접지 못했던 헤로데 대왕이었습니다. 욕심과 이기심을 내려놓고 진정한 겸손의 삶으로 자신을 낮추지 못했습니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이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해서 마음을 접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이천 년 넘게 욕을 먹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쓸모없는 마음은 과감하게 접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가리는 마음은 모두 필요 없는 마음으로 과감하게 접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당신이 걱정해야 할 유일한 한계는 마음속에 그어놓은 한계다.
- 스킵 프리처드
N 잡러는 어때요?
저의 책 읽는 모습을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더군요. 책 한 권을 끝까지 다 읽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7권을 각각 50페이지 정도씩 읽기 때문입니다. 책 내용이 헷갈리지 않느냐고 묻지만, 각각 다른 장르의 책을 보기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족한 부분을 매워가면서 풍요로운 독서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만 파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저것 하다가 이도 저도 안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여러 개의 우물을 파는 사람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회사원이면서 작가인 사람, 유튜버이면서 웹툰 작가 그리고 전혀 다른 일까지 하는 요즘 말로 소위 ‘N 잡러’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여유가 생겼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면, 또 주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이렇게 여러 일을 함께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족한 부분을 매우면서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삶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도 듣습니다. 회사에서는 근로자의 성실 의무를 지키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본업에 지장을 주고 직장 질서를 해칠 수 있다는 이유를 듭니다.
너무 구태의연한 생각이 아닐까요?.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마태 2,16)
생명은 그냥 생명이 아니다. 모두가 소중한 하느님의 생명들이다. 하느님의 생명들이 오늘 종잇조각처럼 구겨지고 찢어지고 뭉개진다. 우리가 사랑한 생명을 우리가 죽이고 있는 모습이다. 견딜 수 없는 아픔이 있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아픔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같이 처참한 날에도 죽음을 위로하는 성탄이 있다. 절대자의 성탄 앞에 우리가 내놓는 것은 언제나 죄 없는 아기들의 비통한 죽음이다. 부질없이 깨어지는 헤로데의 권력과 헤로데의 욕망을 멈추어야 한다. 인간의 욕망으로 희생된 죄 없는 수 많은 아기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드린다.
참된 생명의 동반자는 언제나 참된 생명이었다. 욕망과 욕심에 눈이 먼 우리들을 일깨워주는 아기 순교자들의 아픈 희생이다. 짧은 행복 긴 고통의 악순환을 이제 멈추어야 한다.
욕심을 내려놓는 성탄이다. 생명을 들어올리는 성탄이다. 생명의 길을 다시 찾게하는 생명의 처절한 통곡소리를 들어야한다. 비참과 참혹 사이에서 통곡하시는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의 통곡에서 만나게되는 우리들의 아픈 현실이다.
생명을 죽이는 것은 하느님을 죽이는 것이다. 생명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하느님의 성탄이다. 우리는 성탄 앞에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를 반성한다. 잔인한 욕망이 아닌 맑은 사랑의 기쁨을 나누는 오늘이길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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