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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1년 11월 28일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1.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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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대림 제1주일 -

 

 

2021년 11월 28일 (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오늘 제1독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그날과 그때에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 오늘 제2독서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빈다고 합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그날이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늘 깨어있으라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1년 11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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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예레 33장 14-16절

 

내가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14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에게 한 약속을 이루어 주겠다. 

15 
그날과 그때에 내가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아나게 하리니, 그가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룰 것이다. 

16 
그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예루살렘이 안전하게 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주님, 당신께
제 영혼 들어 올리나이다.

 

주님,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 저를 가르치시어 당신 진리로 이끄소서. 당신은 제 구원의 하느님이시옵니다. 주님, 당신께 제 영혼 들어 올리나이다.

주님은 어질고 바르시니 죄인들에게도 길을 가르치신다. 가련한 이 올바른 길 걷게 하시고 가난한 이 당신 길 알게 하신다. 주님, 당신께 제 영혼 들어 올리나이다.

주님의 계약과 법규를 지키는 이들에게 주님의 모든 길은 자애와 진실이라네. 주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와 사귀시고 당신의 계약 그들에게 알려 주신다. 주님, 당신께 제 영혼 들어 올리나이다.

 

 

매일미사 제2독서 (Second Reading)
제2독서 (Second Reading)

 

제2독서
1 테살 3장 12-13장 1-2절

 

주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실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12 
여러분이 서로 지니고 있는 사랑과 다른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도, 여러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처럼 주님께서 더욱 자라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며, 

13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 

4,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끝으로 우리는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당부하고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있는지 우리에게 배웠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욱더 그렇게 살아가십시오. 


우리가 주 예수님의 권위로 여러분에게 지시해 준 것들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루카 21장 25-28절, 34-36절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5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35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36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우리의 속량이 가까웠으니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하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그분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합시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

 

주님, 이 성찬에 참여한 저희가 덧없이 지나가는 현세를 살면서도 지금부터 천상 양식에 맛들여 영원한 것을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1년 11월 28일 (일)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1년 11월 28일 (일) 교중미사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최종훈 토마스 신부

 

무엇을 ‘하기’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 먼저 바라보기

 

전례력으로 한 해의 시작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일에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를 계획하여 봅니다. 어떤 일에는 더욱 집중하고, 어떤 일은 조금 내려놓기로 다짐도 합니다.

그렇게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저는 자꾸 무엇을 ‘하기’만 원하는 것 같습니다. 일하기를, 놀기를, 사랑하기를,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인지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기 원하는 만큼 다른 이에게도 그렇게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만일 그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실망하고 그를 괴롭힙니다. 나도 이만큼 하니까 너도 이 정도는 해야 한다며 다그치기도 하지요. 무엇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했는지’를 먼저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그러면 내가 ‘하지 못했던’ 것들을 더 자세히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을 다그치지 않고 내가 먼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미래의 일을 알지 못합니다. 기다리며 준비할 뿐입니다. 또한 그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당연히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 일을 잘 하려면, 먼저 내가 하지 못했던 일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많이 사랑했는지, 그 사랑을 얼마나 많이 표현하고 지켜 왔는지, 또한 다른 이의 사랑을 얼마나 욕심 없이 잘 받아들였는지를 먼저 바라볼 때, 더 잘 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의 시작이자, 전례력으로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는 오늘, 먼저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봅시다. 지나간 역경의 시간 속에서 미안하고 감사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잘 할 수 있고 함께 그 시간을 이겨 나갈 수 있습니다. 기다림의 시간, 오늘을 통하여 더욱 행복해졌으면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이번 대림은 잃은 주님 찾기

 

올해도 대림절을 맞이했습니다. 대림절이란 성탄을 앞두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시기인데 나는 주님의 오심을 잘 기다리는 사람인지 성찰하다가 누가 주님의 오심을 잘 기다릴까, 반대로 누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지 않을까 성찰해봤습니다. 

가장 단순화하여 생각하면 주님이 없으면 못살 사람이 제일 기다릴 것이고, 주님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 그중에서도 주님이 오시건말건 천하태평인 사람이 제일 기다리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다시 어떤 사람이 주님 없이도 천하태평일 수 있고, 어떤 사람이 주님 없으면 못살 사람이겠습니까? 

이때 바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구약의 에스떼르입니다. 하만의 음모로 인한 절체절명의 순간 에스더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저의 주님, 저희의 임금님 당신은 유일한 분이십니다. 외로운 저를 도와주소서. 당신 말고는 도와줄 이가 없는데 이 몸은 위험에 닥쳐 있습니다." (에스 4,17(14)-17(15))

그러니 에스떼르처럼 주변에 자신을 도와줄 이 하나도 없고, 하느님만이 유일한 도움인 외로운 사람이 주님 오시길 기다립니다. 

그런데 대림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성탄 전에 초림하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있고, 종말 때 재림하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대림에도 주님의 처음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과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 두 가지가 있는데 우리 대부분은 이마 하느님 체험이 한 번 이상 있는 분들이고, 그래서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 분이 대부분일 텐데, 다시 오신다는 것은 하느님을 잃은 분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을 잃은 사람들은 어떻게 잃었을까요? 주님께서 잃은 양들을 찾아 오셨다고 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주님을 잃은 양들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처럼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방탕과 만취는 이 세상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고, 일상의 근심은 이 세상 것들에 대해 집찹하는 것으로서 공통점은 이 세상에 머무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혼인 잔치에 손님을 초대하는 것으로 주님께서 비유하신 적이 있는데 이 비유에서 초대를 거절한 사람은 시집 장가 가서 못 온다고, 밭갈이나 장사 때문에 못 온다고 그 이유를 대지요. 

우리 중에 주님을 잃은 사람이 있다면 주님을 싫어하거나 배척한 사람이 아니라 이렇게 세상살이를 하다 보니 주님을 잃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만일 그런 사람 중에 하나라면 이번 대림은 잃었던 주님을 다시 찾는 대림이 되어야겠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루카 21,34)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기도는 왜 해야 하는가?

 

오늘부터는 전례력으로 ‘다해’가 시작되고 오늘은 그 첫 주일입니다. 한 해의 시작. 우리는 어떤 결심을 해야 할까요?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과 내용이 같습니다. 종말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사실 마지막이 시작입니다. 태아가 태중에서의 마지막이 바깥세상에서의 첫날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를 대비하여 사람의 아들 앞에 설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기도의 목적은 ‘하느님 앞에 설 힘’을 가지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앞에 설 힘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해야 그 사람의 뜻을 따라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그 사람 앞에 설 힘을 잃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랬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기도는 사랑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처럼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주님을 뵐 힘을 잃습니다.

그렇게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인간의 생존 욕구’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루카 21,34)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은 인간의 자아가 살아있기 때문에 생기는 욕구입니다. 자아가 죽지 않는 이상 이 욕구는 우리 사랑을 방해할 것입니다. 자아가 가장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는 어린이처럼 겸손할 때입니다. 그럴 때가 아니라면 이 삼구(三仇)가 사랑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영화가 한 편 있는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9)입니다. 미국의 어느 병원에서 폭풍이 와 모두 자리를 뜨는데 죽음을 앞둔 한 할머니가 딸에게 벤자민 버튼에 관해 이야기해줍니다. 사실은 어머니가 죽어가며 자신의 딸에게 딸이 모르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에 벤자민은 노인의 외모, 노인성 질병을 지니고 태어나서 시간이 갈수록 점점 젊어지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벤자민의 어머니는 벤자민을 낳다 죽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벤자민을 괴물이라고 여겨 요양 시설에 버립니다. 요양 시설의 퀴니는 벤자민을 양아들로 삼아 지극정성으로 키웁니다. 

외모는 늙었지만, 마음은 어린 벤자민에게 같은 동심을 느낀 소녀 데이지는 벤자민 할아버지를 좋아합니다. 벤자민도 실제 자신과 같은 또래의 데이지가 싫지 않습니다. 어린이와 할아버지, 그러나 실제로는 같은 연령대의 순수한 사랑입니다. 

하지만 벤자민은 성장할수록 자유로운 인생을 동경합니다. 세상을 모험하고 싶습니다. 그는 배를 타고 항해하며 전쟁도 경험합니다. 그리고 데이지의 순수한 사랑보다는 길거리 여인을 만나기도 하고 또 우연히 만난 자신과 같은 꿈을 지닌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집니다. 데이지는 이것에 실망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가는데 아버지 토마스 버튼이 아들을 버린 죄책감에 아들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재산을 물려줍니다. 유산을 받은 벤자민은 첫사랑 데이지를 찾아갑니다. 다시 만난 데이지는 세계적 발레리나가 되어 있었지만 어릴 적 동심과 순수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벤자민은 자신만을 사랑해줄 사람이 아님을 직감하고 다시 그녀를 떠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데이지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다리를 다칩니다. 더는 발레를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벤자민은 더 젊고 잘생긴 외모가 되어있었고 데이지는 더 나이 들고 못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찾아옷 벤자민을 문전박대합니다. 그렇게 둘은 또 헤어집니다. 

몇 년 후 회복된 데이지는 벤자민을 찾아옵니다. 벤자민은 그녀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행복한 사랑을 나눕니다. 그러던 중 아이가 생깁니다. 벤자민은 다시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가 아기가 되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딸이 아빠가 아이가 되어가는 것을 보면 얼마나 혼란스럽겠습니까? 벤자민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데이지와 딸에게 남기고 자신은 오토바이 한 대를 끌고 세계 일주를 떠납니다. 딸의 생일이면 자신이 있는 곳에서 엽서를 보냅니다. 

거의 소년이 되어버린 벤자민은 데이지를 다시 찾아오지만, 딸에게는 그냥 아는 친척이라고 소개합니다. 데이지는 재혼하였습니다. 그래도 둘은 사랑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벤자민은 또 떠납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치매에 걸린 한 남자아이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벤자민입니다. 데이지는 벤자민을 잘 보살핍니다. 벤자민은 아기가 되어 그녀의 품 안에서 잠이 듭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를 다 마치고 데이지도 딸이 보는 가운데서 조용히 잠이 듭니다. 

둘이 결국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시간이 엇갈리기는 하였지만, 자신을 더는 떠날 수 없는 ‘아기’가 되었을 때입니다. 둘은 처음과 끝만이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삼구가 사라진 상태, 이 상태가 어린이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누군가와 순수하고 친밀한 관계가 되려면 벤자민처럼 끊임없이 어려져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는 벤자민처럼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느님 안에 머물면 됩니다. 이것을 기도라 합니다. 하느님 안에 머물면 방탕과 만취와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어려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기도는 마치 ‘타임머신’에 타는 것과 같습니다. 2002년 영화 ‘타임머신’에서는 한 과학자가 과거에 잃었던 애인을 구하기 위해 4년 동안 공들여 타임머신을 만듭니다. 그런데 과거로 돌아가 아무리 애인을 구하려해도 애인은 그 시간에 죽습니다. 

그는 왜 운명을 바꿀 수 없는지를 묻기 위해 미래로 갑니다. 그러나 미래의 발달한 문명의 인간들도 그 이유를 모릅니다. 그러나 곧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을. 

그는 시간 여행자로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의미 없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현재의 것에 집착할 이유를 잃습니다. 그러며 애인을 잃었던 아픔도 잊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입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할수록 타임머신이 아니면 자신은 시간과 함께 사라지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 겸손해지고 어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없으신 주님 안에 머물러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어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세상 것들로부터의 집착에서 벗어남을 체험하게 되고 집착의 고통에서 조금씩 해방되며 진정한 ‘감사’가 솟아 나오게 됩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는 아주 먼 미래에 가서 미래의 두 인류를 만납니다. 하나는 현재왜 같은 인류이지만 하나는 악하게 변한 인류입니다. 악하게 변한 인류가 착한 인류를 착취하고 정복합니다. 그는 더 먼 미래로 가봅니다. 그러자 악한 종족의 세상, 곧 지옥이 되어 있습니다. 

그는 비로소 타임머신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찾아냅니다. 타임머신을 악한 종족 가운데에서 폭파해 그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착한 인류만 남습니다. 대신 그는 과거 자신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착한 인류를 위해 타임머신을 폭파합니다. 그리고 착한 종족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새 삶을 시작합니다. 

저도 대학 입시 시험 때 수학이 잘 풀리지 않아 다리를 떨며 저도 모르게 안 좋은 소리를 내어 옆 사람이 시험 보는 것에 피해를 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몰랐지만 지금 일반대학 다니던 친구들이 이야기를 해 줍니다. 

그때는 그 순간 대학에 붙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이웃을 배려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돌아보니 그때 그랬으면 안 됩니다. 어차피 사제가 될 것인데 왜 저만 생각했을까요? 

이렇듯 시간을 뛰어넘는 하느님 안에 머무는 기도를 하다 보면 세상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여겨지고 다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 ‘사랑의 지향’만이 남습니다. 그렇게 기도 안에서 사랑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하는 자만이 하느님 앞에 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다시 누군가에게 이름을 지어줄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기도로 남는 것은 감사와 사랑뿐입니다. 

사랑은 나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없으신 주님 안에 머묾으로써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겸손해지며 결국 의미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음을 알게 되어 지금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럴 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 앞에 설 힘을 가지게 되고 다시 에덴동산에 살 자격을 얻습니다. 내가 받는 은총과 진리로 나만의 타임머신, 곧 기도방을 내 안에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행복을 위해 필요한 세 가지

 

행복을 위해 필요한 세 가지를 어떤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1) 남에게 기대하지 않기

2) 나에게 기대하지 않기

3) 작은 보폭으로 노력하기
  

남에게 기대하지 않으면 인생의 커다란 변화를 가질 수 있습니다. 사실 힘든 일의 7~80%는 남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어? 내게 그러면 안 되지. 부모면 당연히 해 줘야 하는 것 아냐?’ 등등 남에게 기대하는 척도에서 부족함을 느끼게 될 때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따라서 아예 기대하지 않아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에게도 해당합니다. 자신을 부정하고, 자신에게 실망하는 것도 결국 자신에 대한 기대감이 크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 실패를 반복하는 것,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 모두 그럴 수 있는 일입니다. ‘나’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인정하게 되면 커다란 성공에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커다란 노력이 곧 커다란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지요. 그리고 큰 성공이 반드시 큰 행복으로 이끌어주지도 않습니다. 자그마한 노력으로 이룬 자그마한 성취들이 모여서 행복을 만들어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를 위해 많은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특히 주님의 뜻을 알아서, 그 뜻에 맞게 생활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야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가장 큰 행복이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요? 혹시 남에게 계속 기대하고, 나에게 기대하고, 무엇보다 커다란 성공만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행복을 찾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우리의 속량이 가까웠다고 말씀하십니다(루카 21,28). 그래서 세속적인 만족을 가져오는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을 몰아내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대신 모든 일에서 벗어나 주님 앞에 바로 설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라(루카 21,34.36 참조)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기도가 중요한데, 우리는 기도를 어떻게 하고 있었을까요? 엉뚱한 행복만을 찾으면서, 잘못된 기도로 주님과 함께 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요? 
 
오늘 대림 제1주일로, 교회력으로는 새해에 시작하는 주일입니다. 올 한해, 주님과 함께 하는 은총의 시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모험은 당신이 꿈꾸는 삶을 사는 것이다.

- 오프라 윈프리

 

 

노년에도 하느님의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서 아들 이사악이 태어났을 때, 그의 나이는 백 살이었습니다(창세 21,5 참조). 솔직히 가능할까 싶지 않습니까? 그런데 엘리사벳도 노년에 세례자 요한을 낳았고, 이사악은 야곱을 예순에 낳았다고 성경은 전해줍니다. 
 
생물학적 사실 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나이 많은 이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구원 역사에서 ‘새로운 인간이 탄생한다’라는 뜻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노년에 아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노년에 어떤 사명이 주어짐은 하느님의 일에 동참하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을 사는 우리는 어떤가요? 노년에 어떤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 자체를 꺼릴 때가 많습니다. 주위 사람의 시선도 그리 좋지 않습니다. ‘저 나이에 뭘 하려는 거야?’라면서 그냥 편안히 쉴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일은 죽기 전까지 어떻게든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일은 온 몸을 사용할 수 없는 순간에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루카 21,28)

 

예수님 성탄을 기다리는 새해 첫날, 새아침이다. 어제가 흘러 새로운 속량의 오늘이 되었다. 우리의 속량은 다름아닌 주님의 탄생을 만나는 행복이다. 주님의 탄생은 행복해야 할 우리를 회개와 변화의 삶으로 이끈다. 

우리의 신앙또한 새로운 탄생이 필요한 새로움의 간절한 여정이다. 새로 태어나는 마음들이 모여 우리신앙을 자라게한다. 묵은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워지는 사랑이다. 

새로움이란 좀더 낮은 곳으로 내려오시는 주님의 사랑을 만나는 행복이다. 좀더 낮은 곳에 좀더 좋은 행복이 있다. 내려오시는 주님의 행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사람이 행복이고 사람이 말씀이다. 이 새로운 한 해가 서로가 서로에게 참된 기쁨이 되는 한 해이길 기도드린다. 주님께서는 아낌없는 사랑을 새로이 시작하는 우리들에게 나누어 주신다. 

사랑을 나누어 주시는 예수님 자신이 바로 우리가 맞이하는 새 해 새아침이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희망과 기다림으로 살아가는 대림(待臨)의 존재이다. 기다림이 사랑이고 기다림이 설레는 행복이다. 

하느님의 탄생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우리들에게 좋은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 삶의 자리에 하느님께서 탄생하실 것이다. 진심으로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라는 새 해 새 아침의 맑은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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