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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1년 11월 25일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1.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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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

 

 

2021년 11월 25일 (목)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오늘 제1독서

 

다니엘은 악의로 그를 고발한 이들 때문에 사자 굴에 던져지지만, 하느님을 믿어 구원을 받고, 고발한 이들은 죽음을 당합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1년 11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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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다니 6장 12-28절

 

하느님께서 천사를 보내시어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그 무렵 

12 
사람들이 몰려와서, 다니엘이 그의 하느님께 기도와 간청을 올리는 것을 발견하였다. 

13 
그래서 그들은 임금에게 다가가서 금령과 관련하여 말하였다. “임금님, 앞으로 서른 날 동안 임금님 말고 다른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를 올리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자 굴에 던진다는 금령에 서명하지 않으셨습니까?” 임금이 “그것은 철회할 수 없는 메디아와 페르시아의 법에 따라 확실하오.” 하고 대답하자, 

14 
그들이 다시 임금에게 말하였다. “임금님, 유다에서 온 유배자들 가운데 하나인 다니엘이 임금님께 경의를 표하지도 않고, 임금님께서 서명하신 금령에도 경의를 표하지 않은 채,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15 
임금은 이 말을 듣고 몹시 괴로웠다. 그는 다니엘을 살려 내기로 결심하고 해가 질 때까지 그를 구하려고 노력하였다. 

16 
그러자 그 사람들이 임금에게 몰려가서 말하였다. “임금님, 임금이 세운 금령과 법령은 무엇이든 바꿀 수 없다는 것이 메디아와 페르시아의 법임을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17 
그리하여 임금이 분부를 내리자 사람들이 다니엘을 끌고 가서 사자 굴에 던졌다. 그때에 임금이 다니엘에게, “네가 성실히 섬기는 너의 하느님께서 너를 구해 내시기를 빈다.” 하고 말하였다. 

18 
사람들이 돌 하나를 굴려다가 굴 어귀를 막아 놓자, 임금은 자기의 인장 반지와 대신들의 인장 반지로 그곳을 봉인한 다음, 다니엘에게 내린 어떠한 조치도 바꾸지 못하게 하였다. 

19 
그러고 나서 임금은 궁궐로 돌아가 단식하며 밤을 지냈다. 여자들도 자기 앞으로 들이지 못하게 하였다. 그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20 
새벽에 날이 밝자마자 임금은 일어나 서둘러 사자 굴로 갔다. 

21 
다니엘이 있는 굴에 가까이 이르러, 그는 슬픈 목소리로 다니엘에게 외쳤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성실히 섬기는 너의 하느님께서 너를 사자들에게서 구해 내실 수 있었느냐?” 

22 
그러자 다니엘이 임금에게 대답하였다. “임금님, 만수무강하시기를 빕니다. 

23 
저의 하느님께서 천사를 보내시어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으므로, 사자들이 저를 해치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그분 앞에서 무죄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임금님, 저는 임금님께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24 
임금은 몹시 기뻐하며 다니엘을 굴에서 끌어 올리라고 분부하니, 사람들이 그를 굴에서 끌어 올렸다. 다니엘에게는 아무런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자기의 하느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25 
임금은 분부를 내려, 악의로 다니엘을 고발한 그 사람들을 끌어다가, 자식들과 아내들과 함께 사자 굴 속으로 던지게 하였다. 그들이 굴 바닥에 채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달려들어 그들의 뼈를 모조리 부수어 버렸다. 

26 
그때에 다리우스 임금은 온 세상에 사는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조서를 내렸다. “그대들이 큰 평화를 누리기 바란다. 

27 
나는 칙령을 내린다. 내 나라의 통치가 미치는 모든 곳에서는 누구나 다니엘의 하느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해야 한다. 그분은 살아 계신 하느님,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의 나라는 불멸의 나라, 그분의 통치는 끝까지 이어진다. 

28 
그분은 구해 내시고 구원하시는 분, 하늘과 땅에서 표징과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 다니엘을 사자들의 손에서 구해 내셨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영원히
찬송하고 찬양하여라.

 

이슬과 소나기야,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찬송하고 찬양하여라.

서리와 추위야,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찬송하고 찬양하여라.

얼음과 눈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찬송하고 찬양하여라.

밤과 낮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찬송하고 찬양하여라.

빛과 어둠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찬송하고 찬양하여라.

번개와 구름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찬송하고 찬양하여라.

온 땅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찬송하고 찬양하여라.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루카 21장 20-28절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된 것을 보거든, 그곳이 황폐해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라. 

21 
그때에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고,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라. 시골에 있는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 

22 
그때가 바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징벌의 날이기 때문이다. 

23 
불행하여라, 그 무렵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 이 땅에 큰 재난이, 이 백성에게 진노가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24 
사람들은 칼날에 쓰러지고 포로가 되어 모든 민족들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25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사람들이 볼 것이다. 

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전능하신 하느님, 이 거룩한 제사에서 성체를 모시고 기뻐하오니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 곁에 머무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1년 11월 25일 (목)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1년 11월 25일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최종훈 토마스 신부

 

지금의 소중함을 잊지 마십시오.

 

전신 마취를 하고 수술대에 올라 본 경험이 있습니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이동하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냥 누워 있는 것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누운 채로 눈을 뜨지 못한다면 …….’ 대개 두려움이란,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이고 다른 거대한 힘에 의하여 자신의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생각에서 찾아옵니다. 그 힘에 우리는 모든 것을 내맡겨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잃으면, 사랑하는 사람도 만날 수 없고, 내가 이루고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생각이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마지막 날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유다인들에게 가장 소중했던 도시인 예루살렘의 멸망, 임신한 여자에게 가장 소중한 배 속의 아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젖먹이 아이 ……, 그 소중함을 더 이상 볼 수도, 만질 수도, 사랑할 수도 없다는 두려움이 닥쳐옵니다. 나약한 인간에게는 너무나도 거대한 자연의 힘이 이제까지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다는 공포가 밀려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 두려움을 온몸으로 맞이할 뿐입니다. 그런데 정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까요? 아닙니다. 마지막 순간일지라도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며 한 번이라도 더 바라볼 수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삶이 행복했다고, 미안하다고 안아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종말의 때를 살고 있습니다. 내일 당장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두려움 때문에 우리의 소중함을 깨닫는 데 소홀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오셔서 행하시는 그 전능한 힘에 온몸을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모든 것을 잃게 하는 힘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희망의 힘임을 믿고 살아가는 신앙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소중함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나의 끝은?

 

어제 저녁 기도 성모 찬송을 바칠 때 같은 하느님인데 사람에 따라 다르게 대하시는 주님을 새삼스럽게 묵상했습니다. 여기서 마리아는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지요. 

그 인자하심은 세세 대대로 당신을 두리는 이들에게 미치시리라. 권세 있는 자는 자리에서 내치시고, 미천한 이를 끌어올리셨도다. 주리는 이를 은혜로 채워 주시고, 부요한 자를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하느님의 인자하심은 세세 대대로 당신을 두리는 이들에게 미치는데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권세가와 부자에게는 그 인자하심이 세세 대대로 미치지 않고 현세에서 끝난다는 겁니다. 

어제 이런 묵상을 했는데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그때,  곧 예루살렘이 황폐해질 때에 사람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종말이 오면 희희낙락하던 자는 그 기쁨과 즐거움이 끝나고, 애통하고 고뇌하고 신음하던 사람은 그 고통이 끝이 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런 묵상을 했습니다. 내게 종말은 즐거움의 끝인가, 괴로움의 끝인가? 내게 오는 것은 종말뿐인가, 속량하실 주님인가?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희망 없는 사면초가 상황에서 영웅이 되려 하지 마라.

 

오늘도 예수님은 ‘종말’의 상황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된 것을 보거든, 그곳이 황폐해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라. 그때에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고,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라. 시골에 있는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 그때가 바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징벌의 날이기 때문이다.”

적군에게 포위되었을 때 우리는 나라를 위해 끝까지 항생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살 방법을 모색해야 할까요? 만약 살 방법을 모색하다가는 나중에 나라의 큰 배신자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적군에게 포위된 상황’, 곧 ‘사면초가’에 놓이면 도망치라고 합니다. 계속 싸울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징벌’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이 바빌론에 포위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예레미야 예언자는 항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하느냐며 예레미야 예언자를 가두고 박해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레미야의 말을 안 들은 치드키야 왕은 두 눈이 뽑히게 됩니다. 이것이 예루살렘의 첫 번째 멸망입니다. 

상황이 더는 가망 없을 때 그것을 ‘하느님의 징벌’로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 그대로 개죽음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위한 항전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나라의 자존심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꼴이 됩니다. 

분명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의 두 번째 멸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죽인 이들을 향한 하나의 예고된 징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끝까지 항전하였습니다. 그 항전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나라의 자존심을 위해 한 것입니다. 

이들이 끝까지 항전했던 곳이 ‘마사다’입니다. 결국, 마사다에게 항전하던 이들은 모두 자살을 하게 됩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마사다 항전을 기리며 끝까지 항전한 이들을 추켜올립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을 위해 싸웠다기보다는 나라를 위해 싸운 것입니다. 이 세상 지나버릴 왕권을 위해 귀한 목숨을 바친 것입니다. 우리가 왜 영혼을 구원해주지도 못할 것을 위해 목숨을 내어버려야 할까요? 

마지막 때가 오면 분명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마지막 때는 온 세상이 공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지고 땅이 갈라지고 바다가 덮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완벽하게 사면초가가 되었다면 이것은 ‘하늘의 징벌’로 여겨야 합니다. 이때 반항해 봐야 내 영혼을 돌볼 기회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 뜻대로 잘살고 있는데 망하는 교회나 망하는 사회나 망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사면초가가 되었다면 그것은 전체적으로 잘못된 길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징벌은 받아야 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런 때에 해야 하는 유일한 것은 ‘말씀과 은총’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라합이 잘하였습니다. 라합은 창녀였지만 자신이 사는 예리고가 자신보다 더 썩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분명 징벌이 내릴 것을 느끼고는 징벌을 내리는 이들을 숨겨줍니다. 두 명을 숨겨주는데 저는 이 둘을 ‘은총과 진리’로 봅니다. 라합은 자기 나라에서 배신자가 되었지만,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부지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혼을 구원받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식의 말로 우리를 이용하려는 세력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공산주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습니까? 그러나 그 피의 값을 하느님은 기쁘게 쳐 주실까요? 왜 그랬냐고 하실 것입니다. 일단 역전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우리 안에 주님께서 함께 계시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일입니다. 

1968년 북한 특수부대 124군 소속 31명 특공대원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 세검정까지 내려왔습니다. 그들이 산속에서 마주쳤다가 살려준 지게꾼 형제들의 신고로 서울은 이미 경계태세에 있었습니다. 결국,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김신조를 제외한 모든 대원이 전투 중 사살되었습니다.

바위틈에 숨어있던 김신조도 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합니다. 이미 주위는 포위되어 살 가망성이 없었고, 항복하면 살려주겠다는 말이 들려옵니다. 문득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을 자신에게 던집니다.

‘나는 김일성 수령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존재인가?’

그는 항복합니다. 그래서 유일하게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멈추지 않습니다. 북한은 자신들을 보낸 적이 없다고 잡아뗍니다. 분노를 느끼고 항복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목사가 되는 길을 택합니다. 

누가 김신조 목사를 탓할 수 있을까요? 북한은 분명 배신자라 낙인찍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영혼 구원을 책임지지도 못할 세상 권력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은 마치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처럼 점점 절망의 나락으로 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 속도를 늦추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이때 이 세상 편에 서서 하느님의 진노가 가까워지는 데도 이용만 당하다 죽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적들에게 포위되었다면 분명히 이 상황은 하느님의 진노 결과임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구원하러 이 감옥까지 들어온 이를 찾아야 합니다. 이것은 비겁함이 아닙니다. 내가 누구인지, 이런 상황이 왜 일어나는지 묻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프리즌 브레이크에는 무죄하게 무기징역을 받은 형을 구원하기 위해 들어온 동생이 있습니다. 동생은 온몸에 탈출할 수 있는 암호가 적힌 문신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죄도 없이 살아야 할 감옥을 탈출한다고 비겁하다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 안에서 영웅이 되려는 것이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하느님의 징벌 아니고 사면초가가 되는 상황은 거의 없습니다.  

그때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드십시오. 우리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지금 이 순간

 

이제까지의 사제생활을 돌아보면 정말로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본당신부로 있을 때 신자도 많이 늘었고, 다른 신부가 부러워할 정도로 청년이나 초중고 학생들 숫자도 참 많았습니다. 신자들도 정말로 열심히 해서 성당 안이 늘 북적거렸습니다. 
 
얼마 전, 본당신부로 있을 때의 사목회장님과 오랜만에 만나 점심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식사하면서,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본당신부로 있을 때, 회장님을 비롯한 많은 신자분이 열심히 하셔서 신나게 살았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회장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해주십니다. 
 
“신부님이 열심히 노력하셨으니 그렇지요.” 
 
첫 본당신부였기에 열심히 살려고 나름 노력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부족한 노력에 비해 얻은 것이 너무 크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좀 더 생각해보니, 저의 운 좋음은 노력이 있었을 때인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는 원하는 운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또 저절로 되기를 바랐지만, 저절로 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자기 자신을 떠올려 보십시오. 운은 노력과 비례해서 나아갑니다. 그런데 노력 없이 운만 좋기를 바라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종말의 때에 무서운 자연재해가 있으리라고 예고하시는 장면을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통해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 세상은 끝이구나.’라며 자포자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종말로 모든 것이 끝이었습니까? 예수님은 종말의 때를 예고하신 뒤에 이런 말씀도 분명히 우리에게 전해주십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카 21,28) 
 
모든 것이 끝장난 것 같지만, 오히려 구원의 시간이며 하느님과 함께하는 은총의 시간임을 말씀해주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종말의 때가 아니더라도 오늘날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커다란 재해, 즉 지진, 홍수, 화재 등의 재해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을 해야 할까요? ‘언젠가는 나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하는 종말이 오겠지?’라며 포기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장차 다가올 그 종말의 때를 의연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지금 여기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 자신에게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과 은총의 삶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으로 ‘운 좋은’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은혜를 갚는 것보다 더한 의무는 없다.

- 툴리우스 키케로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7가지 방법

 

인터넷을 보다가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7가지 방법’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습니다. 
 

1. 현실을 받아들이기

2. 균형 잡힌 식사하기

3. 사소한 일을 걱정하지 않기

4. 노래하기

5. 반려동물과 시간 보내기

6. 숙면 취하기

7. 종교 가져 보기 
 

젊었을 때, 솔직히 늙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외모를 가꾸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했습니다. 좀 젊어 보인다는 말을 들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50이 넘었다고 하면 깜짝 놀랍니다. 40대로 봤다면서, 젊어 보인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것도 있겠지만, 오히려 외모에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위에 나와 있는 7가지 역시, 편안한 마음을 위한 방법이 아닐까요? 젊어지길 원한다면 먼저 마음을 가꿔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루카 21,28)

 

가까워진 당신의 속량으로 우리의 모든 빗장과 마음의 자물쇠를 여신다. 불완전하고 미완성의 우리들 삶에 주님의 속량(贖良)이 있다. 유죄(有罪)와 무죄(無罪) 사이에 넘치는 속량이 있다. 

속량의 뜻은 구원이다. 속량은 다름아닌 자유로운 은총의 삶이다. 속량의 여정이 바로 구원의 여정이다. 아름다운 속량은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에서 출발한다. 주님의 속량에 우리 마음을 맡겨드린다. 

속량으로 우리마음또한 가야할 곳을 알게된다. 속량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주신다. 속량으로 참된 사랑을 가르쳐주신다. 참된 사랑은 속박이 아닌 참된 자유이다. 

희생 없는 속량은 없다. 사랑 없는 속량은 없다. 고귀한 사랑으로 우리 마음을 맑게하신다. 속량이라는 사랑의 길만이 있을 뿐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을 간절히 바라시는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위한 속량의 길을 걸어가신다. 

속량과 아픔 사이에 만나게되는 가장 좋은 사랑이다. 속량으로 새날이 더욱 맑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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