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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1년 11월 21일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1.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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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21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2021년 11월 21일 (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전례력으로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이라는 축일명대로,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 임금이심을 기리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정치권력을 장악하여 백성을 억누르는 임금이 아니라, 당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하시며 백성을 섬기시는 메시아의 모습을 실현하셨습니다. 스스로 낮추심으로써 높아지신 것입니다. 

1925년 비오 11세 교황이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정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1985년부터 해마다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간(올해는 오늘부터 11월 27일까지)을 ‘성서 주간’으로 정하여, 신자들이 일상생활 중에 성경을 더욱 가까이하며 자주 읽고 묵상하기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등불이기 때문입니다.

 

 

✠ 오늘 제1독서

 

다니엘 예언자는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 앞으로 인도되는 모습을 봅니다.

 

 

✠ 오늘 제2독서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을 모든 눈이 보리라고 합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에게 당신께서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나셨고,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1년 11월 21일 (일)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다니 7장 13-14절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이다.

 

13 
내가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14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게 하소서.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주님은 임금님,
위엄을 입으셨네.

 

주님은 임금님, 위엄을 입으셨네. 주님이 차려입고 권능의 띠를 두르셨네. 주님은 임금님, 위엄을 입으셨네.

누리는 정녕 굳게 세워져 흔들리지 않네. 예로부터 주님 어좌는 굳게 세워지고, 영원으로부터 주님은 계시네. 주님은 임금님, 위엄을 입으셨네.

당신 법은 실로 참되며, 당신 집에는 거룩함이 서리나이다. 주님, 길이길이 그러하리이다. 주님은 임금님, 위엄을 입으셨네.

 

 

매일미사 제2독서 (Second Reading)
제2독서 (Second Reading)

 

제2독서
묵시 1장 5ㄱㄷ-8절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께서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시며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를 죄에서 풀어 주셨고,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보십시오, 그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모든 눈이 그분을 볼 것입니다.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고 땅의 모든 민족들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요한 18장 33ㄴ-37절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그때에 빌라도가 예수님께 

33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하고 물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말해 준 것이냐?” 하고 되물으셨다. 

35 
“나야 유다인이 아니잖소? 당신의 동족과 수석 사제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긴 것이오. 당신은 무슨 일을 저질렀소?” 하고 빌라도가 다시 물었다. 

36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37 
빌라도가 “아무튼 당신이 임금이라는 말 아니오?”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를 죄에서 풀어 주셨고,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

 

주님, 불멸의 양식인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저희가 온 누리의 임금이신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나라에서 끝없이 살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1년 11월 21일 (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1년 11월 21일 (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 Reflections)

 

매일미사
최종훈 토마스 신부

 

군림하는 왕이 아닌 십자가의 왕으로 오늘을 살자.

 

성당에 들어서서 머리와 가슴, 어깨에 엄숙히 십자가를 새기고 십자가와 제대를 바라보며 깊이 머리를 숙입니다. 그리고 커다란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때로는 감사를, 때로는 염원을, 때로는 아픔과 고통을 그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십자가를 몸과 마음에 품고 새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를 십자가에 매달아 조롱하고 심판합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처럼’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아 갔다고 여기면서 나와 생각이 다른 누군가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손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선동하여 행동하게 하고는 자신은 고귀한 척, 정당한 척합니다. ‘군사들처럼’ 자기보다 힘없고 나약한 사람을 무시하며 조롱하고 빈정거립니다. ‘백성들처럼’ 사실과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낙인을 찍어 소문을 만들며 재미 삼아 험담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처럼’ 자신의 잘못은 바라보지 않고 누군가 자기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며 그의 잘못만을 탓하고 스스로에 대해서는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조롱하고 빈정거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일상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예수님을 조롱하고 심판합니다. 약하다는 이유로, 나보다 잘못을 많이 한 것 같다는 이유로, 내 것을 빼앗아 갔다는 이유로,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십자가에 매달아 빈정거리며 조롱하고 못 박아 죽입니다.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내는 오늘은, 십자가 위에서 조롱받으신 분께서 바로 우리의 임금이심을 인정하고 기념하는 날입니다. 

빌라도처럼 말로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조롱하고 무시하고 짓밟았던 이들을 위하여 희생하고 봉사하신 분을 임금으로 여기고 충실히 섬기기를 약속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셨던 그 십자가의 왕으로서의 삶을 우리 또한 살아가리라 다짐하는 날입니다. 군림하는 왕이 아닌 십자가의 왕으로 오늘을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그리스도 왕 대축일

 

오해의 소지가 많은데 우리 교회는 왜 그리스도 왕 축일을 지낼까요? 그리스도는 당신이 왕이 되려는 분으로 오해받을까 극히 조심하셨고, 실제로 사람들이 왕으로 세우려고 할 때 피하신 분이시며, 오늘 복음의 빌라도도 그리스도께서 유다인들의 임금인지 묻지 않습니까? 

사실 그리스도 왕 축일은 교회의 영향력이 근대에 들어 약화되자 그 반작용으로 그러니까 그리스도는 세상의 왕들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내세우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오해를 받기도 하지요.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 왕 축일을 지내는 것은 다른 이유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 왕 축일을 지내는 것은 그리스도는 세상의 임금과 다르고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세우려고 했던  하느님의 나라도 세상 임금의 나라와 다르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도 당신 나라를 세우시려고 한 적이 없고, 하느님의 나라를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세우려고 하신 분이시며 그러나 그 나라가 이 세상 왕국과 다르기 때문에 돌아가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그러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의 나라를 옳게 증거했을 때는 교회도 늘 세속의 통치자들과 충돌을 하였고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지요.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후 세속 임금들과 잘 지낼 때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지 못하고 오히려 점점 세속화되었던 아픈 역사도 있지요. 

그러므로 이 축일을 지내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세상의 통치자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기 위함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 나라를 증거해야 할 우리가 그 백성으로서 어떠해야 할지 성찰하고 반성하기 위함입니다. 

우선 저부터 반성합니다. 어떤 때 저를 보면 과도하게 정치판 돌아가는 것에 신경을 씁니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를 증거해야 할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무정부주의자나 정치적 무관심자나 정치에 냉소적인 사람도 되지 말아야 하지만 세속 정치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고 빠져들어도 안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하느님 나라지 이 세상 나라가 아니며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느님 나라 증거지 파당적이고 지나치게 정치적인 세상 참여가 아님을 이 축일을 지내며 우리는 다시금 명심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뜻에서 오늘 주님 말씀을 묵상해봅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요한 18,36)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진리보다 진리의 증언

 

오늘은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항상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은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지냅니다. 그리스도께서 왕으로서 마지막 때에 심판자로 오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왕은 당신의 백성을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왕으로 영접한 이들만 마지막 때에 당신의 나라에 살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왕으로 영접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알 것 같으면서도 조금은 아리송한 말씀입니다. 분명 예수님은 당신이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당신이 진리를 ‘증언’하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증언자는 분명 진리 자체는 아닙니다. 그러면서 이미 진리에 속한 사람만이 당신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진리를 증언하는 이에게 속하는 것이 곧 진리에 순종하는 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리’란 한 마디로 무엇일까요?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 하나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께서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뱀의 증언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피해서 숨었습니다. 이것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결정적 이유입니다. 

진리를 다시 회복함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다시 회복함을 의미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려줄 대상이 필요합니다. 만약 하와가 하느님의 사랑을 감소시키는 뱀의 말 대신 온 에덴동산을 주신 분이 아버지이심을 알려줄 중개자를 만날 수 있었다면 죄에 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리는 에덴동산입니다. 에덴동산이 곧 하느님입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 고마움을 갖게 해 줄 증언자를 먼저 만났어야 합니다. 그가 곧 하와가 탄생하기 전에 이 모든 것을 다 보았던 아담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증언이 성경입니다. 그러면 성경을 믿으면 될까요?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증언자를 통하여 레마로 바뀝니다. 로고스가 레마로 변하게 해 줄 증언자를 만나야 합니다. 목동으로 치면 천사이고 동방박사로 치면 별입니다. 이것을 도움의 은총이라고도 합니다. 

성경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다고 모두가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천사나 별을 쫓아온 목동이나 동방박사들만 구원되었습니다. 참다운 증언자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 진리는 우리가 잘 압니다. 그러나 그 진리를 증언하는 누구에게 속하느냐가 구원의 핵심입니다. 빌라도는 진리를 증언하는 예수님께 속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미 진리를 안다고 착각했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휘둘렸기 때문입니다. 

오징어 게임에 이어 넷플릭스 흥행몰이를 했던 ‘마이네임’의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조폭이며 지명수배자인 아버지를 둔 지우는 고등학생입니다. 지우는 자기 생일에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을 때려주고 자퇴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도망 다니던 지우의 아버지는 지우 생일이기에 전화합니다. 지우는 아빠 때문에 자기 인생이 망가진다고 화를 냅니다. 아빠는 경찰들이 잠복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지우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집으로 찾아옵니다. 그때 문 앞에서 누군가에게 아버지가 살해당합니다. 아버지는 딸을 지키기 위해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지우를 지킵니다. 

진리는 아빠가 지우를 사랑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우는 그것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누가 아빠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알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다며 아버지의 유일한 친구인 조폭 두목 무진을 찾아갑니다. 

아버지와 무진은 생을 같이하는 친구입니다. 처음에 무진은 지우를 돌려보내지만, 지우의 끈질김에 무진도 지우를 키워주기로 합니다. 지우는 여자이지만 오래전부터 단련한 킥복싱과 무진의 특별 훈련 덕분으로 엄청난 실력을 갖춘 성인이 됩니다. 

무진은 총 한 자루를 주며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강력계 형사 차기호라고 말해줍니다. 지우는 경찰이 되어 차기호 밑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 합니다. 차기호는 피를 흘리며 지우를 알아봅니다. 그리고 지우의 아버지는 자신이 동천파 소탕을 위해 들여보낸 경찰이라고 말해줍니다. 무진이 자신을 구해주었던 지우의 아버지를 굳게 믿었지만, 경찰의 첩자인 것을 알고 죽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우는 믿어보려 했지만 이제 적이 되어 지우의 복수를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결국 지우는 무진에게 복수하고 드라마는 끝납니다. 

윤지우가 바랐던 것은 아버지의 복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실을 알아야 했습니다. 마치 바다의 물고기가 어부가 없이는 우리 밥상으로 올라올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이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우는 아버지의 친구였다는 이유로 진짜 원수를 믿어버렸습니다. 

아버지가 지우를 사랑했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 진리는 그것을 증언해 줄 믿을 수 있는 대상을 통해서가 아니면 의미 없어집니다. 그 믿을 수 있는 대상이란 자신을 경찰이 되게 하여 이용하는 사람이 아닌 자신을 위해 피를 흘려주는 이여야 합니다. 이 역할을 교회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참 진리에서 어긋나가 가르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에 대해서는 교회 밖에 있는 것입니다. 잘못 배우면 하느님 사랑을 알아도 하느님을 왕으로 모시지 못합니다. 

제가 로마에서 성경을 공부할 때 한 교수 신부님은 예수님께서 당시 시대 상황이 그렇지 않았다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가르침에 반합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러 오셨습니다. 따라서 그분은 교회에서 가르치고 계시지만 실제로 자기 개인적인 해석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그분을 따라간다면 저도 이상한 해석을 하고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가 저에게 큰 의미가 없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의미를 잃는다면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기 어려울 것이고 신앙은 힘을 잃게 됩니다. 

팩트를 전하는 성경이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해 주는 진리의 증언자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끕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온전히 해석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진리의 기둥은 무엇일까요? 

“내가 늦어지게 될 경우, 그대가 하느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교회로서,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입니다.” (1티모 3,15)

예수님께서 진리 자체이시면서도 또한 빌라도 앞에서 진리를 증언하는 사람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안에 머물러야 진리 안에 머물며 하느님을 임금으로 섬길 수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진리 자체보다 그 진리를 온전히 증언해 줄 파견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가톨릭교회’입니다. 

나는 하와이고 진리는 에덴동산입니다. 그리고 증언자는 뱀과 아담 둘이 있습니다. 진리 자체보다 진리를 해석하고 가르쳐주는 올바른 증언자를 만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에덴동산에 영원히 머물려면 뱀이 아니라 에덴동산을 증언해 줄 아담, 곧 교회에 머물러야 하고 그 증언만을 믿어야 합니다. 사랑은 진리보다 증언자가 중요합니다. 사랑은 이미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안에 살고 있기에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어떤 삶을 사시겠습니까?

 

우리에게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은 의미를 찾기 힘들 때가 아닐까요? 특히 죽음의 순간에 자기 존재 이유를 잘 모를 때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에서도 의미를 찾은 사람은 희망을 품고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죽음의 고통은 정말로 크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말 아프고 힘들 때, “아이고 죽겠네.”라고 자신도 모르게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에 자기의 존재 이유조차 찾기 힘들면 더 힘든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할아버지께서 죽음 직전 신부님께 병자성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신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신부님, 정말 고마워요. 제가 하늘 나라에 가면 신부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이 할아버지께서는 자기 존재의 의미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죽고 나서도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말입니다. 실제로 편안한 모습으로 하늘 나라에 가셨다고 합니다. 
 
존재 의미를 찾아서 늘 희망을 간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엉뚱한 곳에서 존재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닐까요? 즉,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이 의미 있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이것이 아님을 연중시기의 마지막 주일을 보내는 그리스도왕 대축일인 오늘, 임금이신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느님의 외아들이며, 우리 모두의 왕이라고 하시는 분께서는 절대 자신의 기득권을 내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철저하게 봉사하셨고, 철저하게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생각하는 왕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오히려 왕이 아닌 종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초라한 모습의 주인공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힘’이라는 것을 통해서는 참된 영광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의 몸 자체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보여주시지 않습니까? 
 
이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우리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까요? 남보다 윗자리에 올라가서 재력과 권력으로 사람을 짓누르는 세상의 모습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와 정반대로 낮은 자의 모습으로 사랑과 희생으로 철저하게 봉사하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참 영광을 얻는 방법을 보여주신 주님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이제는 세속적인 기준을 내세우지 말아야겠습니다. 대신 주님의 기준을 바라보고 철저하게 따를 때, 주님께서 주시는 영광을 통해 매 순간을 의미 있고 기쁘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삶을 사시겠습니까?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작은 일을 즐기세요. 언젠가 돌아왔을 때 그 일이 큰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 로버트 브롤트

 

 

꼰대? 열정?

 

어떤 자매님께서 무척 화가 났습니다. 성당에 가서 어느 빈자리에 앉았는데 할머니 한 분이 오시더니 “여기 내 자리야. 일어나.”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자매님께서는 성당에 지정 좌석이 어디 있냐면서 화를 내십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자매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도 그 할머니가 꼰대질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 알고 보니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스피커 바로 옆인 그 자리에만 앉는 거래. 신부님 말씀 잘 들으시려고 한다는데, 어디에서도 잘 들리는 우리가 양보해야 하지 않을까?” 
 
신부님 말씀을 잘 들으려고 “여기 내 자리야. 일어나!”라고 무작정 말할 수밖에 없었던 할머니의 열정이 보이지 않습니까? 사정을 모를 때에는 ‘꼰대’로 보이지만, 사정을 알면 ‘열정’이 보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요한 18,37)

 

한 해가 지나간다. 주님과 함께 걸어온 전례력을 바라본다. 임금님이신 주님께서 주신 은총과 십자가의 삶이다. 모든 길의 끝에 계시는 사랑의 임금님이시다. 수 많은 고백과 수 많은 약속들을 아프게 반성하며 주님을 다시 만나게된다. 

망설임과 헤매임 사이에서 잃어버린 소중한 시간들이 있다. 아픔과 반성 사이에 감사가 있다. 가장 좋으신 그리스도왕께 집중해야 할 감사의 시간이다. 용서의 발원지를 다시 보게된다. 

너와 나 사이에 용서의 임금님이 계신다. 임금이신 주님께 모든 삶의 은총이 흘러나온다. 임금이신 주님께 우리 마음을 드리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마음을 드리는 것이 가장 좋은 믿음이다. 

삶이란 임금이신 주님께 이르는 길을 걸어가는 믿음의 여정이다. 주님과 함께 이르러야 할 곳은 다름아닌 감사의 하느님 나라이다.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는 주님이시다. 우리의 삶이 되어주시는 임금이시다. 

쏟아지는 은총이란 이끌어주시고 밀어주시는 삶이라는 신비의 은총이다. 은총의 그리스도왕께 한 해의 모든 여정을 봉헌하는 대축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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