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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1년 11월 5일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1.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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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

 

 

2021년 11월 5일 (금)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오늘 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약은 집사의 비유를 드시며,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1년 11월 5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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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로마 15장 14-21절

 

이 은총은
내가 다른 민족들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이 되어
그들이 하느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제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14 
나의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 자신도 선의로 가득하고 온갖 지식으로 충만할 뿐만 아니라 서로 타이를 능력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15 
그러나 나는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에 힘입어 여러분의 기억을 새롭게 하려고, 어떤 부분에서는 상당히 대담하게 썼습니다. 

16 
이 은총은 내가 다른 민족들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이 되어,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제직을 수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른 민족들이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어 하느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제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17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18 
사실 다른 민족들이 순종하게 하시려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이룩하신 일 외에는, 내가 감히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 일은 말과 행동으로, 

19 
표징과 이적의 힘으로, 하느님 영의 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예루살렘에서 일리리쿰까지 이르는 넓은 지역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였습니다. 

20 
이와 같이 나는 그리스도께서 아직 알려지지 않으신 곳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명예로 여깁니다. 남이 닦아 놓은 기초 위에 집을 짓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21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에 관하여 전해 들은 적 없는 자들이 보고 그의 소문을 들어 본 적 없는 자들이 깨달으리라.”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주님은 당신 구원을
민족들의 눈앞에 드러내셨네.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주님은 당신 구원을 민족들의 눈앞에 드러내셨네.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 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주님은 당신 구원을 민족들의 눈앞에 드러내셨네.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주님은 당신 구원을 민족들의 눈앞에 드러내셨네.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루카 16장 1-8절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집사를 두었는데, 이 집사가 자기의 재산을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그를 불러 말하였다. ‘자네 소문이 들리는데 무슨 소린가? 집사 일을 청산하게. 자네는 더 이상 집사 노릇을 할 수 없네.’ 


그러자 집사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집사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어떻게 하지?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다. 


옳지, 이렇게 하자. 내가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첫 사람에게 물었다. ‘내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소?’ 


그가 ‘기름 백 항아리요.’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으시오. 그리고 얼른 앉아 쉰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이어서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얼마를 빚졌소?’ 하고 물었다. 그가 ‘밀 백 섬이오.’ 하자, 집사가 그에게 ‘당신의 빚 문서를 받아 여든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천상의 성사로 저희를 새롭게 하셨으니 저희에게 주님의 힘찬 능력을 드러내시어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얻게 하소서.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1년 11월 5일 (금)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1년 11월 5일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 Reflections)

 

매일미사
최종훈 토마스 신부

 

오늘 하루 무엇을 나누며 살았습니까?

 

“무엇을 나누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한동안 제가 가졌던 묵상거리입니다. 아주 조그마한 것이라도 나누며 하루를 살아가자고 다짐합니다.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고, 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사소한 것 하나라도 나누고 싶었습니다. 열정, 시간, 미소, 마음, 그리고 사랑 ……. 

물론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고,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하며 다른 이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였습니다. 사람들을 만나 성경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나누고, 위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공감해 주며 대화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성체 앞에 앉아 반성할 때면, 사제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그들을 만났고 내 명예를 높이고자 열정을 쏟은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나눔에 대한 다짐은 언제나 저의 부족함을 바라보게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이기적인 의도와 욕심으로 하루를 살아가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선행이나 봉사, 나눔이라 하더라도,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의 비뚤어진 의도도 괜찮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약은 집사는 자신의 앞날에 대한 걱정 때문에, 인심을 얻고자 문서를 조작하고 주인의 재산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잘못을 저지릅니다. 그런데 주인의 반응이 더욱 놀랍습니다. 주인은 어떤 생각으로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을까요? 주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재산을 손해 보는 일입니다. 

그러나 자비로운 주인에게는 자신의 손해보다는, 빚을 진 가난한 사람들이 조금은 풍족해지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얻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합니다. 바로 불의한 종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가 어떤 의도로 그런 행동을 하였는지는 어쩌면 주인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의 행동이 타인에게 나눔의 행위가 되었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의도와 욕심은 분명 잘못이지만, 더 나쁜 것은 나눔을 실천하지 않는 일입니다. 좋은 의도와 자비의 마음으로 나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으면서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것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나눔을 실천하는 삶보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 무엇을 나누며 살았습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은총 도둑질

 

오늘도 계속되는 주님의 비유는 불의하지만 영리한 집사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다가 영리하게 재물을 쓰는 집사, 그래서 노여움을 사다가 칭찬을 듣는 집사의 얘기입니다. 

집사란 종들 중에서 다른 종들과 재산을 관리하도록 주인에게 뽑힌 종이며 오늘 바오로 사도의 표현대로 은총을 받은 사람이지만 오늘 복음의 집사의 경우는 그 은총을 낭비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회개한 집사이지요. 

그러니까 이것을 요약하면 은총을 받은 집사였지만 은총을 낭비한 집사였다가 회개한 집사가 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집사는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도록 은총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은총은 내가 다른 민족들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이 되어,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제직을 수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른 민족들이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어 하느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제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을 주님의 종이라고 자처하는데 종 중에서도 주님과 다른 종 사이에 복음을 전하는 은총을 받은 종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받은 것도 은총이고 전하는 것도 은총이라는 얘기입니다. 

옛날에 조를 나눠 '말 전하기'를 하는 시합이 있었지요.진행자로부터 맨 앞 사람이 받은 말을 맨 뒷 사람에게 전하는 시합인데 그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고 맨 뒷 사람에게 전해야 이기는 시합이지요. 

만일 중간에 한 사람이라도 잘못 듣고 잘못 전하면 맨 뒤의 사람은 당연히 엉뚱한 말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 조는 지게 되고 잘못 듣고 잘못 전한 사람은 모두에게 역적이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내가 집사의 은총을 받고 복음을 받은 것은 나만을 위해 받은 것이 아니고 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도 복음을 받아들여 행복하게 하라고 받은 것인데 우리는 종종 은총을 사유화하고 받은 복음을 자기 안에 가둬두곤 합니다. 

그런데 이때 하느님은 오늘 복음의 주인처럼 경고를 내리시는데 우리는 이때 오늘 복음의 집사처럼 즉시 살 궁리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은총이란 사랑을 위해서만 주어지는 것이기에 자기 배 불리던 은총을 사랑을 위해 돌리는 것이며 우리는 이것을 일컬어 회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 사랑이니 봉사니 하지만 이웃 사랑이나 봉사가 본래 다 자기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은총으로 주어진 것을 나누는 것이며 그것이 주인의 뜻이고, 그것이 은총을 낭비하지 않는 것입니다. 

포르치운쿨라 순례를 할 때 저는 행진자들에게 먹을 것을 얻어 오라고도 하지만 서리해 오라고도 합니다. 그러면서 서리하는 것이 결코 나쁜 짓이 아니라고 합니다. 

프란치스코는 형제와 함께 남의 포도 밭에 들어가 포도를 따 먹었는데 같이 가던 형제는 도망쳐 맞지 않았지만 주인에게 걸려서 흠씬 두들겨  맞았고 그리고 길 가는 내내 즐거워하며 또 농을 하며 갔다고 하지요. '맛세오 형제는 잘 먹었네. 프란치스코 형제는 잘 맞았네.'하며 말입니다. 

이때 프란치스코는 남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 것을 따 먹었다고 생각하였고, 마찬가지로 자기 것도 자기 것이 아니라 생각했기에 더 가난한 사람에게 주지 않으면 하느님 것을 도적질한 것이라고 했다지요.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불의한 재물로만 친구를 사귈 수 있다.

 

오늘 복음도 역시 ‘회개’에 관한 내용의 연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집사가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이것을 알고 집사를 내보내려고 합니다. 이것을 안 집사는 주인의 재산으로 자신이 쫓겨났을 때 맞아들일 친구들을 사귑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결론지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루카 16,9)

집사가 친구를 사귀기 위해 사용한 재물은 의롭지 못한 재물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재물이 아니라 주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불의한 재물로만 친구를 사귈 수 있습니다. 

하와도 자신이 가진 선악과로 아담을 사귀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내어줌은 죄를 퍼뜨리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 이유는 선악과를 ‘나의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친구는 나의 것을 내어줄 때가 아니라 주님의 것을 내어줄 때 만들어집니다. 나의 것을 내어주면 언제나 그에 합당한 무언가를 요구하게 되고 그러면 친구가 아닌 거래처가 생기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나를 받아 줄 사람은 거래처 사람들이 아닌 부정한 재물로 사귄 친구들입니다. 

초대 교회는 가진 재산을 공동소유하였습니다. 재물이 주님의 것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니 나의 것을 주장할 수 없었고 그들은 친구요 가족이었습니다. 이 공동체에 들어오면 어쩔 수 없이 의롭지 못한 재산으로 친구를 사귀게 됩니다. 이렇게 행복한 공동체가 형성된 것이고 수많은 이들이 이 공동체에 들어오려고 하여 그 수가 날로 증가하였습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약삭빠른 청지기를 수없이 만들어내는 것이 교회의 역할인 것입니다.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2009)은 한 청년이 돈의 노예였다고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사람으로 각성하는 과정을 그린 실화입니다. 1969년 뉴욕주 한적한 시골 부모님이 파산 직전에 놓여 전 재산인 모텔을 넘겨야 하는 처지가 된 엘리엇은 고민에 사로잡힙니다. 누나는 돈만 밝히고 괴팍한 성격의 어머니를 떠나 독립하였고 동생에게도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꿈을 좇으라고 하지만 동생은 부모님의 희망이 자신뿐이라 떠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마을 상인 협회 회장을 맡아 고군분투합니다. 

그러던 중 이웃 동네에서 열리기로 한 ‘록 페스티벌’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그것을 유치해 부모님의 힘겨운 재정난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마을 사람들을 설득에 나선 엘리엇은 우여곡절 끝에 페스티벌을 유치하는 데 성공합니다. 수천 평의 농장을 축제 장소로 제공하고, 부모님의 낡아빠진 모텔은 페스티벌의 공식 숙소가 되며 난생처음으로 마을에는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게 됩니다. 어머니는 그 와중에 주차비까지 다 챙겨가며 돈을 긁어모읍니다. 

점점 많이 몰려드는 히피족들과 친분이 생기던 차에 엘리엇은 그들이 준 대마초를 피우고 광고 방송에서 헛소리해버립니다. 페스티벌도 공짜고 음악도 공짜라고 말한 것입니다. 결국, 고요하기만 하던 마을에 무려 50만 명에 육박하는 인원이 몰리면서 아수라장이 됩니다. 

히피족은 본래 베트남전 패전을 본 2030 세대들이 기존 어른들의 경쟁과 성공 문화에 저항하며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자고 생겨난 하나의 불같은 문화였습니다. 엘리엇은 그들 공동체를 보며 무언가 각성하게 됩니다. 그는 어머니가 호텔을 넘기지도 않아도 되는 만큼의 돈이 있으면서 자신을 이용한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돈의 노예가 되는 길을 겪고 있었고 50만 명이나 되는 자유로운 공동체 안에 있으며 비로소 이 길이 이상한 삶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돈에 얽매이는 삶이 아닌 히피들처럼 자신의 꿈을 찾고 친구를 사귀는 삶으로 나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엘리엇은 자신이 만난 친구들, 그 수많은 같은 자유를 갈망하는 자신과 같은 젊은이들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진 것이 없어도 서로 나누고 자유롭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공동체였습니다. 만약 한두 명이 그러면 큰 변화를 겪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과 대조되는 50만 명의 공동체는 이제 돈이 그의 것이 아닌 친구를 사귀는 도구로 볼 수 있는 눈을 선물해 준 것입니다. 

교회도 이와 같은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라헬은 아버지 라반으로부터 도망치면서 아버지의 우상을 낙타 위에서 깔고 앉았습니다. 라반은 세상을 상징합니다. 그가 섬기는 우상은 돈이니다. 야곱과 결혼한 라헬은 교회입니다. 교회가 돈을 엉덩이로 깔고 앉았을 때 교회는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본래 주님 것이기에 의롭지 못하게 사용하는 것들입니다. 이것으로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교회는 다른 이들도 자기 것을 주장하며 노예 생활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하지만 교회가 정당하게 일하여 번 돈은 자기 것이라고 가르치면 더는 세상에서 매력을 발산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완전히 돈에 대해 자유로운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십일조를 강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십일조는 나머지 십의 구도 주님의 것임을 깨닫게 만들어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의롭지 못한 재물임을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졌다고 믿는 모든 것이 어차피 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십일조 정신이 죽으면 내가 가진 것이 나의 것이라 믿게 되고 그러면 세상에 대한 영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 것이라 믿으면 십일조를 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바칠 수 있었을 때 그들이 나누는 재물은 진정 그들을 친구로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변화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배우 매튜 맥커너히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2013)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습니다. 이 시상식에서 그는 누가 자신의 영웅인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열다섯 살 때 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사람이 ‘너의 영웅이 누구니?’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10년 뒤의 나”라고 했죠. 그리고 스물다섯 살이 되었을 때 10년 전에 질문했던 그녀가 다시 물었죠. “이제 넌 네 영웅이니?” 저는 대답했죠. “아직 멀었어! 아니, 아니야!” 그녀가 왜냐고 묻더군요. 저는 “내 영웅은 서른다섯 살의 나야.”라고 말했죠. 그러니까 제 인생의 매일, 매주, 매달, 매년 저의 영웅은 항상 10년 후의 저입니다. 저는 결코 제 영웅이 되지 못할 겁니다. 그걸 알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계속 10년 뒤의 저를 쫓아갈 테니까요. 
 
현재 생각하고 있는 미래의 나를 쫓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점점 성장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훌륭한 건축가는 설계를 아주 꼼꼼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영웅인 나를 만나고자 한다면, 미래의 나를 지금 잘 설계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 연연해서는 안 되고, 지금의 어렵고 힘든 상황에 주저앉아 버리면 절대로 안 됩니다. 
 
오늘의 비유 말씀은 많은 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조금 이상한 내용입니다. 
 
어떤 부자가 자기 관리인의 부정을 알아챕니다. 그래서 해고를 통보하지요. 이때 집사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지 주인의 해고를 받아들이지요. 그런데 그 뒤의 일이 걱정입니다. 그가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볼 때, 주인의 재산으로 사리사욕을 채운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집사가 행한 재산의 낭비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의 무능력으로 일을 잘못 처리했을 확률이 제일 높습니다. 그러면서도 앞날을 위해 잔꾀를 씁니다. 빚문서를 고칩니다. 
 
주인으로서는 분명히 간교하고 부정한 방법입니다. 그런데도 책망하지 않고 칭찬합니다. 주님께서는 어떤 윤리적인 문제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 앞날을 도모하기 위해 약삭빠른 꾀를 쓰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앞날을 위해 빠르게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변화가 무엇을 의미할까요?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의 힘든 상황을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행동 없는 기도는 활 없는 화살과 같다. 기도 없는 행동은 화살 없는 활과 같다.

- 엘라 휠러 윌콕스

 

 

누구의 아픔이 더 클까요?

 

한 어머니가 울고 있습니다. 불치의 병으로 죽어가는 딸 때문입니다. 헌신적으로 간호했지만, 가망이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너무 슬퍼 울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자매님도 울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새로 구입한 차가 배달되었는데 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왜 이렇게 운이 없냐면서 울고 있습니다. 
 
누구의 아픔이 더 클까요? 당연히 첫 번째 경우이고, 두 번째의 경우는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아파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픔의 크기는 비교할 수 없다고 합니다. 두 번째 경우 역시, 차 문제만으로 슬픈 것이 아니었습니다. 며칠 사이에 계속해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겹친 상태에서, 차까지 속 썩이니 더 아팠던 것입니다. 
 
다른 이의 아픔과 슬픔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인정해 주어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늘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인정해 주고 또 우리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안에서 힘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도 나의 이웃에게 말하기보다 듣는 데 더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루카 16,8)

 

사람의 삶이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관계의 삶이다. 성장한다는 것은 우리의 관계가 다양한 관계로 확대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모든 관계가 중요하다. 관계 속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만난다. 

때론 자신의 약점과 아픈 상처까지도 드러내고 나누는 것이 관계맺음이 주는 관계의 선물이다. 복음의 영리한 집사는 자신의 문제를 잘 알고있다. 움츠러들거나 도망치지 않고 이웃들과의 관계를 통하여 잘 적응한다. 

갈등을 적극적인 관계맺음으로 풀어나간다. 이렇듯 자신의 문제는 감추어 둘 것이 아니라 드러내어 나누고 깨닫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인 우리가 자기 문제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으신다. 

건강한 관계가 건강한 신앙이다. 신앙은 기쁨의 충족이다. 사람과의 관계맺음이 이렇듯 중요하듯 하느님과의 관계맺음은 두 말 할 나위조차 없다.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관계맺음은 계속되어야 한다. 

현실과 적응 사이에 관계가 있고 신앙이 있다. 관계가 신앙이며 삶의 진정한 의미이다. 내부세계와 외부세계를 적극적으로 관계함으로써 이루어내는 관계의 여정을 오늘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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