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21년 11월 6일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1. 11. 6.
반응형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1년 11월 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

 

 

2021년 11월 6일 (토)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오늘 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여러 신자들을 기억하며 인사를 전하는데, 특히 먼저 신앙을 받아들인 이들과 다른 이들을 위하여 애쓴 이들,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고 복음 전파에 협력한 이들을 기억합니다.

 

 

✠ 오늘 복음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사람들 앞에 높이 평가되는 사람이라도 그가 참으로 하느님을 섬기는지 아니면 재물을 섬기는지 알아보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1년 11월 6일 (토)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로마 16장 3-9절, 16절, 22-27절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나의 협력자들인 프리스카와 아퀼라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그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내 목숨을 구하여 주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의 모든 교회가 그들에게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집에 모이는 교회에도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내가 사랑하는 에패네토스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를 믿은 첫 번째 사람입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애를 많이 쓴 마리아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나의 동포이며 나와 함께 감옥에 갇혔던 안드로니코스와 유니아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그들은 뛰어난 사도로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입니다. 


내가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암플리아투스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협력자인 우르바노와 내가 사랑하는 스타키스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16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여러분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22 
이 편지를 받아쓴 저 테르티우스도 주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23 
나와 온 교회의 집주인인 가이오스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이 도시의 재정관 에라스토스, 그리고 콰르투스 형제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24)·25 
하느님은 내가 전하는 복음으로,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 또 오랜 세월 감추어 두셨던 신비의 계시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아 주실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26 
이제는 모습을 드러낸 이 신비가 모든 민족들을 믿음의 순종으로 이끌도록, 영원하신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예언자들의 글을 통하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27 
홀로 지혜로우신 하느님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저의 임금이신 하느님,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미하나이다.

 

나날이 당신을 찬미하고,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주님은 위대하시고 드높이 찬양받으실 분, 그분의 위대하심 헤아릴 길 없어라. 저의 임금이신 하느님,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미하나이다.

세대가 세대를 이어 당신 업적을 기리고, 당신 위업을 널리 전하리이다. 당신의 위엄 그 찬란한 영광을 이야기하고, 당신의 기적을 노래하리이다. 저의 임금이신 하느님,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미하나이다.

주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저의 임금이신 하느님,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미하나이다.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루카 16장 9ㄴ-15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10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11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12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13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14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 

1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천상의 성사로 저희를 새롭게 하셨으니 저희에게 주님의 힘찬 능력을 드러내시어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얻게 하소서.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1년 11월 6일 (토)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1년 11월 6일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 Reflections)

 

매일미사
최종훈 토마스 신부

 

경쟁과 비교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신학교에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공부’였습니다. 고등학교 때 경험했던 수업이나 시험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특히 시험은 엄청난 고통이었습니다. 교수 신부님께서 칠판에 몇 자 되지 않는 문제를 적고 강의실을 나가시면, 그 문제에 대하여 자기가 이해한 것을 논리적으로 풀어 쓰는 논술 시험입니다. 이러한 시험을 한 번도 치러 본 적이 없었던 저로서는 우리가 주로 쓰는 ‘A4’ 용지의 두 배나 되는 ‘A3’ 크기의 광활한 답안지를 보며 한숨만 지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받아 본 성적표에 등수가 적혀 있지 않은 것 또한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때까지 학교를 다니면서 등수만 보았던 것 같습니다. 무엇을 배웠는지, 배운 것을 얼마만큼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정답을 얼마나 더 많이 맞추었는지가 더욱 중요하였습니다. 늘 누군가와 비교하고 경쟁하면서 조금이라도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누군가를 짓밟고 일어서지 않으면 뒤처진다고 몸으로 배우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비교와 경쟁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내가 살아남으려면 누군가를 이겨야 하고, 때로는 밟고 일어서야 합니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 어디서든 그것을 성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한 성공을 통하여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쌓아 더 누리고 더 지배하며 만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비교와 경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감’을 이야기하십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누군가를 이기지 않으면 잡아 먹힌다는 ‘정글의 법칙’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나누어 친구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경쟁과 비교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삶 가운데에서도, 친구를 만들어 가며 살아야 합니다. 짓밟고 일어서기보다 넘어진 이를 일으켜 주는 삶, 빼앗기보다는 빼앗긴 아픔에 함께해  주는 삶, 남기고 쌓아 놓은 것에 기뻐하기보다는 나누고 함께 배부름에 기뻐하는 삶이 더 많은 친구를 만들어 가는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주님께서는 오늘 재물을 어떻게 대하고 사용할 것인지 가르침을 주십니다. 사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재물을 어떻게 대하고 사용할 것인지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고 현세의 행복은 물론 영원한 행복까지 좌우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가르침이 아니어도 재물에 대한 좋은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말이 있고, 사람이 돈을 쫓지 말고 돈이 사람을 쫓게 하라는 말도 있습니다. 

개같이 번다는 것은 나쁜 짓을 해서 번다는 것이 아닙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처럼 사람들이 볼 때 천한 일이라도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런 것 따지거나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정승처럼 쓴다는 것은 오입쟁이나 중독자처럼 주색잡기에 돈을 쓰지 않고 한량처럼 일은 안 하고 놀고먹는 데 막 쓰지 않고 가치 있게 쓰는 겁니다. 

불의한 재물로라도 친구들을 만들라는 주님 말씀이 어쩌면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말과 비슷할지 모르겠습니다. 

재물이란 본래 불의한 것이 아니지요. 그러나 불의하게 벌거나 불의하게 쓰이면 불의한 재물이 되겠지요. 

복음 다른 곳에서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더럽지 않고 안에서 곧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하느님께서 만드시고 주신 것은 나쁜 것 곧 악이 아니고 선이지만 우리가 악한 마음으로 그것을 소유하고 쓸 때 불의한 재물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본래 하느님의 선인 재물을 내것으로 소유하는 순간 그것은 즉시 악하고 불의한 재물이 되는데 그런데도 인간은 재물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려고 하고 또 신처럼 여깁니다. 그래서 물신주의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재물이 신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만드시고 주신 것이 하느님 대신 우리의 신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돈이 사람을 쫓아야지 사람이 돈을 쫓으면 안 된다고 하고 주님께서도 오늘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기지 말라고 하시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까? 

그것은 돈에 힘이 있기 때문이고, 돈에 힘이 있는 것 그것도 하느님보다 더 힘이 있는 것은 우리가 돈을 필요로 하고 우리가 그것을 절실히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절실히 필요한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되고, 절대적으로 필요로 할 때 재물은 절대적인 것이 됩니다. 

그러나 재물은 필요한 것이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고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께서는 재물은 필요한 것이니 가지되 자기 것으로 가지지 말고, 쓰되 악용하지 말고 선용하라는 말씀이며 선용에서 더 나아가 애용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라고 할 때 정승처럼 쓰는 것이 바로 선용하고 애용하는 것입니다. 

애용은 '애용해 달라'고 할 때처럼 재물을 사랑하는 뜻도 있지만 재물이 사랑이 되게 사용하는 것을 뜻하는 것인데 돈을 가지고 자기 쾌락이나 충족하고 돈을 가지고 남 위에 군림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돈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돈의 집착을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오늘 복음도 어제 복음의 연속입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려면 재물이 주님의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재물을 나의 것으로 여기면 나는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과 경쟁하는 사람이 됩니다. 주님 것을 나의 것으로 삼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친구도 사귀지 못합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의 특징은 돈을 좋아한다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과 경쟁하며 하느님을 섬기겠다는 모순된 길을 가려는 사람들입니다. 돈을 좋아하면 율법을 아무리 잘 지켜도 우상 숭배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돈 좋아하는 자기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종이 됩니다. 여물을 먹으면 밭을 갈아야 하는 소가 됩니다. 그래서 돈 좋아하면 주님을 섬긴다는 말은 우상숭배를 하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진정한 우상은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그럼 이런 사람들은 바뀌지 않을까요?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변호사에게 80대 할머니가 이혼소송을 하러 왔다고 합니다. 자녀가 나으면 바뀔까, 자녀가 결혼하면 바뀔까, 나이가 들면 바뀔 줄 알았는데 여든이 넘어서도 자신의 친구와 할아버지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는 것입니다. 

송봉모 신부님의 강의에 이런 예도 있습니다. 여렸을 때 자신을 성추행한 아버지를 신앙을 가지고 용서하였다고 합니다. 딸 아이를 낳고 큰맘 먹고 아버지를 집에 초대하였는데 그 아버지가 자신의 딸도 추행했다는 것입니다. 딸의 상처를 알고 딸의 용서를 받은 아버지이지만 손녀딸까지 추행한 것입니다. 정말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일까요?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닌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라고 합니다. 고치지 말고 주인을 바꿔야 합니다. 그러면 고쳐집니다. 문제는 내 안의 주인 때문입니다. 행동을 이해시키고 변화시키려 해서는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벼랑 끝, 상담』의 또 한 사례를 소개합니다. 한 어머니가 청년 여자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이 청년은 쓰레기를 버리지도 못하고 샤워 물을 내리지도 못합니다. 심지어 변을 닦은 화장지도 버리지 못합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유치원 때부터 어머니가 바람을 피우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유치원 때부터 어머니는 남편이 접대부와 외도를 한 사실을 알고는 보복하는 마음으로 줄곧 여러 남자를 만나왔습니다. 그러면서 남자에게 보낼 나체사진을 딸에게 찍어달라고 한 것입니다. 심지어 딸을 데리고 다니며 그런 짓을 하고 다녔습니다. 딸은 자신을 그런 공범자로 만드는 엄마도 싫었고 그런 것도 모르는 아빠도 바보처럼 여겨졌습니다. 

어쨌건 딸이 그런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게 만드는 강박증을 만든 것은 자신도 어머니와 공범이라는 죄의식입니다. 죄의식이 강하니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죄의식을 극복하려 한 것입니다. 이것도 자존감을 끌어올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입니다. 

‘나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더러운 물을 내려보내지 않기 위해 샤워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무너진 윤리의식을 회복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녀의 그런 행동에 대해 죄책감을 사라지게 할 정도로 인정해 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최 원장은 명상최면치료를 통해 어머니의 부정한 행위들을 그림으로 그리라고 하고 먹물로 칠하여 불에 태워버리는 명상을 자주 시켰습니다. 점점 나쁜 기억들이 사라졌지만,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강박증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런 명상을 시켰습니다. 양손에 나를 더럽다고 질책하던 자아와 그건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하는 두 자아를 쥐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더럽다고 하던 자아에게 잘 말해서 우주 밖으로 떠나버리라고 한 다음 오른손에 있는 자아를 가슴에 집어넣었습니다. 나의 주인을 바꿔주는 것입니다. 

만약 가톨릭교회를 믿었다면 고해성사로 나를 질책하던 자아를 벗어던지고 성체성사로 그리스도를 참 주인으로 모셔 나의 주인이 나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그리스도로 믿게 되면 다 해결될 일입니다. 그러나 종교가 없다면 더 나은 자아를 주인으로 넣어주어 믿게 만다는 명상도 참 좋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청년은 이전의 자아가 사라지고 죄책감 없는 새로운 자아가 자신의 가슴에서 주인이 되어 살게 된 것을 믿게 되어 강박증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바뀔 때는 내 안의 주인이 누구냐는 믿음이 바뀔 때입니다. 그전에는 바뀌지 않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에게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할 때, “저는 그리스도입니다.”라는 대답을 하거나 그와 비슷한 대답을 할 때 그 사람이 변했다고 믿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안의 주인이 누구냐는 믿음에 따라 욕구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늑대라고 믿으면 날고기를 좋아하겠지만 내가 사람이라 믿으면 요리가 된 것을 먹는 편을 좋아할 것입니다. 사람을 행동하게 만드는 것은 욕구입니다. 욕구가 바뀌어야 사람이 바뀐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욕구는 내 안의 주인이 누구냐는 믿음에 따라 결정됩니다. 

뉴스에 보니 베트남 다낭의 한 청년이 14억 슈퍼카와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12cm 돌연변이 난초를 교환했다고 합니다. 분명히 이 사람은 나중에 이 난초가 14억보다 더 높은 가격의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을 믿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14억짜리 차를 별 볼 일 없는 물건처럼 내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느님이라고 믿고 사는 것의 가치를 안다면 나를 가차 없이 버릴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냐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서는 절대 내가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느님으로 살 때, 그래서 물 위도 걸을 수 있는 존재라고 믿을 때 나는 변합니다. 하느님은 사람을 고쳐 쓰려 하십니다. 성체로 하나가 되었다고 믿게 하심으로써 말입니다. 돈 좋아하는 마음은 돈 안 좋아하는 마음으로 바꿔야만 사라집니다. 그 마음이 성체로 들어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체를 영한 사람은 돈 안 좋아하는 마음을 주인으로 모신 성전과 같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자존감이 낮은 이들에게 권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과로로 인한 번아웃 증후군에 빠졌거나 자존감이 낮은 이들에게 권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어떤 정신과 의사는 무언가를 돌 볼 것을 권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대부분 이렇게 항의한다고 하네요. 
 
“나를 돌볼 힘도 없는데 어떻게 무엇을 돌 볼 수 있겠어요?” 
 
하지만 무언가를 위한 돌봄의 노력이 자기를 돌 볼 힘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행복해야 남에게 행복을 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를 돌보는 일은 나의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남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도 역시 돌보지 못합니다. 남을 보기가 더 쉽도록 우리는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런 치료를 많이 사용합니다. 사회 심리학자 프랭크 리스먼도 ‘도움 치료’ 이론을 정립해서 다른 사람을 도움으로써 자신도 치유된다는 이론을 발표했고, 학계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자기를 돌 볼 힘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돌 볼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돌봄이라는 사랑 실천을 하지 않고 있어서 힘이 없는 것이 아닐까요? 
 
세상 사람들은 돈을 다루는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능수능란합니다. 그렇다면 그 수법과 재주를 하느님 나라를 얻는 데 쓴다면 얼마나 거룩한 일이겠습니까? 
 
그 재주를 발휘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남을 돕는 일입니다. 즉,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것을 남을 위해 쓴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바보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라고 하시면서, 어떻게든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을 이야기하십니다. 남에게 이득을 주는 것 같지만, 이로써 하느님 나라를 얻는 가장 큰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불의한 재물을 잘 다룰 줄 모르면 하느님도 참된 것인 천상 재물을 우리에게 맡기지 않으십니다.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이 큰일에도 불의하다는 이치와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모름지기 올바른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이제까지 행한 사랑의 실천을 두고서 셈을 요구할 것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것을 하느님 뜻대로 사용하고 사람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는 일이 제자의 사명입니다. 사랑과 봉사로 살라는 교훈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나만을 위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돌봄이라는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통해 우리는 더 큰 은총의 선물을 받게 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긍정적인 결과를 얻는다.

- 노만 빈센트 필

 

 

앞면의 승리

 

알렉산더 대왕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적군의 숫자가 아군보다 월등하게 많은 것입니다. 이 기세 눌려 병사들은 모두 절망에 빠졌습니다. 이 사실을 안 알렉산더 대왕은 병사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신의 계시를 받았다. 이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승리할 것이고, 뒷면이 나오면 패할 것이다.” 
 
그리고 동전을 높이 위로 던졌습니다. 동전이 땅에 떨어졌을 때, 모두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주시하였고 곧바로 환호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앞면입니다. 전쟁의 결과는 당연히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후에 알렉산더 대왕은 동전을 부하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 동전은 모두 앞면만 있었습니다. 
 
상황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이 아닐까요? 어떤 마음을 품느냐에 따라 긍정의 상황 그리고 성공의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향해서도 우리의 마음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루카 16,15)

 

사람과 사람 사람과 하느님 사이에는 마음이 있다. 마음은 하느님을 떠날 수 없다. 마음과 마주하는 것이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마음이 만들어가는 우리의 일이다. 

진심으로 돌아가야 할 마음의 오늘이다. 하느님께서는 두 주인을 섬기는 마음의 노예가 되길 결코 바라지 않으신다. 마음은 자유로워야 한다. 이와같이 마음의 물줄기는 하느님을 향해야 한다. 삶의 토대는 마음을 통하여 뻗어나간다. 

하느님께서는 먼저 우리 마음을 살리신다. 사랑의 참 뜻은 마음의 나눔이다. 우리 마음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마음이 닿는 곳에 우리의 삶이 있다. 

마음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마음을 바꾸어 가는 것이 신앙의 여정이다. 물질로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마음을 살리는 길이다. 

행복해지는 길은 마음으로 돌아가 마음의 평화를 되찾는 회개이다. 마음과 사람은 둘이 아닌 하나이다. 마음을 빚어 만드신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할 마음의 위령성월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