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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1년 9월 30일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1.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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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3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

 

 

2021년 9월 30일 (목)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Memorial of Saint Jerome, Priest and Doctor of the Church)

 

예로니모 성인은 340년 무렵 크로아티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일찍부터 로마에서 라틴 말과 그리스 말을 깊이 공부한 뒤 정부의 관리로도 일하였으나, 수도 생활에 대한 관심으로 사막에서 오랫동안 은수 생활을 하며 히브리 말을 연구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사제가 된 그는 다마소 1세 교황의 비서로 일하면서 교황의 지시에 따라 성경을 라틴 말로 번역했습니다. ‘대중 라틴 말 성경’이라고 하는 『불가타』(Vulgata)가 그것이다. 또한 성경 주해서를 비롯한 많은 신학 저술을 남겼습니다. 

420년 무렵 선종한 예로니모 성인은 암브로시오 성인, 그레고리오 성인,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함께 서방 교회의 4대 교부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 오늘 제1독서

 

에즈라 사제는 회중 앞에서 율법서를 읽어 주며, 오늘은 거룩한 날이니 서러워하지들 말라고 합니다.

 

 

✠ 오늘 복음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1년 9월 30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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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느헤 8장 1-4ㄱ절, 5-6절, 7ㄴ-12절

 

에즈라가 율법서를 펴고
주님을 찬양하자
온 백성은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였다.

 

그 무렵 


온 백성이 일제히 ‘물 문’ 앞 광장에 모여, 율법 학자 에즈라에게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서를 가져오도록 청하였다. 


에즈라 사제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이로 이루어진 회중 앞에 율법서를 가져왔다. 때는 일곱째 달 초하룻날이었다. 


그는 ‘물 문’ 앞 광장에서, 해 뜰 때부터 한낮이 되기까지 남자와 여자와 알아들을 수 있는 이들에게 그것을 읽어 주었다. 백성은 모두 율법서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율법 학자 에즈라는 이 일에 쓰려고 만든 나무 단 위에 섰다. 


에즈라는 온 백성보다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으므로, 그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책을 폈다. 그가 책을 펴자 온 백성이 일어섰다. 


에즈라가 위대하신 주 하느님을 찬양하자, 온 백성은 손을 쳐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였다. 그런 다음에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주님께 경배하였다. 


그러자 레위인들이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쳐 주었다. 백성은 그대로 서 있었다. 


그들은 그 책, 곧 하느님의 율법을 번역하고 설명하면서 읽어 주었다. 그래서 백성은 읽어 준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느헤미야 총독과 율법 학자며 사제인 에즈라와 백성을 가르치던 레위인들이 온 백성에게 타일렀다. “오늘은 주 여러분의 하느님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울지도 마십시오.”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온 백성이 울었기 때문이다. 

10 
에즈라가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단 술을 마시십시오. 오늘은 우리 주님께 거룩한 날이니, 미처 마련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의 몫을 보내 주십시오.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니, 서러워하지들 마십시오.” 

11 
레위인들도 “오늘은 거룩한 날이니, 조용히 하고 서러워하지들 마십시오.” 하며 온 백성을 진정시켰다. 

12 
온 백성은 자기들에게 선포된 말씀을 알아들었으므로, 가서 먹고 마시고 몫을 나누어 보내며 크게 기뻐하였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네.

 

주님의 법은 완전하여 생기 돋우고, 주님의 가르침은 참되어 어리석음 깨우치네.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네.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님의 계명 밝으니 눈을 맑게 하네.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네.

주님을 경외함 순수하니 영원히 이어지고, 주님의 법규들 진실하니 모두 의롭네.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네.

금보다 순금보다 더욱 값지며, 꿀보다 참꿀보다 더욱 달다네.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네.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루카 10장 1-12절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를 것이다.

 

그때에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10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길에 나가 말하여라. 

11 
‘여러분의 고을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까지 여러분에게 털어 버리고 갑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복된 예로니모를 기리며 성체를 받아 모시고 기뻐하오니 주님을 믿는 저희의 마음을 북돋아 주시어 거룩한 가르침을 깨닫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여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1년 9월 30일 (목)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1년 9월 30일 (목)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1년 9월 30일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 Reflections)

 

매일미사
신우식 토마스 신부

 

평화를 빕니다.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가장 먼저 말하라고 가르쳐 주신 축복의 인사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제자입니다. 주님의 참다운 제자란 온 세상에 파견된 사람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참평화의 전달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모든 제자에게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마라.” 하십니다.

세상의 것에 신경 쓰면서 하느님의 나라를 전할 수 없기에, 복음 전파에 온 힘을 기울이고 그 밖의 것은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제자들이 할 일은 세상 사람들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축복을 전하고, 아픈 이를 낫게 하며 구원의 날이 왔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실지로 우리는 많은 시간을 세상의 것에 신경 쓰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걱정하고 신경 쓰는 것의 대부분은 쓸데없는 생각이나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상상입니다. 또는 나의 오해에서 비롯된 근심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에 얼마나 자주 주님께 기도합니까?

잠깐이라도 세상 것을 내려놓고 주님과 소통하는 시간을 마련한다면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를 흔들지 못할 것입니다. 평화가 깨어지지 않고, 주님께서 주신 참평화를 이웃에게도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순간의 만족을 가져다주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영원한 만족을 가져다주는 것에 집중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거절당하면 더 좋은 이유 : 평화가 되돌아오기에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여러 가지로 당부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오늘은 특별히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라는 말씀을 묵상해보겠습니다. 

평화를 전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기쁜 소식과 평화는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기쁜 소식이 그것을 전한 사람에게 되돌아옵니다. 

이 말은 기쁨과 평화가 곧 행복인데 기쁨과 평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전하는 사람은 더 평화롭고 기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을 많은 사람이 받아들여 회개할 때 더 기쁘지 않을까요? 어떻게 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더 평화롭고 기쁠까요?

전에 들었던 것이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성 프란치스코가 행복에 대해 한 제자에게 이렇게 가르쳤다고 합니다. 

“형제여, 가장 큰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가? 잘 먹고 마시는 것? 혹은 감명 깊은 설교로 많은 사람을 회개시키는 것? 그런 것이 아니라네. 내가 어느 집 문을 두드려 그 집 주인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먹을 것을 좀 주시오.’라고 할 때 그 사람이 나를 문전박대하면 그것이 행복이라네. 그러면 나는 문을 다시 두드려 똑같이 청한다네. 그러면 그 사람은 나에게 구정물을 퍼부을 것이라네. 이것이 행복이라네. 그러면 나는 다시 문을 두드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먹을 것을 청한다네. 그러면 그 사람이 몽둥이로 나를 때리겠지. 이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네.”

그때는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지 못했었습니다. ‘내가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면 그것이 기쁨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는데, 프란치스코 성인은 오히려 복음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 멸시와 모욕, 고통을 당할 때가 더 행복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아, 그럴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대학에 입학해서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습니다. 대학 1학년 때 무턱대고 돈을 벌어보겠다고 용역회사에 연락하였습니다. 용역회사에서는 조금 편한 곳으로 경험이 없는 저를 배정해 주었습니다. 

오전의 일은 비계라고 불리는 공사장 쇠파이프를 나르는 일이었습니다. 긴장되고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시작하자마자 사고가 났습니다. 쇠파이프를 들면서 세워져 있는 비계에 제 얼굴이 상처가 난 것입니다. 눈 아래에서 턱까지 길게 상처가 났습니다.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어차피 혼자 해내야 하는 일이라 목장갑이 시뻘게질 때까지 피를 닦아가며 일을 하였습니다. 점심때 나의 모습을 본 감독은 “아이, 경험자 좀 보내라니까 맨날 이런 초보를 보낸다니까!”라며 용역회사에 투덜댔습니다. 얼굴이 찢겨 피가 나고 있었지만 아무도 관심 가져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후에는 지하실로 내려가 물을 퍼내는 일을 혼자 하였습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벌어본 돈이 5만 원이었습니다. 용역회사에 갔더니 거기에서 만 원을 뺐습니다. 그리고는 연고 사서 바르라며 2천 원을 다시 주었습니다. 그 상처는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한 3년은 갔던 것 같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번 막일을 했습니다. 

그러며 저는 평생을 노동 현장에서 돈을 벌어 우리를 가르치셨던 아버지의 노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저는 부모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만약 너무 쉽게 공사장에서 돈을 벌고, 그래서 아버지가 우리를 키우기 위해 받은 고통을 느껴보지 못했다면 그만큼 감사하고 평화롭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 지셔야 했던 십자가의 무게는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끔 잘 표현된 예수님 수난의 영화를 볼 때는 그 느낌이 더 깊이 다가옵니다. 그때 느끼는 것이 무엇일까요? ‘평화’입니다. 

아이의 행복은 부모에게 사랑받는 것에 있습니다. 아이가 부모로부터 사랑받는다는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 좋은 업적을 이뤄냈을 때보다는 그런 업적을 이뤄내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확신을 가질 만큼 사랑을 믿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부모에게 인정받기 위해 악착같이 공부하는 아이가 행복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업적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행복은 내가 이뤄내는 성취에 있지 않고 나를 사랑해주시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증가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나를 위해 받지 않은 고통이 없습니다. 그러니 나도 복음을 전하며 박해받고 멸시받고 천대받고 고통을 받을 때 그것이 그리스도를 더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되니 마음의 평화가 배가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성인들은 주님께 ‘고통과 멸시’를 청했던 것입니다. 행복의 크기는 곧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의 크기와 같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확신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분들의 영광이 아닌 고통에 동참해보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더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분처럼 복음을 전하다 멸시와 고통을 당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나를 향해 가졌던 마음을 알게 되고 그러면 그만큼 평화와 행복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평안에 머무는 길은 그분의 십자가 고통에 머무는 것뿐입니다. 

알바니아 예수회 사제인 ‘안톤 룰릭’ 신부님은 서품을 받자마자 공산정권에 의해 평생 감옥에서 모진 고통을 겪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해 성탄절 밤에 그분은 당신의 고통에서 십자가의 고통을 보았습니다. 

추운 겨울 맨몸으로 매달려 구타를 당하여 울고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기 위해 오셨음을 깨닫고 큰 위로와 평화, 기쁨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첫해 성탄절의 체험이 40년이 넘는 동안의 감옥살이를 기쁘게 견뎌낼 힘을 주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러 다니지도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통을 조금이라도 체험해 본 것이 참 행복의 원천이 되었던 것입니다. 나의 고통이 그리스도의 고통을 이해하는 마중물이 될 때만큼 행복한 일은 없습니다.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고통의 깊이는 진실의 깊이로 향하는 유일한 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고통의 깊이는 그것이 만약 그리스도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데 사용된다면 행복의 깊이로 향하는 유일한 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행복을 전합시다. 그리고 거부당하고 멸시당하고 무시당할 때 기뻐합시다. 주님을 더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예전에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너무 신났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기계를 누구보다 먼저 구매해서 공부하는 얼리어답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가 참 힘듭니다. 노안으로 조그마한 글씨로 되어 있는 사용 설명서가 잘 보이지도 않고,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익숙한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용기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지금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도 또 타고 다니는 차도 모두 오래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오래된 것들을 계속 사용하게 됩니다. 
 
하긴 이제 달리는 것도 내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신체도 예전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전의 뛰어다니고, 새로운 것을 익히는데 두려움이 없었던…. 그래서 ‘10년만 젊었으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언젠가 70대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르신이 지금의 아쉬움을 이야기하며 이런 말을 사용하십니다. 
 
“10년만 젊었어도…. 
 
어르신의 나이에서 10년만 젊어지면 60대입니다. 지금 제 나이보다도 더 많은 나이입니다. 그런데 60대만 되어도 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렇다면 50대인 저는 어떨까요? 맞습니다. 누군가가 엄청나게 부러워할 나이를 살고 있으며,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분명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시며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왜 일꾼이 적다고 말씀하실까요?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요? 인구 총수가 늘었으니 일꾼이 많아졌을까요? 이 일꾼을 단순히 사제나 수도자에 한정 지으면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제나 수도자만 세상에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직분에 상관없이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님의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꾼이 적다’라는 주님 말씀이 지금 이 순간에도 똑같이 울려 퍼지는 것 같습니다. 
 
주님께 충실한 사람이 적기 때문입니다. 항상 우리 인간들에게 충실하신 주님과 달리, 우리는 주님께 충실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만 충실하려고만 합니다. 세속적인 것에 대한 지나친 관심, 욕심과 이기심으로 인해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는 그 마음이 주님께 대한 충실함을 없애고 있습니다. 
 
얼마나 주님께 충실하십니까? 그래서 사랑을 전하라는 주님의 그 말씀을 얼마나 따르고 계십니까? 주님의 충실한 일꾼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너무 죄송할 따름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우리는 실수를 외면하는 대신 그 일을 책임지고 후회를 성찰하여 두려움과 부정에 빠진 삶을 떨칠 수 있다.

- 루스 오제키

 

 

자기 일에 대한 재미는?

 

어떤 사람이 지금 하는 자기 일이 너무 즐거워서 신이 났습니다. 이 모습을 본 동료 중 한 명이 “일이 재미있으세요?”라고 묻습니다. 이 사람은 “너무 재미있어요.”라고 말했고, 이에 동료는 아주 재미있는 말을 해줍니다. 
 
“월급은 재미없는 일에 대한 대가인데, 일이 재미있다니 반대로 돈을 내고 회사에 다니셔야겠네요.” 
 
정말로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나의 재미를 위해 돈을 냅니다. 놀이공원, 야구장, 동물원, 극장…. 내게 재미를 주는 곳에 이렇게 돈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터는 내가 돈을 받는 곳이니, 내가 재미없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이 당연한 것을 많은 이가 재미없다, 힘들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 등의 이유로 일터에서 그만두고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직업은 ‘10%는 재미있는 일이고, 60%는 그럭저럭 별 감흥 없는 일이고, 30%는 하기 싫지만 그냥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저 자신을 스스로 평가해봅니다. 지금 최고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저였습니다. 더 신나고 또 재미있게 살겠습니다. 남들이 엄청나게 부러워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말씀의 열매와 함께 말씀의 일꾼들이 있다.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루카 10, 2) 

무르익어가는 가을이라는 계절은 수확을 만끽하는 일꾼들의 계절이다. 가을도 최선을 다해 무르익어간다. 열매의 맛은 말씀의 맛이며 행복의 맛이다. 수확과 말씀 말씀과 일꾼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실천이다. 

모든 시간에 필요한 말씀이 바로 우리가 접하는 생명의 성경이다. 성경을 통하여 삶의 고통과 갈등을 우리는 극복하여 나간다. 예로니모의 쉬운 번역은 온 마음과 온 정신을 다하는 실천이었다. 더더욱 친숙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말씀은 누군가의 노력으로 세상을 비춘다. 나태해진 삶을 반성한다. 성경은 우리 삶을 다시 비춘다. 최선을 다하는 삶은 아름답다. 성경은 우리 삶에 정성을 쏟도록 가르친다. 정성과 마음은 일꾼들의 소중한 봉헌이다. 무언가가 소중해 지는 만남이 참된 만남이다. 

성경은 소중한 것을 가르쳐준다. 나의 손가락으로 성경을 읽고 성경의 페이지를 넘긴다. 말씀의 향기는 영원하다. 말씀의 힘이 삶의 힘임을 안다. 말씀의 열매와 함께 말씀의 일꾼들이 있다. 말씀이 바로 무르익는 행복이다. 말씀을 펼쳐야 할 말씀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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