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으로 초대합니다!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한가위 -
21년 9월 21일 (화)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오늘 제1독서
요엘 예언자는, 우리가 한껏 배불리 먹고,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하신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고 합니다.
✠ 오늘 제2독서
요한은,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시는 환시를 봅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며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드십니다.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제1독서
요엘 2장 22-24절, 26ㄱㄴㄷ절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리라.
22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마라. 광야의 풀밭이 푸르고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도 풍성한 결실을 내리라.
23
시온의 자손들아, 주 너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주님이 너희에게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 주었다. 주님은 너희에게 비를 쏟아 준다. 이전처럼 가을비와 봄비를 쏟아 준다.
24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고 확마다 햇포도주와 햇기름이 넘쳐흐르리라.
26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화답송
온갖 열매 땅에서 거두었으니,
하느님,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당신 얼굴을 저희에게 비추소서. 하느님,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온갖 열매 땅에서 거두었으니, 하느님,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
겨레들이 기뻐하고 환호하리이다. 하느님,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온갖 열매 땅에서 거두었으니, 하느님,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
온갖 열매 땅에서 거두었으니, 하느님,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 하느님은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세상 끝 모든 곳이 그분을 경외하리라. 온갖 열매 땅에서 거두었으니, 하느님,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
제2독서
묵시 14장 13-16절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리라.
나 요한은
13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하고 하늘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14
내가 또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셨는데,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셨습니다.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께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
16
그러자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셨습니다.
복음
루카 12장 15-21절
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15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감사송
구원의 역사와 한겨레의 찬양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과 땅의 모든 피조물과 함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하고 아버지를 찬양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 모습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모든 피조물과 함께 어울려 살게 하시며 사람들을 뽑으시어 주님 백성으로 삼으시고 영원한 계약을 맺으셨으며 종살이에서 이끌어 내시어 자유를 주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나이다.
또한 주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완전한 자유와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으며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약속을 완전하게 이루시고 교회 안에서 세세 대대 전해지게 하셨나이다.
주님의 위대한 사랑과 섭리는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니 저희는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사람과 온갖 피조물과 함께 평화로이 조화를 이루며 주님의 은총으로 땀을 흘려 주님께 바칠 예물을 마련하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는 사랑과 기쁨에 넘쳐 모든 천사와 성인과 온 세상 만물과 함께 주님을 찬양하며 끝없이 찬송하나이다.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라고 요엘 예언자는 권고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하고 말하는 탐욕스러운 부자가 되지 말고,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 하느님, 주님께서 마련하신 한가위 명절을 지내며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잔치에 참여하였으니 저희가 받아 모신 성체의 힘으로 언제나 이웃과 화목하며 주님께서 베푸신 모든 섭리에 감사하게 하소서.
평화방송 매일미사
21년 9월 21일 (화)
팔로티회 매일미사
21년 9월 21일 (화)
명동성당 매일미사
21년 9월 21일 (화)
매일미사
신우식 토마스 신부
가족이란
민족의 큰 명절 한가위입니다. 한가위에 가족과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쁨과 형제애를 나누는 것은 큰 즐거움입니다. 그리고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과 조상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도리입니다.
주님께서는 복음을 통하여, 우리도 당신을 따라 사랑을 실천하라고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복음은 아름다운 이론이나 추상적인 방법론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길입니다. 명절에 가족이 함께 모여 나누는 사랑은 신뢰를 쌓고, 소통을 통하여 이해와 깊은 유대를 형성합니다.
하상욱 시인은 가족을 ‘영어’ 같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게 표현이 잘 안 되기” 때문이랍니다. 또 때로는 ‘한국어’ 같다고도 합니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참 모르겠기” 때문이랍니다. 우리 가족은 어떠한가요? ‘영어’ 같은가요? ‘한국어’ 같은가요? 우리가 마음으로 대화한다면 우리 가족은 영어도 한국어도 아닌, ‘나눔과 희생을 통한 사랑의 언어’와 같을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이를 이웃과 나눔으로써, 어리석은 부자가 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풍요로운 한가위에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우리의 마지막 날을 생각해 봅니다. 인생의 마지막 날 죽음 앞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고, 우리는 하느님 덕분에 살아갑니다. 하느님과 이웃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사랑을 나눈다면 더욱 행복한 한가위를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쌀 창고가 아니라 사랑 창고를 짓고 채우는
저는 지난 일을 잘 기억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제가 앞일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에 지난 일은 금세 잊어버리게 되는 현상이지요.
그런 저인데도 저도 나이를 먹는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줄어들고 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들과의 만남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래 영화를 잘 보지 않고, 새로운 영화는 더더욱 보지 않는데 가끔 지난 영화가 TV에 나오면 이 또한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보곤 합니다.
그래서 벤허도 봤고, 그저께는 쿼바디스도 봤는데 쿼바디스 장면 중에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장군의 뒤에서
"메멘또 모리/Memento Mori"를 외치는 장면이 눈에 탁 들어왔습니다.
지금 성취한 승리에 도취하지 말고 죽을 때를 기억하라는 뜻이지요. 우리는 보통 과거를 기억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미래 그것도 죽을 때가 있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즘 저에게는 큰 관건입니다. 제가 비록 미래지향적인 사람이긴 하지만 나이 먹을수록 미래보다는 과거를 먹고 살게 되는데 과거적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미래적 현재를 살아가야겠지요.
그런데 미래라는 것도 전처럼 새로운 일을 많이 벌이는 그런 가까운 의미에서 미래가 아니라 오히려 벌였던 일도 갈무리하는 그런 먼 의미에서 또는 제 인생의 끝으로서의 미래를 생각해야겠지요.
나바호족에게 이런 가르침이 있다고 합니다.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너는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런 삶을 살아라.“
한가위 명절에 왜 이런 얘기를 제가 할까요? 설 명절이 한 해의 시작에 우리 인생의 시작, 근원을 생각하는 명절이라면 한가위 명절은 한 해의 수확을 갈무리하는 시점에 단지 한 해의 갈무리가 아니라 우리 인생의 갈무리를 잘해야 함을 생각하는 명절이기 때문이지요.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부자는 한 해 농사를 잘 지은 것 때문에 크게 만족하며 창고를 더 늘릴 생각을 하고 있는데 주님께서는 쌀 창고가 아니라 사랑 창고를 짓고 채워야 한다고 말씀하시지요.
제가 그제도 얘기했지만, 우리의 최후가 단지 이 세상에서 끝나고 마는 끝이 아니라 천국에 닻을 내려야 하는 끝이라면 쌀 창고는 천국에서 아무 쓸모가 없고 사랑 창고만이 필요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쌀 수확이 아니라 인생 수확을 추구해야겠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곧, 인생의 끝이 가까울수록 내 인생의 끝에 나는 무엇을 많이 수확해야 하는지 성찰하며 살아야 하겠지요.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고 하느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망가지고 도난도 당하는 땅에 보물을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고.
이것을 뒤집어 이해하면 쌀을 이 세상 창고에 쌓으면 똥이 되지만 하늘에 쌓으면 주님과 이웃을 위한 진정한 보물 곧 사랑이 되지요.
한가위 명절에 이런 얘기를 한 것은 어제 제가 아는 삼회원 한 분이 이 명절에 교통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신 것 때문이었는데 그 교통 사고가 명절이면 오히려 외로운 그 지역분들에게 떡을 나누는 일을 하러 가다가 일어난 것이었다고 합니다.
제게도 충격이었으니 가족분들에게는 얼마나 충격일지 같이 마음 아프지만 돌아가신 분에게는 천국의 사랑 창고에 사랑 쌓는 일을 마지막까지 하다가 돌아가신 것이니 복된 죽음이라는 묵상도 하는 이번 한가위 명절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한가위는 이렇게 묻는다 : “돈 버는 이유가 뭔데?”
오늘은 한가위 명절입니다. 모든 것이 풍성한 때에 조상에게 감사하고 이웃과 나눌 줄 아는 마음을 키워주기 위해 모든 나라에 존재하는 추수감사절과 같은 명절입니다.
지금까지 돈을 벌기 위해 살았다면 이날 만큼은 나눔을 위해 살게 만든 조상들의 지혜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추석에도 감사하고 나눌 줄 모른다면 그 사람은 그냥 세상에 속한 사람일 뿐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한 부자가 많은 수확을 하여 그것을 모아둘 커다란 곳간을 짓지만, 그날 그의 생명이 끝난다는 비유입니다. 탐욕과 생명, 혹은 죽음. 이것이 오늘 주제입니다.
‘탐욕’도 하나의 ‘법’(法)입니다. 자신이 그 규칙에 따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탐욕을 법으로 따르는 사람이 사는 곳은 ‘지옥’이란 나라입니다. 모든 나라는 법이 있고, 그래서 내가 어떤 법을 따르는지 알면 내가 어느 나라에 속해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고지전’(2011)은 백마고지 전투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내내 자신들끼리 이런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그 질문은 바로 우리 모두에게 하는 질문입니다.
“싸우는 이유가 뭔데?”
줄거리는 대충 이렇습니다. 배경은 여러 차례 휴전협정이 결렬되는 시기였습니다. 장교였던 신하균은 높은 분 앞에서 그만 군인에 합당하지 않은 발언을 하여 그 벌로 전방으로 발령이 납니다. 전방 악어 중대에 북한군과 내통하는 군인이 있으니 조사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중대장이 죽었는데 그 총이 아군의 것이었습니다.
신하균은 신임 중대장과 함께 악어 중대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같은 고지를 뺏고 뺏기는 전쟁에 지친 군사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이 전쟁을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신하균은 전쟁의 실태를 눈으로 목격합니다. 금지된 약물을 투여하며 약의 기운으로 독하게 죽여대는 임시 중대장. 여자라 살려준 사람이 그 은혜와는 상관없이 한국군을 마구 죽여대는 북한군 저격수. 자기 말에 토를 다는 사람은 즉결처분하려는 새로운 중대장. 그리고 휴전이 조인되고 그 휴전이 발휘되는 하루 동안 고지를 다시 점령해야 한다고 마지막 전투를 시키는 고위 간부 등...
그런데 이들과는 다른 전장에서 만난 친구, 고수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좀 특이했습니다. 알고 보니 북한군과 내통하는 군인이 자기 친구였습니다. 내통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었습니다. 고수는 전쟁판에서 유일하게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생명을 존중하는 이였습니다. 그는 동료들과 후퇴할 때 막사에 땅을 파고 그들을 위한 초콜릿등 음식을 넣어놓습니다. 그리고 다시 탈환해보면 그들이 남한에 있는 자기 가족들에게 전해달라는 편지들이 있고 감사의 표시로 술도 들어있습니다. 전쟁터에서 나눔이 실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자신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오만한 중대장을 그가 죽인 것입니다.
고수는 군인으로서 나라의 배신자입니다. 신하균은 자신의 친구가 군법을 어기고 북한군과 먹을 것을 나누어 먹고 편지를 전해주고 심지어 동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아군 장교를 총으로 쏘는 것을 목격하고는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그러나 자기가 살려준 여자 저격수에게 친구가 살해되자 본인도 도대체 왜 싸워야 하는지도 모르는 전쟁의 의미에 대해 다시 묻게 됩니다.
이 영화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과 독일군 사이의 치열한 전투 속에서 성탄절을 맞아 그날 하룻밤만 휴전하며 성탄절을 즐기려 했다가 모두가 군법에 따라 처분된 실화가 생각나게 합니다.
독일군 한 병사가 불렀던 크리스마스 캐럴은 자기 동료들을 죽였던 적군과 비무장 상태로 서로 포옹하고 보급품을 나누며 축제를 즐기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군법에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고지전’에서 고수는 저격수의 총에 맞아 죽어가며 신하균과 이렇게 대화를 나눕니다.
“오지 마. 오면 너도 죽어. 가끔 그런 생각해? 난 아주 오래전에 죽었다는 생각. 우리 악어 중대 모두. 아주 오래전에 죽었다고. 그렇게 많이 죽여댔으니까 당연히 지옥에 가야 되는데 여기보다 더한 지옥이 없어서 그냥 여기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은표야, 우리 엄니 얼굴이 기억이 안 나.”
여기서 북한군 간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죽어가는 그 앞에서 신하균은 묻습니다.
“도대체 싸우는 이유가 뭔데?”
“확실히 알고 있었어. 근데 너무 오래돼서 잊어버렸어.”
신하균은 그 잔혹한 북한군 간부에게, 어쩌면 전쟁이란 명목으로 살인 기계들을 배출하는 북한과 남한 정부에 말하는 것처럼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주저립니다.
“개새끼!”
이 전쟁은 끝나지 않고 지속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잠시 오늘 한가위에 이 전쟁에서 벗어나 어머니 얼굴도 떠올리고 서로 경쟁하던 사람들과 가진 것을 나누고 사랑의 캐롤을 부르며 지냅니다. 이 짧은 행복이 끝나면 다시 전쟁터로 나가 피조물의 법인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싸우겠지요.
탐욕이라는 법은 피조물 세계에서는 피할 수 없는 법입니다. 이 법은 생명을 경시하게 만들고 그래서 자기 생명도 지키지 못하게 만듭니다. 모두가 이 법의 피해자입니다. 그 와중에 나눔의 법을 알려주러 오신 분이 계십니다. 사랑의 법은 탐욕의 법과 반대입니다. 탐욕은 모으는 것이고 사랑은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나눔의 법을 실천하면 이 세상에서는 군법에 넘겨지고 심지어는 십자가에 매달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용기를 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어떤 법을 따르느냐가 어떤 나라에 속하는지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에 싸울까요? 그건 그 나라에 속해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속한다면 이 지옥과 같은 세상에서도 날마다 한가위처럼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영원히 삽니다. 피조물은 사라지지만 천국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탐욕은 피조물의 법이지만 사랑은 창조자의 법입니다. 생명을 창조한 분이 지배하는 나라에서는 죽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매일 한가위처럼 나누는 사랑의 법을 실천하여 이 세상에서부터 천국에 속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짧은 행복을 알게 하려고 나눔의 한가위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더도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얼마 전에 글을 쓰다가 갑자기 꽉 막히는 기분을 체험했습니다. 이런 적이 이제껏 없었는데,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 느낌이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옛날에 썼던 글들을 펼쳐보았습니다. 거의 20년 전에 썼던 글인데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이것도 글이라고 인터넷에 자신 있게 올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부족한 글을 봐주신 신자분들에게 너무나 큰 감사를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른 살이 막 넘었을 때의 ‘젊은 나’와 쉰 살이 넘은 ‘중년의 나’는 같은 ‘나’일까요? 같을 수가 없습니다. 전혀 다른 ‘나’입니다. 왜냐하면 외모, 능력, 성격…. 모두가 다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변하는 ‘나’입니다. 언젠가 책에서 보니, 우리의 유전자도 쏵 바뀐다고 하더군요.
과거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종종 만납니다.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이라면서 후회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과거의 나만 바라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보며 후회하는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나’도 나이지만, 현재의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계속 발전하는 ‘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발전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때로는 후퇴하는 것이 아닐까 싶지만, 자신의 노력을 통해 충분히 변화되면서 더 나은 ‘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변화시키는 사람은 감사의 이유를 많이 찾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변화되었음에 감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한가위입니다. 이 한가위의 핵심 키워드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단순히 가족들이 모여서 먹고 즐기는 날일까요? 아닙니다. 그보다 감사하는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코로나로 인해서 예전과 같이 명절 때의 만남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한가위는 분명히 아래와 같은 감사의 마음을 갖도록 합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전해주신 조상님들께 감사를 드리는 것, 우리의 생명을 유지해 주기 위해 해마다 온갖 곡식과 과일을 제공해 주는 자연에 감사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모든 것을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날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 하나 감사를 드리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즉, 내 삶의 목표를 똑바로 두고 있으며, 그 올바른 목표를 향해서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감사할 일이 많다면 그만큼 자신의 변화를 이루며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할 일이 없다면 불평불만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으면서 자신의 변화도 이룰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더도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라는 한가위입니다. 이 한가위를 잘 지내기 위해 특히 감사를 많이 외칠 수 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이미 죽은 자처럼, 지금까지의 생을 끝낸 사람처럼, 앞으로의 인생을 자연의 순리에 맞게 덤으로 받은 생인 듯 살지 않으면 안 된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중독되지 않기
전철을 타면 책이나 신문 읽는 사람을 이제는 보기 힘듭니다. 대부분 스마트폰을 보고 있지요. 뉴스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재미있는 영상도 또 E-Book도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시간이 나면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봤었습니다. 문제는 잠깐 보는 것이 아니라 꽤 많은 시간을 이 기계에 쓰게 되더군요.
스마트폰은 우리의 자투리 시간을 가져가는 일종의 시간 흡수기가 아닐까요? 심지어 자기 전에도 ‘무슨 새로운 뉴스가 있나?’라면서 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 역시 이런 모습을 보이기에 아예 스마트폰을 무음으로 바꿔 놓고 보지 않았습니다. 괜히 불안한 마음이 밀려들기도 하고, 반드시 봐야 하는 어떤 정보를 놓칠 것만 같은 불안감도 생겼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별로 중요한 정보가 없더군요.
코로나 예방 차원에서 자주 실내 공기 환기를 해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귀찮지만 건강을 위해서 필수입니다. 스마트폰에 매달리지 않는 날도 있어야 합니다.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 필수입니다.
몸을 쓰지 않아 건강에 좋지 않고, 사회성도 떨어지고, 진짜의 나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정신 건강에 안 좋은 것이 스마트폰입니다. 그래서 창문을 자주 열어 공기를 환기하듯이, 자주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날을 자주 만들어 내 정신을 정화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마음을 나누기에 가장 좋은 한가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 15)
가장 풍요로운 생명의 때이다. 우리의 가을은 봄과 여름 없이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생명의 질서이다. 처음으로 수확하는 햇곡식과 햇과일의 정성어린 계절이다. 마음의 고향은 언제나 은총의 하느님이시다.
은총은 따뜻한 인간미를 동반한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가르쳐주는 한가위의 명절이다. 힘든 현실안에서 맞이하는 한가위의 마음이다. 대자연의 신비를 바라본다. 자연의 선물은 거짓을 나누지 않는다.
진실된 나눔은 언제나 욕심을 배제한다. 탐욕을 경계한다. 생명에 감사하는 감사의 시간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한가위의 넉넉한 마음은 하느님의 마음이다. 하느님의 마음은 사람의 마음을 향한다.
사람의 마음은 인정이 넘치는 나눔의 마음이다. 나눔의 마음은 잘 익은 차례의 마음으로 하느님을 향한다. 하느님의 질서 안에 사람의 마음도 있다. 마음의 질서를 회복하는 넉넉한 한가위가 되길 가장 좋으신 하느님께 기도드린다.
마음이 생명이다. 마음을 나누기에 가장 좋은 한가위다.
'매일미사 말씀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년 9월 24일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1.09.24 |
---|---|
21년 9월 23일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1.09.23 |
21년 9월 22일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1.09.22 |
21년 9월 20일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1.09.20 |
21년 9월 19일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1.09.19 |
21년 9월 18일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1.09.18 |
21년 9월 17일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1.09.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