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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
21년 9월 8일 (수)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성경에 동정 마리아의 탄생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 때부터 성모 신심이 계속되면서 동방 교회에서 먼저 이 축일을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로마 교회에서는 7세기 무렵부터 이 축일을 지내고 있는데, 예루살렘에 세워진 ‘마리아 성당’의 봉헌일(9월 8일)을 동정 마리아의 탄생 축일로 정한 것입니다.
✠ 오늘 제1독서
미카 예언자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 오늘 복음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예언대로, 마리아에게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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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미카 5장 1-4ㄱ절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
그러므로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주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리라. 그 뒤에 그의 형제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리라.
3
그는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 그의 하느님 이름의 위엄에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 그러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 이제 그가 땅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4
그리고 그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
화답송
저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리이다.
저는 당신 자애에 의지하며, 제 마음 당신 구원으로 기뻐 뛰리이다. 저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리이다.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저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리이다.
복음
마태 1장 1-16절, 18-23절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1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2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3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4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6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8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9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10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11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12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13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14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15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이 거룩한 신비로 교회의 힘을 길러 주셨으니 저희가 온 세상의 희망이시며 구원의 서광이신 동정 마리아의 탄생일을 맞이하여 더욱 기뻐하게 하소서.
평화방송 매일미사
21년 9월 8일 (수)
팔로티회 매일미사
21년 9월 8일 (수) 15시
명동성당 매일미사
21년 9월 8일 (수)
매일미사
신우식 토마스 신부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성경에 동정 마리아의 탄생에 대한 내용은 없지만 성모 신심은 초대 교회 때부터 이어져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미카 예언자는 한 여인에게 태어날 메시아의 탄생에 대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고통 속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메시아의 탄생은 기다림의 정점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구약의 예언자들이 언급한 여인이 성모님이심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성모님을 통한 예수님의 탄생은 하느님의 오랜 계획(로마 8,28-29 참조) 안에 있는 일이었습니다.
오늘은 우리의 어머니이시고 위로이시며 피난처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탄생 축일입니다. 복음은 하느님의 구원 경륜이 인간의 역사 안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예수님의 족보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을 실현하시고자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선택하시어 우리 어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시고 전구하시는 우리 신앙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에, 우리는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크신 섭리를 깨닫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의 탄생은 소중합니다. 이를 마음에 새기며 우리 모두 저마다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뜻을 찾아 기쁘게 살아갑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선택이 아니라 정해진 대로
오늘 성모 마리아의 탄생 축일에 복음은 예수님의 족보 얘기와 예수님의 탄생 경위를 들려주고 미카 예언서는 뿌리에 대한 얘기를 줍니다.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성모님의 탄생 축일에 성모님의 탄생에 대한 얘기는 들려주지 않고, 예수님의 탄생 얘기를 들려주는 것이 이상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왜냐면 성모님의 축일에 정작 성모님 탄생 얘기는 들려주지 않는 것이 성모님의 탄생에 관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고 그래서 성모님 탄생 얘기 대신 예수님의 탄생 얘기를 들려준 것이기도 하지만 성모님의 탄생은 아들의 탄생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기에 그런 거지요.
이렇게 얘기하면 요즘 여성주의자들 중에 어떤 분은 여자가 애를 낳기 위한 존재냐고, 그것이 여자의 존재 의미일 뿐이냐고 반박할 것이고, 저도 엄마가 돼야지만 존재 의미가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전례에서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이 축일을 지내지도 않고, 더더욱 거창하게 축일로 지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요즘은 여성주의자들이 아니더라도 여성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엄마가 될지, 엄마가 아니라 그저 한 여성으로서 경력 여성이 될지.
저도 선택의 권한이 여성에게 있고, 그래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되기보다는 한 여성으로서 멋지게 살고, 한 아이보다는 많은 이를 위해 의미 있는 삶을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엄마가 되기를 선택했다면 요즘 아이를 낳고 쓰레기 통에 버리거나 낳고는 학대하는 엄마가 아니라 훌륭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인간적인 차원에서는 진보적인 생각이고 또 마땅한 생각일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적인 차원에서는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경우는 인간에게 그리고 마리아게 엄마의 선택권이 있지 않고 하느님께 있으며 그래서 오늘 미카서는 그 뿌리가 아주 오래 전의 옛날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마리아가 엄마가 되는 것은 선택권이 마리아에게 있지 않고, 하느님에 의해 오래 전 그러니까 천지창조 이전에 정해진 거라는 얘기이고, 잘 아시듯 성모 마리아께 대한 모든 교리는 다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지요.
이에 성모님의 몫은 '예스', 곧 순종입니다. 정해진 것을 거부하지 않고 '예스'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 '예스'는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전달을 받고 난 뒤 "Fiat mihi voluntas Tua! 당신 뜻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할 때 뿐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고, 아니, 태어나기 전에 이미 '예스' 하도록 정해진 것입니다.
당신에게서 아들 예수가 태어날 때 "예스"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태어날 때 이미 "예스"한 거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선택이 아니라 정해진 것이 성소이고, 선택이 아니라 정해진 대로 살겠다는 것이 성소를 사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임을 이 축일에 다시 생각하는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무소의 뿔과 같으신 분
오늘은 성모 마리아의 지상 탄일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라는 오늘 복음 말씀대로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도우셨기 때문에 구원의 또 다른 협력자가 되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태오는 족보로 시작하며 성모님을 통한 그리스도의 탄생이 처음부터 계획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이 족보 안에 들려면 그에 합당한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성모님은 어떻게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셨을까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큰일을 한 사람일까요? 『숫타니파타』라는 불교 경전에서는 깨달은 이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저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렇게 깨달은 분은 우리 주위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의사 김범석 씨가 자신이 본 죽음 중에 ‘특별하고 위대한 마지막’이란 제목으로 쓴 글이 있습니다. 수많은 죽음을 본 그가 어떤 죽음을 가장 특별하고 위대하다고 보았을까요?
그는 폐암 말기 어머니를 돌보던 딸의 편지를 인용합니다.
“엄마가 폐암 진단을 받고 많이 힘들어하셨는데 이제는 많이 다잡으셨어요. 선생님을 믿고 따르면서 저희 정말 열심히 치료받겠습니다. 우리 엄마 꼭 낫게 해주세요.”
수술은 할 수 없는 상태라 생명 연장 수단으로 항암치료를 받자고 무미건조한 목소리를 말할 때 수많은 반응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편지 속의 ‘우리 엄마’는 3주에 한 번씩 항암을 하면서도 다른 의견을 제시하지도 않고 싫은 기색도 없이 시키는 대로 순종적으로 움직였습니다.
마지막을 딸과 함께 지내기 위해 딸의 아파트 옆으로 이사와 손주들을 돌봐주고 손주들과 놀아주고 맞벌이하는 딸 가족을 위해 밑반찬도 해주고 주말엔 김밥을 싸서 북한산 등산을 하고 하산 길에 사우나에 들르는 등 다른 할머니들과 다를 바 없는 매우 일상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길어야 1년이고 매우 고통스럽다는 폐암 말기였는데도 어머니는 아픈 기색 하나 없이 일상을 사셨던 것입니다. 딸은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엄마는 치료 의지가 매우 강해서 힘든 내색 안 하고 열심히 잘 치료받고 계세요. 일상생활도 아주 많이 잘하고 계시고요. 다른 분들도 잘 견디시는 건가요? 힘든데 저희 때문에 내색 안 하고 혼자서 참고 있으신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그렇게 암은 머리까지 전이되었고 더는 손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때 “방사선치료를 했는데 효과가 좋지 못하네요….”라고 말하면 환자들은 수많은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괜찮아요. 선생님이 잘 치료해주려고 이렇게 애썼는데 미안해요.”
할머니는 오히려 말하기 주저하는 의사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자신의 관리를 잘하지 못해서 상태가 나빠졌다면 자기 탓으로 모든 것을 돌렸습니다.
그때 의사는 알게 되었습니다. 중간에 항암제를 몇 번 바꿔야 하는 적도 있었는데 그런 때도 할머니는 화를 내거나 마음의 동요를 일으켰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서도 할머니는 마치 남의 일인 양 자기 죽음에 대해 아무런 동요가 없었습니다. 무척이나 평온했고 담담했습니다. 한 가지 손주들이 자신 없이도 잘 클 수 있을까가 걱정이지만 어차피 한 번 겪어야 하는 일이니 자녀들도 씩씩하게 잘 헤쳐나갈 것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담배도 피운 적 없는 할머니가 폐암에 걸려 딸 옆에 살면서 1년 동안 남과 다를 게 없는 일상을 사시다 할머니는 그렇게 평온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수많은 죽음을 지켜본 김범석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글을 마무리합니다.
“할머니가 실제로 돈이 많았는지 대학은 나왔는지 그런 것들은 알지 못한다. 짐작하건대 가방 끈이 길지도 않았던 것 같고 넘치게 부유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역사책에 나올 법한 위인도 아니고 언론에서 칭송받을 만한 이력이 있는 분도 아니었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마주칠 법한 평범한 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가 누구보다 어려운 일을 해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까지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는 일, 느닷없이 찾아온 운명을 받아들이고 본인 몫의 남은 삶을 평소처럼 살아내는 일.
누군가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지켜본 그 노년의 환자는 평범함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분이었다. (중략) 할머니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특별했고 보통 사람이지만 위대한 사람이었다.”
위대한 성인은 큰 업적을 낸 인물이 아니라 자기를 버리고 집착 없이 순리에 따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버리니 두려움도 없고 집착도 없고 모든 것에 ‘순응’(아멘!)합니다.
진정 할머니는 암이라는 사형 선고에 놀라지 않았고, 세상 집착에 걸리지 않았으며, 분노와 원망을 하며 진흙에 자신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 죽음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성모님은 그렇지 않을까요? 성모님도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사자는 소리에 놀라지 않습니다. 어떤 소리건 자신을 위협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자신을 놀라게 한 것을 공격합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지만, 요셉에게 성령으로 잉태된 사실을 알리며 설득하지 않습니다.
또 성모님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은 분이십니다. 거침이 없으십니다. 즈카르야가 천사의 말을 듣고는 늙은 자신이 어떻게 아이를 갖느냐고 했지만 성모님은 당신은 주님의 종이니까 그냥 말씀대로 이루어지라고 하십니다. 두려움이 없으니 거침도 없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다 도망갔어도 성모님은 골고타 끝까지 예수님과 동행하십니다.
성모님이 그렇게 두려움도, 거침도 없는 분이신 이유는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연꽃은 진흙에서 피지만 그 더러움이 연꽃에 물들지 못합니다. 성모님은 죄가 없으시기에, 자신을 봉헌하셨기에 죄에 물들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안나와 요아킴은 성모님이 어렸을 때 성전에 봉헌하였습니다. 하느님께 맡겨진 사람은 죄에 물들지 않습니다. 죄에 물들지 않는다는 말은 자신이 죽었다는 뜻입니다. 죽은 사람을 죄에 물들게 만들 수 있는 유혹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에 반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광야를 달리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는” 성모님의 모습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다른 이들과 친교를 맺지 않고 독단적이라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자신이 봉헌되고 자아가 죽어 두려움도 없고 거칠 것도 없고 죄도 짓지 않는 사람이라면 마치 코뿔소로 상징되는 주님의 ‘도구’가 되어 주님 뜻대로 달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코뿔소의 ‘외뿔’은 코뿔소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외뿔처럼 ‘코뿔소의 도구’가 되려면 자신을 주님께 봉헌한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고 이런저런 상황에 좌절하며 세상 죄에 물든 사람은 누구도 코뿔소의 외뿔이 될 수 없게 됩니다. 코뿔소가 썩은 외뿔을 굳이 장착하고 달릴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코뿔소가 주님이라면 외뿔은 성모님이셨습니다.
성모님이 엘리사벳을 찾아가실 때 그분을 그쪽으로 달리게 만든 것은 태중에 잉태된 코뿔소인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코뿔소는 또한 세상에서 외뿔이 없으면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성모 마리아는 코뿔소라는 주님께 온전히 순종하여 장착된 외뿔이십니다. 성모님은 우리도 그렇게 무소의 뿔처럼 가라고 어머니로서 모범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종교인의 평균수명이 높은 이유
11개 직업군의 최근 10년간의 평균수명을 어느 기관에서 조사했습니다. 평균수명이 가장 낮은 직업군은 연예인, 체육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높은 직업군은 어떻게 될까요? ‘종교인’이었습니다. 10년 전쯤에도 비슷한 조사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때 역시 종교인이 압도적인 1위를 했습니다.
종교인이 1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종교인이 믿는 신이 보살펴주는 것일까요? 그것보다 더 큰 진실은 영적인 이상을 추구하다 보니 세상의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그만큼 적어서라고 합니다. 종교인 중에서도 세상의 것에 집착하면서 세속적인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말에 힘이 있음을 평균수명이 낮은 직업군이 연예인과 체육인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세상 안에서 보이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세상의 것을 모두 내려놓고 살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 안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여주기 위한 삶에서는 진정한 자유로움이 없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영적인 가치를 찾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의 가치 안에서 스트레스를 줄이고 세상의 것들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됩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오늘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을 맞이하면서, 성모님의 모습을 함께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잉태하셨습니다. 아직 혼인하기 전에 이루어진 일이기에 복음에 나오듯이 요셉 성인께서는 파혼하기로 작정도 하셨습니다. 바로 이때 천사가 개입해서 성모님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잉태된 아기가 어떤 분인지를 이야기해줍니다.
성모님과 요셉 성인 모두가 세상의 규칙에 집중하지 않으십니다. 그보다는 하느님의 뜻에 집중하면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했던 것이 믿음과 사랑입니다.
성모님께서 믿음이 없었다면, 예수님 잉태를 거절했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구원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요셉 성인께서 사랑이 없었다면, 파혼하고 성모님께서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수가 없었을 것이고 우리의 구원도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 성인은 성모님을 사랑하셨기에, 꿈에서 받은 계시를 그대로 따를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속적인 것에 대한 집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영적 육적 건강은 물론이고, 지금을 더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먼저 자신을 비웃어라. 다른 사람이 당신을 비웃기 전에.
- 엘사 맥스웰
장 도미니크 보비(Jean-Dominique Bauby)를 아십니까?
‘잠수종과 나비’라는 책을 쓴 프랑스의 장 도미니크 보비(Jean-Dominique Bauby)를 아십니까? 그가 세계적인 패션 잡지 ‘엘르’의 편집장으로 있던 1995년, 운전 중에 뇌출혈로 쓰러져 락트-인 증후군(locked-in syndrome)이라고 불리는 전신 마비 상태에 빠집니다.
그가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왼쪽 눈꺼풀 밖에 없었습니다. 이 왼쪽 눈꺼풀로 이십만 번 이상 눈을 깜박여 15개월에 걸쳐 쓴 책이 그의 회고록인 ‘잠수종과 나비’입니다. 얼마나 여기에 집중했는지 책을 출판한 지 8일 후 심장마비와 폐렴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십만 번의 눈깜빡임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할 정도로 느릴까요? 그러나 이 느림이 세상에 하나의 책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고통과 시련으로 멈춰서는 안 됩니다. 느리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때 주님께서는 부족한 나를 통해 커다란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탄생은 신비이다.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마태 1, 20)
마음을 따뜻하게 밝히는 마리아의 새로운 탄생이 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은총의 탄생이다. 탄생은 하느님을 닮아 있다. 탄생은 새로운 역사의 창조이다. 이와같이 탄생의 시선은 하느님을 향해 있다.
탄생은 신비이다. 깊어지는 사랑의 신비이다. 가파른 삶의 오르막도 오르게 하는 사랑의 놀라운 힘이다. 동정 마리아의 탄생은 하느님 사랑의 힘을 뚜렷이 보여준다. 하느님 사랑은 영원하다. 가장 좋은 사랑을 우리에게 주신다.
매순간이 탄생이고 매순간이 사랑이다. 이제는 모든 것을 사랑에 맡길 때이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탄생으로 살아있는 희망을 보게되었다. 탄생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넘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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