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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1년 9월 5일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1.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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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23주일 -

 

 

21년 9월 5일 (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오늘 제1독서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오시어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리라고 한다.

 

 

✠ 오늘 제2독서

 

야고보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에파타!”라는 말씀으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 주신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1년 9월 5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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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이사 35장 4-7ㄴ절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말하여라.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너희의 하느님을! 복수가 들이닥친다, 하느님의 보복이! 그분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늪이 되고, 바싹 마른 땅은 샘터가 되리라.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주님은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고, 억눌린 이에게 권리를 찾아 주시며,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시네. 주님은 잡힌 이를 풀어 주시네.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주님은 눈먼 이를 보게 하시며, 주님은 꺾인 이를 일으켜 세우시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주님은 이방인을 보살피시네.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주님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나, 악인의 길은 꺾어 버리시네. 주님은 영원히 다스리신다. 시온아, 네 하느님이 대대로 다스리신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매일미사 제2독서 (Second Reading)
제2독서 (Second Reading)

 

제2독서
야고 2장 1-5절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나의 형제 여러분, 영광스러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가령 여러분의 모임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누추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온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화려한 옷을 걸친 사람을 쳐다보고서는 “선생님은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저기 서 있으시오.” 하거나 “내 발판 밑에 앉으시오.” 한다면, 


여러분은 서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마르 7장 31-37절

 

예수님께서는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신다.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32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36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37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이사야의 예언을 예수님께서 실현하십니다. “에파타!” 곧 “열려라!” 하시어, 귀먹은 우리를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우리를 말하게 하시는 주님의 놀라운 업적을 찬미합시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

 

주님, 믿는 이들을 생명의 말씀과 천상 성사로 기르시고 새롭게 하시니 사랑하시는 성자의 크신 은혜로 저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소서.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1년 9월 5일 (일)

 

 

팔로티회 매일미사

 

 

21년 9월 5일 (일) 15시

 

 

명동성당 매일미사

 

 

21년 9월 5일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 Reflections)

 

매일미사
신우식 토마스 신부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바오로 사도는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 10,17)라고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느님을 찾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인간의 열정은 우리가 희미하게나마 하느님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당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믿음을 키워 가며,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갑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가 말하듯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길이 곧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의탁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시며 그의 귀를 열어 주시고 묶인 혀를 풀어 주십니다. 인간의 유한함을 넘어 세상 것에 마음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막는 길은,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고 믿음을 키워 올바른 말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 말씀을 가로막는 것들에서 벗어나, 주님의 말씀을 귀여겨들음으로써 믿음을 키워 하느님께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귀로는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입으로는 긍정적이고 좋은 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을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능력뿐 아니라 사랑까지 다 하시는

 

오늘 연중 제23주일의 주제는 막힌 귀와 입을 열어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첫째 독서 이사야서도 눈과 귀를 열어주시는 하느님을 얘기하고, 복음도 귀와 입을 열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얘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복음의 귀와 입이 막혔던 사람을 주인공 삼아 귀와 입이 열리기까지의 얘기를 한 번 소설처럼 풀어보겠습니다. 

주인공은 사람들에 의해 주님께 인도되어 치유를 받습니다. 궁금증은 '왜 스스로 주님께 오지 않았을까?' 그것입니다. 

복음 다른 곳에서 중풍 병자가 사람들의 인도받은 것은 혼자 걷지 못하니  인도받는 것이 당연하다 할 수 있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러니 그는 집 밖을 나오는 것이 두렵고 불안한 사람이고, 귀와 입이 막히자 문을 닫고 관계를 막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는 귀와 입이 열리기 전에 문이 먼저 열리고 관계가 먼저 열려야 할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그가 어떻게 문을 열고 주님께 왔을까요? 제 생각에 주님께서 그의 귀와 입을 열어주시기 전에 마음을 먼저 열어주셨고, 이웃들도 한몫하였습니다. 

문과 마음을 닫아걸고 있는 그에게 사람들이 찾아가 예수님에 대해 얘기했을 것입니다. 사랑의 주님이고, 능력의 주님이라고. 그런데 그들의 설득에 주님을 뵙겠다는 마음은 열렸어도 용기는 아직도 생기지 않아 사람들이 '같이 가주마!'하고 데리고 왔어야 했을 것입니다. 

이런 그이기에 주님께서는 어린이와 손이 오그라든 이를 사람들 가운데  세운 적이 있지만, 그는 한가운데 세우지 않고, 따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그리고는 치유의 행위를 하시는데 손을 두 귀에 넣으셨다가 혀에는 당신 침까지 발라 주십니다. 이 행위는 더러운 행위가 아니라 인격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친밀하고도 내밀한 행위이고 당신 사랑을 다 기울이는 행위입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한 말씀만으로 치유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백인 대장의 종을 치유할 때는 한 말씀만으로 치유하셨습니다. 귀와 입만 열리게 하는 것은 한 말씀만으로 가능하지만 마음까지 열기 위해서 주님은 그런 행위를 하신 겁니다. 

치유와 구원은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능력의 치유는 능력 있는 의사들도 할 수 있습니다. 능력으로 치유는 할 수 있어도 구원까지는 안 되고, 구원을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제 주님은 "에파타!"하고 말씀으로 치유를 완성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언제나 능력입니다. 창조 때의 그 능력이고, 창조하신 뒤에는 치유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행위는 창세기의 창조를 재현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느님은 말씀만으로 만물을 창조하십니다. 

그러나 2장에서는 땅에 내려오시어 흙으로 아담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당신 숨을 불어넣으시어 숨이 붙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과 2장의 창조가 능력과 사랑의 창조이듯 오늘 주님께서도 능력과 사랑으로 주인공을 치유하시고 구원하십니다. 다만 순서가 창세기와 다른데 그렇게 해야만 된다고 생각하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주님 안에서 능력보다 사랑을 더 체험하는 오늘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기도로 얻는 세 가지  :  손가락,  숨,  혀

 

우리는 무엇을 얻기 위해 기도할까요? 오늘 복음에서는 기도를 통해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세 가지가 나옵니다. 

오늘 예수님은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의 귀와 혀를 치유하십니다. 그런데 이 치유 사화는 단순한 육체적 장애의 치유를 넘어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를 치유하기 위해 하시는 모든 행위가 상징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를 ‘군중 밖으로’ 따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이는 ‘세상 밖으로’와 같은 의미입니다. 세상의 소리가 우리 귀를 먹게 만듭니다. 옛날에 경찰이 허위 진술을 하도록 유도할 때 잠을 며칠 동안 재우지 않아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자신들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진술하도록 했습니다. 그리스도와 머묾은 그런 세상에서의 탈출을 의미합니다. 이를 ‘광야’라고 합니다. 하느님은 광야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다음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십니다. 손가락으로 본인의 귀를 막고 잠시 있어 보십시오. 무슨 소리가 들릴까요? 마치 물속에 있는 것처럼 세상과 단절되고 자신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남은 바깥세상에서가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이뤄집니다.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것은 바깥세상만이 아니라 ‘자기 생각’입니다. 나와의 대화에서도 귀를 막고 내면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주님은 내 가장 깊은 곳에 계십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하늘을 향해 ‘한숨을 내쉬십니다.’ 왜 그를 향해 숨을 내쉬지 않고 하늘을 향해 내쉴까요? 온 공기 안에 당신의 숨이 머물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동양에서는 이를 ‘기’(氣)라 표현하고 호흡을 통해 이 기를 자신 안에 모으는 명상이 발달했습니다. 

물론 ‘숨’은 그리스도교에서 ‘성령’에 해당하는 단어와 일치합니다. 세상을 끊고 생각을 끊고 자기 내면 안으로 들어온 사람에게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말씀하십니다. 

귀를 막았을 때 결국 나에게 들리게 되는 것은 ‘본인의 호흡 소리’입니다. 모든 명상에서 호흡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여러 호흡법이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호흡을 마치 성령을 통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목소리처럼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손에 ‘침을 발라 그의 혀에 대시고’ 그에게 “에파타!”(열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 사람은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예수님의 ‘침’은 또한 ‘성령’을 의미합니다. ‘숨’이 성령의 진리 말씀을 나에게 전하는 역할이라면, ‘침’은 그 말씀이 입 밖으로 나오게 만드는 힘입니다. 성령 강림 때 제자들이 불 혀와 같은 형상의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하게 된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렇듯

‘세상과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귀를 막으심’

‘당신의 목소리를 듣게 하심’

‘들은 말씀을 세상에 전하게 하심’

이렇게 세 단계로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이 과정을 적용해 볼까요? 한 자매님이 귀를 막고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듣고 그 말씀을 전하는 기도의 체험을 말씀하신 것을 옮겨봅니다. 

“그때 제 나이가 47세이고 3남 2녀 중고등학생 어머니였습니다. 남편은 대학병원 의사로 근무하다가 막 개업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게 되어 집을 이탈리아 가구들로 장식하고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혈안이 되어 살았습니다.손님들을 초대하여 그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줄도 모르고 교만과 자만심으로 살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노하셨는지 병원에 의료 사고가 생겼습니다. 환자가 주사를 맞다 다리 신경이 마비되었습니다. 그 환자는 준재벌에 속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 다리를 제대로 해 놓지 않으면 병원을 망하게 만들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때 제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망하게 되었을 때 친구들에게 창피당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세례는 받았지만, 하느님을 찾기보단 유명한 점쟁이를 찾아다니고 부적이란 부적은 다 써서 붙였습니다. 심지어 점쟁이 말대로 보따리를 싸서 피신까지 했었습니다. 

2~3개월 후에 정신을 차리고 하느님께 매달렸습니다. 성지로 매일 미사를 다니고 심혈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할 때는 두 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하늘의 계신 우리 아버지’ 하면 아버지가 진정 내 아버지로 여겨질 때까지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하면 아버지의 영광만을 위하는 마음이 들 때까지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주님을 만났습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이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저의 본성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하느님의 본성이 된 것 같았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이제 의료 사고가 해결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완전히 사라지고 그 큰 두려움도 사라져 우리 집이 거지가 된다 해도 주님만 있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를 두렵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참 평화와 행복, 참 자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 보답하기 위해 성당에서 갖은 봉사를 다 했습니다. 남들이 꺼리는 일들부터 땀 흘리며 했습니다.

몇 달 후에 그 환자가 스스로 연락을 줘서 조건 없이 합의서에 도장을 찍어주었습니다. 그 분의 완고하던 마음을 주님께서 돌려주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 이후에도 힘든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목소리만 생각하면 지금도 모든 것에 감사하고 행복할 뿐입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한 사람의 귀를 막으시고 그 사람에게 당신 목소리를 들려주시며 그 사람을 통해 당신 사랑이 드러나게 하십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내가 세상과 나 자신에게 죽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그분의 사랑이 나를 통해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주님의 사랑을 일상 삶 안에서 느껴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식당에서 식사하고 있는데 종업원이 물을 자신에게 쏟았습니다. 날벼락 맞은 기분이었고, 기분이 영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화를 전혀 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환하게 웃으면서 물을 쏟은 종업원을 향해 “괜찮아요. 놀라지 않았어요?”라며 오히려 배려하는 모습까지 보이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화부터 내지 않나요? 
 
이분은 성당에 열심히 다니는 신앙인도 아니었습니다. 평소에 남을 배려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분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요? 
 
글쎄, 그 종업원이 자신의 이상형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그런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즉, ‘이만한 일에 격분하지 않고 신사적으로 행동할 줄 아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한 목적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호감 가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소위 갑질하는 사람의 모습이 종종 인터넷에 나옵니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 수 없습니다. 그와 반대로 상대방에게 잘 보이기 위한 모습은 그 마음이 어떤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외적으로는 보기에 분명히 좋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중요한 질문 하나, 주님께 우리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있습니까? 주님께 잘 보이기 위해서는 우선 주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절대로 대충 살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오늘 복음에서 잘 드러납니다.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오자, 여러 과정을 걸친 행동을 하십니다. 
 
우선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그리고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고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십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에파타!”라고 하십니다. 
 
당신의 전지전능한 힘으로 그냥 치료해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에게는 이런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스스로 느껴야 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를 보면 얼마나 예쁜지 모릅니다. 그래서 계속 대화를 나누고 싶고, 깨물어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런 좋아하는 마음을 아이도 느낍니다. 어떻게 보면 귀찮게 하는 것인데 싫어하지 않습니다. 
 
주님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이런 과정을 통해서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귀먹고 말 더듬는 병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했던 그에게 이렇게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 인해 용기를 내어 힘차게 살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일상 삶 안에서 느껴보십시오.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 주님께 잘 보여야 하니까요.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가능하면 사람 안에서, 사람 틈에서 살려고 합니다. 사람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닐 것 같아서지요.

- 이병률

 

 

큰 영향을 미치는 말 한마디

 

어떤 분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관상동맥 우회술을 받았습니다. 주치의는 이 방법이 완벽한 치료 방법이 아니라면서 10년 후쯤에는 재수술해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10년이 넘었지만, 그는 재수술을 받지 않았습니다. 상태가 지금까지 괜찮아서 굳이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주치의에게서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에 크게 기뻤지만, 사실 이분은 이제까지 늘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10년 후’라는 의사의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던 것입니다. ‘재발할까? 재발하지 않을까? 만약 재발한다면 언제가 될까?’ 등의 생각으로 늘 불안했던 것이지요. 
 
말 한마디가 이렇게 영향을 미칩니다. 말에 신경 쓰지 않으면 되겠다 싶지만, 자신의 생명과 관계되는 것인데 어떻게 이 말을 무시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지금 하는 나의 말도 또 나의 행동도 누군가의 삶 전체를 흔들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생각해서 하는 나의 말과 행동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닫혀있는 아픔을 통해 우리를 치유로 초대하시는 주님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마르 7, 34)

청명한 가을이 열린다. 닫혀있는 아픔을 통해 우리를 치유로 초대하시는 주님이시다. 치유를 통해 우리가 누군지를 알게된다. 사랑받는 주님의 자녀들이다. 다시 예수님을 향하는 치유의 시간이다. 

예수님의 치유는 지극히 인격적이고 과감하게 친밀하다. 닫혀있는 귀와 입을 열어주신다. 우리의 아픔을 주님께 숨기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주님께서는 치유를 통해 행복을 전달하신다. 

주님께서는 자녀들의 행복을 원하신다. 행복은 병든 마음이 치유되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자유롭게 갈 수 있다. 정말이지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이시다. 진정한 치유는 주님과의 소통이다. 

건강한 삶은 건강한 소통이다. 소통은 다시금 존재의 가치를 일깨운다. 사람의 삶이란 관계가 회복되는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리는 사랑의 소통이다. 건강한 소통을 성찰하는 은총의 주일이다. 소통의 여정이 치유의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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