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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
21년 9월 1일 (수)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공동의 집인 지구를 돌보는 것에 관한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반포하면서 해마다 9월 1일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지내기로 했습니다. 이날 교회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의 의미를 묵상하고, 창조 질서를 파괴한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며, 생태계를 보호할 것을 다짐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 오늘 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콜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복음이 그들 안에서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다며 인사한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장모와 질병을 앓는 이들을 고쳐 주시고,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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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콜로 1장 1-8절
진리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다다라,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와 티모테오 형제가
2
콜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형제 신자들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3
우리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할 때면 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4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가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5
그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마련되어 있는 것에 대한 희망에 근거합니다. 이 희망은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통하여 이미 들은 것입니다.
6
이 복음은 여러분에게 다다라 여러분이 그 진리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듣고 깨달은 날부터, 온 세상에서 그러하듯이 여러분에게서도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7
여러분은 하느님의 그 은총을 우리가 사랑하는 동료 종 에파프라스에게 배웠습니다. 그는 여러분을 위하여 일하는 그리스도의 충실한 일꾼이며,
8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 준 사람입니다.
화답송
주님,
저는 영원히 당신 자애에
의지하나이다.
나는 하느님 집에서 자라는 푸른 올리브 나무. 길이길이 하느님 자애에 의지하리라. 주님, 저는 영원히 당신 자애에 의지하나이다.
주님이 하신 일, 저는 영원히 기리나이다. 당신께 충실한 이들 앞에서, 좋으신 당신 이름을 바라나이다. 주님, 저는 영원히 당신 자애에 의지하나이다.
복음
루카 4장 38-44절
나는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38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39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
41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시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2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4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44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주님의 식탁에서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이 성사의 힘으로 형제들을 사랑하며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평화방송 매일미사
21년 9월 1일 (수)
팔로티회 매일미사
21년 9월 1일 (수) 15시
명동성당 매일미사
21년 9월 1일 (수)
매일미사
신우식 토마스 신부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열병을 앓는 시몬의 장모를 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이 끝나는 저녁부터 많은 병자에게 손을 얹어 병을 고쳐 주시고, 마귀 들린 사람들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시어 그들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라고 전합니다.
예수님께 ‘외딴곳’은 지친 몸을 쉬게 하는 장소이고, 소외가 아닌 고독의 공간이며, 하느님 아버지를 찾아 만나시는 기도의 장소입니다. 인간의 구원사 안에 계신 성자께서는 ‘외딴곳’에서 성부와 사랑의 일치를 이루시며 성령과 함께 하나가 되십니다(루카 5,16; 마르 1,45 참조).
우리는 살면서 ‘좀 더 잘 할 걸.’이라며 스스로 책망하기도 하고, 인간 관계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에 쉽게 후회하며,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인 ‘외딴곳’이 아닌 ‘어두운 동굴’로 숨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걱정과 고민으로 어두운 동굴에 숨어 나오고 싶어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곳은 빛도 하느님도 없는 막다른 골목과 같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인 우리는 어려울 때일수록, 지칠 때일수록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를 찾아가야 합니다. 자신의 삶에서 하느님을 찾는 시간을 만들고, 하느님 안에서 숨 쉬고자 노력한다면,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복음의 홀씨들
오늘 주님께서는 병자들을 고쳐주고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 주시고 이에 사람들을 피해 외딴곳에 가서 기도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곳까지 찾아가 자기들과 함께 머물러 달라고 주님을 붙잡는데 이에 주님께서는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콜로새서를 시작하며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 복음은 여러분에게 다다라 여러분이 그 진리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듣고 깨달은 날부터, 온 세상에서 그러하듯이 여러분에게서도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오로 사도는 복음이 여러분에게 다다랐다고 하는데 한곳에 머물라고 붙잡는 것을 뿌리치며 주님께서 선포하신 그 복음이 마침내 콜로새까지 다다른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이 이 먼 곳까지 다다른 것과 주님께 대한 믿음과 이웃을 향한 사랑에 있어서 콜로새 신자들이 열매를 맺고 있음에 매우 흐믓이 여기며 하느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할 때면 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가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바오로 사도의 이 기분이랄까 느낌을 압니다. 30여 년 전 저는 프란치스칸 전통에 충실한 복음 선포를, 곧 순회 선교 공동체를 시작하기 위해 신안군 자은도에 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신안군 자은도로 가게 된 것은 알고서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당이 없는 곳 그러니까 복음에서 가장 먼 곳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당시 목포 북교당 성당 신부님께 전화하여 한 곳을 소개해달라고 해 갔지요.
그런데 목포에서 배를 타고 네 시간 가는 그곳에 도착해 보니 그 멀고도 외딴 곳에도 신자들이 이미 있는 것이 감격이었습니다.
이곳에까지 복음이 전해져 있다니! 누가 언제 민들레 홀씨처럼 이곳에 복음을 가져왔는지!
그렇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것은 복음의 홀씨였습니다.
그런데 홀씨는 자기가 목적하는 곳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자기 목적지가 따로 없고 바람 부는 대로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바람이 부는 대로 가는데 이때 홀씨가 지녀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디든지 가겠다는 의지와 열매를 맺고자 하는 원의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복음의 홀씨들이어야 합니다. 어디에 떨어지든지 거기서 복음의 열매를 맺는 홀씨들 말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의 홀씨들에게 또한 필요한 것은 순응성입니다. 순응성은 순종과 적응이 합친 말입니다.
더 붙어 있으려 하지 않고 바람이 불면 미련없이 떠나는 순응성, 어디에 떨어지든 거기에 적응하고자 하는 순응성과 적응하는 순응성입니다.
그러니 안주는 금물이고, 편견과 고집도 금물입니다.
아무튼, 순례자와 나그네들인 프란치스칸은 복음의 홀씨들임을 묵상하고 마음 새기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아침기도의 기적: 나는 아침마다 인생을 리셋 한다.
예수님께서는 온종일 병자를 치유하시고 악령을 쫓아내시는 복음선포를 하십니다. 이는 영적으로는 죄의 상처를 낫게 하시고 자아의 압제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시는 삶입니다.
그런데 새벽에는 밖으로 나가 외딴곳에서 혼자 머무십니다. 아침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이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지만, 예수님은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기도란 나를 주님께 봉헌하고 주님의 뜻을 받아 파견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세상에서 얻고 싶은 것을 청하는 것이 기도의 본질이 아닙니다. 기도는 나의 뜻을 십자가에 봉헌하여 주님의 뜻대로 파견받는 시간입니다.
“그러면 나의 삶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냐?”라며 두려워하실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 나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나의 삶’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학교에 갔다 오라고 했는데, 그러면 자기 삶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냐고 한탄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시지만, 또 그들을 떠나는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으십니다. 당신 자신을 하느님 뜻에 완전히 맡겨버리셨기 때문입니다.
나를 죽이고 하느님의 뜻대로 하루를 리셋(초기화) 하는 것이 오히려 내 힘으로 사는 것보다 얼마나 행복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 귀한 아침기도를 건너뛰게 만드는 것입니다.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의사 김범석 씨의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에서 ‘인생 리셋’이란 부분이 아침기도를 하고 나서 변화되는 것과 비슷해서 소개합니다.
김범석 의사는 롯데호텔로 빨리 가기 위해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 운전사는 백미러로 의사 선생님을 보더니 대번 “어? 김범석 선생님 아니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얼굴을 보니 이전에 자신의 환자였습니다.
5년 전 그는 폐암 4기인 환자의 보호자였고(아마 아버지?), 1년 뒤에는 자신이 ‘환자’가 되어 병원을 찾았습니다. 위암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고 흉선암 수술을 받았는데 그것이 재발하여 재수술과 항암을 했는데 다행히 완치되었던 것입니다.
택시 운전사는 차가 막히는 중에 자신이 죽는 줄 알았던 그때를 잘 통과하고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를 쉼 없이 이야기하였습니다. 첫째 친구가 정리된다. 암에 걸리니까 걱정하며 찾아와 고기를 사 주는 이도 있고 병원비에 보태라고 봉투를 건네는 이도 있었지만, 어떤 이들은 갑자기 연락이 안 되고 심지어 암 보험 작은 것을 들어놓았는데 그것을 어찌 알았는지 그 돈을 빌려달라는 놈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자녀에 대한 애착이 줄어든다.
아들이 둘이 있는데 품 안에 끼고 있을 때는 기대도 많았지만 이제는 결혼해서 아내에게 충실하라고 합니다. 결국, 아플 때 끝까지 지켜주는 사람은 아내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기대하지 않고, 오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는 생각으로 대했더니 오히려 애들이 아버지를 더 편하게 대한답니다.
셋째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된다.
“저는 이미 4년 전에 죽은 목숨이었어요. 그때 좋은 선생님들 만나서 수술받고 방사선 치료받고 항암 치료받아서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 거죠. 선생님들 아니었으면 이미 제삿밥 세 번은 먹었을 거예요. 저는 복이 많아서 좋은 선생님 많이 만났어요. 선생님들 시간 뺏을까 봐 외래에 가도 그냥 빨리 나와요. (중략) 저야 이제 특별히 아픈 데 없으니 검사 결과 괜찮다고 하면 ‘감사합니다.’ 하고 나와요. 밥 잘 먹고 안 아프고 검사 결과 괜찮다는데 더 물어볼 것도 없고요.”
넷째 삶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어차피 죽은 목숨인데 죽은 사람이 귀신처럼 다니는 거로 생각하니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끼어드는 차가 있어도 이전과는 다르게 “그래라!” 하고 그냥 보내줍니다. 운전한다고 하대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 나이까지 돈을 벌 수 있는 게 어딘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소풍 다니는 듯이 일을 나오니, 한 달에 200 정도 아내에게 가져다주고 절대 무리를 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빈둥대지 않고 삼식이를 면하고 아내에게 월급봉투 가져다주는 게 아내도 고맙다고 합니다.
제사도 없앴다고 합니다.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들이 더 중요하니 아이들 부담 주지 않고 명절에는 가족여행을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녀들이 명절 때 더 열심히 온다고 합니다.
“암 걸리고 나서 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죠. 선생님, 고맙습니다. 암 치료 잘해주셔서 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우리 아들놈이 그러더라고요, 아버지 인생이 리셋 된 것 같다고. 허허.”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김범석 선생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대한민국 최고라 불리는 대학을 졸업했고 나름 의사로서 인정받고 있으며 교수라는 안정된 지위를 가지고 있는데도, 지금 자신은 많이 배운 것 같지 않고 암 수술도 세 번을 한 택시 운전사를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공부하느라 아버지 임종도 지키지 못했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씁니다.
“인생 리셋이라... 그와 인사를 나누고 택시에서 내려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전자제품에 리셋 버튼이 있듯이 가끔 우리 인생에도 리셋 버튼이 있으면 좋겠다고. 인생이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이 버튼을 누르고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아주 잘 살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앞으로 달려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왜 사는지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덤으로 여기며 오늘 하루 타인을 더 배려하며 살려는 마음을 자주 되새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오늘의 삶이 덤이 되려면 나는 어제 죽었을 수도 있다고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아침기도 때 나 자신을 주님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루가 새롭게 주어진 추가의 삶이 됩니다. 그러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달리는 삶이 아닌 사랑 하라고 파견받는 삶이 됩니다. 죽음을 잊으니 삶도 잊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기적의 리셋이 매일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 아침입니다. 새벽이면 더 좋습니다. 기도는 나 자신을 십자가에 봉헌하고 주님께서 나 대신 살라고 나를 내어드리는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시는 과정에 새벽 기도가 빠지지 않고 복음서에 등장하는 것은 아침기도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주님의 기도로 30분 정도 나 자신을 봉헌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입니다. 정 시간이 안 된다면 출근하면서 해도 좋습니다. 아침기도의 인생 리셋의 행복을 모두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빵이 없으면 케이크 먹으면 되지.
1789년 7월 14일부터 1794년 7월 28일에 걸쳐 일어난 프랑스의 시민혁명을 아실 것입니다. 불평등한 사회체제를 전복시켜 민중의 사회 개혁을 이루게 되었지요. 그런데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는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 루이 16세 왕의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무지였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파리의 빵값 폭등으로 “빵을 달라.”고 외치는 시민을 향해 “빵이 없으면 케이크 먹으면 되지.”라고 말했다고 사람들은 더욱 화가 나서 들고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녀가 이 말을 직접 한 것은 아니라고 역사학자들은 말합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왕비의 무지를 부풀려 혁명의 당위성을 펼친 것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가난에 대해 전혀 몰랐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남을 이해하는 것은 그를 알고 그의 뜻을 실천할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또 그 뜻을 실천할 것처럼 말하는 것은 거짓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의 왕족과 귀족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은 시민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기 때문에 그 분노가 세상에 드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말로만 이해한다고 했던 것이 아닐까요? 또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실천하기보다는 나의 욕심을 채우는 데 더 집중했던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에서 시몬의 장모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마귀들이 예수님을 향해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분명히 맞는 말입니다. 전혀 거짓이 없는 완벽한 진실입니다. 이렇게 진실을 말하는 마귀에 대해 예수님의 행동은 이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시며 그들의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고백하면서 마치 마귀가 예수님을 이해하고 함께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마귀는 예수님을 이해하고 함께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요. 단지 이렇게 말함으로 인해 마귀와 예수님이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처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다가오지 못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함께 하지 않고, 그 뜻을 실천도 하지 않는 사람은 마귀와 같은 모습입니다. 서로를 이해하는 세상이 될 때, 마귀의 유혹에서 벗어나 진정한 사랑으로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무엇이든 제대로 보려면 거리를 두어야 한다.
- 데이비드 소로
감사할 일이 너무 많아요.
신부로 살아서 다행스러운 점은 비싼 옷을 입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체로 사제관에 상주하고 있는 데다가, 엄격한 복장 규정이 요구되는 곳에 가더라도 별걱정이 없습니다. 사제들이 입는 클러지셔츠에 검은 양복만 걸치면 최고의 정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검정 양복에 어떤 장식을 할 수도 없으니 늘 똑같습니다. 그래서 옷 입는 감각이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아니 일부러 옷 입는 감각을 키워서 차려입으면 이상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옷뿐이 아닙니다. 지금을 사는데 감사할 일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감사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기보다는 불평불만에만 집중했을 때가 더 많았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걱정할 것도 아니고 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불평거리만 계속 만들며 힘들게 사는 우리가 아닐까요?.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만남은 복음이 되는 시작이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루카 4, 43)
기쁨과 슬픔이 어우러지는 우리들 삶이다. 어우러지기에 아름다운 계절의 변화이며 새로운 첫날의 시작이다. 하느님께서 주신 오늘이다. 기쁜 소식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오늘이다. 주님께서 복음의 씨앗을 먼저 뿌리시고 기쁨으로 열매를 거두어들이신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쁘게 봉사하신다. 기쁘게 봉사하시는 오늘을 만난다. 만남과 봉사는 예수님의 빛나는 일상이다. 예수님께서는 있어야 할 자리 가셔야 할 자리와 하셔야 할 일들을 너무나 잘 아신다.
버림받은 우리들 삶속으로 들어오신다. 우리의 마음을 읽어주신다. 우리를 기쁘게 위할 줄 아시는 주님이시다. 가까운 이웃이 되시어 마음을 나누시고 지혜를 나누어 주신다. 나눔이 참된 복음이다. 아픈 현실을 함께 나누시며 견디어주신다.
함께하시는 복음을 통해 우리 생활 속에 진리가 있음을 깨닫게된다. 어우러지는 것이 우리들 삶이고 참된 기쁨이다. 우리들또한 누군가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마음이길 기도드린다. 우리의 만남은 어떠한가? 만남은 복음이 되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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