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이사 65,17-21
다시는 우는 소리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리라. - 복음
요한 4,43-54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이사 65,17-21

다시는 우는 소리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리라.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7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
18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대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움’으로, 그 백성을 ‘기쁨’으로 창조하리라.
19 나는 예루살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나의 백성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 그 안에서 다시는 우는 소리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리라.
20 거기에는 며칠 살지 못하고 죽는 아기도 없고 제 수명을 채우지 못하는 노인도 없으리라. 백 살에 죽는 자를 젊었다 하고 백 살에 못 미친 자를 저주받았다 하리라.
21 그들은 집을 지어 그 안에서 살고 포도밭을 가꾸어 그 열매를 먹으리라.”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요한 4,43-54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를
43 떠나 갈릴래아로 가셨다.
44 예수님께서는 친히,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증언하신 적이 있다.
45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가시자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분을 맞아들였다. 그들도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님께서 축제 때에 그곳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다.
46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적이 있는 갈릴래아 카나로 다시 가셨다. 거기에 왕실 관리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카파르나움에서 앓아누워 있었다.
47 그는 예수님께서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 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시어 아들을 고쳐 주십사고 청하였다.
48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49 그래도 그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51 그가 내려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마주 와서 아이가 살아났다고 말하였다.
52 그래서 그가 종들에게 아이가 나아지기 시작한 시간을 묻자, “어제 오후 한 시에 열이 떨어졌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53 그 아버지는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
5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시어 두 번째 표징을 일으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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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형 베드로 신부
타버린 숲에서 시작된 새 생명
지난해 3월 유례없는 산불로 안동교구의 여러 지역이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아름답던 자연과 삶의 자리를 집어삼킨 화마는 쉽게 치유될 수 없는 흉터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바라보면 절망스럽기만 한 검게 타 버린 숲이 한 걸음씩 다가갈수록 뜻밖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푸른 희망입니다. 숯처럼 그을린 숲 바닥 사이로 새싹이 조용히 고개를 들고, 죽어 버린 듯한 숲은 생명의 숨을 들이켜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복구하기보다 자연의 회복력을 믿고 기다릴 때, 숲은 스스로 되살아날 뿐만 아니라 생명 또한 더욱 다양해진다고 합니다.
자연스러움이란 결국 하느님을 믿고 그분께 우리 자신을 내맡기는 것입니다. 우리와 하느님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때로 우리에게 단호히 경고하시지만, 그 엄중함 뒤로 오늘 복음의 왕실 관리처럼, 당신을 향한 믿음으로 내맡기는 이들에게 새로운 회복을 위한 희망과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마음을 돌려 그분께 돌아갈 때, 하느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펼쳐 주십니다. 상처로 얼룩진 자리 위에 새 생명을 일으키시고, 고통 속에서 울부짖던 이들에게 잔잔한 기쁨을 선물처럼 내려 주십니다. 이는 심판이 목적이 아니라, 결국 우리를 살리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깊은 마음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우리 일상에도 마음이 재처럼 타들어 가는 때가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터널 속에서 견뎌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자연스럽게 하느님께 내맡겨야 할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신 그분께서 우리가 변할 수 있도록,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든든히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느님께서 우리를 재창조하시겠다는데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
오늘 이사야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겠다고 하시는데 저는 이 말씀이 노아의 홍수 때처럼 지금의 하늘과 땅을 싹 없애버리시고 새로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겠다는 말씀이 아니라 지금의 하늘과 땅을 새롭게 하시겠다는 곧 쇄신하시겠다는 말씀일 것이라고 알아들었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우리 존재를 영원히 없애버리시고 새로운 인간들을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를 새로운 존재로 만드시겠다는 말씀이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의 이 창조 작업 또는 쇄신 작업을 구원 행위로 생각하고 감사드리며 이 재창조 작업에 기꺼이 호응할까요?
저는 미사를 드리고 감사송을 바칠 때마다 우리가 하느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 많고도 많지만 간추리면 두 가지라고, 곧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과 구원하신 것이라고 생각하며 감사드립니다.
그렇지요. 예를 들어 어미가 나를 낳기만 하고 버려버렸다면 그래서 지금 내가 너무 고통스럽고 불행하다면 나는 내가 태어난 날을 욥처럼 저주할 것이고, 고통에 빠트리고 구해주지 않은 어미에게 결코 감사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만 하시고 구원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창조에 대해서도 감사는커녕 원망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주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시겠다는 말씀을 우리의 구원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계속하시겠다는 말씀으로 알아들어야 오늘 주님 말씀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서는 재창조하시겠다고 하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대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재창조하시는 것을 우리가 구원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래서 기뻐하고 즐거워했다면 이 말씀을 굳이 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재창조 곧 쇄신이란 고통스러운 것이고,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 곧 죽었다가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파스카입니다.
우리가 새사람이 되는 것은 좋지만 그 과정과 그 작업까지 좋겠습니까? 새사람이 되기 위해서 옛사람이 죽어야 하는데, 그래서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이 목숨을 얻게 될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새로운 목숨을 얻기 위해 자기 목숨을 잃는 이 재창조를 우리는 과연 기뻐하고 즐거워하겠는지 성찰케 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새 하늘 새 땅의 창조에 대한 희망과 기쁨의 메시지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드러내는 일련의 ‘표징’과 ‘증거들’, 곧 일곱 개의 표징과 일곱 개의 예수님의 자기 선언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요한복음>에서 ‘표징’이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과 신성을 증거 하는 ‘하느님의 계시가 구체화 된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모두 예수님의 파스카에 집결되어 있고, 우리는 지금 파스카를 향하여 나아가는 ‘사순시기’의 한 가운데 이르렀습니다.
이제, 전례주년은 ‘기쁨주일’이 지나고, 십자가의 수난이 다가올수록 새로운 창조에 대한 희망의 빛을 점점 더 밝게 비추어줍니다.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새 하늘 새 땅의 창조에 대한 희망과 기쁨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복음>은 갈릴래아의 카나에서 행하신 ‘두 번째 표징’, 곧 왕실관리의 아들을 살리신 표징입니다. 아픈 아들 때문에 절망에 빠져있던 왕실관리가 예수님에게 희망을 걸고 기쁨을 찾은 이야기입니다.
“자기 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시어 아들을 고쳐 주십사고 청하는”(요한 4,47 참조) 그에게 예수님께서 이르십니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요한 4,48)
사실, 왕실관리가 예수님을 찾아와 도움을 청한 것은 그의 희망과 믿음의 표시였지만, 그의 믿음은 불완전했던 것입니다. 그는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요한 4,49)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집에까지 가야만 치유하실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께서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요한 4,50)라고 말씀하시자, 그는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종들이 와서 아들이 나은 소식을 알려 주었을 때는 그 “표징과 이적을 보고서” 온전히 믿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병든 아들의 치유만이 아니라, 마음이 병든 아버지도 치유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한 말씀으로 두 영혼을 치유하셨습니다. 비록 그의 믿음이 불완전할지라도 결코 하찮게 여기지 않으신 것입니다. 비록 겨자씨만한 믿음일지라도 그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그러니 왕실관리 아들을 살리신 이 ‘두 번째 표징’은 믿는 이들에게는 확증을 주며, 믿음이 약한 이들에게는 믿음을 굳게 하며,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믿게 합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신성과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4,48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주님!
믿음이 부족하오니
도와주소서.
보고도 믿지 못하는
불신을 몰아내소서.
의혹하고 믿지 못하는
병든 마음을 치유하소서.
사랑받고도 사랑하지 못하는
완고함을 몰아내소서.
제 삶이 믿음과 사랑의
표징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우리의 모든 성장은 순종의 믿음으로 일으키는 기적입니다.
오늘은 사순 제4주간 월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왕실 관리 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는 처음엔 예수님께 "내려오셔서 제 아이를 고쳐 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즉, 자신의 '치료 시나리오'를 가지고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가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계획을 단칼에 거부하시며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요한 4,50)
여기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관리는 자기 고집을 꺾고 "그 말씀을 믿고 떠나갔습니다." 자신의 내비게이션을 끄고 주님의 경로를 무작정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 결과는 아들의 치유뿐만 아니라 '온 집안의 구원'이었습니다.
성장은 '나'의 능력이 아니라 '타자'의 믿음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걷고, 말하고, 글을 읽는 것까지 사실 그 어느 것 하나 우리 스스로의 능력으로 성취한 것이 없습니다. 아기가 네 발로 기다가 두 발로 일어서는 것은 "너는 인간이다. 그러니 일어설 수 있다"라는 부모의 절대적인 믿음과 그 모델을 무작정 수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기적'입니다. 성장은 내 이성을 뛰어넘는 순종을 통하여 기적을 체험하는 삶의 연속입니다.
저 역시 사제가 되려는 마음을 가지기 전에는 나의 행복을 위한 장대한 꿈과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사.시.’를 읽으니 그저 ‘순종하라!’였습니다. 그 길로 순종을 선택했을 때, 후회 없는 삶이 이어졌습니다. 제 주위에 믿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성장은 이렇게 계속됩니다.
왜 하느님은 순종으로 성장하도록 인간을 만드셨을까요? 순종으로 성장할 필요가 없는 존재는 오직 처음부터 완전한 신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인간이 저절로 존재하는 존재가 아닌 이상, 인간의 성장은 나보다 더 큰 힘과 지혜를 지닌 분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이뤄집니다.
제가 테니스를 배울 때 정식으로 레슨을 받지 않고 제 마음대로 쳤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올라왔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테니스 자세의 지혜가 있습니다. 그것에 순종하지 않고서는 더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피조물입니다. 기적은 별 게 아닙니다. 그저 더 높은 수준의 분께 순종함으로써 나의 성장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기던 아이가 걷는 것은 벌써 기적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이 기적의 원리를 잊습니다. 다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니체처럼 '신은 죽었다'고 하며 스스로 성장하고 자기를 초워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니체의 말년을 보십시오. 그는 자신의 정신조차 통제하지 못한 채 비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성장은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며 더 큰 힘의 명령에 순종함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전문가일수록 자기 감각보다 매뉴얼에 순종해야 합니다.
1999년 7월 16일, 전 미국 대통령의 아들이자 촉망받던 법조인이었던 존 F. 케네디 주니어는 경비행기를 직접 몰고 가다 대서양에 추락하여 사망했습니다. 사고 원인은 '공간 정위 상실'(Spatial Disorientation)이었습니다. 야간 비행 중 짙은 안개 속에 갇히자 그의 몸은 비행기가 수평이라고 느꼈지만, 실제로는 바다를 향해 급강하하고 있었습니다.
비행기 매뉴얼은 단호하게 가르칩니다. "당신의 몸이 느끼는 수평을 믿지 말고, 오직 계기판(말씀)의 수치를 믿으라." 하지만 그는 계기판이라는 말씀보다 자신의 감각이라는 생각을 믿었습니다. 비행기의 자세 지시계는 비행기가 기울어졌다고 경고하고 있었으나, 그는 자기 몸의 감각을 따라 조종간을 움직였습니다. 그 결과 비행기는 그대로 바다로 처박히고 말았습니다.
자기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는 교만은 자기만이 아닌 자녀들과 주위 사람들에게 성장의 믿음을 제공할 기회마저 잊게 만듭니다. 농부처럼 겸손해져야 합니다.
일본 아오모리현의 농부 기무라 아키노리 씨는 세계 최초로 무농약, 무비료 사과 재배에 성공한 인물입니다. 그는 아내의 건강을 위해 이 불가능한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지식과 노력을 다 쏟아부었음에도 8년 동안 사과나무는 꽃조차 피우지 않았고, 그는 이웃들에게 '미친놈'이라 불리며 파산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절망 끝에 산에 올라가 자살을 시도하려던 그는 잡초 속에서 스스로 자라나는 도토리나무를 보고 큰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는 훗날 자신의 저서 『기적의 사과』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사과나무가 자라게 하는 주인이 아니라, 그저 사과나무를 돕는 시종일 뿐이었구나! 사과나무가 자라는 힘은 내 지식이 아니라 흙에 있었다." 그는 사과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게 사죄하며 하늘과 땅과 식물의 본성에 순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9년째 되던 해, 기적처럼 온 산이 하얀 사과꽃으로 덮였습니다. 그의 사과는 썰어두어도 수개월 동안 썩지 않고 그저 시들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녀에게 물려줄 가장 시급한 순종이 무엇일까요? 뭐니 뭐니 해도 저는 십일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십일조를 제가 내 보고 체험을 했고, 주위에도 많이 알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따라한 이들은 지금도 기적을 체험하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그 기적을 증언합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 시종들을 보십시오. 술이 떨어진 자리에 물을 채우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신 성모님의 말씀에 따라 무작정 순종했습니다. 그들이 자기 생각을 섞지 않고 물을 아구까지 채웠을 때, 물이 포도주가 되는 우주적인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성장은 내가 애써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 더 큰 힘에 나를 내어맡길 때 주어지는 기적의 선물입니다. 피조물은 다 이 법칙을 따라 성장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미 성장 과정에서 순종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다 컸다고 그것이 끝나겠습니까? 우리는 죽기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면 죽기까지 순종해야 할 말씀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 왕실 관리처럼, 우리가 말씀에 무작정 순종할 때, 우리는 단순히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살리는 '실로암의 빛'이 됩니다. 이번 사순 시기, 내 생각의 조종간을 주님께 내어드리고 말씀의 경로대로 당당히 걸어가는 기적의 주인공들이 되시길 빕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헛된 공상일까요? 아닙니다. 뇌과학에서 이를 실제로 증명했습니다. 연구 결과, 우리 뇌는 생생한 상상과 실제 경험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상상하는 순간, 뇌는 그것을 이미 겪은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이 중요했습니다. 특히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지금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되는 것, 갑자기 뛰어난 능력이 발휘되어 이 세상의 영웅이 되는 것, 돈벼락을 맞게 된다는 것 등등…. 그러나 불가능한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은 스스로 믿지 못합니다.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되면 참 좋을 텐데’ 정도 일뿐입니다.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실제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뇌과학자들은 말합니다. 이루어질 수 있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미래를 바라보고 있어야 더 집중해서 지금을 살 것이고, 그 결과 실제로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복음에 왕실 관리가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왕실 관리는 고위 공직자로, 세상의 부와 명예, 권력을 모두 쥐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이 세속적 권력이 인간의 궁극적 문제인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 핵심은 아들의 치유라는 기적일까요? 아닙니다. 그보다 왕실 관리의 믿음이 진화하는 과정입니다.
그는 처음에 소문을 듣고 찾아옵니다. 예수님을 알아서가 아니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부모의 절박함에서 나온 믿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요한 4,48)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에 왕실 관리가 상처받고 돌아섰을까요? 아닙니다. 체면을 버리고 다시 매달리며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요한 4,49)라고 말합니다. 이제 그의 믿음이 기적에서 주님과의 관계로 바뀝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에 동행하지 않고 단지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요한 4,50)라고 말합니다.
관리의 지위라면 억지로라도 끌고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갑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가 전혀 없음에도, 오직 말씀만으로도 믿는 변화를 보여줍니다. 말씀을 듣고 생각을 주님께 맞춘 것입니다. 그 결과는 아들의 치유였습니다.
이제 그의 믿음은 아들을 살려주신 주님께 대한 믿음을 넘어,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는 공동체의 신앙으로 확장됩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말씀만으로 믿음을 갖기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의 생각을 주님께 맞춰야 합니다. 이 왕실 관리와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신이시여,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평온함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용기를 주소서.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할 지혜를 주소서(라인홀드 니부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은 곧 자신의 고통이 됩니다. 말씀은 생명을 살리는 힘이 됩니다. 말씀을 품고 삶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 삶의 진정한 가치들은 행동 속에서 실현됩니다.
삶의 본질은 기적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신뢰하며 길을 떠나는 신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적 자체보다 믿음의 성숙을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신앙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점차 깊어지는 관계입니다. 예수님을 신뢰하는 관계적 행위가 맡기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모든 결과는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의 뜻을 신뢰하고 맡길 때 시작되는 우리의 평화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기적을 본 뒤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믿고 길을 떠나는 순간 이미 시작됩니다.
사순은 믿음의 길을 가리킵니다. 믿음은 결과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 길 위에 사랑하는 사람과 우리가 있습니다. 고통을 품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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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65장 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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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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