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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11/16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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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재앙이 아니라 평화를 주노라. 나를 부르면 너희 기도를 들어 주고, 사로잡힌 너희를 모든 곳에서 데려오리라.

주 하느님, 저희를 도와주시어 언제나 모든 선의 근원이신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 섬기며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11월 16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11월 1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33주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11월 16일 연중 제33주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말라 3,19-20ㄴ)
    너희에게 의로움의 태양이 떠오르리라.

  • 제 2독서
    (2테살 3,7-12)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

  • 오늘 복음
    (루카 21,5-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말라 3,19-20ㄴ
오늘 제1독서

너희에게 의로움의 태양이 떠오르리라.

19 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검불이 되리니 다가오는 그날이 그들을 불살라 버리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날은 그들에게 뿌리도 가지도 남겨 두지 않으리라. 

20 그러나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

 

 

 

2테살 3,7-12
오늘 제2독서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

형제 여러분, 

7 우리를 어떻게 본받아야 하는지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무질서하게 살지 않았고, 

8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9 우리에게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0 사실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 

11 그런데 듣자 하니, 여러분 가운데에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일에 참견만 하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12 그러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시하고 권고합니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루카 21,5-19
오늘 복음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그때에 

5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6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7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8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9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10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12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1월 16일
박기석 사도요한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13:18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바로가기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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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김동희 모세 신부

사랑할 기회를 놓치지 마라.

몇 년 전 교우들과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로(루카 16,19-31 참조) 복음 나눔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교우 한 분이 이 둘의 관계를 ‘구원의 파트너’라고 하면서, 그렇지만 서로 그 구원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나눔을 하였습니다.

저도 크게 공감하였습니다. 라자로는 하느님께서 부자에게 보내신 구세주였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였던 라자로를 외면하였습니다. 

부자가 라자로의 비참한 상황에 마음을 열고 다가가 최소한의 도움이라도 주었다면, 라자로는 위로를 받고 부자는 이기적인 무관심의 감옥에서 해방되어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며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구원의 파트너’를 알아보지 못하고 외면하였습니다. 비유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둘 사이에 커다란 구렁이 가로놓여 있다고 하면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외면한 결과가 얼마나 엄중한지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오늘 교회는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지냅니다. 2007년 농촌 지역의 자그마한 본당에 주임 신부로 있을 때였습니다. 11월에 추수 감사 미사를 드렸는데 들어온 곡식이 풍성하였고, 제대 앞을 온갖 곡식(쌀, 콩, 들깨 등)과 커다란 호박으로 꾸몄습니다. 헌금도 평소 주일 헌금의 세 배나 들어왔습니다.

그날의 헌금을 지역 내 무의탁 노인 시설과 장애인 시설에, 그리고 암으로 투병하시는 할머니에게 전달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바로 우리 마음을 바꾸어 줄 예수님이라는 것을, 사람은 받을 때보다 줄 때가 만 배는 더 행복하다는 것을.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느님의 때에 순명하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코헬렛서는 때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부술 때가 있고 지을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  

이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듭니까? 일희일비(一喜一悲)할 것 없다는 곧 기쁘다고 너무 기뻐할 것도 없고 슬프다고 너무 슬퍼할 것 없다는, 그런 생각이나 마음 곧 평상심(平常心)이 들지 않습니까? 오늘 주님께서도 모든 것이 허물어지고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될 때, 그리고 그때를 이용하여 사람을 현혹하며 자기를 따르라고 할 때 속지도 말고 그들을 절대로 따라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든 일에 때가 있다는 코헬렛의 지혜처럼 허물어질 때 그러려니 해야 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가을에 나뭇잎들이 떨어지는 것을 볼 때 그러려니 하거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야지 슬퍼하거나 분노해서는 안 됩니다.  

슬플 때가 되어 슬플 수밖에 없는 것인데도 슬픈 일에 대해 슬퍼하고 분노한다면 그것은 때에 순종치 않는 것이요 신앙적으론 하느님의 때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해가 저물 때가 되었는데 저물기를 거부하면 되겠습니까? 가을이 깊었는데 나뭇잎이 떨어지길 거부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아흔아홉 살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팔팔하기를 바란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전에 말씀드렸듯이 아무리 움켜쥐어도 주먹 속의 모래알이 빠져나가듯 건강은 나빠지기 마련이고 힘도 빠지기 마련이며 그것이 정상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세월의 명령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하느님의 명령입니다.  

생기라는 하느님 명령에 순명하여 생겨난 것이 생명이라면 이제 없어지라는 명령에 순명하여 떠나는 것이 죽음입니다. 하느님 명령이 이렇게 지엄한데 그 말씀에 순종치 않고 만병통치약이 있다는 약장수 말을 따라 가면 안 되겠지요.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는 속지 말고 따라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우리는 주님 추종자이고 주님만을 따릅니다. 주님만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께로 이끄시는 길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뭘 해야 하는지 묻는 부자 청년에게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주고 당신을 따르면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주님 말씀하셨는데도 그것이 싫어, 아니 세상이 너무 좋아 주님 따르길 거부한 부자 청년이 바로 내가 아닐까요? 그것을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재림을 기다리는 이들의 세 가지 길

오늘은 연중 33 주일입니다. 

우리는 지금 가을의 끝자락에 와 있으며, 전례주년으로 연중시기의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오늘 <말씀전례>의 주제도 세상의 끝자락에 대한 말씀입니다. 교회는 영광중에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마지막 “오심”을 드러내주는 징표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주님의 날’에 있을 의로운 이들의 승리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거만한 이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검불이 되리니, 다가오는 그날이 그들을 불살라버리리라. ~그러나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말라 3,19-20)

‘불’이라는 상징은 정화시키는 동시에 구분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검불’은 불 속에서 타서 재가 되는 반면, ‘금’은 불 속에서 더욱 빛나게 단련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같은 불꽃이 의인에게는 축복의 표지가 되고, 악인에게는 저주의 상징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루카 21,7)하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때에 일어날 징표와 함께 3가지 지침을 주십니다. 

<첫째>는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루카 21,8)고 하십니다.

‘자신이 그리스도다’라고 말하거나 혹은 ‘때가 가까웠다’고 말하는 거짓 예언자들에게 속지 말고, 그들의 뒤를 따르는 어리석음에 빠지지도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사이비 메시아는 누구일까? 그것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물질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남에게도 속지 말아야 하겠지만, 재물에게도 속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속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사실 우리는 자신을 속이기도 하고, 자신에게 속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곧 자기 자신이나 재물이라는 물신을 사이비 구세주로 따르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아야 할 일입니다.

사도 바오로도 <티모테오 전서>에서 말합니다.

“그대 자신을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그대의 가르침의 내용을 잘 살피시오. 이렇게 꾸준히 일을 해 나가면, 그대 자신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그대의 말을 듣는 사람들을 모두 구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1티모 4,16) 

<둘째>는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루카 21,14)고 하십니다. 

그때가 오면,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박해당할 것이고, 그때에 그 어떤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주겠다고 하십니다. 당신께서는 증언하는 제자들과 함께 계시며 적대자들의 입을 막아주실 것이니, 당신께 의탁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그때야말로 ‘복음’을 증언할 때임을 깨우쳐줍니다. 곧 박해가 오히려 증언할 기회가 될 것임을 깨우쳐줍니다. 그러니 우리가 박해를 당하게 되면, 오히려 하느님의 능력과 현존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박해를 당하면, 오히려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곧 우리가 박해를 통하여 오히려 굳세어지고, 새로워지게 될 것입니다. 가장 위기의 순간이 사실은 가장 좋은 기회의 순간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셋째>로는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9)고 하십니다. 

사실, 박해받을 때보다도 견디기 힘든 일은 아마 배신당할 때일 것입니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 가장 믿는 사람,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거부되고 배신당하게 되면, 참으로 견디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루카 21,16)하시면서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루카 21,17)라고 하십니다.

이는 보호해주고 지켜주시겠다는 말씀이요, 당신 이름 때문에 배척받고 배신당하고 죽게 된다 하더라도 그 죽음을 넘어서는 영생을 주시겠다는 말씀이요, 바로 당신이 생명을 주시는 주님이시라는 말씀이요, 그러니 지금 당신께 희망을 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재림은 현재를 충실히 살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9)

한편,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도래가 임박했음을 구실 삼아 현실의 삶을 무질서하게 살려고 했던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말합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 ~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2테살 3,1-12) 

이처럼,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기다리는 사람의 자세는 오시는 그분께 희망과 믿음을 두고 오늘 지금의 삶에 충실 하는 것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21,17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주님!
고난과 시련이 
당신을 증언할 
기회가 되게 하소서.

그 속에서 
당신의 능력과 현존을 
체험하게 하소서.

오히려 굳세어지고 
새로워지게 하소서.

바로 그 순간이 
위기의 순간이 아니라
기회의 순간이 되게 하소서.

그 어떤 미움도 배척도 
당신과 함께 받고
당신의 영광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인류 멸망 공식 : ‘이것’이 사라질 때…

찬미 예수님

세상은 어떻게 멸망할까요? 혜성이나 운석의 충돌일까요? 아니면 지금 많은 영화에서 보여주듯, 외계인의 침공일까요?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 인류는 '자멸'할 것입니다. 만약 외계인이 존재하고, 그들이 은하계를 여행할 만큼 엄청난 기술력을 가졌다면, 그들은 지구를 침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분명 '사랑이 가득한' 종족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만 광년을 여행하는 기술력은 상상할 수 없는 '인내심'을 요구합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이며, 그 의지의 다른 이름이 바로 '인내'입니다. 기술이 발달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사랑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편안한 기술은, 그 사랑의 뿌리가 되는 '인내심'을 말살시키기 때문입니다.

1968년, 미국의 동물행동학자 존 칼훈은 '유니버스 25'라는 이름의 충격적인 사회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는 쥐들에게 완벽한 유토피아를 제공했습니다. 넉넉한 공간, 무제한의 먹이와 물, 천적도 없고 질병도 없는 완벽한 환경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낙원을 즐겼습니다. 하지만 개체 수가 2,200마리를 넘어서자, 이상 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수컷들은 경쟁과 구애를 포기했습니다. 그들은 암컷을 지키거나 둥지를 방어하는 '인내'를 버리고, 그저 제 몸만 치장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이들을 '뷰티풀 원스(The Beautiful Ones)'라고 불렀습니다.

어미들은 새끼 낳는 것을 멈추거나, 낳아도 돌보지 않고 내버렸습니다. 결국, 단 2년 만에 이 완벽한 유토피아는 저출산과 무관심, 폭력으로 가득 찬 지옥으로 변했고, 마지막 쥐가 죽으며 완벽하게 '멸망'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먹고사는 문제, 즉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자, 그 어떤 것도 '인내'하며 이뤄내야 할 의욕과 이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어찌 쥐들만의 이야기이겠습니까? 제가 아일랜드에 갔을 때, 뼈아픈 역사의 아이러니를 목격했습니다. 아일랜드는 수백 년간 영국의 성공회로부터 그토록 잔인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인내'로써 가톨릭 신앙을 지켜낸 나라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목숨과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켈틱 타이거'라 불리는 경제 부흥이 일어나, 아일랜드의 1인당 GDP가 그토록 억압했던 영국을 추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박해 속에서도 지켜낸 신앙을, 풍요 속에서 스스로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잘살게 되자, 더 이상 하느님께 매달리며 인내할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제가 본 아일랜드의 텅 빈 성당들은, '유니버스 25'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세계 최고의 인터넷 속도, 세계 최고 수준의 생활 환경. 우리는 역사상 가장 살기 좋은 유토피아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세계 1위의 저출산율입니다. '유니버스 25'의 쥐들처럼, 많은 청년이 결혼과 출산이라는 '인내'의 과정을 거부합니다. "며칠만 일해서 나 혼자 편하게 살면 되지, 왜 굳이 힘든 길을 가야 하는가?"라고 묻습니다.

이런 환경은 우리의 뇌 구조마저 바꾸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튜브 영상이 3분만 길어져도 참지 못하고, 10초 안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쇼츠'에 중독됩니다. 1초도 참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도파민 중독 상황에서, 두꺼운 책을 '인내'하며 읽는 사람은 신기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종말의 징조로 전쟁과 지진, 기아와 혼란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혼란은 단순히 못 살아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더 잘살게 되면서, 더 많이 가지려는 탐욕과 더 빨리 즐기려는 조급함 속에서 더 큰 전쟁과 혼란이 벌어집니다. 이 모든 '유니버스 25'의 멸망 징조 속에서,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단 하나의 해법을 주십니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루카 21,19)

예전에는 먹고살기 위해, 즉 '나를 이기는'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인내는 다릅니다. 유재석 씨나 박진영 씨처럼,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 매일 자신과 싸우는 그런 '적극적인 인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구원을 위해 무엇을 인내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사도 바오로를 통해 그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1테살 5,16-18)

이 세 가지를 '죽기까지' 인내하는 것이 우리가 얻어야 할 생명의 길입니다.

첫째, 매일 기도할 시간을 정해서 '인내'하며 바치는 것입니다.

둘째, 매일 감사 일기를 쓰며 억지로라도 감사할 거리를 찾는 '인내'입니다.

셋째, 내 감정이 어떠하든 '기뻐하기로' 선택하는 '인내'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이기적인 본성과의 싸움입니다. 아기가 걷기 위해 2,000번 넘게 엉덩방아를 찧고도 다시 일어나는 것처럼, 우리도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의지', 곧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고해성사'가 필수적입니다. 누군가 미워져서 기쁨과 감사를 잃었을 때, 고해성사를 보고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인내가 없으면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인내는 반드시 생명을 가져옵니다.

첫째, '기도'의 인내는 생명을 줍니다. 아들의 살인범 유영철을 용서하기 위해, 고정원 씨가 수년 동안 "그를 용서하게 해 달라"고 끊임없이, '인내하며' 기도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 불가능해 보였던 기도의 인내가 결국 그녀의 영혼에 참된 평화라는 생명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제가 성체조배를 매일 1시간씩 하라고 해서 그것을 의지적으로 하여 여러 기적같은 일들이 일어났던 것을 봅니다. 그 인내가 자신과 자녀와 가족의 생명을 살렸습니다.

둘째, '감사'의 인내는 기적을 만듭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중 한 명인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를 이겨낸 힘이 매일 밤 '감사 일기'를 쓴 인내에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녀는 잠들기 전, 억지로라도 5가지 감사한 일을 찾아 적었습니다. 이 '인내'하는 습관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시선이 되었고, 그녀의 삶 전체를 생명으로 이끌었습니다. 감사일기를 매일 쓰는 것, 십일조를 매번 바치는 것은 엄청나게 중요한 일입니다.

셋째, '기쁨'을 선택하는 인내는 관계를 살립니다. EBS의 한 다큐멘터리('엄마가 울었다')에서, 한 반의 아이들에게 '30일 동안 매일 부모님 칭찬하기'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어색해요", "할 말이 없어요"라며 불평했습니다. 하지만 숙제이기에 '참고' 하다 보니, 부모님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한 아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엔 억지로 했는데, 하다 보니 정말 부모님이 고맙게 느껴졌고, 그렇게 말하는 제 자신이 자랑스러워졌어요." 억지로 시작한 인내가, 진짜 '기쁨'과 '생명'의 관계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일상이 '유니버스 25'의 멸망으로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들처럼 생명으로 가고 있습니까? 기뻐지려면 기쁘게 해 주어야 합니다. 행복의 의지를 가집시다. 세상이 주는 빠르고 쉬운 쾌락을 거부하고, 하느님께서 주신 '기도, 감사, 기쁨'의 십자가를 '인내'로써 지고 가십시오. 그 인내의 끝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의지가 소멸하면 나도, 세상도 소멸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의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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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나무를 지키는 나무의 뿌리처럼 뿌리는 생명을 지키는 참된 힘입니다. 인내는 생명을 지키는 중심입니다. 인내는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본질로 이끄는 정화의 과정이며 마음의 진실한 힘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다시 만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돌보십니다. 무너지지 않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뿐입니다. 하느님만을 붙잡고 사는 우리들 삶입니다. 무너짐의 메시지는 파괴가 아니라, 우선적인 희망의 선택입니다. 

모든 혼란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참된 희망입니다. 참된 희망은 삶을 지탱하는 힘입니다.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진정한 마음의 힘입니다. 인내는 주님과 함께 흐르는 삶의 지혜입니다. 

억지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으로 중심을 잡는 것입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고, 삶을 깊게 깨닫게 하는 생명의 힘이 인내입니다. 인내는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인내와 생명은 단순한 원인과 결과가 아니라, 깊은 연결 속에서 서로를 완성합니다. 

오늘 우리가 겪는 어려움 속에서도 마음을 지키고 흔들리지 않는 선택이 바로 인내입니다. 생명을 누리는 인내로 오늘을 살아가는 은총의 날 되십시오. 인내는 생명의 뿌리입니다. 

 

 

 

루카복음 21장 19절
오늘 성경 말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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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이 하루를 새롭게 하고 마음을 위로해주며, 때로는 예상치 못한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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