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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11/14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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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제 기도 당신 앞에 이르게 하소서. 제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저희에게 해로운 것을 모두 물리쳐 주시어 저희가 평안한 몸과 마음으로 자유로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11월 14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11월 1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11월 14일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지혜 13,1-9)
    세상을 아는 힘이 있으면서 그들은 어찌하여 그것들의 주님을 찾아내지 못하였는가?

  • 오늘 복음
    (루카 17,26-37)
    그날에 사람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다.

 

 

 

지혜 13,1-9
오늘 제1독서

세상을 아는 힘이 있으면서 그들은 어찌하여 그것들의 주님을 찾아내지 못하였는가?

1 하느님에 대한 무지가 그 안에 들어찬 사람들은 본디 모두 아둔하여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보면서도 존재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만든 장인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2 오히려 불이나 바람이나 빠른 공기, 별들의 무리나 거친 물, 하늘의 빛물체들을 세상을 통치하는 신들로 여겼다. 

3 그 아름다움을 보는 기쁨에서 그것들을 신으로 생각하였다면 그 주님께서는 얼마나 훌륭하신지 그들은 알아야 한다. 아름다움을 만드신 분께서 그것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4 또 그것들의 힘과 작용에 감탄하였다면 바로 그것들을 보고 그것들을 만드신 분께서 얼마나 힘이 세신지 알아야 한다. 

5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다. 

6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크게 탓할 수는 없다. 그들은 하느님을 찾고 또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랐지만 그러는 가운데 빗나갔을지도 모른다. 

7 그들은 그분의 업적을 줄곧 주의 깊게 탐구하다가 눈에 보이는 것들이 하도 아름다워 그 겉모양에 정신을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8 그러나 그들이라고 용서받을 수는 없다. 

9 세상을 연구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아는 힘이 있으면서 그들은 어찌하여 그것들의 주님을 더 일찍 찾아내지 못하였는가?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루카 17,26-37
오늘 복음

그날에 사람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28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29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30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31 그날 옥상에 있는 이는 세간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러 내려가지 말고, 마찬가지로 들에 있는 이도 뒤로 돌아서지 마라. 

32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33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6)·37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어디에서 말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1월 14일
김세영 파비아노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6:20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바로가기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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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김동희 모세 신부

모든 피조물 안에 깃든 하느님

오늘 독서인 지혜서의 말씀에 마음이 오래도록 머뭅니다. “자연 숭배의 어리석음”이라는 소제목이 달려 있습니다. 지혜서의 저자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힘에 압도되어 그것들을 신으로 받들어 섬기는 일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말합니다.

오늘날에도 눈에 보이는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자연 안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즐기면서도, 그 모든 것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찾지도 알아채지도 못하는 무지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가끔 ‘창조론을 믿느냐 진화론을 믿느냐?’ 하는 질문을 받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진화의 법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만, 저와 세상의 온갖 것들을 그저 우연의 산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진화의 법칙과, 그 우연의 뒤에 자리한 숨겨진 섭리와 질서를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실존 철학에서 말하듯 저 자신을 그저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 그래서 냉혹한 세상에서 피할 수 없는 고독한 삶을 살아 내야 하는 숨 가쁜 존재로 이해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꽃을 좋아하는 선배 신부님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유, 우리 하느님은 참 재미있으신 분이야. 하느님은 엄청 심심하셨나 봐. 요렇게도 만드시고 조렇게도 만드시고 …….”

누가 뭐라 해도 저는 참 재미나신 하느님께서 이런저런 궁리를 하시며 세상의 온갖 것을, 그리고 저를 비롯한 우리를 모두 소중하게 만드셨다고 믿고 고백합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의 아름다움이 마음 깊숙이 다가옵니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말하고, 창공은 그분의 솜씨를 알리네. 낮은 낮에게 말을 건네고, 밤은 밤에게 앎을 전하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대리만족하지 말고 더 나아가자! 

대리만족이라는 말을 아시지요? 참으로 만족해야 할 것을 놔두고 다른 것으로 대신 만족하는 것입니다. 순금으로 만족해야 할 것을 14K 금으로 대리만족하고, 명품으로 만족해야 할 것을 짝퉁으로 대리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대리만족하지 말고 더 나아가라는 얘길 하려고 합니다. 더 나아가라! 여기서 만족하지 말고 더 나아가라! 먼저 이것을 오늘 복음의 얘기와 연결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파멸의 때에 뒤를 돌아다보다가 소금기둥이 된 룻의 아내를 예로 드십니다. 룻의 아내는 파멸의 도시 소돔과 구원의 산 중간에서 소금기둥이 됐습니다. 더 나아갔으면 구원받았을 텐데 멈춰 뒤를 돌아다보다가 그렇게 된 겁니다.  

오늘 독서와 연결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지혜서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 거기서 더 나아가 그것을 만드신 분에게까지 가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그 아름다움을 보는 기쁨에서 그것들을 신으로 생각하였다면 그 주님께서는 얼마나 훌륭하신지 그들은 알아야 한다. 아름다움을 만드신 분께서 그것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더 나아가지 못하고 아름다운 것들로 대리만족하고 맙니다. 거듭 얘기하지만 만다는 것은 가다가 마는 것이요 대리만족하는 것입니다. 요즘 돈을 들여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단풍놀이를 많이 가시지요? 저도 며칠 전 식당 근처 거리공원으로 단풍놀이를 갔습니다.  

단풍의 아름다움이 최절정이었고 작은 공원이었지만 그걸로도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을 보며 ‘아! 하느님!’ 소리가 나오지 않고, ‘아! 좋다!’로 그친다면 더 나아가지 못하고 마는 것이고 대리만족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프란치스코의 영성을 대입하면 좋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을 지상 선, 으뜸 선이라고 찬미합니다. 지상선(至上善) 곧 지극히 높은 선이요 으뜸가는 선이시라는 찬미입니다. 버금가는 선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으뜸가는 선이 아닙니다.  

그런데 버금가는 선을 볼 때 으뜸가는 선까지 가야 합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하느님께 나온 선들을 사다리 삼아 모든 선이시고 으뜸 선이신 하느님께로 갔다고 첼라노는 이렇게 전합니다. ㅇ

“그는 창작가이신 그분을 찬미하였다. 그는 아름다운 사물들 안에서 아름다움 자체를 보았다. 모든 사물이 그에게는 선이었고 그분의 발자국이 서려 있는 사물들을 통하여 그는 어디서나 사랑이신 그분을 따라갔다. 그는 모든 사물로 사다리를 만들어 그 사다리를 밟고 옥좌로 올라갔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선들이 우상들이 되지 않고 사다리들이 되도록 우리는 욕심으로 선을 소유하지 말고 사랑으로 관상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하느님을 향한 시선, 지금 돌려야 할 때

어제 <복음>에서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사람의 아들의 날”에 대한 때와 장소와 방식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이어서, 오늘은 재림을 맞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 듣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의 때’에 벌어질 일을 물과 불에 의해 멸망하게 된 구약의 두 사건, 곧 노아(창세 6-7장)와 롯(창세 19장)때와 같을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재림’의 준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노아와 롯의 시대에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노아 때에 대해서,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갔음을 말하고 있을 뿐, 특별한 죄나 부패를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들은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사랑에 소극적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죄가 아니라, 그들이 장차 일어날 일에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오직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는 일에만 몰두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가 그들처럼, 비록 죄를 짓지 않는다하더라도 자신들의 인간적인 세속의 삶에 빠져 주님을 알려하지도, 하느님을 경외하지도, 하느님의 의로움을 구하지도, 타자를 향해 자신을 내놓은 사랑을 실현하지 않으면, 멸망을 당하리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하느님을 향하여 있지 않은 까닭에 멸망하게 됩니다. <마태오복음>의 25장의 ‘심판의 비유’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들이 ‘사랑하지 않았음’이 문제였음을 말해줍니다(마태 25,31-47).

한편, 롯의 때에는 역시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불과 유황으로 멸망당하였습니다. 롯도 노아와 마찬가지로 장차 닥쳐올 재앙을 미리 알고서 소돔을 떠나는 조처를 취하고 구원받을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집안에 있는 세간 곧 소유물에 대한 애착으로 뒤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루카 17,33)

결국, 이 두 이야기는 ‘사람의 아들의 날’을 미리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곧 먹고 마심과 자신의 소유와 목숨의 보존에 매이지 말고, 그 때를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의 삶이 어디를 향하고, 누구를 향하여 있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곧 죽음을 향하여 있는지, 생명을 향하여 있는지를 보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루카 17,37)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7,33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주님!
제 자신이 아니라
당신을 향하여 살게 하소서. 

제 삶이 썩어 부패한
시체의 삶이 되지 않게 하소서.

당신 말씀이 살아 팔딱거리는 
생명의 삶이 되게 하소서.

자신의 보존을 향한
죽음의 삶이 아니라,
타인을 향하여 자신을 내어주는 
생명의 삶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성무일도 끝기도 진짜 양심 성찰 방법

찬미 예수님
사제들과 수도자들은 매일 하루를 마감하며 성무일도 '끝기도'를 바칩니다. 이 기도의 시작 부분에는 잠시 '양심성찰'을 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 시간이 단순히 "오늘 내가 누구를 미워했나? 거짓말을 했나?" 하는 식으로 '죄목'을 나열하는 데 그치곤 합니다.

하지만 죽음이 전제되지 않은 양심성찰은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것은 마치 서서히 뜨거워지는 냄비 물속에 앉아 있는 개구리가, 자신이 삶아져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모른 채 거울을 보며 "오늘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하고 외모만 신경 쓰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한순간에 잿더미가 된 고대 도시 폼페이. 수천 년의 세월이 흘러 그곳의 화석들이 발굴되었을 때, 우리는 아주 대조적인 두 가지 죽음의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한쪽에서는 금화와 보석이 가득 든 무거운 자루를 움켜쥐고 죽어간 사람의 화석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일의 생존'을 위해 재물을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아기를 품에 꼭 껴안고, 자신의 온몸으로 쏟아지는 화산재를 막아내려 했던 어머니의 화석이 발견되었습니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내가 무엇을 껴안고 있었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그 마지막 순간에 내가 꽉 붙잡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내 인생의 나침반이 가리키던 방향이었습니다. 하나는 '나의 생존'을 향했고, 다른 하나는 '타인의 생명'을 향했습니다. 양심성찰은 바로 이 '죽음의 순간'을 매일 밤 미리 체험하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2001년 9월 11일 아침, 납치된 비행기가 뉴욕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충돌했습니다. 죽음을 직감한 그 짧은 순간, 건물 안에 갇힌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음성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 수많은 마지막 메시지들 중에 "내 통장에 돈이 얼마 있다"거나 "나 승진 못해서 억울하다"는 말은 단 한 마디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지막 말은 모두 똑같았습니다.

"여보, 사랑해. 아이들 잘 부탁해." "엄마, 아빠, 사랑해요. 고마웠어요."

죽음 앞에서는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너무나 명확해집니다. 거품은 사라지고, 오직 '사랑'만이 남습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대부분 옳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노아의 때"와 "롯의 때"를 경고하십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사고팔고 심고 비비고" 있었습니다. 이 일상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들이 그 일상에 빠져 다가올 심판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긴장감을 잃어버렸기에, '자기 생존'에만 몰두하다 멸망했습니다. 롯의 아내 역시 두고 온 재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다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오늘의 행복 점수'를 매겨보곤 했습니다. 그때는 참 충실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습관을 잃어버리자, 어느새 세속과 육신, 마귀의 유혹에 치우쳐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게 되더군요.

그러다 마리아 발토르타의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를 읽으며 다시금 인생의 마지막 때를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의 삶이 그토록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막 순간에 후회 없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죽음을 생각하면 삶의 방향이 잡히고, 생각하지 않으면 방향을 잃게 됩니다. 잠자리는 '죽음'의 상징입니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여러분의 인생 나침반을 확인하십시오.

"만약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었다면, 나의 오늘 하루는 몇 점인가?" 

이 질문이 여러분을 참된 생명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돈 보스코 성인의 질문에 활짝 웃으며 "저는 그냥 계속 놀겠습니다!"라고 대답했던 도미니코 사비오처럼, 언제 죽음이 찾아와도 후회 없을 기쁜 하루하루를 살아가시길 빕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그날에 사람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다.

적당히 하면 참 좋을 텐데, 그러나 ‘적당히’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적당히 먹어야 하는데 계속 먹게 되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 많은데도 계속 쇼핑합니다. 술을 많이 마셨어도 적당히에서 멈추지 못하고 계속 마십니다. 소셜 미디어 영상이 자기에게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적당히 보지 않고 계속 보고 있습니다. 
 
후회할 수밖에 없는 것을 선택하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해야 할까요? 사실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적당히’면 충분한데,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에 계속 후회할 행동을 하게 하는 곳이 바로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이 세상입니다.
 
없는 것, 부족한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 충분한 것, 적당한 것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봐야 합니다. 세상은 늘 부족하게 보이지만, 주님은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욕심과 이기심을 내려놓고 오직 사랑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사실 이 세상의 문제는 너무 많이 가지려는 데 있습니다. 80억 인구가 충분히 나누며 살 수 있는 세상인데도, 더 많은 것을 누리려는 욕심으로 늘 부족하다고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사랑으로 나누고, 사랑으로 함께하고, 충분하고 적당함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재림)이 얼마나 갑작스럽고 결정적일 것인지에 대해 제자들에게 구체적으로 가르치십니다. 그래서 세속적인 일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종말론적인 ‘깨어있음’을 유지하라는 경고입니다. 
 
먼저 노아의 홍수와 소돔의 멸망이라는 두 가지 구약의 심판 사건을 예로 드십니다. 그런데 지적하는 행위를 보면 이상합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루카 17,27),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루카 17,28)라고 되어 있습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 행위가 멸망할 만한 죄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지적하는 것은 이러한 일상 그 자체에 완전히 매몰되어서, 하느님의 경고와 임박한 심판의 징조에 대해 완전히 무관심하고 무감각했다는 점입니다. 하느님 없이도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이는 세상의 일에만 몰두했던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루카 17,30)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삶에만 매몰되어 있다면, 예고 없이 멸망의 시간이 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롯의 아내처럼 이 세상의 생명과 재물을 보전하며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잃을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예수님의 이 경고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랑의 삶을 그리고 충분하고 만족할 수 있는 삶을, 무엇보다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모든 미완성을 괴롭게 여기지 말라. 미완성에서 완성에 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므로 신은 일부러 인간에게 수많은 미완성을 내려주신 것이다(아놀드 하우저).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떨어진 낙엽 위에도, 시든 자리 위에서도 어김없이 새 생명은 뜨겁게 피어날 것입니다. 시체와 독수리는 대립이 아니라 서로를 완성하는 자연스러운 자연의 흐름입니다. 시체가 있는 곳에 빛도 모여듭니다. 막으려해도 막을 수 없는 생명의 준엄한 질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죽음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하느님 나라가 오면,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이,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이 숨길 수 없이 드러날 것입니다. 죽음을 응시하고 죽음을 직면할 줄 아는 자만이 삶을 더 사랑하고, 더 진실하게 살 수 있습니다.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다시금 삶으로 이어지는 변화의 통로입니다. 종말론은 단순히 세상의 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통치가 완전히 드러나는 계시입니다. 삶과 죽음, 빛과 어둠, 부패와 재생은 모두 구원의 영역 안에 있습니다.

죽음은 부활의 어긋남이 아니라, 부활을 위한 완성의 여정입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의 흐름일 뿐, 끝과 시작 또한 우리가 붙이는 이름일 뿐입니다. 멈출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의 섭리입니다. 종말은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새 생명의 빛나는 오늘입니다. 그 하루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루카복음 17장 32절
오늘 성경 말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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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이 하루를 새롭게 하고 마음을 위로해주며, 때로는 예상치 못한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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