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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9/20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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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순교자들을 공경하여 축제를 지내며 다 함께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자. 천사들도 이날을 기뻐하며 하느님의 아드님을 찬양하네.

인류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느님, 이 땅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선택하시어 오묘한 방법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시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영광스러운 신앙 고백으로 하느님의 백성을 자라게 하셨으니 저희도 죽기까지 복음을 따라 살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9월 20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9월 2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지혜 3,1-9)
    하느님께서는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 제 2독서
    (로마 8,31ㄴ-39)
    죽음도, 삶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 오늘 복음
    (루카 9,23-26)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지혜 3,1-9
오늘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2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3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6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7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8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9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로마 8,31ㄴ-39
오늘 제2독서

죽음도, 삶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형제 여러분, 

31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루카 9,23-26
오늘 복음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9월 20일
최영준 베르나르디노 신부

 

✚ 미사시작 00:24

✚ 강론시작 05:38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태훈 리푸죠 신부

믿음의 눈으로 현재를 바라보기

‘순교자’가 되는 것은 우리 믿는 이들에게 대단히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2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 한국 순교자들의 상황을 보면, 그들은 오늘 제1독서가 말하는 것처럼 고난을 겪고 파멸에 빠진 이들, 벌받고 시험받으며(지혜 3,2-5 참조)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믿음이 없는 시선, 외적인 모습만 보는 시선, 현재가 전부인 시선으로 볼 때입니다. 순교자들은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을 바라보고 하느님께 의지하고 그분만을 바랐기에, 곧 믿음의 눈으로 현재를 바라보았기에 모든 것을 다르게 볼 수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비록 온종일 주님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질지라도(로마 8,36 참조) 그분 사랑을 확신하였습니다. 스승께서 이 길을 가셨기에 그들도 이 길을 기꺼이 따르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그때와 같은 박해가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거스르는 풍조와 죽음의 문화가 복음을 실천하며 살아가기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도 십자가는 많습니다. 날마다 그 십자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삶에서 겪는 크고 작은 개인의 고통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박해 시절의 순교가 눈물과 수고로 얼룩져 있듯이, 오늘날 우리 삶에서도 하느님 사랑을 확신하면서 그분만을 선택하는 단호함으로 어려움을 기꺼이 끌어안을 때, 진정 우리는 순교자들의 후예이자 순교자가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지혜로운 사람에 대해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받아야 할 것과 받지 말아야 할 것을 잘 식별하는 것도 그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가 돈이나 물건을 준다면 그것이 뇌물인지 선물인지 잘 식별하고, 뇌물이면 단호하게 받지 말아야 하고 선물이면 감사하게 잘 받아야겠지요. 그래야 그 사람은 지혜롭고 그래야 행복하겠지요.

제가 자주 얘기하는 상처를 예로 들 수도 있겠습니다. 누가 상처를 줘서 상처받았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그때 저는 ‘준다고 다 받니?’ 하고 핀잔을 줍니다. 많은 사람이 상처를 받았다고 상처 준 사람에게 탓을 돌리는데 어렸을 때는 혹 그럴 수 있지만 커서도 그러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누가 아무리 상처를 줘도 받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성숙하고 지혜롭지요. 그런데 상처는 이렇게 줘도 받지 말아야 지혜롭고 성숙한 것인데 박해는 받는 사람이 지혜롭고 잘 받는 사람이 성숙하다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쓸데없이 박해받을 필요는 없고 하느님 사랑 때문에 박해받고, 하느님 나라를 얻기 위하여 곧 나의 행복을 위해 박해받아야겠지요. 이렇게 하느님 사랑 때문에 박해받으면 벌이나 시련에 관한 생각이 바뀝니다. 오늘 지혜서는 이것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사람들은 한국 순교자들이 받은 박해를 벌 받은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당시 벌을 내린 것은 임금이고 그러니 임금으로부터 벌을 받는 거지요. 그러나 순교자들은 임금의 벌이 아니라 천벌을 받은 겁니다. 우리는 천벌을 나쁘게 생각하고 가장 중한 벌을 천벌이라고 하지만 순교자들은 임금의 벌을 받지 않고 하느님의 벌을 기꺼이 받았지요.

순교자들은 벌을 벌이 아니라 상이요 월계관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실은 벌이 아니라 상을 하느님께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순교자들은 이렇게 지혜롭게 살았습니다.

벌을 하느님의 상으로 받았고, 모욕을 하느님의 칭찬으로 받았으며, 세상 시련을 천상 낙원을 위한 단련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니 고통을 받아 고생스럽긴 해도 결코 불행하지 않고 오히려 행복했으며 단련이 고달프긴 해도 고달픔만큼의 큰 기쁨과 고달픔보다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이럴 수 있었던 것은 늘 하느님이 계셨기 때문이고, 그것은 순교자들이 늘 하느님을 관상했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받아도 고통만 보지 않고 그 고통 안에 계신 하느님과 고통 너머의 하느님 사랑과 상급을 관상했으며 그래서 사랑으로 현재 행복했고 상급으로 미래 행복을 예감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고생스럽기만 하고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관상을 할 줄 모르고 보이는 대로만 보는 사람이고 예감을 할 줄 모르고 현재의 고통과 불행만 보는 사람입니다. 누가 지혜롭고 행복합니까? 박해를 받은 순교자들입니까? 박해를 거부하는 사람입니까?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고통 속에서 사랑하시고 고통을 통하여 사랑하신다.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입니다. 1784년 이승훈이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후부터 1886년에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기까지, 약 100년 동안에 순교한 이들 중에 11명의 성직자와 92명의 평신도, 모두 103 위께서 1984년 5월 6일에 시성되었고, 그 외에도 약 1만 명의 순교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오늘은 성인품에 오르지 않은 모든 순교자들을 포함하여 기념하는 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순교자들이 살았던 그 당시의 법은 부정부패와 약자에 대한 횡포를 방관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조장하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에게 하느님의 질서, 곧 정의와 자비와 사랑에 대한 가르침은 그 당시의 인간과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부조리를 한 순간에 걷어내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열어주는 일이었으며, 진정한 사회개혁운동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노는 말합니다.  

“순교자의 피는 악마들을 묶어버리는 쇠사슬이며 악마의 목덜미를 조이는 족쇄이다” 

오늘 <제1독서>는 의인들이 비록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더라도 하느님과 함께 사랑 속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고 말하며, <제2독서>는 세상의 어떠한 세력도 예수 그리스도 사건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다는 “사랑의 대헌장”을 들려줍니다.  

이는 순교의 본질이 하느님 사랑에 대한 믿음에 있음을 밝혀줍니다. 우리의 순교자들은 바로 이 “하느님의 사랑”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 믿음을 굽히지 않고, 모진 형벌을 당하고, 목숨을 바쳤으며, 그리하여 그들은 교부 테리툴리아누스가 말한대로, “순교는 믿는 이들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고통을 당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함께 사랑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곧 하느님 사랑은 고통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사랑하시고 고통을 통하여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 위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살아계시고, 우리 앞에 서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신다는 것을, 또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를 동행하시며, 고통 속에서 함께 고통당하시면서 사랑하기를 가르쳐주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선조들이 걸은 이 “순교”의 길은 비록 그 모습은 다르다 할지라도, 바로 오늘날 우리가 걸어야 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 길은 오늘 <복음>에 말씀하신 것처럼,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루카 9,23)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의 순교와 희생의 삶이 일회적이 아닌 연속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순교는 매일의 삶 속에 벌어지는 지속적인 사건이요, 또한 “참된 삶은 긴 순교”임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여전히 지속적으로 하느님을 위하여 자신의 일생을 봉헌하고 자신의 뜻을 바치는 백색순교와 진리와 이웃을 위해 매일의 삶 안에서 자신을 나누는 봉사와 사랑의 녹색순교로 죽음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본회퍼 목사님은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부르는 것은 죽음에로 부르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순교정신을 되살려 “순교”(martyr;증거)라는 말 뜻 그대로, 우리의 삶의 현장이 신앙을 증거 하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9,23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주님!
제 자신을 버리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
당신이 이끌어주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이 길을 갑니다.

제 능력이 아니라
당신의 권능을 믿게 하소서.

제 자신이 아니라
당신께 신뢰를 두게 하소서.

제 몸에 당신의 생명이
살아있음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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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신앙과 사랑은 시들지 않는 생명으로 우리 안에 남아 있습니다. 순교는 패배가 아니라, 신앙의 빛나는 승리입니다. 오늘 우리는 순교자들의 신앙 유산을 기억합니다. 이 땅의 순교는 하느님 안에서 생명을 새롭게 발견하는 길을 보여줍니다. 세상적 안전과 이익을 내려놓고, 복음과 예수님을 기쁘게 선택한 그들의 결단을 만납니다.

자기 고집을 버리고 사랑을 선택하는 순간이 오늘날 우리 삶 속의 작은 순교입니다. 신앙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생명을 걸고 지켜내는 사랑의 참된 고백입니다. 순교자들의 피는 죽음의 흔적이 아니라, 교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희생은 이 땅에 스며들어 한국 교회를 자라게 하고 우리에게 신앙을 이어주었습니다.

순교의 본질은 죽음이 아니라, 신앙을 향한 가장 뜨거운 사랑의 증언입니다. 삶의 의미는 목적과 가치를 위해 우리 존재를 내어주는 데 있습니다. 살아 있는 순간 전체가 순교의 연속이었음을 그들은 보여주었습니다. 순교자들은 국가와 사회적 압력 앞에서도 인간의 양심과 신앙의 자유를 지킨 상징이 되었습니다.

순교자들의 피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교회와 우리의 신앙을 살아 있게 하는 생명입니다. 하느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 그리고 모든 순교자들의 신앙과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순교의 오늘이 되게 하소서.

 

 

 

지혜서 3장 9절
오늘 성경 말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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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6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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