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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9/16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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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들의 영혼이 하늘에서 기뻐하네.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 그분을 사랑하여 피를 흘렸으니, 그리스도와 함께 끝없이 기뻐 춤추네.

하느님, 헌신적인 목자 복된 고르넬리오와 치프리아노를 불굴의 순교자가 되게 하셨으니 그들의 전구로 한결같은 믿음을 길러 주시어 저희가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9월 16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9월 1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9월 16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1티모 3,1-13)
    감독은 나무랄 데가 없어야 합니다. 봉사자들도 마찬가지로 깨끗한 양심으로 믿음의 신비를 간직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 오늘 복음
    (루카 7,11-17)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1티모 3,1-13
오늘 제1독서

감독은 나무랄 데가 없어야 합니다. 봉사자들도 마찬가지로 깨끗한 양심으로 믿음의 신비를 간직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1 이 말은 확실합니다. 어떤 사람이 감독 직분을 맡고 싶어 한다면 훌륭한 직무를 바라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감독은 나무랄 데가 없어야 하고 한 아내의 충실한 남편이어야 하며, 절제할 줄 알고 신중하고 단정하며 손님을 잘 대접하고 또 가르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3 술꾼이나 난폭한 사람이 아니라, 관대하고 온순하고 돈 욕심이 없으며 

4 자기 집안을 잘 이끌고 아주 품위 있게 자녀들을 순종시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5 자기 집안을 이끌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 

6 새로 입교한 사람도 안 됩니다. 교만해져서 악마가 받는 심판에 떨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7 또한 바깥 사람들에게도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방을 받거나 악마의 올가미에 걸리지 않습니다. 

8 봉사자들도 마찬가지로 품위가 있어야 하고,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으며, 술에 빠져서도 안 되고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도 안 됩니다. 

9 그리고 깨끗한 양심으로 믿음의 신비를 간직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10 또 그들을 먼저 시험해 보고 나서 흠잡을 데가 없는 경우에만 봉사직을 수행하게 해야 합니다. 

11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품위가 있어야 하고, 남을 험담하지 않으며, 절제할 줄 알고 모든 일에 성실해야 합니다. 

12 봉사자들은 한 아내의 충실한 남편이어야 하고, 자녀들과 자기 집안을 잘 이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13 사실 봉사직을 훌륭히 수행하는 이들은 좋은 명성을 얻고,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 더욱 큰 확신을 얻게 됩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루카 7,11-17
오늘 복음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그 무렵 

11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 가셨다. 제자들과 많은 군중도 그분과 함께 갔다. 

12 예수님께서 그 고을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마침 사람들이 죽은 이를 메고 나오는데, 그는 외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다. 고을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그 과부와 함께 가고 있었다. 

13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14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15 그러자 죽은 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16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17 예수님의 이 이야기가 온 유다와 그 둘레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9월 16일
최영준 베르나르디노 신부

 

✚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소개 00:06

✚ 미사시작 01:56

✚ 강론시작 09:33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태훈 리푸죠 신부

울지마라, 일어나라.

오늘 복음의 배경이 된 시대에 과부는 고아와 함께 가장 불쌍한 사람, 의지할 곳 없는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오직 아들만이 과부의 법적, 정신적, 물질적 삶을 유지해 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부는 외아들의 죽음으로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과부의 처지를 보신 예수님께서 그 과부에게 “울지 마라.”(루카 7,13)라고 말씀하시고 관에 손을 대십니다. 그 당시에 관이나 죽은 사람에 몸이 닿으면 부정하게 된다는 것을(민수 19,11.16 참조)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죽은 젊은이를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대하시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실 것을 마치 이미 이루어진 사실로 여기시는, 당신의 굳건한 의지와 믿음을 보여 주시는 듯합니다.

그러고서 예수님께서 그 젊은이에게 말씀하십니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루카 7,14). 주님의 이 말씀은 잃었던 생명을 다시 불어넣는 강한 힘을 지닙니다. 죽음보다 더 강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권위 있는 말씀으로 젊은이를 살리시면서 사람들에게 당신께서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이심을 드러내십니다.

여기에 지나쳐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사건의 출발점이 측은지심, 다시 말해서 자비심이라는 사실입니다. 자비로운 마음과 이웃을 나 자신처럼 여기는 마음이야말로 하느님 현존이 드러나는 표징입니다. 그리고 이 자비심은 인간의 선행이나 믿음보다 앞서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과부의 선행이나 믿음에 대한 보상으로 그의 외아들을 살려 주신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는 그 마음만으로 먼저 다가가 살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믿기로 마음 먹는 오늘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것은 드문데 다른 두 경우엔 요청에 응하여 살리시는 반면, 오늘은 청하지 않는데도 주님께서 과부의 아들을 살려주십니다. 그리고 가엾은 마음에 살리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리시는 주님께 대해 제가 주제넘게 걱정해 드립니다. 이렇게 살려주시면 다른 사람이 또 살려달라고 하면 어쩌시려고 하고 말입니다. 가엾다고 주님께서 다 살려 주실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다 살려 주실 것이 아니면서 어쩌자고 살리시는 걸까요?  

이런 괜한 걱정에서 그리고 주님을 옹호하는 차원에서 이 얘기는 실제 사건이 아니라 상징 차원에서 지어낸 얘기라고, 주님은 살리시는 분임을 상징적으로 얘기하려는 것이라고 생각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실제 사건인지 지어낸 얘기인지. 실제 사건이라면 주님께서 왜 과부의 아들만 살리신 것인지.  

더 알기 위해서 앞으로도 더 깊이 그리고 많이 묵상하겠지만, 몰라도 괜찮습니다. 주님께서 그리하신 뜻을 제가 어떻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다만 오늘 복음의 백성들처럼 저도 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지식욕으로 다 알고 싶지 않습니다. 교만으로 주님의 뜻을 감히 판단하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주님께서 하신 것이 제가 모르는 좋은 뜻이려니 받아들이겠습니다. 과부의 그 큰 슬픔과 고통을 가엾어하신 주님 사랑에 감사드리겠습니다.  

실로 주님께서는 우리의 슬픔과 고통을 모른체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비록 오늘 과부의 아들처럼 죽은 사람이나 병자를 살려주시지 않고 고쳐주시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모른체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것을 믿어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믿기로 마음먹고 그 마음을 봉헌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목숨을 살리는 사랑

오늘 <복음>인 ‘나인의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신 이야기’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이야기’(루가 8,40-56)와 ‘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이야기’(요한 11,17-44)와 함께 예수님의 신적 권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물론 죽은 이를 살리신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도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엘리야가 사렙다의 과부의 아들을 살린 이야기(1열왕 17,17-24)라든지,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린 이야기(2열왕 4,32-37), 베드로가 도르가를 살린 이야기(사도 9,36-43)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들 이야기와 예수님의 이야기가 어떻게 다른가? 그것은 다른 이야기들은 그들이 하느님께 간청해서 일어난 일이었지만, 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직접 “일어나라”는 한 마디의 말씀으로 죽은 이를 손수 살리십니다. 곧 당신의 신적 권능으로 살리시면서, 당신이 하느님이심을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마주치게 되는 일 중에 가장 슬픈 일 중의 하나는 아마도 소중한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세상에서 떠나보내는 일일 것입니다. 불의의 사고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슬픈 일은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간 자식을 잃었을 때일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죽으면 땅에 묻지만,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과부는 오로지 외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가, 이제 그 외아들마저 잃었으니 그 슬픔이 오죽하였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울지 마라”하시며, 관에 손을 대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젊은이야, 일어나라.”(루카 7,14)

예수님께서는 말씀의 권능을 드러내십니다. 단 한마디 ‘말씀’으로 목숨을 살리십니다. 그것은 라자로를 살리실 때처럼, 기도를 드리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처럼, 간청을 받았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당신께서는 순전히 당신의 진정한 마음, 곧 ‘가엾은 마음’으로 신적인 권능을 드러내십니다.

곧 드러난 것은 신적인 권능이지만, 그 권능을 불러온 것은 예수님의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상한, 아픈 마음 곧 상심이 불러온 사랑입니다. 외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단장의 아픔’을 그대로 받으신 예수님의 ‘심장이 찢기어지면서’ 흘러나온 사랑입니다. 외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아픈 가슴에 가 닿은, 그 아픔과 분리되지 않은 상한 마음입니다. 바로 이 사랑이 죽음을 이기는 권능을 불러왔습니다.

이는 사랑이야말로, 모든 것을 이루는 힘임을 말해줍니다. 결국, 사랑이 목숨을 살리는 힘이요, 구원의 힘임을 말해줍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 13,10)

그렇습니다.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힘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는 힘이듯이, 우리의 사랑 역시 이웃과 자신을 구원으로 이끌어줍니다.

하오니, 주님! 저에게 아파하는 마음을 주소서! 제 마음이 당신 마음 같게 하시고, 제 마음이 상하고 찢기어지게 하소서!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7,14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주님!
관에 손을 대시고 
죽은 이를 일으켜 세우시듯
당신과는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열차에 누워 잠들어 있는 
저를 일으켜 세우소서. 

죽음의 길 벗어나 
생명의 길 걷게 하소서. 

쪼개어 나누며 
먼저 사랑하게 하소서. 

상처도 축복이 되게 하시고
아픔도 기쁨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양초 한 자루, 성냥 한 갑, 압정 한 통을 줬습니다. 그리고 벽에 걸린 코르크판에 양초를 고정하되 불을 붙였을 때 촛농이 아래쪽 탁자에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불가능해 보입니다. 양초를 성냥과 짧은 압정으로 고정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 같은데, 고정하더라도 떨어지는 촛농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답은 간단했습니다. 압정 통을 양초 받침으로 쓰고, 그 받침을 코르크판에 압정으로 붙이면 되는 것입니다. 
 
답을 알게 되면, ‘이게 뭐야~~’라고 합니다. 압정을 담은 통까지 사용해도 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 삶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중요하고, 명예가 중요하고, 세상의 지위가 중요하고, 사람들의 인정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지 않음을 계속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 인정받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장면은 ‘나인이라는 고을의 과부 아들을 살리신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군중과 함께 나인이라는 고을에 가셨다가 장례 행렬을 만나게 됩니다. 죽음은 모든 이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장례 행렬을 보고서 그저 ‘슬픈 일’ 정도로만 봤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너머의 것을 보셨습니다. 
 
과부의 외아들이 죽은 상황은 어머니에게 큰 비극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남편도 아들도 없는 과부는 경제적, 사회적 보호망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안 됐다’ 정도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관에 손을 대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가엾은 마음’은 사람들이 보이는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라 하느님의 깊은 자비가 표현된 말씀입니다. 이에 사람들은 놀라움과 두려움 속에 하느님을 찬미하며,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주님이십니다. 이렇게 우리를 계속 찾아오시는 주님을 인식하는 사람만이 죽음과 절망 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지금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도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 보이지 않는 가치를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랑의 마음을 간직한다면, 세상의 어렵고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위로와 힘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시련이란 꼭 방해만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우리의 발 아래 놓으면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C.F 블랜차드).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넘어짐과 실패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것은, 우리 존재가 하느님의 생명 안에서 새로워지는 은총입니다. “일어나라”는 부르심은 존재의 잠에서 깨어나, 자기 자신을 새롭게 시작하라는 초대입니다. 

성 고르넬리오와 성 치프리아노의 삶은 육체적 죽음 앞에서도 진리와 자유를 위한 영적 일어섬을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박해와 분열 속에서도 무너진 교회를 일으켜 세운 참된 목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뒤집어 생명을 선포하시며, 죽음조차 거스를 수 없는 하느님의 생명을 드러내십니다. 

우리 모두는 삶에서 실패하고 쓰러집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넘어지지 않는 완전함이 아니라,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용기입니다. 한 사람의 용기 있는 일어섬은 성 고르넬리오와 성 치프리아노처럼, 교회를 살리고, 세상에 희망을 불어넣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좌절과 지치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우리를 다시 일어서도록 부르시는 하느님의 은총의 순간입니다. 

“쓰러짐은 끝이 아니고, 일어섬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오늘이 바로 새롭게 시작하는 다시 일어서는 은총의 새날입니다.

 

 

 

루카복음 7장 13절
오늘 성경 말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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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6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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