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저희가 당신의 성전에서 당신의 자애를 생각하나이다. 하느님, 당신을 찬양하는 소리, 당신 이름처럼 땅끝까지 울려 퍼지나이다. 당신 오른손에는 의로움이 넘치나이다.
하느님, 타락한 세상을 성자의 수난으로 다시 일으키셨으니 저희에게 파스카의 기쁨을 주시어 죄의 억압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7월 1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7월 12일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창세 49,29-31.33; 50,15-26ㄱ)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그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입니다. - 오늘 복음
(마태 10,24-33)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창세 49,29-31.33; 50,15-26ㄱ
오늘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그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입니다.
그 무렵
29 야곱이 아들들에게 분부하였다. “나는 이제 선조들 곁으로 간다. 나를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의 밭에 있는 동굴에 조상들과 함께 묻어 다오.
30 그 동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맞은쪽 막펠라 밭에 있는 것으로, 아브라함께서 그 밭을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에게서 묘지로 사 두셨다.
31 그곳에 아브라함과 그분의 아내 사라께서 묻히셨고, 그곳에 이사악과 그분의 아내 레베카께서 묻히셨다. 나도 레아를 그곳에 묻었다.”
33 야곱은 자기 아들들에게 분부하고 나서, 다리를 다시 침상 위로 올린 뒤, 숨을 거두고 선조들 곁으로 갔다.
50,15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보고, “요셉이 우리에게 적개심을 품고, 우리가 그에게 저지른 모든 악을 되갚을지도 모르지.” 하면서,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게 하였다. “아우님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이렇게 분부하셨네.
17 ‘너희는 요셉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너의 형들이 네게 악을 저질렀지만, 제발 형들의 잘못과 죄악을 용서해 주어라.′’ 그러니 아우님은 그대 아버지의 하느님의 이 종들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 주게.” 요셉은 그들이 자기에게 이렇게 말한 것을 듣고 울었다.
18 이어 요셉의 형제들도 직접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아우님의 종들일세.”
19 그러자 요셉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20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1 그러니 이제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이들을 부양하겠습니다.” 이렇게 요셉은 그들을 위로하며 다정하게 이야기하였다.
22 이렇게 해서 요셉과 그 아버지의 집안이 이집트에 자리 잡고 살게 되었다. 요셉은 백십 년을 살았다.
23 그러면서 요셉은 에프라임에게서 삼 대를 보았다. 므나쎄의 아들 마키르의 아들들도 태어나 요셉 무릎에 안겼다.
24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여러분을 이 땅에서 이끌어 내시어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입니다.”
25 요셉은 이스라엘의 아들들에게 맹세하게 하면서 일렀다. “하느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때 여기서 내 유골을 가지고 올라가십시오.” 그러고 나서
26 요셉은 죽었다.
마태 10,24-33
오늘 복음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25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26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30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7월 12일
하태성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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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태훈 리푸죠 신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두려움의 종이 되고, 더 나아가 그 두려움을 일으키는 대상의 종이 되지 않도록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하나씩 들어 보이십니다.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예수님입니다. 제자와 종이 스승과 주인보다 높지 않다는 말씀은, 어려움을 먼저 겪으신 예수님께 제자들의 눈이 향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은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하여 어려움은 오히려 예수님과 더욱 굳게 일치하게 하고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사도 5,41 참조).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께서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마태 10,26) 하신 말씀입니다. 이 문장에서 ‘드러나다’와 ‘알려지다’에는 수동태가 쓰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까지 비밀로 감추어졌던 복음을 제자들이 명확하고 분명하게 나타나게 하지만 그 선포의 참된 주체는 하느님이십니다. 제자들은 홀로 버려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제자들을 통하여 일하시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떠한 장벽도 전능하신 그분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두려움이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없애지 못한다면 사람이 아닌, 사람 전체를 다스리고 지배하시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도록 권고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참새와 머리카락에 대한 이야기로 하느님의 무한한 배려와 보살핌을 제시하십니다. 하느님을 단순히 절대자로 묘사하시지 않고 친밀함과 애정을 나타내는 “너희 아버지”로 표현하시며 “허락 없이는”(10,29)이라는 말씀으로 세상 모든 것이 그분의 주권과 보호 아래 있음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가 실망하고 낙심하여 두려움에 갇히게 되는 순간마다, 예수님의 논리가 우리 생각의 중심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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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믿음과 의탁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시면서, 제자들을 격려해 주십니다. 곧 그 어떤 박해와 고난을 겪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당신께 대한 믿음과 의탁의 요청입니다.
사실, “두려움”의 원래 이유는 에덴동산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는 그들을 찾으시는 하느님께 말합니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창세 3,10)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숨은 이유가 사실, 아담의 말처럼 알몸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처벌하시는 분으로 여겼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곧 자비로우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원죄는 단지 금기사항을 위반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하느님의 모습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을 주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빼앗는 하느님, 자유보다 속박하는 하느님, 용서보다 처벌하는 하느님으로 왜곡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움의 반대는 용기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풍랑이 있는 호수 위에서 “겁내지 마라.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 4,4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불신이 두려움을 불러왔으니,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심은 곧 당신께 대한 ‘믿음’의 촉구라 할 수 있습니다. 곧 “머리카락까지도 낱낱이 다 세어두셨을”(마태 10,30) 만큼 제자들을 소중히 여기시고 보살피고 돌보시는 하느님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곧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두려움을 몰아내라는 말씀입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진정 두려워해야 할 분이 누구신지를 밝히십니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 10,28)
오로지 주님만을 두려워하라는 이 말씀은 처벌에 대한 노예적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과 믿음을 지닌 ‘사랑의 두려움’입니다.
이를 <집회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님을 두려워함이 주님을 사랑함의 시작이며, 주님에 대한 사랑의 시작은 믿음이다.”(집회 25,12)
그러니 오늘 <복음>에 세 번 나오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과 한 번 나오는 “두려워하여라.”는 말씀은 다 같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이 “믿음”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활동하시거나 우리를 박해나 고통으로부터 빼내주시리라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는 그 박해와 고통을 함께 견디어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고난으로부터 구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구해주시고, 고통으로부터 보호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보호해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십자가로부터 구원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속에서 구원하십니다.”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는 말합니다.
“예수님은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게 아니라 당신 자신이 오십니다. 당신 자신을 내어주심으로써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박해와 고통 속에서 동행하시는 그분을 만날 것입니다. 그분과 함께 사랑하는 법을 배울 것입니다. 고통 속에서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말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10,31
두려워하지 마라.
주님!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박해를 받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게 하소서.
진리이신 당신께
희망을 두고
주님이신 당신께
믿음을 두게 하소서.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두신
당신의 사랑으로
제 두려움을 몰아내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몇 달 전에 정말 오랜만에 버스 탈 일이 있었습니다. 빈자리가 없어서 서서 가고 있는데, 학창 시절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는 버스 손잡이를 잡지 않고서도 중심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버스 손잡이를 놨는데, 갑자기 버스가 방지턱을 넘어가면서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넘어질 뻔했지만, 다행히도 곧바로 버스 손잡이를 잡아서 중심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렇게 버스가 흔들릴 때, 옆에 서 있는 분을 잡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그분과 함께 넘어졌을 것입니다. 고정되어 있는 버스 손잡이만이 넘어지지 않고 제대로 중심을 잡게 해줍니다.
주님이 바로 우리의 영적 손잡이입니다. 주님께서는 절대 중심을 잃지 않는 분이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제대로 서 있을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엉뚱한 것을 잡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만을 잡으려 하고, 이를 통해서만 자기 삶이 안전하다고 착각합니다. 세상의 것들은 너무 쉽게 움직입니다. 그래서 이를 통해서는 중심을 잡을 수 없습니다. 계속 흔들리면서 큰 흔들림에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게 됩니다.
주님을 꽉 움켜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신뢰를 통해서 세상의 온갖 두려움을 이겨내는 커다란 힘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따라는 것은 세상 안에서 편하고 쉬운 길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어렵고 힘든 길이며, 용기와 희생을 요구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도 사람들로부터 ‘베엘제불’이라는 모욕을 당하셨고, 또 결국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도 이렇게 불명예와 모욕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 10,28)
사람은 육신만을 해칠 수 있지만, 하느님은 육신과 영혼을 모두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에 더 집중하고, 그분의 뜻을 철저하게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꽉 잡고 주님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사는 신앙인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잠깐의 행복이 아닌 영원한 행복을 지향하는 우리가 아닙니까? 그 영원한 행복을 위해 철저하게 주님을 잡고, 주님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행복을 두 손안에 꽉 잡고 있을 때는 그 행복이 작아 보이지만, 그것을 풀어준 후에는 비로소 그 행복이 얼마나 크고 귀중했는지 알 수 있다 (막심 고리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두려움이 우리 마음을 흔들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습니다. 우리 삶에서 두려움의 자리를 하느님께로 바꾸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존재의 가장 작은 것까지 아십니다.
진정한 두려움의 대상은 오직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을 향한 두려움은 세상의 두려움을 이기는 참된 자유의 시작입니다. 두려움을 넘은 자만이 진정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참된 자유는 하느님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하느님의 뜻을 중심에 두는 참된 자유입니다. 하느님께 속한 우리들은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를 압니다. 세상이 뭐라 하든 하느님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함은 사랑의 시작입니다. 무엇을 두려워하느냐에 따라 내 삶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두려움을 다스리는 힘은 사랑과 믿음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게 될수록 우리는 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하느님 마음을 아프게 할까 두려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두려움이 우리를 묶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우리를 하느님께 붙들게 하는 은총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안에 뿌리내린 영혼은 두려움을 너머 자유를 함께합니다. 육신의 두려움에 흔들리지 않고 오늘도 하느님 안에서 흔들림 없이 걷게 하소서.
창세기 50장 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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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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