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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6/21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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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주님의 산에 오르고, 그 거룩한 곳에 서리라.

천상 선물을 주시는 하느님, 복된 알로이시오가 놀라운 정결과 참회의 정신으로 살아가게 하셨으니 그의 공덕과 전구를 굽어보시어 저희가 그 정결과 참회의 정신을 충실히 본받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6월 21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6월 2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6월 21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2코린 12,1-10)
    나는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 오늘 복음
    (마태 6,24-34)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2코린 12,1-10
오늘 제1독서

나는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형제 여러분, 

1 이로울 것이 없지만 나는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예 주님께서 보여 주신 환시와 계시까지 말하렵니다. 

2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어떤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은 열네 해 전에 셋째 하늘까지 들어 올려진 일이 있습니다. 나로서는 몸째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고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3 나는 그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나로서는 몸째 그리되었는지 몸을 떠나 그리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4 낙원까지 들어 올려진 그는 발설할 수 없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 말씀은 어떠한 인간도 누설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5 이런 사람에 대해서라면 내가 자랑하겠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는 내 약점밖에 자랑하지 않으렵니다. 

6 내가 설사 자랑하고 싶어 하더라도, 진실을 말할 터이므로 어리석은 꼴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랑은 그만두겠습니다. 사람들이 나에게서 보고 듣는 것 이상으로 나를 생각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7 그 계시들이 엄청난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8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9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10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마태 6,24-34
오늘 복음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6월 21일
이한길 바오로 신부

 

✚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소개 00:06

✚ 미사시작 01:19

✚ 강론시작 09:24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섭리의 하느님

걱정 자체가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음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크고 작은 걱정들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섭리’에 대한 신뢰를 가르치시면서 우리를 이런 무의미한 걱정에서 자유롭게 해 주십니다.

하늘의 새들, 들에 핀 나리꽃들, 그것들을 사랑스럽게 돌보시는 하느님의 모습이 만들어 내는 목가적인 분위기의 오늘 복음은 사람들이 날마다 신경 쓰는 일들, 곧 먹고 마시고 입을 것들에 대한 염려에서 자유로워지는 길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세상의 현실은 오늘도 전쟁과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이들의 모습을 우리 눈앞에 들이밀며 이 말씀에 도전합니다. 어찌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토록 소중히 여기시는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받지 못한 채 죽어 가게 내버려두실까요?

이는 신앙이 없는 사람들의 분노 어린 물음만이 아니라 우리 신앙인도 진지하게 마주해야 하는 물음입니다. 그에 대한 답은 어쩌면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마태 6,33)을 찾는 일에 있지 않을까요?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드러내야 하는 나라이고, 그 나라의 바탕이 되는 ‘그분의 의로움’은 형제들을 돌보는 일도 포함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실존적 문제나 고통에 직접 개입하시기보다 당신을 믿고 사랑하는 우리에게 형제들의 목숨을 지키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해 줄 책임을 맡기십니다.

오늘 복음은 아버지의 섭리에만 의지하여 태평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다른 자녀들인 형제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필요한 수고를 하도록 요구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섭리의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주님과 은총에 깨어있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주님께서는 오늘 바오로 사도가 당신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말이 실은 당신 은총을 넉넉히 주셨다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이 말씀을 왜 하셨냐면 바오로 사도가 자기 몸의 가시를 없애 달라고 청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말이 됩니다. 주님은 바오로 사도에게 넉넉히 주셨는데 바오로 사도는 그것으로 넉넉지 않기에 청한 꼴이 되었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청을 거절하시는 꼴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주신 것 말고 더 이상의 다른 은총은 없다는 말이고, 바오로 사도의 몸에 주신 가시도 은총이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대 사도인 바오로 사도에게도 이때까진 가시가 은총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걸 보는 저는 위안도 받지만 동시에 너는 어떠냐는 자문도 하게 됩니다.

제게도 옛날에 몸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십 년 넘게 두통이 매일 있었고 그야말로 골칫거리였는데 저는 그때 그것을 주님께서 제게 주신 은총이라고 생각지 않았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것을 없앨까 온갖 노력을 다해 해결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저는 바오로 사도처럼 이것을 없애 달라고 주님께 청하지도 않았고 나 스스로 해결하려고 했고 기체조라는 방법을 발견하고는 그걸로 해결하였으며,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그 방법을 전파합니다.

아무튼 육신의 가시가 하느님 은총이 내게 주어지는 좋은 기회였는데 날려버린 것이고 지금도 그런 기회를 날려버리기 일쑤입니다.

특히 몸의 가시가 아니라 마음의 가시가 있을 때, 마음의 가시도 누군가가 내 마음을 찌른 것일 때, 그것을 은총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여 날려버리고, 그 찌르는 사람은 은총의 전달자인 은인이 아니라 원수처럼 여겼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나중에는 그것을 은총으로 받아들이고. 그 사람을 은인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중이 아니라 바로 그때 은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누군가가 저를 찌를 때 그를 보지 않고 주님을 볼 수 없습니까? 찔리는 고통이 주어질 때 고통을 보지 않고 은총을 볼 수 없습니까?

깨어있어야겠습니다. 찔리는 그 순간 주님과 은총에 깨어있으려는 의지와 의식의 노력과 함께, 깨어있는 은총도 또한 청하면서 점차 깨어있음이 늘어나도록 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신앙인의 길일까? 어떻게 사는 사람이 신앙인일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그렇습니다. 신앙인은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주인이신 한 분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곧 물질이나 자기 자신 등의 피조물을 우상으로 섬기거나, 자기의 판단이나 주장이나 뜻을 섬기지 않고 주인이신 하느님과 그분의 뜻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을 섬기는 것은 우상숭배요, 하느님을 업신여기는 일이요 모독하는 일이 됩니다.

사실, ‘섬김’은 자신이 누구에게 속해 있느냐는 신원과 정체성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주님께 속하며, 주님을 믿고 따르는가? 아니면, 다른 피조물, 곧 물질이나 자기 자신에 속하며, 자기 뜻과 생각을 주인처럼 섬기고 따르는가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우리가 주님께 속해 있고, 하느님 나라에 속해 있음을 깨닫고 받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의 삶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않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이는 당연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신 하느님의 돌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마태 6,33)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속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 사람”입니다. 곧 자신의 성취나 자신의 편리나 이기, 자신의 의로움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그 모든 것에 앞서,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 찾기’를 삶의 본질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곧 그 모든 것을 통해서, 하느님께 응답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혹 내가 지금 물질이나 자기 자신을 섬기고 있다면, 하느님을 업신여기고 있음을 보아야 할 일입니다. 또 자신의 입을 것이나 먹을 것 등 자신의 처지나 형편만을 탓하고 걱정하고 있다면, 주님이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찾아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항상 주님을 ‘첫 자리’에 모시고, 믿고 따르며 섬겨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6,33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주님!
당신을 
업신여기지 않게 하소서.

재물을 섬기느라, 
저 자신을 섬기느라, 

주인이신 당신을 
업신여기지 않게 하소서.

제가 아니라 
당신이 재물의 주인이요, 
저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있다가도 없어질 것이 아니라 
진정 있는 것, 
이미 선물로 준 당신의 나라와 
의로움을 찾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1911년 노르웨이의 아문센과 영국의 팰컨 스콧 경이 남극 정복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두 팀은 너무나 상관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스콧은 탐험에 나섰던 72명 전원이 사망했지만, 아문센의 탐험대는 대원 1명이 썩은 치아 하나를 뽑은 것 말고는 큰 부상 없이 남극을 정복하고 전원이 무사히 귀환한 것입니다. 

조건은 영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스콧 탐험대가 월등하게 좋았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지원이 한참 부족했던 아문센의 이름이 역사 안에 남게 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문센은 에스키모의 여행법과 남극 지역을 여행한 사람들의 경험담을 철저하게 분석해서 탐험 장비와 루트를 연구했습니다. 그러나 스콧은 전혀 답사를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냥 열심히 최선을 다해 준비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낙관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막연한 낙관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하느님 나라에 가는 것을 막연하게 잘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전혀 어떤 준비도 하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세상의 뜻만을 따르려고 합니다. 세상의 재물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모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섬기다’라는 단어는 노예처럼 복종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따라서 하느님과 재물 중, 무엇을 주인으로 여겨서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주인으로 여겨야 할까요? 세상의 물질적인 가치입니까? 아니면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결정짓는 주님이십니까? 

세상의 물질적인 가치를 너무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많습니다. 이 세상 안에서 물질적인 가치의 위세가 대단하기에, 이 가치를 따르지 못하면 제대로 살지 못할 것만 같은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의 결과만을 바라보면서, 순간의 만족과 풍요로움을 주는 물질적인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습니다. 당연히 하느님께 대한 우선순위는 늘 뒤로 밀립니다. 

주님께서는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마태 6,25)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느님께 철저하게 의탁하는 삶, 그래서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먼저 찾으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재물 사이에서 누구를 주인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주님을 굳게 믿고 따르는 사람은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을 통해서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명언

삶에서 가장 순수했던 어린아이 시절로 돌아가라 (네이션 사와야).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 삶의 주님은 오직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에 충실해야 할 신뢰의 삶입니다.

걱정은 미래에 살지만 신뢰는 오늘을 살게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 앞에서는 포장할 필요도 감출 것도 없습니다. 작은 피조물 하나조차 하느님 손길 안에 있습니다.

들에 핀 나리꽃들은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그 존재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걱정보다 신뢰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말로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신뢰와 맡겨드림으로 이루어집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은 은총의 시간 구원의 시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어제도 아닌 내일도 아닌 오늘 우리와 함께하시는 가장 좋으신 하느님이십니다.

오늘이 은총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은총입니다. 오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은총의 날 되십시오.

 

 

 

마태오복음 6장 34절
오늘 성경 말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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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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