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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6/18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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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부르짖는 제 소리 들어 주소서. 저를 도와주소서. 제 구원의 하느님, 저를 내쫓지 마소서, 버리지 마소서.

하느님, 하느님께 바라는 모든 이에게 힘을 주시니 자비로이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희가 거룩한 은총의 도움으로 계명을 지키며 마음과 행동으로 하느님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6월 18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6월 1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6월 18일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2코린 9,6ㄴ-11)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 오늘 복음
    (마태 6,1-6.16-18)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2코린 9,6ㄴ-11
오늘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형제 여러분, 

6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7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8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9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 

10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에게도 씨앗을 마련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여러 곱절로 늘려 주시고, 또 여러분이 실천하는 의로움의 열매도 늘려 주실 것입니다. 

11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부유해져 매우 후한 인심을 베풀게 되고, 우리를 통하여 그 인심은 하느님에 대한 감사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마태 6,1-6.16-18
오늘 복음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2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3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4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17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8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6월 18일
신동민 프란치스코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6:41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사랑해서 받는 유일한 보상은 언제나 사랑 그 자체이다.

자기가 이룬 일을 널리 알리고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회에, 오늘 복음대로 행동하는 것은 어리석어 보이는 것을 넘어 무의미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서 받을 상이 없다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공공장소에서 기도하는 몇몇 바리사이인들의 행태에 빗대어 제자들에게 경고하십니다.

사실 신앙 실천의 기본이 되는 자선과 단식, 기도도 자칫 그 본질을 놓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실행하는 것 자체로 만족하기보다 ‘왜’ 하는지를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의 선행이나 업적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은근히 남이 알아주기를 바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알아주기를 바라는 일을 슬며시 암시하기도 하는데 이 모든 것이 남의 평가에 나를 맡기는, 자유롭지 못한 마음의 표시입니다.

아버지께서 자애로운 눈길로 늘 나를 바라보고 계심을 믿는다면 다른 이의 시선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버지의 다정한 눈길 아래 나를 두고 그분의 따스한 마음에 다가가면 그만입니다.

나의 선행은 보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오직 사랑을 목적으로 할 때 그 자체로 충분하고 진정성을 지닙니다. 선을 행하면서 보상을 바라는 것은 아직 순수한 사랑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보상이 없다고 해도,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목적이 되고,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선을 행하는 것이 이미 보상입니다. 사랑은 보상을 좇지 않으며, 사랑해서 받는 유일한 보상은 언제나 사랑 그 자체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회개가 필요한 선행

“네가 자선을 베풀 때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저는 선행에 있어서 아직도 회개에서 멀리 있습니다. 이는 제가 아직도 악행을 저지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제 생각에 저는 의도적으로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고, 할 수 있는 한 선행을 하려고 하지만 선행을 함에 있어서도 회개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회개가 필요한 선행은 어떤 선행입니까? 겉으로 보면 선행이지만 거짓 선행 곧 위선적 선행입니다. 위선적 선행이란 근본적으로 사랑이 없거나 순수하지 않은 선행 곧 불순물이 있는 선행입니다.

첫 번째 불순물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고, 그것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두 번째 불순물은 자기만족을 위한 것입니다. 제 생각에 선행만큼 뿌듯한 만족도 없습니다. 세 번째로 교만에서 비롯된 선행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사(下賜)의 개념입니다. 하사란 왕처럼 높은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뭣을 내려 주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제겐 이런 위선적 선행도 많고 그래서 이런 선행에 대해 회개해야 하지만 하느님 앞에서 선행을 하지 않고 하느님 사랑으로 하지 않는 선행이 바로 제가 더 회개해야 할 선행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제가 회개해야 할 것은 선행이건 악행이건 거기에 하느님이 빠져있다는 점입니다. 실로 우리는 윤리적이고 심리적이고 철학적이지만 하느님이 빠져있는 비신앙적인 회개에 집착할 수 있습니다.

옛날의 저는 이런 회개에 초점이 있었고, 그래서 보이기 위한 것의 문제점만 많이 봤습니다. 보이기 위해서 선행을 하다 보면

-남의 눈치를 보다 줏대를 잃게 되는 문제점,

- 보지 않으면 선행을 하지 않게 되는 문제점,

- 기껏 선행을 하고도 왠지 허탈하게 되는 문제점,

- 나의 행불행이 남에 의해 좌우되는 문제점을 보면서 자기가 실종되는 것의 문제점만 느꼈지 하느님 실종의 문제는 보지 못했지요.

그러다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리고 이제 하느님 앞에 가야 함을 생각하면서 하느님 앞에 가야 하는데 아직도 사람 앞에 있구나! 이러다 갑자기 하느님 앞에 서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점이 보이면서 내가 있고 줏대가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느님 앞에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신앙적인 회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지금껏 여자 꽁무니만 쫓아다니고 여자 눈치만 보던 사람이 이제 부모 앞에 돌아가야 함을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선행을 하는 것은 실로 자기 줏대도 잃고 하느님도 잃는 멍청한 짓입니다.

그러니 이런 멍청한 선행을 하느니 악행일지라도 다윗처럼 하느님 눈앞에서 저지르고, 그런 다음 하느님 눈앞에서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

예수님께서는 여섯 가지의 ‘새로운 의로움’에 대한 말씀을 마치신 다음, 여전히 “의로움”의 연장선상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마태 6,1)

이는 의로움의 본질이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임을 말해줍니다. 곧 의로움이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처신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 놓인 처지임을 말해줍니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는 사람들 앞에 드러난 행동이나 결과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생각을 보십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의로운’ 생활의 중심은 세 가지였습니다. 그것은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은 의로움을 통하여 하느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맺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의로움을 사람들에게 드러내곤 했습니다. 곧 의로움을 통해 하느님이 아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고 보상받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혹 우리도 그렇지 않는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사실, 우리의 기도나 봉사나 사랑을 통해서도 그럴 수 있습니다. 만약 그것이 나의 경건함을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도구가 되고 있다면 그럴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께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있다면 말입니다. 진정, 우리는 겉모양이 그리스도인인 것이 아니라, 뼈 속에서부터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러려면, 오늘 진정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의 현전을 마주하고 있어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마태 6,6)이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기광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 광고는 오히려 자신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아무리 드러내려 해도 드러내 지지 않는 것이 있고, 아무리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하느님을 섬기는 척하지는 말아야 할 일입니다.

사실, 저는 어둠이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어둠과 놀면 저도 어둠이 되고 말 것입니다. 또한 저는 빛이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빛 앞에 머무르면 저도 빛의 옷을 입게 될 것입니다.

저는 천사는 아니지만, 하느님 앞에서 노래하고 하느님을 섬긴다면 천사 같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저는 마귀는 아니지만, 마귀의 영을 따라 산다면 마귀 같은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하지도 않은 선을 행한 것처럼 과시하지도, 저지른 악을 가리고 숨기며 거짓으로 치장하지도 말게 하소서! 마음의 단식으로 당신을 섬기고, 기도로 마음이 순결하게 하소서! 늘 빛이신 당신 앞에 머무르고, 당신의 영으로 차오르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6,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주님!
선을 과시하지 않고
악을 거짓으로 
치장하지 않게 하소서. 

사람들 앞에서 
의로움을 내세우지 않고
숨어 계신 당신 앞에 
다소곳이 머무르게 하소서.

마음의 단식으로 
제 마음이 씻기어 지고
기도로 마음이 
순결하게 하소서. 

일상의 모든 삶이 
당신의 영으로 
벅차오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하늘로 향하는 이들이 반드시 가진 자기만의 골방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선-기도-단식할 때 타인에게 잘 보이려 하기보다는 하느님께 잘 보이려는 목적으로 하라고 하십니다. 자선-단식-기도는 세속-육신-마귀를 이기기 위한 수단입니다. 돈과 맛과 힘은 세상에서 살기 위한 무기입니다. 세상을 목적으로 하는 수단입니다.

하늘로 향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소유욕과 식욕, 교만과 반대되는 욕구입니다. 그러니 자선-기도-단식을 통해 세상 것을 버리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세상을 지향하지 않는 방식은 타인에게 잘 보이려 하지 않는 것이라 하십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향하는 방식은 타인의 시선이 들어오지 못하는 곳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 공간이 ‘골방’과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무관한 곳에 의지적으로 머무르려고 할 때 시선이 하느님을 향하게 됩니다. 이는 피정을 해 보신 분들은 다 아실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세상의 시선에서 멀어지면 자신도 모르게 하느님을 올려다보게 됩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김창옥 강사가 어떤 수사님의 권고로 프랑스 외지에 있는 포도밭에서 피정하다가 “그래, 너 여기까지 잘 왔다.”라는 말을 듣고는 치유를 받았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효과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다시 사람들을 웃겨야만 하는 일을 하다 보니 또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것에 길들여진 것입니다.

그는 다시 제주도로 돌아가서 잠깐 쉬려고는 했으나 다시 그때와 같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골방으로는 돌아가지는 못했습니다. 그의 눈빛은 아직도 남은 웃기지만 슬퍼 보입니다.

김창옥 강사는 말합니다. 자기만의 옹달샘을 찾으라고. 자기만의 골방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쉴 곳은 세상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내가 의지적으로 하느님을 향하기 위해 고독해질 수 있는 장소입니다. 골방에는 반드시 하늘로 향하는 창문이 있어야 합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끌려간 바빌론에서도 하루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어 놓고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다니 6,11 참조). 목숨을 위협하는 칙령에도 굴하지 않았던 그의 기도 방은 세상 한가운데에 마련된 그만의 ‘골방’이었습니다. 이 꾸준한 기도의 시간이 사자 굴 속에서도 그를 지켜준 힘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그 조서에 임금의 날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그 다락방 창문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려 있었는데, 그는 전에 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자기 하느님께 기도하며 찬미를 드렸다.”(다니 6,11)

성인치고 자기만의 골방을 가지지 않은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베네딕토 성인이 수비아코에서 3년 동안 굴에서 사신 것이 그런 이유이고, 성 프란치스코가 육정이 올라올 때 뒹굴었다는 장미밭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그런 경험을 한 번으로 끝내셨겠습니까? 광야는 매번 물 밖으로 나간 물고기가 돌아와야 하는 물과 같습니다. 사막의 교부 성 안토니오께서 사막으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타리나 성녀는 수도원에 들어가지 않고도 자신의 방을 ‘골방’으로 삼았습니다. 더 나아가 그녀는 ‘자기 마음속에 차린 작은 방’에 머물며 끊임없이 하느님과 대화했다고 합니다.

이는 물리적 장소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 안에 의지적으로 마련하는 내적인 공간 역시 완벽한 ‘골방’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소란 한가운데서도 우리는 내면의 골방으로 들어가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자기만의 골방을 지닌 이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타인을 자신들의 골방으로 초대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이 왔을 때 나와보지 않습니다. 자신을 골방에 숨겨둔 채 나아만이 요르단강 속에서 하느님을 보게 하였습니다.

나를 통해 하느님께서 누군가를 새로 태어나게 하는 일을 보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을 골방으로 보냈던 엘리야는 먼저 자신이 골방에 머물렀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때문에 기도는 결코 편한 시간이 아닙니다. 광야나 골방, 장미밭에서 구를 때 어떻게 편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열매는 달콤하고 세상을 살아갈 힘을 줍니다. 저는 하.사.시. 읽기와 성체조배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시밭에서 구를 수 있는 용기와 끈기를 지녔던 분들은 기적을 체험하셨고 지금도 그 힘으로 살아가고 계십니다.

우리는 세상으로 내려가든 하늘로 올라가든 두 방향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사람들을 하늘로 이끌어 줄 아는 사람이 됩니다. 내가 하늘로 향하고 있다는 증거는 하늘로 난 창문이 있는 세상과 단절된 골방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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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잘못된 정보나 의도적인 거짓말이 얼마나 될까요? 아마 많은 부분에서 잘못된 정보나 거짓말이 난무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특히 건강이나 정치에 관한 부분은 다른 내용에 비해 거짓 비율이 더 높았습니다. 미국 텍사스 대학에서 연구한 내용에 의하면, 유튜브에서만 평균 20~30%의 잘못된 정보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보고 있는 정보를 무조건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어느 분이 제게 신비스러운 임사 체험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본인이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고 인터넷에 그런 영상이 상당히 많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내용만 보셔서 알고리즘이 작동해서 그런 영상만 보여주는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런 영상 내용을 가지고 무조건 따라야 할 교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가짜 뉴스의 홍수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일까요? 많은 이가 거짓된 삶을 삽니다. 외적으로 보이기 위한 삶을 살면서, 옳게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정작 하느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짓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고 하지요. 오래 굴릴수록 더 커지게 됩니다. 따라서 진리 그 자체인 주님께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겸손과 사랑만이 거짓에 물들지 않고 진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선과 기도 그리고 단식에 관해 말씀해 주십니다. 자선을 베풀 때는 사람들에게 칭찬받기보다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합니다. 또 기도할 때는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지 말라고 합니다. 대신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아버지 하느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단식도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면서 단식한다는 것을 숨어 계신 아버지 하느님께 보이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자선, 기도, 단식은 위선자의 모습이라고 하셨습니다. 거짓된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실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겸손과 사랑을 가지고 하느님 아버지께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삶이 아닌 하느님께 인정받는 삶, 그래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 모든 것을 갚아주십니다. 

지금 우리는 과연 하느님께 보이기 위한 삶과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삶 중에 어디에 머물러 있습니까? 사람이 아닌 하느님께 보이기 위한 삶에 더 가까운 삶을 살아야 하느님 나라에 가까워집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다른 사람을 탓하는 사람은 아직 갈 길이 멀었고 자신을 탓하는 사람은 절반쯤 온 것이며 아무도 탓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도착한 것이다 (중국 속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하느님만 아시는 진실한 사랑의 행위를 우리들에게 강조하십니다. 사람들의 인정이나 칭찬에 집착하는 자선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참된 사랑은 드러나지 않아도 되는 기쁜 사랑입니다. 심지어 자신조차도 의식하지 않는 겸손한 행위입니다. 자선은 자기만족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선입니다.

보상을 바라지 않는 계산 없는 나눔입니다. 자선은 하느님의 관계 속에서만 올바른 의미를 지닙니다. 하느님 사랑에 응답하는 것은 우리의 자선입니다.

자선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이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하느님을 섬기는 삶입니다.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에는 우열이 없습니다. 하느님만이 있을 뿐입니다.

자선은 인간존엄이며 공동선이며 하느님의 뜻입니다. 보이지 않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자신이 자선의 원천이십니다.

하느님 사랑이 이 땅에 머무는 방식이 자선임을 믿고 실천하는 사랑의 날 되십시오. 우리의 실천을 통하여 하느님 사랑은 전달됩니다.

 

 

 

마태오복음 6장 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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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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