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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1년 7월 9일 (금) 매일미사

by 평화다방 2021.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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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으로 초대합니다!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

 

 

21년 7월 9일 (금) 온라인 미사와 강론입니다.

 

 

✠ 오늘 제1독서

 

야곱은 아들들과 함께 가나안 땅에서 얻은 재산을 가지고 이집트에 들어가 아들 요셉을 만납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파견하시면서, 당신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을 것이나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1년 7월 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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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입당송 (Entracne)
입당송 (Entracne)

 

입당송

 

하느님, 저희가 당신의 성전에서 당신의 자애를 생각하나이다. 하느님, 당신을 찬양하는 소리, 당신 이름처럼 땅끝까지 울려 퍼지나이다. 당신 오른손에는 의로움이 넘치나이다.

 

 

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창세 46장 1-7절, 28-30절

 

내가 너의 얼굴을 보았으니,
기꺼이 죽을 수 있겠구나.

 

그 무렵 


이스라엘은 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을 거느리고 길을 떠났다. 그는 브에르 세바에 이르러 자기 아버지 이사악의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다. 


하느님께서 밤의 환시 중에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야곱아, 야곱아!” 하고 부르시자,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그가 대답하였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네 아버지의 하느님이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곳에서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나도 너와 함께 이집트로 내려가겠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서 너를 다시 데리고 올라오겠다. 요셉의 손이 네 눈을 감겨 줄 것이다.” 


그리하여 야곱은 브에르 세바를 떠났다.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아버지를 태워 오라고 파라오가 보낸 수레들에 아버지 야곱과 아이들과 아내들을 태웠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얻은 가축과 재산을 가지고 이집트로 들어갔다. 야곱과 그의 모든 자손이 함께 들어갔다. 


야곱은 아들과 손자, 딸과 손녀, 곧 그의 모든 자손을 거느리고 이집트로 들어갔다. 

28 
이스라엘은 자기보다 앞서 유다를 요셉에게 보내어, 고센으로 오게 하였다. 그런 다음 그들은 고센 지방에 이르렀다. 

29 
요셉은 자기 병거를 준비시켜, 아버지 이스라엘을 만나러 고센으로 올라갔다. 요셉은 그를 보자 목을 껴안았다. 목을 껴안은 채 한참 울었다. 

30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렇게 너의 얼굴을 보고 네가 살아 있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는 기꺼이 죽을 수 있겠구나.”.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네.

 

주님을 믿으며 좋은 일 하고, 이 땅에 살며 신의를 지켜라.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여라. 네 마음이 청하는 대로 주시리라.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네.

주님이 흠 없는 이들의 삶을 아시니, 그들의 소유는 길이길이 남으리라. 환난의 때에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기근이 닥쳐와도 굶주리지 않으리라.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네.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여라. 그러면 너는 길이 살리라. 주님은 올바른 것을 사랑하시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 버리지 않으신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받지만, 악인의 자손은 멸망하리라.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네.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고, 그분은 어려울 때 피신처가 되신다. 의인들이 주님께 몸을 숨겼으니, 그분은 그들을 도와 구하시고, 악인에게서 빼내 구원하시리라.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네.

 

 

매일미사 복음환호송 (Gospel Acclamation)
복음 환호송 (Gospel Acclamation)

 

복음환호송

 

알렐루야!

 

진리의 영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끄시어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시리라.

 

알렐루야!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마태 10장 16-23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23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매일미사 영성체송 (Communion Antiphon)
영성체송 (Communion Antiphon)

 

영성체송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주님께 바라는 사람!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성체성사의 큰 은혜를 가득히 받고 비오니 구원의 은총을 풍부히 내리시어 저희가 끝없이 주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1년 7월 9일 (금)

 

 

명동성당 매일미사

 

 

21년 7월 9일 (금)

 

 

팔로티회 매일미사

 

 

21년 7월 9일 (금) 15시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 Reflections)

 

매일미사
최종훈 토마스 신부

 

비워진 자리는 채워 주시는 주님.

 

강론과 강의를 하며 신자들에게 미안할 때가 많습니다. 나누라고, 견디고 참아 내라고, 가난하고 없는 이들에게 더욱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이라고 하는 것이 신자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사제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 신자들에게는 한 번 더 고민해야 하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제는 기꺼이 내어 놓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안녕과 안위를 걱정하지 않고 투신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신념만으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책임지고 의무를 다해야 할 가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불의와 타협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하고 세상의 가치에 따라서 살아야 하기도 합니다. 옳지 않은 일을 보고 침묵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와 복음의 가치는 같지 않습니다. 복음의 가치대로 살아가다 보면 세속적인 면에서 대개는 부족하게 받을 것입니다. 성공보다는 후퇴와 실패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며 주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숙명입니다. 박해의 삶, 스스로 손가락질과 모욕을 감수해야 하는 삶, 아무것도 모르는 순박한 아이의 모습으로 살아가면서도 예수님의 가치를 위해서는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용기와 강단 있는 삶, 그러한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아파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가치와 기준으로 살아왔다는 죄책감으로, 고통받고 아파하시는 예수님을 일상에서 외면하였다는 미안함으로 스스로 미워하고 박해합니다. 그래서 아프지만, 그 박해와 미움은 우리의 몫이기에 이 아픔을 두려워하지도 멀리하지도 않았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비워진 자리는 채워 주실 것이며 상처 난 자리에는 약을 발라 주실 것입니다. 서로 함께 용기를 주며 보듬어 안아 주십시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슬기롭고 순박한.

 

오늘 주님께서는 복음 선포를 위해 사도들을 파견하시며 네 가지 지침을 주시는데 명령어 형태입니다.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요약을 하자면 이제 파견되어 복음을 잘 선포하기 위해서는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해야 하는데 사람을 조심하는 것이나 걱정하지 않는 것이나 박해 시 피하는 것이 바로 슬기롭고 순박하게 복음을 선포하는 거라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이제 왜 이런 것들이 슬기롭고 순박한 복음 선포인지 보겠습니다. 

슬기로운 복음 선포는 우선 사람들을 조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람을 조심하라고 할 때는 그 사람이 사기꾼인지 강도인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것이고, 사기나 강도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선포함에 있어서 사람을 조심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박해받게 되는 것을 기본으로 상정하십니다. 

사실 복음은 모두에게 듣기 좋은 복음이 아니고, 특히 세상의 지배자들에게 듣기 좋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지 이 세상의 복음이 아니기에 근본적으로 이 세상 지배자들에게는 도전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박해받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이런 박해 때 박해자는 말할 것도 없고 밀고자도 조심해야 합니다. 

며칠 전 김대건 신부님 축일을 지냈는데 김대건 신부님 가족을 밀고하여 아버지가 순교하고 어머니를 실성케 한 것이 바로 이집 사위였지요. 

다음으로 이런 박해 때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슬기로운 것입니다. 순교의 열망으로 밀고할 테면 해보라며 조심하지 않거나 심지어 스스로 관헌에 나아가 천주학쟁이라고 신앙을 증거 할 수도 있지만 주님께서는 무모하게 그러지말고 박해를 피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조심도 하고 박해를 피했는데도 붙잡히게 되면 그때는 오히려 걱정하지 말고 당당하고 담담할 것이며 순박하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당당하고 담담하라는 말은 이해가 되는데 순박하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순박한 어린이처럼 걱정하지 않는 것이고 이때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머리를 굴리지 않는 것인데, 그러는 이유가 성령께서 다 알려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순박하게 걱정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같은 뜻에서 오늘 창세기 하느님은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곳에서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나도 너와 함께 이집트로 내려가겠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어서 박해를 받게 되었다면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믿어야 할 것이고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얼마나 믿는지는 이때 걱정하거나 두려워 하지 않는 만큼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꼭 박해 때 뿐이여야겠습니까? 일상의 어려운 순간에도 마찬가지여야겠지요? 아무튼 조심은 하되 걱정은 하지 않고, 슬기롭되 순박한 우리가 되어야 함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살기 위해 수영을 배우려는 친구가 있거든 물고기가 되는 법을 알려줘라.

 

오늘 복음은 세상 속에 속한 교회가 가져야 하는 세계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 속으로 파견하시며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양들이 이리들의 마음에 들려 하고 그들에게 속하려 한다면 결국엔 잡아먹히게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이렇게 권고하십니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뱀이 사람을 믿으면 될까요? 맞아 죽거나 술에 담기게 됩니다. 비둘기가 사람을 믿으면 될까요? 언젠가는 사람들의 음식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는 것이 어리석음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이 우리에게 연민을 가진다고 여겨도 절대 믿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영화관에서 본 영화 중 기억에 많이 남는 영화가 있습니다. 2004년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한공주’란 영화입니다. 
한 여학생이 많은 어른에게 둘러싸여 전학을 강요받습니다. 이름이 ‘한공주’인 이 여학생은 그 어른들에게 눌려 이렇게 말합니다.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잘못한 게 없지만, 세상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이미 더럽혀져 자기 자녀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 학생일 뿐입니다. 

이때 한 젊은 남자 선생님이 한공주를 데리고 자신의 집에 어머니와 함께 살라고 데려다 놓고 갑니다. 그 어머니는 자신이 무슨 잘못으로 전학 온 지도 모르는 그런 아이와 한집에 살아야 하느냐고 거부를 합니다. 그러나 교육부에서 생활비를 보조해준다고 하니까 받아들입니다. 성질이 사나운 분이지만 한공주는 이 어머니와도 잘 사귀어갑니다.

한공주는 우선 ‘배신자’라고 부르는 자신의 친어머니를 만나러 갑니다. 전화번호까지 바꿔놓았지만, 인터넷을 통해 간신히 어머니가 있는 작은 마트로 찾아갑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지금 간신히 재혼해서 사는 자신도 힘드니 엄마를 위한다면 앞으로 찾아오지 말라고 딸에게 몇만 원을 주며 밀쳐냅니다.

전학 온 학교에서 한공주를 아무 이유 없이 잘 대해주는 친구가 생깁니다. 물론 한공주의 아픔이 어떠한 것인지도 모르는 천주교 신자 친구. 한공주는 그 친구를 통해 세상과 대화를 시작합니다. 이 천주교 친구는 한공주에게 어떤 아픔이 있건 자신이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말합니다.

한공주는 수영을 배웁니다. 물에 뜨는 것은 다 할 수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 그러나 잘은 안 됩니다. 그렇더라도 필사적으로 수영을 배웁니다. 무엇을 위해서일까요? 수영을 배우는 것은 바로 비정한 세상에서 살아남고자 발버둥 치는 자신의 처지를 상징합니다. 

그렇게 큰 아픔을 치유해가며 세상에 다시 발을 붙이려는 순간 그녀의 아버지가 찾아옵니다. 느닷없이 어떤 서류에 사인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재판 중인 그녀의 가해자 중의 한 명에게 돈을 받고 탄원서를 써 주기로 한 것입니다. 한공주는 사인을 해 줍니다. 아빠는 그렇게 그 가해자들이 준 위로금으로 흥청망청 살아갑니다. 
딸의 아픔을 이용하는 아빠...

그 와중에 어떻게 알았는지 그 수십 명의 가해자의 부모들이 자신들에게도 탄원서를 써 달라고 학교로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일어난 대소동. 아무 죄도 없이 학교에서까지 쫓겨 다녀야 하는 한공주. 

교장 선생님은 한공주가 그런 연유로 전학 온 지 몰랐다고 하며 학교에 나오지 말고 집에서 근신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함께 살던 집 아주머니가 사귀고 있던 파출소 소장은 그 아이가 어떤 일을 당한 아이인지 일일이 다 이야기해주고,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그 아이를 내보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한공주는 그 집에서도 발붙이지 못하고 찜질방에 가서 머물게 됩니다. 부모님도, 학교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모두 한공주를 받아주려고 했지만, 그녀의 현실 앞에서는 각자의 길을 가고 맙니다. 

결국, 자신을 그렇게 잘 대해주었던 천주교 신자인 자신의 유일한 친구에게 전화를 겁니다. 하지만 그녀도 전화를 받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한공주를 성폭행을 하며 찍어놓은 동영상을 인터넷으로 보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였는지는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게 평범하게만 살고 싶었던 한공주는 짐 가방을 들고 한강 다리를 걷습니다. 자신과 함께 당했던 친구가 이미 그렇게 했듯이, 자신도 물로 뛰어드는 것 외에는 세상에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뛰어듭니다. 물 위로 다시 떠 오릅니다. 이때 다시 생겨나는 살고 싶은 욕망. 그래서 그동안 배웠던 수영을 시도해 봅니다. 하지만 한강의 빠른 물살에는 역부족입니다. 다시 물속으로 잠깁니다. 그렇게 다시 떠오르지 못합니다. 

이 영화가 한공주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요?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는 어쩌면 나도 어느 정도는 세상에서 이런 느낌을 받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있지만 결국 집처럼 나를 맞아줄 사람은 한 명도 없는 세상. 

한공주는 수영을 배우기보다는 물고기가 되어야 했습니다. 뱀은 어차피 뱀입니다.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본인이 뱀임을 인정하고 뱀들이 사는 굴을 찾았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세상에서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미움과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과 화해하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비둘기처럼 그들에게 물들려 하거나 그들에게 공격을 당할 때 날갯짓 몇 번으로 그들을 떠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사막의 교부 안토니오 성인은 사막에 살면서 세상에서 복음을 전한 후 지쳐 다시 사막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막에 함께 머무는 수도자들 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고기가 뭍에서 너무 오래 있어서는 안 되지.”

세상은 이리 떼이고 우리는 양들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이리에서 양으로 살고자 하는 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파견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세계관을 가지지 못하여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면 자신도 이리가 되거나 이리에게 먹히는 일이 발생합니다. 

나는 교회에서 물고기이고 세상에 나아가 잠깐 선교하고 다시 물로 돌아와야 하는 처지임을 명심합시다. 그것이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좋은 생각은 삶이 바쁜 가운데서 떠오른다.

 

영국 수필가 찰스 램의 일화입니다. 그는 33년의 직장 생활을 마치는 정년퇴직 날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직장 때문에 이제까지 퇴근 후에나 글쓰기가 가능했기에, 이제 구속받지 않고 글쓰기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3년 후, 찰스 램은 옛 동료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한가하다는 것이 이렇게 괴로운지 몰랐습니다. 매일 할 일 없는 시간이 반복되고 많아지다 보니 어느새 자신을 학대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도 삶이 바쁜 가운데서 떠오른다는 것을 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이 말을 가슴에 새겨 부디 바쁘고 보람 있는 나날을 보내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도 한가해지면 하겠다는 분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나 진짜 신앙은 한가해질 때 나오지 않고, 반대로 정신없이 바빴을 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삶과 신앙이 일치하면서 어떤 순간에서도 주님과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가해지면 오히려 삶이 지루해지고 동시에 신앙도 무료해지고 맙니다. 
 
“바쁘다.”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한가할 것만 같은 초등학생도 “바쁘다”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 어떤 사람도 한가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바쁘다면서 지금의 어려움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쁘다는 것은 그만큼 신앙생활에 집중할 때라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위험이 가득한 세상이기에 주님께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씀하시지요. 박해의 위협에서도 걱정하지 말 것이며,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견뎌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래야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박해의 위협이 없습니다. 그만큼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기 힘들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더 많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를 포함한 많은 이유가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마음의 여유도 없습니다. 이렇게 죄 많은 내가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냐는 마음의 가책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어떤 순간에서도 주님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쁠 때가 더 열심히 신앙생활에 집중할 때이고,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가 더 주님을 바라봐야 할 때이고, 죄책감에 쌓여 있을 때는 주님 안에 머무르면서 위로와 힘을 얻어야 할 때인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과 함께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의 선물은 주님 안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어둠 속에서도 화살표는 언제나 있습니다. 우리에겐 스스로의 빛이 필요할 뿐입니다.

- 김승미

 

 

행복 느끼기.

 

물 한 병을 사러 편의점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음주 차량이 편의점을 향해 돌진합니다. 몸에 이상 증상을 느껴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는데 확진 판정이 나왔습니다.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무차별 폭행을 합니다. 코로나 백신을 맞았는데 뇌출혈 부작용 증세가 나옵니다. 길을 가는데 차가 내 발을 밟고 지나갑니다. 
 
이 일은 실제로 어제 뉴스에 나왔던 내용입니다. 즉, 누군가에게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건 사고가 어제 하루만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매일같이 새로운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로 내가 아닌 남이 그 대상자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지만 내게는 잘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 않습니까? 분명히 감사할 일입니다. 
 
오늘 하루 여러 가지로 운이 좋았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런 행운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 점에 감사를 느끼며 살 때, 행운의 단계를 넘어 행복의 단계로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행운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사람다운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이 참된 복음이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마태 10, 17) 

조심해야 할 사람들이 아닌 행복한 사람들이기를 기도드린다. 사람은 사람에게서 배우고 사람은 사람에게서 받아들여짐을 체험한다. 우리자신은 조심해야 할 사람인지 우리자신은 힘이 되어주는 사람인지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사랑이 빠져버린 삶은 아프고 위험하다. 

말씀은 들어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아직도 자기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한 아픈 사람들이다. 새로움에는 언제나 진통이 뒤따른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이 참된 복음이다. 사람다운 사람은 삶의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혜롭게 펼쳐나간다. 떠나보내는 아픔 없이는 새로워지는 성장의 기쁨도 없다. 지혜는 아프지만 하느님을 향한다. 하느님을 향하기에 서로를 살리는 사랑이 있다. 사랑의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는 사람이 되어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물게 된다.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이 제자들의 삶이며 선교이다. 사람을 맞이하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있다. 이것이 참된 지혜이며 다시 돌아갈 사람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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