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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1년 7월 5일 (월) 매일미사

by 평화다방 2021.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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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으로 초대합니다!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 미사

 

 

21년 7월 5일 (월) 온라인 미사와 강론입니다.

 

 

✠ 오늘 제1독서

 

즈카르야는 주님의 계명을 어기는 이들을 책망하다가 주님의 집 뜰에서 사람들의 돌에 맞아 죽습니다.

 

 

✠ 오늘 제2독서

 

바오로 사도는 믿음 덕분에 환난도 자랑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당신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1년 7월 5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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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입당송 (Entracne)
입당송 (Entracne)

 

입당송

 

이 성인은 하느님의 법을 위해 죽기까지 싸웠으며, 악인들의 말도 두려워하지 않았네. 그는 튼튼한 반석 위에 집을 지었네.

 

 

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2역대 24장 18-22절

 

너희는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즈카르야를 살해하였다.

 

그 무렵 요아스 임금과 유다의 대신들은 

18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다. 이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내렸다. 

19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이 예언자들이 그들을 거슬러 증언하였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0 
그때에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가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혀,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너희가 잘될 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 

21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임금의 명령에 따라 주님의 집 뜰에서 그에게 돌을 던져 죽였다. 

22 
요아스 임금은 이렇게 즈카르야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바친 충성을 기억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였다. 즈카르야는 죽으면서,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주님, 제 목숨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이 몸 보호할 반석 되시고, 저를 구원할 성채 되소서. 당신은 저의 바위, 저의 성채이시니, 당신 이름 위하여 저를 이끌어 주소서. 주님, 제 목숨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제 목숨 당신 손에 맡기오니, 주님, 진실하신 하느님, 저를 구원하소서. 오로지 주님만 믿나이다. 당신 자애로 저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주님, 제 목숨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당신 앞 피신처에 그들을 감추시어, 사람들의 음모에서 구해 내소서. 주님, 제 목숨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매일미사 제2독서 (Second Reading)
제2독서 (Second Reading)

 

제2독서
로마 5장 1-5절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형제 여러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매일미사 복음환호송 (Gospel Acclamation)
복음 환호송 (Gospel Acclamation)

 

복음환호송

 

알렐루야!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알렐루야!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마태 10장 17-22절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매일미사 영성체송 (Communion Antiphon)
영성체송 (Communion Antiphon)

 

영성체송

 

주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이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일찍이 복된 순교자 김대건 안드레아가 지녔던 믿음과 용기를 주시어 저희가 온갖 시련을 이겨 내고 충실히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1년 7월 5일 (월)

 

 

팔로티회 매일미사

 

 

21년 7월 5일 (월) 15시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 Reflections)

 

매일미사
최종훈 토마스 신부

 

견디어 내라, 걱정하지 마라.

 

가끔 삶의 길을 잃고 헤맬 때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그 생활에 적응하게 되고, 적응된 일에만 익숙해져 쉽게 판단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가 실망스러워 절망하기도 하고, 좋은 결과를 얻었더라도 피곤하고 힘든 과정을 다시 걸어야 한다는 두려움에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를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위 사람에게 상처받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였을 때, 열심히 한 일에 대해서 인정받지 못하였을 때,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던 이들이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우리는 실망하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또한 그 길을 가고자 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원망하기도 합니다.

사제로 살아 온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이러한 장벽과 걸림돌에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길을 잃고 헤매야 할지 두려움이 앞섭니다. 넘어지고 쓰러졌을 때, 또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그런 실망과 후회를 견디어 낼 수 있을지 의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일을 하고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전하는 삶 자체가 어쩌면 처음부터 넘어지고 채찍질당하며, 미움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견디어 내라.’, ‘걱정하지 마라.’ 하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시지만, 그래도 늘 걱정이 앞섭니다. 

십사 년 전 오늘, 저는 이 길에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어떠한 사제가 되겠다는 다짐이나 창대한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쁘고 감사하고 감격스러웠던 첫 마음을 다시금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걱정과 두려움이 닥치더라도 당당히 맞서 나아가려 합니다. 

견디기 쉽지 않을 때마다 첫 마음을 기억하며 예수님께서 함께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첫 마음으로 삶의 어려움을 견디어 내십시오.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지난주 저는 공동체 형제들과 전반기 공동체 피정을 장봉도 공소로 다녀왔습니다. 장봉도는 인천 영종도에서 배를 타고 한 40분 가야 하는 곳이기에 오랜만에 배를 탔는데 배를 타서 그런지 정말 떠난다는 느낌, 모든 것을 홀가분하게 벗어버린 느낌이 들어 시작부터 저절로 피정이 되었지요. 

그렇게 피정이 시작되었고 배를 타고 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김대건 신부님이 소환되었고 연결되었는데, 그것은 올해가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이고, 이번 포르치운쿨라 행진을 김대건 신부님 발자취 따라서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바닷가에 나가 2시간을 바다를 보며 묵상하였는데 이쪽으로 쭉 가면 중국에 가서 닿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김대건 성인이 이 바다를 길이 9m, 너비 4m의 그 작은 배로 오가셨음을 묵상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저는 오늘 강론의 제목을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로 정하고 좀 길지만, 이 편지를 발췌하여 소개하는 것으로 강론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김대건 부제의 열여섯 번째 편지 

발신일 : 1845년 7월 23일
발신지 : 상해
수신인 : 리부아 신부 

리부아 신부님께 지극히 공경하올 신부님, 

저는 모든 준비를 끝낸 후 11명의 신자와 함께 배에 올랐습니다. 이들 가운데 4명만 사공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바다를 구경도 못한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모든 것을 비밀리에 급히 추진하다 보니 유능한 사공을 구할 수도 없었고 그 밖의 요긴한 물건들도 장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음력 3월 24일에 돛을 펴고 바다로 나아갔습니다. 신자들은 바다를 보고 대우 놀라면서 수군거렸으나 감히 저에게는 묻지 못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제가 하는 일에 대하여 질문하지 말라고 미리 금지해 두었던 때문입니다. 처음 하루 동안은 순풍을 만나 무사히 항해했으나 그 후 갑자기 비를 동반한 폭풍우가 3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이 폭풍우로 인해 강남과 상해에서는 30척 이상의 배가 유실되었다 합니다. 우리가 탄 배는 바다에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작은 배였는데 폭풍우가 점점 심해지자 파도 때문에 몹시 까불리고 무섭게 내팽개쳐져서 거의 침몰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저는 배 뒤편에 끌고 오던 종선 줄을 끊어버리게 하였습니다. 그래도 위험이 여전히 계속되므로 두 개의 돛대를 베어버리고 마침내 식량까지 버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배가 조금 가벼워지기는 했지만, 폭풍이 부는 대로 산더미 같은 파도에 휩쓸려 요동을 쳤습니다. 신자들은 3일 동안 먹지 못하여 극도로 탈진하였고 살아날 가망이 없음을 보고 절망하여 "이제는 다 끝났다. 도저히 살아날 수가 없겠다." 하고 서글피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느님 다음으로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신 성모님의 기적 상본을 내보이면서 "겁내지 말라. 우리를 도와주시는 성모님이 여기 계시다."는 말로 가능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였습니다. 저 역시 신병중이라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으면서 일을 보았고 마음속의 두려움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제가 으뜸 사공으로 채용한 사람은 벌써부터 영세 준비를 하고 있던 외인이었기에 저는 그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얼마 후에 거센 물결에 키가 부러져 떠내려갔고 배는 폭풍과 파도에 까불리며 대양으로 떠밀려 갔습니다. 중략. 

이제 우리는 인간의 구원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우리의 희망을 오직 하느님과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의탁하고 누워 잠을 청했습니다. 문득 잠에서 깨어나 보니 비도 그치고 풍파도 약해져 있었습니다. 하루가 지나자 우리는 기운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모든 이에게 음식을 먹고 주님 안에서 다시 정신을 차리라고 명했습니다. 이렇게 원기를 회복한 후 우리는 항해를 계속할 준비를 하려 하였으나 돛대도 없고 돛도 없고 키도 없고 종선도 없어 참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영화로우신 우리 동정 성모님께 깊이 의탁하고, 배에 남아 있던 나무를 있는 대로 다 거둬 돛대와 키를 만들었습니다. 대략 닷새 동안 역풍을 거슬러 항해하였더니 우리는 강남성 해안에 도착하였고 멀리 산이 보였습니다. 중략 

그래서 저는 그 배에 올라가 선장과 인사하고 나서 우리를 상해까지 인도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저의 설명도 간청도 들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와 함께 산동으로 가서 관례에 따라 북경을 거쳐 조선으로 되돌아가라고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북경을 거쳐 귀국하고 싶지는 않고 배를 고치기 위해 반드시 상해로 가야 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돈 천 원을 주겠다는 약속을 듣고서야 겨우 저의 청을 승낙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배를 그 배에 달아매고 대략 8일 동안 줄곧 역풍을 거슬러가다가 또 폭풍우를 만났으나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끌고 가던 선장의 배는 파선하여 한 사람만 살고 그 외에는 모두 죽었습니다. 그 폭풍우가 지나고 다시 항해를 하는데 이번에는 해적들이 우리에게 달려들며 선장을 향하여 "조선 사람들의 배를 끌고 가지 말라. 우리가 그들을 약탈하련다."며 고함을 질렀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선장에게 그들을 폭파시키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러자 해적들은 우리를 떠나 달아나 버렸습니다. 약 7일 후에 오송구에 도착하였습니다. 중략. 

한 번은 관장이 경찰관을 보내어 우리보고 언제 떠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나는 배를 고치기 위하여 여기에 더 머물러 있어야 하오. 그뿐 아니라 당신들의 상급 관장한테서 들은 말인데 얼마 후에 세실 함장이 여기 온다고 하니 나는 그를 만나보기 위해서도 더 머물러 있어야 하겠소."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중국 관장은 우리 때문에 관직을 잃을까 봐 두려워 우리가 출발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 모든 사정을 다 설명드릴 필요도 없거니와 또한 그럴 시간도 없어서 이만 줄입니다. 이미 배는 수리하였고 지금은 종선을 만드는 중입니다. 저희 모두는 주님의 은혜로 잘 있습니다. 조선 대목구장 주교님의 도착을 날마다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공경하올 베지 주교님은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는데 길에서 병이 나셨다고 합니다. 남경에서는 작은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중략. 

그리고 조선 선교지로 보내실 물건들은 모두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는 여러 신부님들께 편지하실 때 저의 인사도 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곳 신자들이 모두 신부님께 인사드립니다. 

공경하올 스승님께, 부당하고 무익한 아들 김 안드레아가 올립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편안으로 평안을 잃을 것인가?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미사를 거행합니다. 만약 천국이 없다면 김대건 신부님의 일생은 그냥 고통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어릴 적 마카오로 가며 수 없는 육체적 고생을 했고 공부하면서 정신적으로 더욱 그러했으며 부모와 가족의 순교로 마음고생도 이에 못지않았습니다. 사제로 서품되어 조금은 편안하게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했겠지만, 순교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가 다 아는 바대로 김대건 신부님은 높은 벼슬과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 주겠다는 회유를 뿌리치고 순교의 길을 택합니다. 한순간도 편안해 본 적이 없는 삶이었지만 마지막까지 편안함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님은 힘들기만 하셨을까요? 마지막에 조금도 편안하기를 원치 않으셨다면 사실 그동안 충분히 행복했던 것은 아닐까요? 하루의 마지막도 힘들었지만, 마음은 편안했을 때 잠이 잘 오는 것이 아닐까요? 종일 쉬고 놀고 방탕하게 살았다면 오히려 불안해서 잠을 잘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편한 일과 힘든 일, 두 개가 앞에 놓여 있다면 항상 좁고 험하고 힘든 일을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사실 편할 때 더 고통스럽습니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행복해하십니다. 그 이유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편안할 수 없습니다. 상대를 위해 피를 흘리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박해받는 시기에 더 신앙이 강해집니다. 자유롭고 편안하게 신앙생활 하는 지금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먼 나라 이야기를 넘어서서 ‘왜 그 고생하며 신앙생활을 한 거야?’라며 의아해합니다. 고통의 의미를 잃어버린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일랜드도 가톨릭 국가로서 영국의 심한 박해를 450여 년 받으면서도 신앙을 잘 지켰지만, 소득이 높아지며 편안해진 지금은 다른 유럽 국가와 별반 차이가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낙태법도 허용되었고 젊은이들은 성당을 떠났습니다. 삶도 신앙도 편안해지려고 하면 죽습니다. 

‘쓰레기로 2층까지 꽉 찬 트레시 홈’이라는 유튜브 동영상이 있습니다. 주택가 한가운데 이층집 천장까지 쓰레기로 꽉 찬 이 모습은 실제로 보지 않으면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집주인은 왜 쓰레기를 모으는 것일까요? 모두 다 필요하다 생각하니 모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습니다. 모든 이상한 행위 뒤에는 항상 ‘죄책감’이란 것이 있습니다. 집주인의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하여 아들이 원하는 것들을 모으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쓰레기를 치울 때 아들은 필요한 것들인데 왜 치우느냐고 짜증 섞인 말까지 합니다. 

아버지의 잘못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들을 고생시키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고생하면서 성장하게 창조되었습니다. 때가 되었으면 밖으로 떠밀고 혼자 힘으로 고생하며 살아가도록 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부모가 해야 할 자녀에 대한 의무일 것입니다. 세상에 왜 이런 고통이 있느냐고 말하지만, 고통 없이는 어떠한 성장도 있을 수 없습니다. 

‘양팔은 잃었지만 삶은 잃지 않았다’라는 유튜브 동영상이 있습니다. 

전기 감전 사고로 양팔을 잃은 분이 계십니다. 자신이 만든 의수로 자신이 만든 자전거에 폐지를 싣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하루를 열심히 일해도 버는 돈은 5천 원 이하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표정은 매우 밝습니다. 집에만 있으라는 말을 뒤로하고 뭐라도 하고 있다는 보람 때문입니다. 그분을 보며 주위의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합니다. 이분은 말합니다. 

“난 팔을 잃었지 의지까지 잃은 것은 아닙니다.”

따님도 이런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같이 다닙니다. 덧글로 달린 몇 개의 글을 살펴보겠습니다. 

“두 팔 두 손 멀쩡하여 지금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는 이 두 팔 두 손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힘들다고 엄살떨고 있는 나를 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존경합니다.”(Eugene Johns)

“땀 흘려 번 돈 4800원에 저렇게 환히 웃을 수도 있는 모습이 새삼 날 부끄럽게 한다.”(미또)

“아저씨는 대기업의 CEO보다, 빌 게이츠보다 이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한 어떤 사람보다 위대한 사람입니다. 죄송하고요 감사합니다.”(한휴머)

이분이 인터뷰하실 때 뒤에 성모상이 보였는데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이런 분이 현시대의 김대건 신부님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우주선에서 오랜 시간 있으면 건강이 좋을까요? 그곳은 기압이 낮아서 몸을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육이 약해지고 골밀도도 약해져서 우주에서 너무 오래 머물면 몸이 망가진다고 합니다. 우리는 힘들지만, 땅을 딛고 살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야 근육도 생기고 뼈도 튼튼해집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싸우지 않으면 약해집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제일 힘드셨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편안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편안함과 싸워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강하게 되시었습니다. 

편안함에 물들지 맙시다. 마치 개구리가 들어있는 물을 조금씩 가열하면 개구리는 뜨거워지는지도 모르고 죽는 것처럼 편안함은 우리를 알지도 못하게 죽입니다. 자꾸 몸을 불편하게 해야 하고 운동해야 합니다. 

신앙도 고난 속에서 더 성장합니다. 하늘에서는 이 세상에서 성장시킨 신앙만큼 상을 받게 됩니다. 김대건 신부님이나 다른 순교자들을 안됐다고 보지 말고 부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6개월간의 긴 여정 끝에 마카오에 도착해서 세 명의 조선 신학생이 놀랐던 것은 건물이나 전례의 완벽함이 아니었습니다. ‘자유’롭게 미사에 참례할 수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만약 지금 교회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면 우리 사회 분위기가 편안함을 선택하여 죽어가고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확실한 것을 원하고 불확실성을 못 견디는 현대인.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에 공시족(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자그마치 40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시험을 통해 확실한 자리를 보장받으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미래가 결정되는 직종이 인기 있는 이유를 이해하게 됩니다. 
 
확실한 것을 원하고 불확실성을 못 견디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우리 미래라는 것은 원래가 불확실한 것이 아닐까요? 이 불확실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다 보니 결혼을 하지 않습니다. 또 결혼하더라도 자녀를 낳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불확실성 자체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불확실성 사회 안에서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 합니다. 불확실하다고 피할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부딪쳐 싸워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일은 어떨까요? 우리는 주님을 직접 보지도 못하고, 또 주님의 말씀을 직접 듣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가장 불확실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새로운 일을 특히 주님 사랑의 길을 향할 때 스스로의 만족감은 물론이고 확실한 미래를 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힘입니다. 믿음으로 더 큰 가치를 향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 미사를 봉헌합니다. 신부님을 비롯한 많은 한국의 순교자들은 불확실한 시대에서도 굳은 믿음을 통해 확실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사실 당시의 대신들이 김대건 신부님의 박학다식함을 아깝게 생각해서 구명운동을 벌일 정도였다고 합니다. 만약 배교만 했다면 젊은 나이에 순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님은 세상의 길보다는 주님의 길을 향하십니다. 세상의 길은 더 불확실한 삶으로 만들지만, 주님의 길은 가장 확실한 삶으로 만들어줍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 참수형을 당하기 직전에 하신 아래의 마지막 유언을 마음에 새겼으면 합니다. 
 
“나는 이제 마지막 시간을 맞았으니 여러분은 내 말을 똑똑히 들으십시오. 내가 외국인들과 교섭한 것은 내 종교와 내 하느님을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천주를 위해 죽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게 시작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죽은 뒤에 행복하기를 원하면 천주교를 믿으십시오. 천주께서는 당신을 무시한 자들에게는 영원한 벌을 주시는 까닭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교만은 모든 죄의 임금이다. 한 번 마음에 들어오기만 하면 온갖 죄악이 무리 지어 이를 따라와서 한 가지만 홀로 아르지 않는다. 갖은 선한 덕이 함께 떠나가 버려 한결같이 나란히 서는 법이 없다.

- 성 그레고리오

 

 

내 편.

 

‘내 편’이라는 말을 우리는 좋아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무슨 일이 생겨도 든든히 나를 지켜줄 것 같은 ‘내 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도 여기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 편이 없어졌으니 슬플 수밖에 없습니다. 또 ‘내 편’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사실은 내 편이 아니라 다른 사람 편임을 알게 되었을 때, 커다란 실망과 함께 상대에 대한 분노까지 생깁니다. 
 
이렇게 ‘내 편’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무조건 ‘내 편’을 해 줄까요? 부모도 자녀의 ‘내 편’이 안 될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진정한 내 편은 주님뿐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내 편’이 많아지길 바란다면서 우리도 누군가의 ‘내 편’이 되어 주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내 편이 많아지길 바란다면, 나 역시 누군가의 내 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당신을 죽이며 살고있는 부끄러운 삶.

 

"걱정하지 마라." (마태 10,19) 

성직자의 생명은 치열함과 열정에 있다.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삶에 있다. 청춘이 아팠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피와 눈물이 한국 성직자들의 밑거름이다. 

부끄러운 시간들을 비추어주는 은총의 첫사제이시다. 이 땅의 첫사제는 끝까지 사제직에 충실하셨다. 새로운 길은 아프다. 뿌리내리는 진통이 매섭다. 쪼개지고 부서지며 푸른 정신이 되셨다. 사제 정신을 잃어버린 지난 시간을 뼈아프게 반성한다. 

좋은 성직자는 먼저 좋은 사람이다. 외롭고 지칠때 찾을 수 있는 사람이다. 몸집만 커져버린 우리교회의 현실이다. 더 뜨겁게 살아가야 할 성직자들의 삶이다. 기도를 떼어놓고 첫사제를 말 할 수 없다. 

오늘도 나는 당신을 죽이며 살고있는 부끄러운 삶이다. 사제직은 멈출 수 없다. 부단한 자기 혁신이 필요한 삶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교회가 있고 사제가 있다. 아름다운 삶을 첫사제처럼 치열하게 살아야 할 우리는 이 땅의 가톨릭 사제이다. 

안정된 길이 아닌 십자가의 치열한 길이다. 사제는 사제다워야 한다. 첫사제시여 사제의 삶을 비추어주소서. 축복처럼 은총처럼 김대건 안드레아 첫사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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