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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1년 7월 2일 (금) 매일미사

by 평화다방 2021.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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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으로 초대합니다!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13주간 금요일 -

 

 

21년 7월 2일 (금) 온라인 미사와 강론입니다.

 

 

✠ 오늘 제1독서

 

아브라함은 죽은 아내 사라를 안장하고, 자신의 고향으로 종을 보내 레베카를 데려오게 하여 아들 이사악의 아내로 맞아들이게 합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세관에 있던 마태오를 부르시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며, 당신께서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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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입당송 (Entracne)
입당송 (Entracne)

 

입당송

 

모든 민족들아, 손뼉을 쳐라. 기뻐 소리치며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창세 23장 1-4절, 19절 / 24장 1-8절, 62-67절

 

이사악은
레베카를 사랑하였다.
이로써
이사악은 어머니를 여읜 뒤에
위로를 받게 되었다.

 


사라는 백이십칠 년을 살았다. 이것이 사라가 산 햇수이다. 


사라는 가나안 땅 키르얏 아르바 곧 헤브론에서 죽었다. 아브라함은 빈소에 들어가 사라의 죽음을 애도하며 슬피 울었다. 


그런 다음 아브라함은 죽은 아내 앞에서 물러 나와 히타이트 사람들에게 가서 말하였다. 


“나는 이방인이며 거류민으로 여러분 곁에 살고 있습니다. 죽은 내 아내를 내어다 안장할 수 있게, 여러분 곁에 있는 묘지를 양도해 주십시오.” 

19 
그런 다음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 마므레, 곧 헤브론 맞은쪽 막펠라 밭에 있는 동굴에 자기 아내 사라를 안장하였다. 

24,1 
아브라함은 이제 늙고 나이가 무척 많았다. 주님께서는 모든 일마다 아브라함에게 복을 내려 주셨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맡아보는, 집안의 가장 늙은 종에게 말하였다. “네 손을 내 샅에 넣어라. 


나는 네가 하늘의 하느님이시며 땅의 하느님이신 주님을 두고 맹세하게 하겠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가나안족의 딸들 가운데에서 내 아들의 아내가 될 여자를 데려오지 않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 가서 내 아들 이사악의 아내가 될 여자를 데려오겠다고 하여라.” 


그 종이 아브라함에게 물었다. “그 여자가 저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아드님을 나리께서 떠나오신 그 땅으로 데려가야 합니까?” 


그러자 아브라함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너는 내 아들을 그곳으로 데려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하늘의 하느님이신 주님, 곧 나를 아버지의 집과 내 본고장에서 데려오시고, ‘내가 네 후손에게 이 땅을 주겠다.’고 나에게 말씀하시며 맹세하신 그분께서 당신 천사를 네 앞에 보내시어, 네가 그곳에서 내 아들의 아내가 될 여자를 데려올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다. 


그 여자가 너를 따라오려고 하지 않으면, 너는 나에게 한 맹세에서 풀리게 된다. 다만 내 아들만은 그곳으로 데려가서는 안 된다.” 세월이 흘러 

62 
이사악은 브에르 라하이 로이를 떠나, 네겝 땅에 살고 있었다. 

63 
저녁 무렵 이사악이 들에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눈을 들어 보니, 낙타 떼가 오고 있었다. 

64 
레베카도 눈을 들어 이사악을 보고서는 얼른 낙타에서 내려, 

65 
그 종에게 물었다. “들을 가로질러 우리 쪽으로 오는 저 남자는 누구입니까?” 그 종이 “그분은 나의 주인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레베카는 너울을 꺼내어 얼굴을 가렸다. 

66 
그 종은 이사악에게 자기가 한 모든 일을 이야기하였다. 

67 
이사악은 레베카를 자기 어머니 사라의 천막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그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이사악은 레베카를 사랑하였다. 이로써 이사악은 어머니를 여읜 뒤에 위로를 받게 되었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주님을 찬송하여라,
좋으신 분이시다.

 

주님을 찬송하여라, 좋으신 분이시다. 그분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주님의 위업을 누가 말하리오? 그 모든 찬양을 누가 전하리오? 주님을 찬송하여라, 좋으신 분이시다.

행복하여라, 공정하게 사는 이들, 언제나 정의를 실천하는 이들! 주님, 당신 백성 돌보시는 호의로 저를 기억하소서. 주님을 찬송하여라, 좋으신 분이시다.

저를 찾아오시어 구원을 베푸소서. 제가 당신께 뽑힌 이들의 행복을 보고, 당신 민족의 즐거움을 함께 기뻐하며, 당신 소유와 더불어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주님을 찬송하여라, 좋으신 분이시다.

 

 

매일미사 복음환호송 (Gospel Acclamation)
복음 환호송 (Gospel Acclamation)

 

복음환호송

 

알렐루야!

 

주님이 말씀하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알렐루야!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마태 9장 9-13절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0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매일미사 영성체송 (Communion Antiphon)
영성체송 (Communion Antiphon)

 

영성체송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저희가 봉헌하고 받아 모신 성체로 저희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저희가 사랑으로 주님과 하나 되어 길이 남을 열매를 맺게 하소서.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1년 7월 2일 (금)

 

 

팔로티회 매일미사

 

 

21년 7월 2일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 Reflections)

 

매일미사
최종훈 토마스 신부

 

우리는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고 있습니까?

 

하루를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그러나 그들을 전부 알지는 못합니다. 현대인들은 많은 경우에 자신이 가진 간단한 정보로 타인을 받아들이고 판단합니다. 그가 어디 출신이며 어떤 일을 하는지, 나이는 어떻게 되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느 학교에 전공은 무엇인지 등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또한 그 사람이 어디에서 살고 생활 환경이 어떠한지,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는지에 따라 미리 그를 판단합니다. 누군가를 깊이 알아 가며 인격적인 만남을 바라기보다는, 자신의 이익과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만남을 이어갑니다.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들도 그러한 시선으로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고 만납니다. 바리사이들은 세리인 마태오를, 민족을 배신하고 돈만을 쫓아 살아가는 파렴치한으로 판단합니다.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 또한 죄인이며 배신자로 결론 내립니다. 그러한 선입관에 사로잡힌 바리사이들은 세리와 죄인과 함께하시는 예수님조차도 그들과 같은 부류로 판단해 버립니다. 그들의 선입관에는 자신은 깨끗하고 의인이라는 자만심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도, 마태오도, 그리고 다른 세리와 죄인도 진정으로 만나지 못합니다. 그 선입관과 자신의 욕심 때문에 그들에게 다가가지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지도, 그리고 그들을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서슴없이 마태오에게 다가가시어 그와 함께하십니다. 색안경 너머로 보이는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그들 각자의 가난함에 함께 자리하십니다. 슬픔과 두려움, 고민과 갈등에 휩싸인, 그리고 병들어 있는 그들의 아픔에 다가가십니다. 그것이 그분의 자비이며,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고 있습니까? 그가 가지고 있는 무엇인가로 그를 쉽게 판단하고 그가 나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를 따져 가며 그와 함께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의 만남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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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마태오가 필요로 하는 예수, 유다가 필요로 하는 예수

 

오늘 복음은 마태오가 예수님으로부터 제자로 불림을 받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오와 같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보고 바리사이들은 기분이 상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예수님은 당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과 함께하십니다. 그렇다고 유다 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다윗의 후손으로서 로마의 압제로부터 자신들을 해방해 줄 왕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사도 중에 마태오도 예수님이 필요했고 가리옷 유다도 예수님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이 차이는 무엇일까요? 필요하다는 말은 어떤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같은 예수님이 필요했지만, 마태오에게 예수님이 필요한 이유와 유다에게 예수님이 필요한 이유는 서로 다릅니다. 

부모가 아이를 낳는다면 분명 아이가 필요해서일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오처럼 아이가 필요한 부모와 유다처럼 아이가 필요한 부모가 다릅니다. 

영화 ‘4등’(2015)의 내용입니다. 

준호는 만년 4등을 하는 수영선수입니다. 준호 엄마는 어떻게든 준호를 1등으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왕년에 아시아 신기록까지 경신한 한 코치를 소개받습니다. 그런데 코치는 돈은 받으며 아이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아이가 놀다가 지쳐서 코치에게 수영을 가르쳐달라고 합니다.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아이 수영하는 모습을 본 코치는 가르칠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코치의 가르치는 방식은 ‘구타’였습니다. 코치도 사실 선수 시절 맞는 게 싫어서 선수를 그만둔 것이었는데 지금은 아이의 성적을 올릴 수 있는 자신이 아는 유일한 방법이 그것뿐이었던 것입니다. 

엄마는 준호가 몸에 멍이 든 상처가 나서 돌아오는 것을 알지만 엄마는 밤에 살짝 아이의 몸을 들춰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자인 아빠가 이것을 알아버렸습니다. 이때 아이는 대회에서 2등을 합니다. 그렇더라도 아빠는 아이를 계속 구타하면 기사에 내버리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아빠는 코치가 맞을 때 기사를 내어달라고 할 때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는 거 아니냐며 그 청을 거절했던 바로 그 기자였던 것입니다. 코치는 아빠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를 때립니다. 아이는 더는 못 버티겠다며 수영을 그만두겠다고 합니다. 엄마는 크게 화를 내며 준호를 본척만척합니다. 

준호의 어머니는 이제 준호 동생에게 기대를 겁니다. 동생이 엄마의 희망이 된 것입니다. 준호는 자신이 맞은 대로 자기 동생을 때립니다. 그리고 자신도 다시 수영하겠다고 코치를 찾아갑니다. 코치는 엄마 생각하지 말고 혼자 하면 금메달을 딸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떠납니다. 아이는 죽을힘을 다해 1등을 합니다. 엄마는 기뻐합니다. 그런데 준호는 2등 했을 때는 기뻤지만 이상하게 1등을 했는데도 기쁘지 않습니다. 영화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준호와 엄마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엄마는 준호를 통해 수영 잘하는 아이의 엄마가 되고 싶어서 준호가 필요합니다. 이 필요함은 가리옷 유다가 예수님을 필요로 한 것과 같습니다. 필요로 한 대상이 그 필요한 대상이 아닌 그 대상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다 지도자들이나 가리옷 유다는 예수님을 통해 민족의 해방이나 돈과 권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준호에게 엄마가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기를 경쟁이라는 고통 속에서 구해주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냥 엄마만 있으면 되는 그런 필요함이었습니다. 이것이 마태오가 예수님을 필요로 한 이유입니다. 마태오는 돈과 권력, 쾌락에 물들어있는 자신으로부터 구해줄 예수님이 필요했습니다. 유다가 돈을 위해 예수님이 필요했다면 마태오는 그 욕심을 버리기 위해 예수님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과연 누구와 함께 식사를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세상에서 돈과 명예에 대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지, 아니면 그 욕심들을 없애기 위해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예수님을 필요로 한다고 다 그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지는 않으십니다. 

어떤 유튜브에는 한 영재 아이가 아버지에게 파리채를 던지는 충격적인 장면도 있습니다. 똑똑했던 명이라는 아이가 그렇게 부모와 동생에게까지 문을 닫아버리고 공격적인 행동을 보인 이유는 아이에게 보살핌을 주어야 했을 때 부모가 그렇게 해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집안이 어려워져 부모는 장남인 명이에게 공부를 강요하였습니다. 성적이 좋지 못하면 몸에 상처가 날 때까지 때렸습니다. 그것에 대한 보복을 받는 것입니다. 

 [출처: ‘아버지에게 파리채 던지는 영재, 그 이유는?’, 유튜브 채널, ‘SBS STORY’]

아이를 이용하려고 하며 필요로 했던 것이 사랑이었다는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군가를 필요로 할 때 그 사람 때문에 다른 욕심들이 사라질 수 있어야 진정한 사랑입니다. 

유튜브에 이런 실험 카메라 동영상도 있습니다. 안과에서 아들과 어머니, 의사 선생님이 짜고 아들이 실명 단계에 있어서 각막을 이식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가족 중에 누군가 각막을 이식해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으로 아버지 한쪽 어머니 한쪽 이식해 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합니다. 아들은 감동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눈이 그렇게 안 좋게 태어나게 만든 것에 대해 오히려 미안한 마음을 가집니다. 

[출처: ‘아들의 갑작스러운 실명 소식, 그리고 아버지의 한 마디’, 유튜브 채널, ‘엔스크린’]

살 만큼 살았고 더는 욕심내며 살지 않게 각막이라도 내어줄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런 욕심을 끊을 아들을 바라는 마음이 진짜 사랑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필요로 한다고 말할 때 마태오의 참사랑일 수도 있고 유다의 거짓 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기실현을 위해 예수님을 필요로 합니다. 어떤 사람은 모기가 되려고, 또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가 되려고 세상 욕구를 끊기 위한 마음이 아닌 이상 그리스도를 바라는 마음은 다 가짜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불경기니까...

 

두 명의 기업 대표가 있는데 이들의 경영 방식은 정반대인 것으로 늘 대조되었습니다. 불경기 때 대처하는 방식만 봐도 알 수 있었지요. 한 대표는 불경기에는 인원을 줄이거나 현행 유지를 합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불경기니까.” 
 
다른 대표는 불경기가 되면 오히려 인원을 많이 뽑습니다. 그 이유 역시 간단합니다. 
 
“불경기니까.” 
 
불경기에는 더 좋은 직원을 합리적인 연봉으로 채용할 수 있기에 이때 더 회사를 확장하는 기회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기업이 더 잘 나가는 회사일까요? 
 
두 기업 모두 잘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각 대표가 자기만의 철학을 가지고 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해괴한 선택이라 해도 남들도 이해할만한 합리적인 철학을 가지고 있으면 긍정의 결과를 얻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가 남 따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는 절대 잘 될 수가 없습니다. 남의 철학을 따라 하는 것이니 여기에 대한 믿음도 부족하고, 따라서 특별한 변수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근동 특히 팔레스티나에서 식사는 사람들 사이의 일치를 가장 강하게 드러내는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율법 준수에 온갖 정성을 기울이는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율법을 알지도 지키지도 못하는 ‘세리와 죄인’을 멸시할 뿐만 아니라 그들과 상종하는 것조차 피했습니다. 더구나 그들과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죄인 곧 부정한 자의 초청을 받아들이시어, 다른 많은 죄인과 함께 식사하십니다. 이로써 그분께서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중요한 규정을 의도적으로 깨드리십니다. 
 
그들이 봐야 할 것은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은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서 확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사랑이 아닌 규정의 준수만을 외쳤던 바리사이를 비롯한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향한 꾸짖음이었습니다. 그들이 만약 주님의 사랑을 볼 수 있었다면, 주님을 이해할 수 있고 또 함께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써 구원이라는 가장 큰 선물을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철저히 잘못된 철학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주님의 사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원한 생명이라는 가장 큰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모든 인간의 문제에는 깔끔하고 간단한 대답이 있지만 그 답은 항상 그르다.

- 헨리 루이스 멩켄

 

 

즐거운 신앙생활

 

저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듭니다. 10시만 되면 눈이 저절로 감기고 그래서 10시를 전후해서 침실로 향합니다. 잠을 꾹 참으면서 해야 할 일을 해도 눈꺼풀이 감기면서 능률이 전혀 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선후배 신부를 만나서 술 한 잔을 마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계를 보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10시가 훨씬 넘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전혀 졸리지 않았습니다. 눈이 더욱 초롱초롱해지면서 더 같이 있고 싶었습니다. 
 
만약 그 신부들이 반갑지 않고, 그 자리가 즐겁지 않았다면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졸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를 즐기니 이제까지와 다른 모습을 갖게 된 것입니다. 
 
주님과의 만남도 즐겁고 유쾌한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치 의무감에서 주님을 만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즐거운 신앙생활이 아닌 어쩔 수 없이 하는 신앙생활이 되고 맙니다. 
 
주님과의 만남이 늘 지루하고 힘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즐거운 신앙생활이 되시길…. .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복음은 사람들 속에서 울고 웃는다.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 9, 13) 

그 누구도 버리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시다.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변화시키시는 하느님이시다. 죄인들 속에서 하늘 길을 여신다. 죄인도 하느님의 소중한 자녀들이다.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하느님의 소중한 사람들이다. 

죄인의 아픔을 이해하시는 주님이시다. 우리보다 더 아파하시고 우리보다 더 슬퍼하신다. 죄인을 부르시고 찾아오시는 하느님이시다. 너무 과분하신 죄인들의 하느님이시다. 죄인들 안에 계시는 하느님이시다. 복음은 사람을 가리킨다. 복음은 사람들 속에서 울고 웃는다. 

우리에게는 하느님이 계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느님이시다. 아직도 그 사랑을 몰라 헤맨다. 하느님 사랑으로 사람은 점점 아름다워진다. 당신의 사랑으로 죄인들이 새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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