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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3/29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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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주님은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신다.

주님, 해마다 사순 시기의 재계로 파스카 성사를 준비하게 하시니 저희가 그 신비의 기쁨을 미리 맛보고 구원의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소서.

2025년 3월 29일 사순 제3주간 토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3월 29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5년 3월 2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사순 제3주간 토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호세 6,1-6)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 오늘 복음
    (루카 18,9-14)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 오늘 말씀 카드
    (호세 6,3)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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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호세 6,1-6
오늘 제1독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자, 주님께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잡아 찢으셨지만 아픈 데를 고쳐 주시고 우리를 치셨지만 싸매 주시리라. 


이틀 뒤에 우리를 살려 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어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되리라. 


그러니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 


에프라임아,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너희의 신의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 같다. 


그래서 나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들을 찍어 넘어뜨리고 내 입에서 나가는 말로 그들을 죽여 나의 심판이 빛처럼 솟아오르게 하였다.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루카 18,9-14
오늘 복음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3월 29일
오학준 요한 신부

 

✚ 미사시작 00:38

✚ 강론시작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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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한창현 모세 신부

 

세리가 보여 준 겸손의 덕행이 중요하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루카 18,9)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간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비유에 첫 번째로 등장하는 바리사이는, 자신이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자들과 같지 않다고 하면서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두 번째로 등장하는 세리는, 자신이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죄인이기에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느님께 간청합니다.

이 비유를 듣고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요? 유다인에게 의로움은 율법을 충실히 지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과 자신을 구분하는 바리사이의 모습에 동질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감히 하느님께 다가가지 못하는 죄인 세리를 보면서 업신여기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곧 그들에게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의로움과 업신여김을 구분하는 기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리가 의롭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의로움과 업신여김에 대하여 그가 가지고 있던 기준을 완전히 뒤엎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높이느냐 아니면 낮추느냐가 기준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판단 기준을 적용하기 전에 오늘의 복음을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의 충실한 종교적 실천을 낮게 평가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자신의 기준이 전부인 양 그 기준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태도를 경계하도록 강조하시며, 특별히 세리가 보여 준 겸손의 덕행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것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오늘 복음에서 주인공은 둘입니다. 그러나 오늘 독서와 연결하여 보면 바리사이가 더 주인공입니다. 먼저 그는 기도하려고 간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그는 하느님 앞에 자랑하러 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랑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기도가 하느님과의 진실한 만남이고 통교라면 자랑은 하느님과의 만남과 통교가 목적이 아니고, 하느님이든 인간이든 누구든 상관없이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자랑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 만나기만 하면 자랑하기 마련이고 그렇기에 굳이 하느님을 만나 뵙고 싶은 것이 아니며, 하느님 앞에 있더라도 하느님 앞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 집중하지 않고 세리에게 눈길을 돌리고 세리와 비교나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필이면 하느님께 자랑하냐? 자랑할 데가 없어서 하느님께 자랑하러 왔냐? 이런 바리사이에게 오늘 호세아는 “자, 하느님께 돌아가자!”라고 호소합니다.

지금까지 세리를 봤다면 자! 이제 그 눈을 하느님께 돌리자고, 작은아들처럼 하느님을 떠났다면 자! 이제 하느님께 돌아가자고, 고통을 주신다고 주님을 떠났다면 이제 하느님께 돌아가자고 호소합니다.

그런 다음 호세아는 “하느님을 알아드리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라고 호소합니다. 지금까지 바리사이는 자기가 하느님을 알고 있다고,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느님이 뭘 좋아하시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먼저 그는 하느님께서 자기의 십일조나 단식을 좋아하신다고 알고 있고 율법을 어기는 세리보다 자기를 하느님께서 더 사랑하신다고 잘못 알고 있습니다. 이런 그에게 오늘 호세아서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그러니까 기도하러 갈 때 십일조나 희생제물이나 번제물과 같은 것을 가지고 가서 자기 자랑이나 하는 것을 하느님께서 좋아하시지 않고, 세리처럼 겸손히 하느님께 나아가 자비를 청하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더 좋아하신다는 그는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 우리는 첫째와 둘째가는 계명이 무엇인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순절에 바리사이처럼 단식하는 것으로 자기만족하고 자기 자랑이나 하고 사랑은 멀리하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작 끊어야 할 것은 음식이 아니라 욕망과 미움이고, 비교하며 내가 잘났다는 교만입니다. 자랑과 교만 이것은 모든 사람이 싫어하고 하느님께서도 제일 싫어하시고, 오직 자기만 좋아하는 것임을 오늘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를 들려주십니다. 이 비유에는 대조를 이루는 두 인물, 곧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여기는 죄인인 바리사이와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여기는 의인인 세리가 있습니다.

그들의 가장 큰 차이는 ‘보는 눈’에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서로 달랐습니다. 바리사이의 눈은 자신을 의롭다고 보는 눈이고, 세리의 눈은 자신을 죄인이라고 보는 눈입니다. 곧 바리사이에게는 자신을 높이는 눈이 있고, 세리에게는 자신을 낮추는 눈이 있습니다.

둘째, 그들은 ‘타인을 보는 눈’이 서로 달랐습니다. 바리사이의 눈은 타인을 업신여기는 눈이고, 세리의 눈은 타인을 중히 여기는 눈입니다. 곧 바리사이에게는 꼿꼿이 서서 하늘을 향하는 눈이 있고, 세리에게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눈이 있습니다. 곧 타인의 가슴을 치는 이가 있고, 자신의 가슴을 치는 이가 있습니다.

셋째, 그들은 눈이 ‘바라보는 곳’이 서로 달랐습니다. 바리사이의 눈은 자신을 향하여 있고, 세리의 눈은 하느님을 향하여 있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는 스스로 의롭다 자신하고 “꼿꼿이 서서 혼자말로 ...기도하였다.”(루카 18,11) 이 말의 원어를 직역하면, “자신을 향해 기도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루카 18,11)라고 말하지만, 실은 긴 독백으로 하느님께 설교하려 들었습니다.

그러니, 그는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자신을 위해 있어야 했습니다. 곧 하느님이 자신의 가치 확인과 자화자찬을 위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우러르기보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을 앞세웁니다.

반면에, 세리는 하느님을 향하여 있으며, 자신과 하느님의 거리를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루가 18,13).

그리고 그분 앞에서 자신이 진실로 누구인지를, 곧 죄인임을 깨닫고서,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3). 그렇게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에 자신을 맡깁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겸손’은 하느님 앞에 있기에, 자기를 비하하거나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자비가 필요함을 알고 그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되, 결코 자신을 하잖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을 중히 여기고 자비를 구하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도 귀중하게 여기고 중시합니다. 그러기에, 겸손은 자신을 낮추기만 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우러르며 존경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언제나 주님 앞에 서 있고, 주님을 향하여 있어야 할 일입니다. 그분의 자비를 입고서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자비가 아니면 살 수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필요한 것은 당신의 자비, 그 외엔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가슴을 치며 하느님을 향해 기도합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3).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8,13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주님!
제 눈이 당신을 바라보게 하소서.

당신 앞에서 제 자신을 보고
당신 안에서 타인을 바라보게 하소서.

타인의 존귀함을 볼 줄을 알게 하시고
제 자신의 가슴을 칠 줄을 알게 하소서.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진정 제게 필요한 것은 당신의 자비오니
당신의 자비가 아니고서는 
살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그토록 자비를 입었으니
자비를 베푸는 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요즘 청소년들에게 인기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틀어주면 누구의 노래인지 금방 압니다.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으로 이루어진 아이돌 그룹이지만, 그중 누가 부르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맞힙니다. 솔직히 제가 들어보면 다 똑같은 목소리인 것 같은데, 아이들은 이렇게 다른데 어디가 똑같냐면서 저를 이상한 사람 취급합니다. 심지어 딱 5초만 들어도 가수가 누구이고, 어떤 노래인지 제목을 그리고 가사까지도 이야기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요즘 아이들은 천재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로서는 이런 부분의 천재가 아니라, 공부에서 천재가 되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잘 보면 공부에서도 천재가 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요즘 인기 있는 노래를 천재적으로 알 수 있는 이유는 많이 듣고 또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전혀 요즘 노래를 듣지 않는 저로서는 당연히 불가능한 모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복적으로 똑같은 노래를 듣고, 노래하는 영상도 계속 보면서 귀와 눈에 새겨진 것입니다(공부도 이렇게 하면 되겠지요?).
 
성경 말씀을 읽어 주고서 어느 성경에 나오는 말씀인지를 대답하라고 하면 대부분 불가능하다고 할 것입니다. 성경이 73권이나 되는데 어떻게 알 수 있겠냐고 하지요. 그러나 성경 말씀을 계속 읽어 온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몇 장 몇 절인 것까지는 대답하기 힘들다 해도, 어느 성경인지는 맞힐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삶 안에서 주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불가능한 이야기일까요? 아닙니다. 평소에 주님 말씀을 계속 읽었다면 가능해집니다. 주님과 기도로 대화하며 가까운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면 가능합니다. 그리고 주님 뜻을 따르는 삶을 통해 가능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바리사이와 업신여김을 받는 세리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바리사이는 자기 공로와 미덕을 하느님께 자랑하고 다른 이들을 멸시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자기 허물을 깨닫고 뉘우치며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에 의지하는 세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세리처럼 회개의 마음과 하느님께 의탁하는 겸손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교만과 이기심을 통해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도저히 들을 수가 없으며, 그래서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 수 없게 됩니다. 당연히 하느님 나라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겸손과 사랑의 마음을 갖춘 사람은 하느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하느님 뜻에 맞게 살면서 하느님 나라에 가까워집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살펴봐야 할 사순시기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세리가 보여준 회개와 겸손의 마음을 먼저 갖춰야 합니다. 그래야 삶 안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좋은 기업과 위대한 기업 사이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다. 좋은 기업은 훌륭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위대한 기업은 훌륭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 윌리엄 클레이 포드 주니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바라사이도 세리도 회개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는 겸손을 먹고 자라납니다. 겸손이 기도를 키웁니다. 기도는 오히려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오는 것입니다. 더 낮은 곳에 계시는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거짓 없는 기도가 우리를 의롭게 하는 진정한 기도입니다. 의롭게 되는 진정한 기도는 그 누구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치켜세움과 깔봄은 진정한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의 신분이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기도의 본질입니다. 기도가 겸손을 만나면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갑니다. 기도는 겸손된 회개로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삶을 반영합니다. 우리의 겸손이 우리의 진실한 회개가 기도입니다. 기도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이며 우리 자신의 참된 회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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