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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3/27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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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백성의 구원이다. 어떠한 환난 속에서도 부르짖으면 내가 들어 주고, 영원토록 그들의 주님이 되어 주리라.

주님, 존엄하신 주님께 간절히 비오니 구원의 축제가 다가올수록 저희가 더욱 큰 열정으로 파스카 신비를 준비하게 하소서.

2025년 3월 27일 사순 제3주간 목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3월 27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5년 3월 2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사순 제3주간 목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예레 7,23-28)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민족이다.

  • 오늘 복음
    (루카 11,14-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

  • 오늘 말씀 카드
    (루카 11,17)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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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 7,23-28
오늘 제1독서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민족이다.

2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내 백성에게 23 이런 명령을 내렸다. ‘내 말을 들어라.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만 온전히 걸어라. 그러면 너희가 잘될 것이다.’ 

24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제멋대로 사악한 마음을 따라 고집스럽게 걸었다. 그들은 앞이 아니라 뒤를 향하였다. 

25 
너희 조상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내 모든 종들, 곧 예언자들을 날마다 끊임없이 그들에게 보냈다. 

26 
그런데도 그들은 나에게 순종하거나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자기네 조상들보다 더 고약하게 굴었다. 

27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씀을 전하더라도 그들은 네 말을 듣지 않을 것이고, 그들을 부르더라도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 

28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은 민족이다. 그들의 입술에서 진실이 사라지고 끊겼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그럽고 자비로우니 이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루카 11,14-23
오늘 복음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

그때에 

14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말을 못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군중이 놀라워하였다. 

15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3월 27일
오학준 요한 신부

 

✚ 미사시작 00:38

✚ 강론시작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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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한창현 모세 신부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사랑 안에 있다.

오늘 복음에서는 말을 못 하는 이가 말을 할 수 있도록 마귀를 쫓아내신 예수님의 행동을 보고 놀라는 사람들 가운데 특별히 두 부류의 사람들이 다루어집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서 마귀를 쫓아낸다고 말하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그분께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하는 부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고 하는데, 그 말씀의 내용을 보면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에 대한 일종의 답변인 것 같습니다.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서 마귀를 쫓아낸다는 생각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시는 듯합니다. 마치 베엘제불의 힘을 빌렸을 것이라는 생각도 그럴 만하다고 이야기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아예 아무런 말씀도 하시지 않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이미 표징을 보여 주셨는데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다른 표징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이 모습은 제1독서에 나오는 예레미야 예언자 시대의 사람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이미 말씀을 전하셨지만,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훈계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을 포기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는 표징을 보여 주실 때 적어도 그들은 그 자리에 주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우리도 시련 속에서 하느님께 구체적인 표징을 보여 달라고 하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이미 하느님의 사랑 안에 있음을 결코 잊지 않을 은총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모든 경우에 하느님을 선택하는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한 편에 섬으로써 많은 사람이 공동체를 깨는 잘못들을 범하니 똑바로 살겠다고 하는 사람이 나는 어느 편에도 서지 않겠다며 양비론 곧 양쪽 다 문제가 있다는 식의 비판하고는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람이나 진영에 매이지 않겠다는 것이라면 올바른 자세일 수 있지만 그런 것이 아닌 진리의 문제라면 분명히 어느 한쪽에 서야 하고 이때 양비론은 좋은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사실 양비론의 많은 경우 진리의 자세가 아니라 이쪽저쪽 다 글러 먹었어! 식의 교만, 곧 나만 옳다는 식의 교만일 가능성이 큽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야당 지도자가 잘못이 있다고 해도 그리고 그를 극성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해도 계엄을 일으키고 지금 탄핵받는 대통령과 똑같이 나쁘다고 하고, 그를 지지하며 법원까지 부스는 자들과 똑같이 나쁘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런 정치적인 사안이 아니더라도 더 큰 악과 더 큰 잘못이 있으면 그것이 더 큰 잘못과 악이라고 한 뒤 이것도 잘못이 없는 건 아니라고 해야지 잘못이 똑같다는 양비론은 안 됩니다.

더욱이 악령의 괴수 베엘제불과 하느님 사이에서 양비론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악의 세력과 악의 세력화에 대해 항상 경계하고 단호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나도 악하고 나도 죄인인데! 하는 자기반성은 겸손의 차원에서 옳은 태도이지만 나의 죄악에 대한 반성 때문에 악의 세력과 세력화에 단호한 태도를 지니지 못한다면 그것은 안 될 일입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 그리고 신앙적으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하느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이이제이(以夷制夷)하기도 하고, 최악 대신에 차악을 차선책으로 선택하기도 하지만 신앙인이라면 하느님을 선택하고 하느님 편에 서야 합니다.

이것이 광야에서 악마에게 유혹받으실 때 주님께서 취하신 태도입니다. 배고픈 주님을 빵으로 악마가 유혹할 때 주님께서는 네가 주는 빵은 먹지 않겠다는 식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 말씀으로 살겠다는 최선의 선택을 하셨고 이어지는 악마의 유혹들에 대해서도 성경 말씀을 인용하시며 물리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인이라면 모든 경우에 하느님을 선택하고 하느님 편에 섭니다. 유혹당할 때 당하지 말고 하느님을 선택하고, 고통당할 때 당하지 말고 하느님을 선택하고, 두려움과 마주할 때 하느님을 선택하고, 악의 세력들과 마주할 때 더욱더 하느님을 선택하고 하느님 편에 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우리는 그분 목장의 백성, 그분 손이 이끄시는 양 떼

오늘 <말씀전례>는 우리의 완고한 마음에 경종을 울립니다.

<제1독서>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목을 뻣뻣이 세우고 고약하게 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전해줍니다.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신적 권능에, 오히려 적대하며 악담을 퍼붓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전해줍니다.

<제1독서>에서는 두 개의 중심이 되는 동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 말을 들어라” 라고 할 때 “들어라”라는 동사와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을 온전히 걸어라” 라고 할 때 “걸어라” 라는 동사입니다. 이 두 동사의 표본, 곧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걷는 일의 표본은 오늘 <화답송>에 나오는 “양 떼”입니다. 곧 ‘양’은 목자의 말을 알아듣고 그의 말을 따라 걷는 이의 표상입니다.

한편, 그 반대의 표상에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벙어리 마귀”가 있습니다. 벙어리 마귀는 말씀을 듣지 못하게 방해하여, 말하지 못하게 하는 마귀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말씀을 따라 걷지 못하게 하고, 말씀의 실현을 훼방하는 방해꾼입니다. 이 방해꾼은 <제1독서>에서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고집스런 마음, 목을 뻣뻣이 세우는 고약한 마음, 그리고 <화답송>에서의 “무딘 마음”의 표상입니다. 곧 이들은 ‘주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말, 곧 자신의 생각이라는 우상을 따라 걷는 이들의 표상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마귀를 쫒아내심으로써, 당신의 권능, 말씀의 권능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반응은 놀라워하면서도 받아들이기보다, 오히려 예수님께,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루카 11,15)고 악담으로 대적하면서 표징을 요구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모순을 반박하시면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20)

이는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낸 사실이 단지 하나의 기적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손가락, 곧 ‘하느님 권능의 임재’임을 말해줍니다. 곧 “하느님 나라”의 임재를 말해줍니다. 그러기에,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그 뜻이 이루어지는 하늘나라의 실현을 뜻합니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는 말씀이신 예수님과 더불어 우리 안에서 실현되는 나라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아직 “하느님 나라”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 안에 말씀을 듣고도 따라 걷지 못하게 하는 ‘완고한 무딘 마음’이 있지 않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우리 안에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고집스런 마음’, ‘목을 뻣뻣이 세우는 고약한 마음’이 있어 주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의 말이나 생각을 듣고 따라 걷고 있지 않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는 자기 자신의 말이 아니라 이미 주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을 따라 걸어가는 “양 떼”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화답송>에서 시편작가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우리는 그분 목장의 백성, 그분 손이 이끄시는 양 떼이로세”(시편 95,7).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1,20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주님!
제 안에는 당신 형상의 
빈자리가 있습니다.

오로지 임자이신 당신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당신께서 제 안에 계시오니 
당신의 나라를 드러내소서. 

제 영혼이 당신의 성전이오니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신앙에 무관심한 자와 미지근한 자 중 누가 더 나쁠까?

오늘 복음에서 군중 가운데 몇 사람은 예수님께서 하신 기적을 보고는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라고 말하고, 또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마치 마귀를 쫓아내는 일이 힘센 자와 강도가 싸우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하시며,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다.”라고 결론을 내리십니다.

만약 전쟁에서 상급자가 하는 일에 자꾸 불만을 품거나 상급자를 인정하지 않는듯한 태도를 보이면 어떻게 될까요? 이는 마치 ‘탈영’을 하는 일과 같습니다. 자기 목숨을 살리고자 탈영하면 어떤 면에서 크게 피해를 주는 것처럼 생각되지 않을 수 있으나, 실제로는 군의 사기를 떨어뜨려 전쟁에서 패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게 합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이 이와 같은 역할을 담당합니다. 골룸은 프로도와 샘의 길 안내자로 등장하면서 그들의 믿음을 얻기 위해 간절하게 말합니다.

“룸이 착한 주인님을 잘 모시겠어요. 골룸이 길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항상 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골룸은 프로도와 샘을 속이기 위해 친절한 모습과 간교한 모습을 반복하며 내부에서 그들을 분열시키고 약화했습니다. 그는 샘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했고, 프로도의 마음을 혼란에 빠뜨려 결국 프로도는 샘마저도 의심하게 됩니다. 결국 프로도는 신뢰했던 친구 샘에게 “돌아가 버려! 네 도움은 이제 필요 없어!”라고 말하며 분노를 표출합니다.

골룸의 최악의 배신은 프로도와 샘을 거대한 거미 괴물 ‘쉴롭’의 소굴로 유인한 사건입니다. 그는 프로도를 죽게 하고 자신이 반지를 차지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결국 프로도가 거미에게 마비되고 위험에 처하게 만듭니다. 샘이 프로도를 구해냈지만, 내부에서 일어난 이 배신 때문에 프로도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

예수님도 가리옷 유다에 의해 배신당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그가 아니어도 십자가의 길로 가시기로 결심하셨기 때문에 이것은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 냉랭한 사람보다 사랑하는 척하며 그분 곁에서 열성적이지 못할 때 가장 큰 피해를 준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 중 하나로 꼽히는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기원전 218년부터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이끌며 로마를 상대로 수많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특히 기원전 216년의 칸나이 전투에서는 로마군을 거의 전멸시키는 대승리를 거두며 로마를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는 “한니발 앞에서 로마는 마치 늑대 앞의 양 떼와 같았다.”라고 기록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로마를 무너뜨리기 위한 한니발의 모든 계획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무너졌습니다. 카르타고의 정치인들과 귀족들은 한니발의 성공을 질투하고 견제하며, 필요한 지원과 병력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한니발은 계속해서 본국에 편지를 보내 지원을 요청했지만,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힌 지도자들은 이 요청을 무시하거나 지연시켰습니다.

결정적으로, 내부의 배신은 기원전 202년 자마 전투 직전에 절정을 이룹니다. 카르타고의 정치 지도자들은 내부에서 협력하여 한니발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심지어 로마와 비밀리에 협상을 시도하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한니발은 자마 전투에서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에게 결정적으로 패배했고, 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끝납니다. 전투 후, 절망한 한니발은 “내 진정한 적은 로마가 아니라 카르타고의 정치가들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로마는 법치주의 국가였기에 결단력이 빨랐으나, 카르타고는 결정을 지연하고 일치하지 않으며 패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을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은 마치 아버지처럼 자상하다가도 탈영한 자에 대해서는 매우 무서운 모습을 보입니다. 자기 자신이 탈영한 자의 목을 사정없이 치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족이 있고 나이 든 부모가 있다고 해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전쟁에서 지면 그보다 더 큰 비극이 온 국민에게 닥쳐오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그냥 죄를 지어 자기만 지옥에 가면 됩니다. 그러나 교회 내에서 영혼 구원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더욱 큰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다시는 대통령 부부가 아무리 미워도 비행기 사고로 떨어져 죽으라고 하는 사제는 나와서는 안 됩니다.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영혼이 교회에서 떨어져 나갔는지 모릅니다.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선교를 자신이 빠져도 되는 무엇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큰 노력을 하지 않고 주일미사에만 열심히 나옵니다. 그러나 선교도 전쟁입니다. 싸워서 쟁취하지 않으면 빼앗깁니다. 한 영혼을 빼앗기는 것은 전쟁에서 한 민간인이 죽는 것보다 무서운 일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신앙인이 선교에 열정을 쏟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도 노력하지 않고 나만 혼자 신앙생활 하려고 한다면 역시 전체적인 사기를 떨어뜨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차갑거나 뜨거운 것은 삼키시지만, 미지근한 것은 참아내지 못하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자다 

소화 데레사 성녀께서 쓰신 글입니다.
 
“나는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비록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웃으면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항상 좋으신 하느님 앞에 행복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좋으신 하느님의 은총을 가장 잘 얻게 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감사입니다. 우리가 그분께 어떤 은혜에 대해서 감사를 드리면 그분은 감동하시어 우리에게 열 배의 은혜를 주십니다. 난 그것을 경험했습니다.”
 
성녀의 말씀에 큰 공감을 하게 됩니다. 일어난 일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던 경우가 있었습니다. 왜 이런 고통과 아픔을 주시는지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을 지나고 나면, 그 고통과 아픔도 은혜였음을 깨닫습니다. 지금의 나를 만들기 위한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었던 것입니다.
 
고통과 아픔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일에도 감사의 기도를 바쳤을 때는 조금 더 빨리 하느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불평, 불만이 커지면 커질수록 하느님의 은혜를 느끼는 시간이 더 늦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은혜 속에 머물면서 하느님의 일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순간에서도 불평불만의 삶을 찾으려는 것 같습니다.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내가 인정받고 더 사랑받아야 한다면서 자기 욕심과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면서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당연히 하느님이 자기 안에 없으니, 하느님의 은혜도 깨닫지 못하고 감사하지도 못합니다. 행복한 삶일 수가 없습니다.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습니다. 그러자 말을 못하는 이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떻습니까? 감사할 수 있는 순간일까요? 아니면 원망의 순간인가요? 당연히 감사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합니다. 감사하지 못하고, 더 큰 마귀가 우리 곁에 왔다면서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자기를 구원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기에게서 멀리 쫓아내고 맙니다.
 
어떤 책을 읽으니, 부정적인 생각 하나가 떠올려지면 긍정적인 생각 세 가지를 만들어야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만약 주님을 의심하고, 주님의 뜻에 반대되는 생각이나 행동을 하게 될 때는 얼른 주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생각과 행동 세 가지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야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면서 지금을 잘 살 수 있게 됩니다. 더 나아가 주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선물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오늘의 명언

당신이 늘 하던 대로 살아간다면 당신은 기존에 얻었던 것만 얻을 것이다.
- 헨리 포드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전국에서 일어나는 산불확산이 제발 멈춰 지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예수님과 함께 모아들이는 것이 진정 사랑하는 길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모아들이는 복음의 길입니다.

복음의 길은 잠시 모였다 흩어지는 그런 우스운 길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세우고 십자가에 삶을 맡기는 구원의 길입니다. 모아들이는 길은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랑의 길입니다.

복음을 이야기하는 우리가 사랑을 흩어버리는 복음의 이탈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모아들임을 되새김질하는 사순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흩어버리는 우리의 내면을 만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를 모아들이시는 끌어안음의 당신 사랑으로 잃어버린 길을 되찾아주십니다. 끌어모아 소금과 빛이 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모아들이신 교회 공동체를 흩어버렸어는 안됩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모아들임의 축(軸)에 십자가가 있음을 기억합니다.

모아들임 안에서 만나게 되는 하느님의 구원입니다. 모아들임이 구원입니다. 흩어 버리는 일을 멈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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