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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3/26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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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말씀대로 제 발걸음을 굳건히 하시고, 어떠한 불의도 저를 짓누르지 못하게 하소서.

주님, 저희가 이 사순 시기에 절제와 선행을 실천하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언제나 한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소서.

2025년 3월 26일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3월 26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5년 3월 2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신명 4,1.5-9)
    너희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 오늘 복음
    (마태 5,17-19)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 오늘 말씀 카드
    (신명 4,9)
    두 눈으로 본 것들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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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 4,1.5-9
오늘 제1독서

너희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들어라. 그래야 너희가 살 수 있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할 것이다. 


보아라, 너희가 들어가 차지하게 될 땅에서 그대로 실천하도록, 나는 주 나의 하느님께서 나에게 명령하신 대로 규정과 법규들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었다. 


너희는 그것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민족들이 너희의 지혜와 슬기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모든 규정을 듣고, ‘이 위대한 민족은 정말 지혜롭고 슬기로운 백성이구나.’ 하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또한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내놓는 이 모든 율법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규들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너희는 오로지 조심하고 단단히 정신을 차려, 너희가 두 눈으로 본 것들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그것들이 평생 너희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하여라. 또한 자자손손에게 그것들을 알려 주어라.”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당신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마태 5,17-19
오늘 복음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3월 26일
이영준 모이세 신부

 

✚ 미사시작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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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한창현 모세 신부

 

유다인들은 왜 예수님께서 율법을 아예 없애시려 한다고 생각하였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율법에 관하여 하신 말씀이나 행동에 불만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도 유다인들은 왜 예수님께서 율법을 아예 없애시려 한다고 생각하였을까요?

바오로 사도의 말에서 그 까닭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에페 2,14-15)라고 말합니다.

유다인들은 율법으로 이민족과 자신들을 구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구별은 단순히 서로의 다름이 아니라, 이민족에 대한 적개심이 그 밑에 깔린 구별인 것 같습니다.

유다인들은, 이방인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는 예수님을 적개심이 가득한 상태에서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지하시려 한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반면에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2,16)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갈등을 빚는 상황들을 보면, 반목과 불신을 넘어 적개심으로 가득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적개심을 버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화해의 길을 함께 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율법의 완성인 하느님의 사랑을 스스로 지키고 가르치는 사람이 이 시대에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초대받은 소명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큰 사람, 작은 사람

오늘 신명기는 큰 민족에 대해 얘기하고, 오늘 주님께선 큰 사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이 말씀에 비춰볼 때 하느님을 모신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크신 하느님을 모신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인데 이는 하늘을 품은 호수가 가장 큰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은 하느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고 가르치는 이가 위대하다고 합니다.

“또한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내놓는 이 모든 율법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규들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우리는 흔히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어떤 사람을 칭찬하곤 합니다. 그런데 오늘 신명기는 모세의 법을 지닌 민족이 위대한 민족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더 훌륭합니까? 법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지키며 사는 사람이 더 훌륭합니까?

제 생각에 아무리 주님이 하느님 계명을 지니는 사람이 큰 사람이라고 해도 법 없이도 법이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살 수 있다면 그것이 법을 가지고 법에 따라 사는 것보다 더 훌륭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면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라고 오늘 주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율법을 함부로 어기고 무시하는 사람을 두고 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율법 학자가 하는 말은 지키되 그 행실은 따라 하지 말라는 주님의 가르침과도 맥락을 같이하는 것일 겁니다.

사실 율법이 문제가 아니라 율법주의가 문제이고, 율법주의자의 문제는 율법 준수에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율법을 지키건 어기건 그것은 자기중심이고, 사랑이 있으면 율법을 지키건 어기건 율법의 완성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율법을 어길 때는 언제나 사랑을 위해서이고 사람을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하느님의 계명입니다.

만일 율법에 사람과 사랑이 없이 법만 있다면 그것을 진정한 하느님의 계명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순 시기를 지내는 요즘 제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단식재와 금육재의 준수 문제입니다. 저 혼자일 경우에는 이것들을 어길 마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누구와 같이 식사할 경우에는 이것을 쉽게 어기곤 합니다.

사제가 더 모범이 되어야 하나? 그래서 밥을 먹으러 가도 채식 식당을 골라서 가야 하나? 식사를 하면서 술은 먹지 않고 먹지 말자고도 해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다 그가 또는 그들이 선택하는 곳에 가지만 실은 비겁하게 선택의 고민을 그들에게 미루는 것입니다.

그리고 술이 먹기 싫었는데 그 때문에 먹은 것이 아니라 먹고 싶었는데 그에게 술 먹은 책임을 돌리고 제 합리화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작은 문제를 가지고 고민이나 하는 저는 작은 사람인 것이 틀림없고, 욕망을 숨기면서 남에게 책임을 돌리고 자기합리화나 하는 저는 작다 못해 찌질한 사람입니다. 하늘을 담은 호수처럼 하느님의 사랑을 담은 큰 사람이 되라고 도전을 받는 오늘 저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율법과 복음의 관계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들과 다른 점을 하나를 들라면, 아마도 그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 하나를 들라면, ‘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이러한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 

이는 복음을 예표하고 있던 구약의 율법이 ‘복음’ 안에서 완성(성취)되었음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온몸으로 율법과 예언을 실행하셨고, 결정적으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요한 19,30)고 하시면서 모든 것을 완성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계명을 실행하는 이가 복됨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계명들 가운데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으로 불릴 것이다.”(마태 5,19)

이는 계명을 알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알고 있는 것을 말로 선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킴’으로써 계명을 ‘실행’하고, 그 실행으로 가르치는 이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 그레고리우스는 말합니다. 

“설교자에게는 법이 하나 있는데, 설교하는 바를 실천해야 한다는 법이다.”

그리고 유명한 설교가였던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가르치는 바를 행동으로 파괴시킨다면, 사람이 법을 안다고 자랑하는 것이 쓸모없는 일이다.”

그렇습니다. 율법은 지켜질 때라야, 비로소 그 ‘행위 안에서 실현’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의 의지로 그것을 행하는 일입니다. “스스로” 한다는 것은 ‘사랑의 원의’로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사랑하기를 원해서 하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율법을 완성합니다.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완성됩니다.”(1요한 2,5)

그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내 계명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사람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요한 14,21)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5,19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주님!
제 안에 새겨진 사랑의 법이 
제 행동의 뿌리가 되게 하소서.

행동으로 지키고 가르치며 
가르친 바를 행동으로 
파괴하지 않게 하소서. 

말이 아닌 행실로 사랑하고
작은 일에도 사랑을 담아 행하며 
행실로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하늘에서 정해질 나의 위치: 나는 타인에게 어떤 비전을 주는가?

얼마 전 어떤 모임을 하는데, 한 자매가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는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오늘 말씀드릴 예화가 그에 해당할 수도 있겠습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주인공 앤디는 갓 대학을 졸업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런웨이라는 유명 패션 잡지의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의 비서로 일하게 됩니다. 미란다 프리슬리는 패션계의 교황이라 불릴 만큼 영향력이 큰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미 미란다의 비서로 일하고 있는 에밀리가 있었습니다. 에밀리는 처음 앤디를 무시하며, 그녀의 부족함을 지적하고는 “그렇게 옷도 못 입고, 여긴 그런 사람을 위한 자리가 아니야”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에밀리는 스스로를 완벽하게 보여주려 애쓰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고 더욱 경쟁적으로 행동합니다.

하지만 앤디는 점차 일을 배우고 실력을 쌓으며 에밀리와 차이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에밀리가 못하는 일들을 해내고, 미란다에게 더 많은 신뢰를 얻기 시작합니다. 에밀리는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보다는 앤디를 경계하며, “너, 나를 밟고 올라서려는 거지?”라고 묻습니다. 그 순간, 앤디는 자신도 모르게 에밀리에게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합니다.

“내가 원하는 건 승진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잘 해내는 거예요.”

그런데도 앤디는 미란다에게 점점 더 인정받으며, 더욱 많은 책임을 맡게 됩니다. 윗사람의 눈에는 남을 밟고 올라가 잘 보이려는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앤디는 점차 미란다의 방식에 의문을 품기 시작합니다.

“왜 내가 사람을 짓밟고 올라서야만 하나?”

경쟁적이고 냉정한 미란다의 업무처리 방식에 불편함을 느끼고, 그녀의 방식이 옳은 것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결국 앤디는 마음을 정하고 미란다에게 그만두겠다고 선언합니다.

아무리 악랄한 미란다지만, 그래도 그녀의 눈에 여전히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경쟁하며 경쟁자를 끌어내리려 하는 부하직원은 예뻐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제로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많은 신자를 만나게 되고 인사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우선순위를 매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분도 있습니다. 일을 매우 잘하고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본인은 그 이유를 모를지 모릅니다. 그 신자가 다른 신자들에게 “그냥, 이 정도만 하면 돼!”라며 그 신자가 사제의 인정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을 느낄 때입니다.

사제는 모든 봉사자가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기를 바랍니다. 사제가 본당 전체를 생각할 때 그 한 사람만을 좋아하기보다는 전체가 잘 돌아가게 하는 사람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고, 그와 반대로 누군가의 능력이 발휘되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은 아무리 일을 잘해도 예뻐 보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도 이와 똑같이 자리가 매겨질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께서는 하늘에도 높낮이가 있다는 의미를 포함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늘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면 내 주위 모든 사람들도 하느님의 뜻에 따라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만드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만약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등학교 때 매우 공부를 잘하는 한 친구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난 치과의사가 될 거야. 다른 의사들은 환자가 오면 밤에도 나가야 하지만, 치과의사는 정시 출근, 정시에 퇴근하면서도 돈을 많이 벌거든.”

저는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똑똑한 사람이 사회에 어떤 공헌을 하려고 하는지보다는 자기 안위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 많다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아이에게 이런 생각을 누가 품게 하였을까요? 그런 부모나 선생은 세상에서 기억될 수 없습니다.

반면 헬렌 켈러와 설리반 선생님의 사례는 참 좋습니다. 만약 설리반 선생이 헬렌 켈러를 완전하게 키워내려 하지 않았다면 지금 설리반 선생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설리반 선생님은 헬렌을 가르치는 과정을 통해 자신도 깊은 만족과 성장을 경험하며, 헬렌을 돕는 일이 자신에게도 큰 변화를 가져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신앙교육을 하였는지 알면 나의 위치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냥, 주일미사만 빠지지 않고 나가라.” “성당 나가는 게 다 너에게 좋은 거야.”라는 식은 나의 위치도 하늘에서 낮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그리스도의 얼굴이 되어라.” 등의 완전한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부모라야 합니다. 부모가 그렇게 하지 않으며 그렇게 가르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주는 비전이 무엇이냐에 따라 나의 위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전화를 받았습니다. 모르는 전화는 잘 받지 않는데, 책을 읽다가 전화벨이 울려서 습관적으로 받고 말았습니다. 보험 관련 전화였습니다. 노후 대책으로 의료비를 지원하는 보험이었습니다. 솔직히 자동차 보험 외에 어떤 보험에도 가입하지 않는 저입니다. 가족이 없으니 생명 보험 같은 것이 필요 없고, 건강하기도 하지만 의료비 지원을 교회 병원에서 해주고 있으니 이 부분 역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연금 보험도 있지만,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한 이 세상을 마칠 때까지 교회에서 책임져주니 이 역시 필요가 없습니다. 전화 속 상담사는 ‘노후 대책’을 세워야 할 때라면서 강력하게 말했지만, 상담사가 말하는 대책을 이미 세운 상태였습니다.
 
보험회사에서 강조하는 ‘노후 대책’도 있지만, 더 시급한 노후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이 세상 삶을 마치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곳에 가기에 합당한 ‘나’를 만들어야 합니다. 사랑이 아닌 부정적 감정으로 가득 차 있어서는 안 되고, 철저하게 사랑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하느님과의 대화가 중요하듯이 이웃과의 대화에서도 사랑으로 소중한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삶을 살아야 가장 훌륭한 노후 대책이 될 것입니다. 쓸데없는 대책으로 시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랑할지를 생각하며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바로 지금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길로 이끌기 위한 행동과 말씀을 하셨습니다. 철저하게 사랑에 연관된 말과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율법이나 예언서를 폐지하는 모습이라며 비판합니다. 특히 당시 사회 안에서 커다란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종교 지도자들의 이런 비판에 일반 사람들도 동조할 수밖에 없었지요.
 
예수님께서 율법과 예언서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핵심은 바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노후 대책이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사랑에 집중하고 사랑의 완성을 이루는 사람만이 하늘 나라에서의 큰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가장 노후 대책을 잘 세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용서란 제비꽃이 자신을 밟은 사람의 뒤꿈치에서 부서지며 풍기는 향기이다

- 마크 트웨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평화로운 우리의 일상이 무너지고 흩어진 혼란스러운 이 시간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율법과 예언서들도 스스로 지키고 삶으로 가르치는 이들이 완성합니다.

돌아가야 할 율법과 예언서의 완성입니다. 지키는 율법이 지키는 참된 행복이 됩니다. 삶의 빛깔은 율법의 폐지가 아닌 완성으로 더욱 아름답습니다.

율법과 예언서가 제시하는 분은 다름 아닌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최상의 가르침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가르침을 한 데 모으면 사랑의 십자가가 됩니다.

십자가가 가르쳐준 값진 교훈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가지 않으면 하느님의 좋으신 가르침도 우리의 길이 될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귀한 것은 몸소 보여주신 삶이었습니다.

우리 시대가 잃어가는 것은 스스로 지키고 삶으로 가르치는 진실된 삶입니다. 지키고 가르치는 진실한 삶이 주는 참된 가치를 다시 만나는 사순입니다. 힘들수록 하느님의 가르침을 되새겨야 합니다.

스스로 지키고 삶으로 가르치는 큰사람이 많아지는 건전한 사회가 되길 진심으로 기도드리는 소중한 오늘입니다. 하늘 나라의 진실한 인격은 스스로 지키고 스스로 실천하는 인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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