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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12/07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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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그를 지혜와 지식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시어, 회중 가운데에서 그의 입을 열어 주시고, 영광의 옷을 입혀 주셨네.

하느님, 복된 암브로시오 주교를 가톨릭 신앙의 스승으로 세우시어 사도의 용기를 보여 주게 하셨으니 교회 안에서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뽑으시어 용감하고 지혜롭게 교회를 이끌어 가게 하소서.

2024년 12월 7일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2월 7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2월 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이사 30,19-21.23-26)
    네가 부르짖으면 주님께서 반드시 자비를 베푸시리라.

  • 오늘 복음
    (마태 9,35─10,1.6-8)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 오늘 말씀 카드
    (마태 9,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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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30,19-21.23-26
오늘 제1독서

 

네가 부르짖으면 주님께서 반드시 자비를 베푸시리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9 
“예루살렘에 사는 너희 시온 백성아 너희는 다시 울지 않아도 되리라. 네가 부르짖으면 그분께서 반드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 

20 
비록 주님께서 너희에게 곤경의 빵과 고난의 물을 주시지만 너의 스승이신 그분께서는 더 이상 숨어 계시지 않으리니 너희 눈이 너희의 스승을 뵙게 되리라. 

21 
그리고 너희가 오른쪽으로 돌거나 왼쪽으로 돌 때 뒤에서 ‘이것이 바른길이니 이리로 가거라.’ 하시는 말씀을 너희 귀로 듣게 되리라. 

23 
그분께서 너희가 밭에 뿌린 씨앗을 위하여 비를 내리시니 밭에서 나는 곡식이 여물고 기름지리라. 그날에 너희의 가축은 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고 

24 
밭일을 하는 소와 나귀는 삽과 거름대로 까불러 간을 맞춘 사료를 먹으리라. 

25 
큰 살육이 일어나는 날, 탑들이 무너질 때 높은 산 위마다, 솟아오른 언덕 위마다, 물이 흐르는 도랑들이 생기리라. 

26 
또 주님께서 당신 백성의 상처를 싸매 주시고 당신의 매를 맞아 터진 곳을 낫게 해 주시는 날 달빛은 햇빛처럼 되고 햇빛은 일곱 배나 밝아져 이레 동안의 빛을 한데 모은 듯하리라.”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은 우리의 통치자, 우리의 지도자, 우리의 임금님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리라.

 

 

마태 9,35─10,1.6-8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때에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10,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2월 7일
김현균 야고보 신부

 

✚ 성 암브로시오 소개 00:06

✚ 미사시작 01:32

✚ 강론시작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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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가엾은 마음’을 지니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과 아픔을 결코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9,35)라고 알려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그 누구도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그런 존재입니다. 외면하거나 잊을 수 없으며,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큼 아주 소중한 존재입니다.

이 대림 시기는 우리 모두를 고쳐 주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때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찾아오셔서 “너희는 다시 울지 않아도 되리라. 네가 부르짖으면 그분께서 반드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이사 30,19)라는 말씀을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하십니다(마태 10,6 참조). 오늘 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 말씀 전에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10,5). 

예수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이나 사마리아인들보다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을 먼저 선택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들이 ‘다른 민족들’과 ‘사마리아인들’보다 하느님의 구원에서 멀리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아주 익숙하면서도 그분께 가는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 ‘가엾은 마음’을 지니신 예수님께서는 이들까지도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예수님의 자비와 사랑에서 소외되지 않습니다. 그분께 단 한 순간도 잊힌 적이 없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십시오.

“모두 고쳐 주셨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우리가 할 일은 없을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주님께서 오셨는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없는가? 오늘 독서와 복음을 읽고 묵상하면서 든 생각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는데 우리가 할 일이 없겠습니까? 대림절이라고 하는데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습니까? 오셔도 무관심하고 환영하지 않는 사람도 많으니 기다리기라도 하고 환영까지 하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긴 하지만 우리가 주님을 좀 더 사랑한다면, 주님 사랑을 본받아 이웃 사랑을 한다면 주님처럼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구나!” 하며 안타까운 마음도 들고 뭔가 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어야겠지요.

오늘 주님께서 수확할 것이 많다고 하시는데 씨 뿌리는 것까지는 우리가 해야 하겠습니다. 그다음은 우리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이사야서의 주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시기 말입니다.

“그분께서 너희가 밭에 뿌린 씨앗을 위하여 비를 내리시니 밭에서 나는 곡식이 여물고 기름지리라.”

그런데 주님께서는 씨앗이 싹을 틔우고, 싹이 자라고 여물게 하실 뿐 아니라 뿌릴 씨까지 주십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달린 것은 할 마음뿐이고 씨를 뿌리는 수고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마음 곧 사랑입니다. 그런데 마음뿐, 사랑뿐이라 하여 과소평가해선 안 되지요. 이 사랑이 제일 중요하고 대단한 것이고, 어느 정도 중요하고 대단하냐 하면 다른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하고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하나의 사랑을 의심 없이 꽉 붙들고 멈춤 없이 그러니까 끝까지 계속 실천하면 됩니다. 그리고 성무일도 월요일 아침기도의 마침 기도처럼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면 되겠습니다.

“주님, 간구하오니 저희가 할 일을 알려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어, 저희 모든 일을 당신으로 말미암아 시작하고 끝마치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가엾이 여기고 소중히 여기는 선한 목자의 마음

오늘 <말씀 전례>는 ‘자비’에 대한 말씀입니다.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그분께서 반드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이사 30,19)고 합니다. <화답송>에서 시편작가도 “주님은 마음이 부서지진 이를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주시네.”(시 147,3)라고 노래합니다. 

<복음>에서는 ‘선한 목자’가 지닌 자비의 마음, 곧 “가엾은 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선포하시고 가르치시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십니다. 복음사가는 이렇게 전합니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입니다.”(마태 9,36)

사실,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는 이들”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곁에 있고, 우리 중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힘이 없어 시달리고, 가진 게 없어서 시달리고, 무능해서 시달리고, 온갖 고통과 질병과 가난과 근심에 시달리는 이들에 우리는 둘러싸여 있습니다. 

또한 일자리를 못 얻어 거리에서 기가 꺾여 방황하는 이들, 돈이 없어 자녀들에게도 기가 꺾여 사는 이들, 고국을 떠나와 이방인이 되어 기가 꺾여 있는 이들에 둘러싸여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곁에 있는 형제의 아픔을 보지 못하고, 또 보지 않으려 하는 걸까?

그것은 ‘가엾이 여기고 소중히 여기는 선한 목자의 마음’을 지니지 못한 까닭일 것입니다. 곧 타인의 처지에 마음 아파하지 않음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처지를 보고 슬퍼지는 자신의 마음에 충실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픔을 같이 지니는 마음을 말합니다. 이를 우리는 “하느님의 연민”, 곧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제1독서>와 <화답송>에서 보여주듯이, ‘마음이 부서진 이를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 주시는 마음’입니다. 이 단어의 히브리어 원어의 뜻은 ‘태중의 아기와 분리되지 않는 어머니의 마음’을 말합니다. 엄마의 숨으로 두 몸이 함께 숨 쉬는 것을 말합니다. 곧 타인을 자신의 일부로 소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당신의 일부’로 여기십니다. 그러니 지체가 아프면 온몸이 함께 아프게 됩니다. 우리도 그분의 이 마음을 품어야 할 일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필립 2,5)

그러니 우리는 그 마음을 ‘이미’ 우리 가슴에 지니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1코린 2,16).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9,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주님!
시달리며 기가 꺾인 이들을 
측은히 여기시는 당신의 마음을 
제 마음에 심으소서.

제 손이 상한 갈대를 
꺾지 않게 하시고, 
제 말이 꺼져가는 불씨를 
끄지 않게 하소서. 

우리 가운데 있는 그들을 
더 이상은 못 본 척 무시하고, 
모르는 척 업신여기지 않게 하소서. 

병고와 세파에 시달리고 
기 꺾인 이들의 
바람막이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일꾼은 받는 자가 아닌 거저 주는 자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가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님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면서 모든 부분에서 넉넉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7~80년대를 석기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현재 엄청난 발전을 일구었습니다. 하지만 행복도는 어떨까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2018년부터 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를 보며 우리의 행복을 반추하게 됩니다. 
 
부유한 나라의 국민은 삶의 만족도가 높았지만, 삶의 의미를 적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가난한 나라의 국민은 삶의 의미를 아주 크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더 행복을 간직하고 있을까요? 만족도는 성공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삶의 의미는 제대로 산다는 감각입니다. 따라서 삶의 의미를 더 크게 느끼는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의미를 찾는 데 종교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절대자를 통한 굳은 믿음 안에서 의미를 찾고 진정한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유한 나라의 사람은 종교가 그들에게 큰 의미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행동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진정한 행복으로 이끌어 줍니다. 주님 안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삶의 만족도를 높이려고 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삶의 만족도만을 위했다면 부귀영화에만 집중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고, 사람들에게 돈 많이 벌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라고 말 대신 ‘사랑’만을 말씀하셨고 당신 스스로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삶의 의미만을 향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 혼자 모두 하실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 
 
이 일꾼들은 받는 자가 아닌 ‘거저 주는 자’였습니다. 그 일꾼은 특별한 사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주의가 만연한 이 세상 안에서, 우리가 모두 주님의 일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안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래서 모든 이가 물질적인 삶의 만족도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를 느끼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오늘의 명언

“주님,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그 차이를 아는 지혜를 주소서.”

- 라이홀트 니버, 평온을 비는 기도 중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하느님 안에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란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버려질 수 있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아픔과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삶에는 어둠의 시간도 있고 아픔의 시간도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체험이 곧 우리의 삶이 됩니다. 아픔을 치유하시기 위해 우리의 아픔 안으로 걸어 들어오시는 치유와 축복의 하느님이 계십니다. 

우리의 아픔이 하느님의 슬픔이듯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치유는 쉽게 변하지 않는 우리를 데리고 가십니다. 구원을 방해하는 더러운 영들을 우리 삶에서 쫓아내야 거짓과 위선에서 우리가 떨어져 나갈 수 있습니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삶이 건강한 삶입니다. 치유는 세상과 삶을 망가뜨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깨끗해지는 치유와 희망입니다. 길을 치유하시고 길을 고쳐 주십니다. 우리의 길은 어떠하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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