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24/12/06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12. 6.
반응형

 

 

보라, 주님이 영화롭게 내려오시리라. 당신 백성을 찾아오시어, 평화를 베푸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리라.

주님, 권능을 떨치며 오시어 저희를 죄의 위험에서 지켜 주시고 주님의 도우심으로 구원하여 주소서.

2024년 12월 6일 대림 제1주간 금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2월 6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2월 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대림 제1주간 금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이사 29,17-24)
    그날, 눈먼 이들의 눈도 보게 되리라.

  • 오늘 복음
    (마태 9,27-31)
    예수님을 믿는 눈먼 두 사람의 눈이 열렸다.

  • 오늘 말씀 카드
    (마태 9,29)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이사 29,17-24
오늘 제1독서

 

그날, 눈먼 이들의 눈도 보게 되리라.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7 
“정녕 이제 조금만 있으면 레바논은 과수원으로 변하고 과수원은 숲으로 여겨지리라. 

18 
그날에는 귀먹은 이들도 책에 적힌 말을 듣고 눈먼 이들의 눈도 어둠과 암흑을 벗어나 보게 되리라. 

19 
겸손한 이들은 주님 안에서 기쁨에 기쁨을 더하고 사람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20 
포악한 자가 없어지고 빈정대는 자가 사라지며 죄지을 기회를 엿보는 자들이 모두 잘려 나가겠기 때문이다. 

21 
이들은 소송 때 남을 지게 만들고 성문에서 재판하는 사람에게 올가미를 씌우며 무죄한 이의 권리를 까닭 없이 왜곡하는 자들이다. 

22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원하신 야곱 집안의 하느님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야곱은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고 더 이상 얼굴이 창백해지는 일이 없으리라. 

23 
그들은 자기들 가운데에서 내 손의 작품인 자녀들을 보게 될 때 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리라.’ 그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거룩하게 하며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되리라. 

24 
그리고 정신이 혼미한 자들은 슬기를 얻고 불평하는 자들은 교훈을 배우리라.”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보라, 우리 주님이 권능을 떨치며 오시어 당신 종들의 눈을 밝혀 주시리라.

 

 

마태 9,27-31
오늘 복음

 

예수님을 믿는 눈먼 두 사람의 눈이 열렸다.

그때에 

27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눈먼 사람 둘이 따라오면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28 
예수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시자 그 눈먼 이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예, 주님!” 하고 대답하였다. 

29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이르셨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30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이 일을 알지 못하게 조심하여라.” 하고 단단히 이르셨다. 

31 
그러나 그들은 나가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그 지방에 두루 퍼뜨렸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2월 6일
양창우 요셉 신부

 

✚ 미사시작 00:24

✚ 강론시작 06:48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생중계 성당

 

  • 가회동성당 온라인 매일미사
    가회동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가회동성당 생중계 미사시간
    주일 11:00 / 월 06:00 / 화 19:00 / 수 10:00 / 목 19:00 / 금 10:00 / 토 생중계 없음


  • 남양성모성지 온라인 매일미사
    남양성모성지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남양성모성지 생중계 미사시간
    주일 11:00 / 월 생중계 없음 / 화 11:00 / 수 11:00 / 목 11:00 / 금 11:00 / 토 11:00


  • 원당동성당 온라인 매일미사
    원당동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원당동성당 생중계 미사시간
    주일 11:00 / 월 10:00 / 화 19:00 / 수 10:00 / 목 19:00 / 금 10:00 / 토 10:00


  • 초당성당 온라인 매일미사
    초당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초당성당 생중계 미사시간
    주일 10:30 / 월 06:30 / 화 19:30 / 수 10:00 / 목 19:30 / 금 10:00 / 토 10:00


  • 팔로티회 온라인 매일미사
    팔로티회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분당 팔로티회 : 성시간(15:00) 후 미사(16:00)
    주일 16:00 / 월 16:00 / 화 16:00 / 수 16:00 / 목 16:00 / 금 16:00 / 토 16:00

    홍천 팔로티회 : 미사(15:00) 후 성시간(16:00)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복음에 나오는 눈먼 두 사람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고쳐 주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예, 주님!”(마태 9,28) 

이들은 그저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복음은 눈먼 두 사람의 행동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눈먼 사람 둘이 따라오면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직역: 울부짖었다). 예수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시자 그 눈먼 이들이 그분께 다가왔다”(9,27-28). 눈먼 두 사람은 ‘따라갔고’, ‘외쳤고’, ‘다가갔습니다.’

참된 믿음은 예수님을 ‘따라가게’ 하고, 그분께 ‘울부짖게’ 하며, 그분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에서 나오는 이런 행동을 보일 때, 다른 것이 아닌 바로 그 믿음의 힘으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은총을 나누어 주십니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9,29).

만일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도하지 않고 있다면, 성체 앞에 다가가 예수님께 울부짖으며 은총을 청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꿈적도 하지 않고 있다면, 하느님께서 고해성사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없애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고해소로 향하지 않고 있다면, 여러분은 ‘죽은 믿음’, ‘아무 힘도 드러내지 못하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불행한 신앙인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눈먼 두 사람처럼 우리의 믿음이 예수님께 다가가 필요한 은총을 청하는 힘을 드러내면 좋겠습니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뵙고 싶은 욕망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그날에는 눈먼 이들의 눈도 어둠과 암흑을 벗어나 보게 되리라.”

대림절이 시작되어 계속 그리고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다리 저는 이 말 못하는 이 눈먼 이입니다. 오늘 얘기도 눈먼 이들이 보게 되는 얘기인데 엉뚱하게 이들 가운데 누구의 고통이 더 클까 생각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보지 못하는 이의 고통이 더 크지 않을까 생각되었던 것인데 즉시 모든 고통은 자기의 고통이 제일 큰 법이니 그런 생각은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대신 생각의 방향을 돌려 일생 보지 못한 이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생 그렇게 살았으면 이제 적응이 됐을 텐데 계속 그대로 살지 굳이 주님께 찾아와 보게 해달라고 할까 생각도 했습니다.

사실 이들이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보고 싶은 열망도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계속 그렇게 살았을 것이며, 주님께서 이 세상에 내려오지도 자기 마을에 찾아오지도 않으셨다면 보게 해달라는 요청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이토록 보고 싶은 열망과 갈망을 불러일으키시는 분이시고, 볼 수 있다는 희망과 볼 수 있게 해주실 거라는 믿음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랬기에 일생 가지지 못했던 희망과 갈망과 열망을 갖게 되었고, 그것들이 자기 마을까지 찾아오신 주님을 찾아가게 했습니다.

이들에게서 우리는 오늘 주님을 뵙고 싶은 열망과 갈망을 배웁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또한 성무일도 독서의 기도 독서에서 ‘하느님을 뵙고자 하는 욕망’을 노래하는 안셀모 성인을 본받습니다.

“주여, 당신을 찾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어 찾는 이에게 당신을 보여주소서. 당신이 가르쳐 주지 않으신다면 당신을 찾을 수 없고 당신이 당신 자신을 보여주지 않으신다면 내가 당신을 찾아낼 수 없습니다. 내 당신을 갈망할 때 찾고, 찾을 때 갈망하며, 사랑할 때 찾아내고, 찾아낼 때 사랑하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그분을 보게 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 뿐이다.

오늘도 우리는 눈을 뜨며 깨어나고, 눈을 감으며 잠에 듭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눈을 감아야 더 잘 보이는 것이 있고, 눈을 뜨고도 전혀 보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이가 있고, 눈을 감고도 보는 이가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말합니다. 

“그날에는~ 눈 먼 이들의 눈도 암흑과 어둠을 벗어나 보게 되리라.”(이사 29,17) 

<복음 환호송>에서는 노래합니다.

“보라, 우리 주님이 권능을 떨치며 오시어, 당신 종들의 눈을 밝혀주시리라”

그리고 <복음>은 ‘눈 먼 두 사람의 눈이 열려 보게 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눈 먼 사람 둘이 따라와서 집 안에까지 따라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눈이 멀어 보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비록 눈은 멀었어도 믿음으로 이미 눈 뜬 이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볼 수는 없었어도 그분에 대해서 들을 수는 있었습니다. 보지 못하면서도 들은 바를 믿었으니, 진정 복된 이들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은 보고도 믿지 못하는데, 보지 못하면서도 믿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이미 눈이 열린 이들이었던 것입니다. 곧 믿음의 눈이 열린 이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눈 먼 이가 보게 된 이야기가 아니라, ‘믿는 이가 보게 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을 치유해 주실 것을 믿었고, 그래서 그 믿음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불신이요, 그분을 보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이르셨습니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마태 9,29)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기다리십니다. 그것은 우리에 대한 그분의 믿음입니다. 그분의 이 믿음에 우리의 믿음이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러자 눈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손을 대시고, 그들은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말씀하시고, 그들은 말씀을 믿고 눈을 떴습니다. 

그렇습니다. 눈 먼 이들은 건강하게 되어서 믿게 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써 건강해졌던 것입니다. 그들은 믿었기에 눈이 열린 것이지, 눈이 열렸기에 믿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원하는 바를 믿은 것이 아니라, 믿는 바를 원했던 것입니다, 먼저 믿고, 믿는 바를 청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에서 참된 빛이 오고, 믿음에서 참된 관상이 옵니다. 그들은 길을 가는 동안에는 보지 못한 채, 믿음으로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집 안에 들어가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지금은 믿음으로 걸어가지만, 그날이 오면 그분의 집안에서 참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다.”(시편 27,1, 화답송 후렴).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9,27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주님!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보지 못하게 하는 
불신의 암흑을 벗어나 
보게 하소서.

먼저 믿고, 
믿는 바를 청하게 하소서. 

원하는 바를 믿은 것이 아니라 
믿는 바를 원하고, 
보게 되어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보게 하소서. 

믿음의 눈을 열어 주시어, 
나를 먼저 믿으시는 
당신의 믿음을 보게 하소서. 

이미 자비를 입었으니 
자비를 베풀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슬픈 예감을 전혀 가질 필요가 없게 하는 믿음이 있다.

왜 슬픈 예감은 절대 틀리지 않는 걸까요? 왜 부정적인 예측은 항상 현실이 될까요? 이런 가사의 노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부분의 부정적인 이해가 현실이 되어 눈 앞에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엊그제 현 대통령이 한밤중에 계엄선포를 하였습니다. 군대가 국회를 난입하여 무언가를 장악하고 방해하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는 하루 만에 감정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다행인 것은 국회의원들이 당일 회의를 위해 대부분 서울에 머물고 있어서 신속하게 과반수 이상 모일 수 있었다는 데 있습니다. 

국회에 통보하지 않고 계엄을 선포해 소위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려 하였다면 이는 내란죄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내란죄의 수장과 깊이 관련된 이들에 대해서는 사형이나 무기징역과 같은 벌에 처합니다. 앞으로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윤 대통령은 왜 자기 운명을 이렇게 재촉하는 것일까요? 

그가 사는 세상은 무언가 두려움의 세상입니다. 자신과 가족을 음해하려는 종북세력이 넘쳐나는 환경에 놓인 것입니다. 거의 망상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올바른 상황의 판단이 안 될 때 생기는 감정이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내가 잃을 게 많다는 잘못된 믿음과 나의 것을 빼앗으려 하는 이들이 많다는 잘못된 두 믿음의 결합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두려워하면 두려운 일이 생기고,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 하나만 뽑으라 하면 저는 이것을 뽑고 싶습니다. 이 원칙은 우주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 법칙을 믿지 않습니다. 

아마 윤 대통령이 많이 갖지 못했을 때는 그만큼 두려움도 적었을 것입니다. 감사원장, 서울 지검장 탄핵 결의가 있는 날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이는 대통령 관저와 김건희 여사와 직결되는 사항이었습니다. 사실 예산안에 대한 것은 거의 700조에 가까운데 심의에서 4~5조 조정안에 관련된 것이라 결정적인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설사 이유가 된다고 해도 국회에서 예산안 심의 하는 것을 가지고 대통령이 계엄령을 발포할 사유는 되지 못합니다. 실제로는 자기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컸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사람은 자기가 지킬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죽음 앞에서 사람은 무엇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때는 아무것도 가질 능력이 없는 존재임을 스스로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고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음을 아는 게 믿음입니다. 이번 계엄은 대다수 전문가가 볼 때 국가 혼란 상태는 아니었다는 결론이 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믿는 대로 되어라!”하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믿으라는 말씀일까요? 오늘 두 소경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눈을 뜨게 할 능력이 있는 분임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어디까지 믿어야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고 두려운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나를 고칠 수 있는 분은 나를 창조한 분일 수밖에 없습니다. 

높은 곳에 흔들다리를 만들고 유리로 아래가 보이게 하는 관광지가 많습니다. 많은 이들이 두려움에 떨면서도 결국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믿고 즐깁니다. 놀이기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가끔 사고도 나지만, 교통사고 날 확률보다 적기 때문에 그런 것을 즐깁니다. 그렇게 믿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만든 이가 바로 인간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녀도 탈 수 있는 놀이기구를 위험하게 만들 리 없습니다. 결국 자기 자신과 온 세상의 창조자를 믿기 전까지는 완전히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두려우면 두려운 일이 일어납니다. 물론 긍정적인 믿음으로 성공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두려움은 우리 생명과 관련되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믿어야 합니다. 무엇을? 바로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창조자이시기 때문에 망가지면 고치실 수 있고 죽으면 다시 살리실 수 있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분의 능력을 믿을수록 우리는 평화를 얻고 그 평화가 우리를 선하게 만들고 온유하게 하며 결국엔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창조자를 믿어서 손해 볼 게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을 믿는 눈먼 두 사람의 눈이 열렸다.

언제나 한결같은 사람이 정상일까요? 아니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정상일까요? 사람들은 한결같은 사람이 정상이라고 말하면서, 한결같지 않은 사람을 향해서는 비난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한결같은 사람이 정상일까요? 어느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나왔다고 합니다. 
 
“사람이 그렇게 한 겹이야? 삼겹살도 세 겹인데….” 
 
여러분의 마음은 몇 겹이 되는 것 같습니까? 사람의 마음은 한 겹이 될 수 없습니다. 무수한 마음과 감정이 있는 인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로부터 “너는 이중적이야!!”라는 말을 들으면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겨우 두 겹밖에 안 된다는 것으로, 너무 단순하게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침, 저녁, 저녁에 생각하는 것이 모두 다를 수밖에 없고, 이렇게 다른 것이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똑같은 모습만을 가지고 있어야 정상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미사에 참석할 때 매번 기쁘십니까? 당연히 주님의 잔치에 함께하는 것이니 기뻐해야 하지만 때로는 슬픔의 감정도 갖게 됩니다. 활기차게 오늘 하루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1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피로감을 느끼고 주저앉기도 합니다. 어때요? 이렇게 몇 겹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비정상적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인 ‘나’인데, 이런 인간인 ‘남’을 왜 인정하지 못할까요? 자기는 지극히 정상적인 다중적인데, 다른 사람의 이중적인 모습에 분노한다는 것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모습인가요? 따라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도 여기서 시작했습니다. 
 
눈먼 사람 둘이 예수님을 따라오면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외칩니다. 소문을 들어 알겠지만, 그들이 직접 예수님의 능력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눈먼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소문은 놀라운 기적을 행한다는 것도 있었지만,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서 기적을 행한다는 부정적인 내용도 있었습니다. 또 유다인들이 존경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보지 않아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라고 하셨고,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습니다. 무성한 소문에 충분히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어도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믿는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많은 말이 많습니다. 그런 말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는 주님이라는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의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됩니다.

 

오늘의 명언

저녁 무렵 자연스럽게 가정을 생각하는 이는 가정의 행복을 맛보고 인생의 햇볕을 쬐는 사람이다. 그는 그 빛으로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 카를 베히슈타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믿음으로 초대받는 대림의 특별한 시간입니다. 중요한 삶의 길목마다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믿음은 아픈 우리를 가장 좋은 소중함으로 초대합니다. 우리가 이미 지나왔던 길도 믿음의 길이었습니다. 앞으로 지나가야할 길도 믿음의 길입니다.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시간입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 또한 하느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믿음답게 빛나게 하는 것은 우리자신의 믿음입니다.

우리자신의 힘만으로는 다 이룰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일을 다 하실 수 있으십니다. 하느님과의 접촉은 믿음이며 믿음은 이 모든 것을 통해 당신의 현존을 영광스러운 변화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자비를 믿고 믿음이신 하느님께 우리가 응답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삶은 끝까지 믿는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생명의 오늘을 살아가는 대림의 새로운 날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