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권능과 신성과 지혜와 힘과 영예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옵니다. 영광과 권능을 영원무궁토록 받으소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사랑하시는 성자를 온 누리의 임금으로 세우시어 만물을 새롭게 하셨으니 모든 피조물이 종살이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섬기며 끝없이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2024년 11월 24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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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다니 7,13-14)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이다. - 제 2독서
(묵시 1,5ㄱㄷ-8)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께서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셨습니다. - 오늘 복음
(요한 18,33ㄴ-37)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 오늘 말씀 카드
(요한 18,37)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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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다니 7,13-14
오늘 제1독서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이다.
13
내가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14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묵시 1,5ㄱㄷ-8
오늘 제2독서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께서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5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시며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를 죄에서 풀어 주셨고,
6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7
보십시오, 그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모든 눈이 그분을 볼 것입니다.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고 땅의 모든 민족들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8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는 복되어라!
요한 18,33ㄴ-37
오늘 복음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그때에 빌라도가 예수님께
33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하고 물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말해 준 것이냐?” 하고 되물으셨다.
35
“나야 유다인이 아니잖소? 당신의 동족과 수석 사제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긴 것이오. 당신은 무슨 일을 저질렀소?” 하고 빌라도가 다시 물었다.
36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37
빌라도가 “아무튼 당신이 임금이라는 말 아니오?”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1월 24일
이경록 스테파노 신부
✚ 그리스도왕 대축일 소개 00:06
✚ 서울 반포성당 소개 01:28
✚ 미사시작 00:24
✚ 강론시작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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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사랑이 가장 큰 사람은 다른 누구보다 낮은 사람이다.
같은 단어를 써도 사람마다 다른 뜻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잘 살아야겠다.”라고 말할 때, 어떤 이는 이를 신앙적으로 윤리적으로 올바르게 사는 것으로 이해하고, 어떤 이는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사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사랑’이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누구는 남녀 간의 사랑을 생각하고, 어떤 이는 친구 사이의 우정을 떠올리고, 또 다른 어떤 이는 보편적 인류애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께 부여되는 ‘왕’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들은 ‘왕’이라는 말에서 최고 권력자, 군림하고 억압하는 자를 떠올리며, 이를 그리스도께 붙이거나 그리스도인의 왕직을 말할 때는 거북하고 불편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당신 스스로 왕이라고 하실 때는 오히려 반대로 사랑과 봉사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르 10,43)라고 하셨듯이 하느님 나라의 왕은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들을 섬기는 이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왕의 권위는 사랑에서 나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큰 사랑을 가진 이인데, 사랑이 가장 큰 사람은 다른 누구보다 낮은 사람입니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늘 더 작아지고, 더 낮아지며, 더 내준다는 것을 압니다. 그 누구보다 사랑이 크신 주님께서는 우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이로 낮은 곳에 오셔서 당신을 내주신 분이십니다.
왕직을 실행한다는 것은 권력을 가지고 군림한다는 뜻이 아니라, 사랑하고 봉사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수행해야 할 왕직은 그런 사랑의 봉사직입니다. 더 작고 낮은 이가 되어 더 많이 자신을 내주는 사랑의 봉사직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그리스도의 왕직에 초대된 우리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의 맏이이시며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이십니다.”
오늘 축일의 의미를 우리는 오늘 주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은 빌라도에게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라고 하시는데 이 말씀이 제게는 ‘내가 임금이라고 레오나르도, 네가 말하고 있다.’로 들립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이 축일의 의미는 저 레오나르도가 주님을 저의 임금으로 모시겠다고, 여러분도 저와 마찬가지로 주님을 여러분의 임금으로 모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세상 임금을 우리의 임금으로 받들지 않겠다는 뜻이며 이를 뒤집으면 우리는 시시하게 세상 임금의 신하가 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시시하게 몇 년짜리 이 세상 통치자의 신하가 되지 않고, 오늘 다니엘 예언서와 묵시록의 말씀처럼 삶과 죽음을 초월한 영원한 통치자이신 주님의 신하가 되겠다는, 그리고 주님의 신하로서 주님처럼 세상 통치자의 심판자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세상 통치자의 심판자가 됩니까? 촛불 심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심판자가 되면 될까요? 물론 그것도 한 방법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나은 방식이 있습니다. 교회는 이에 대해 이렇게 간단한 말로 가르침을 줍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왕직’과 ‘예언직’과 ‘사제직’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먼저 우리는 그리스도의 왕직을 수행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왕이라는 정체성과 자의식이 있어야겠지요.
우리는 섬기는 사람이되 왕으로서 섬겨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며 세상의 임금과 달리 섬김으로써 왕직을 수행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우리가 될 것입니다.
거듭 강조하건대 왕으로서 섬겨야 합니다. 그래야만 왕직을 수행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왕직이 아니라 종직을 수행하는 것일 뿐입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예언직을 수행할 사람들입니다. 왕의 정체성과 자의식을 가져야 하지만 그것이 교만이 되어서는 안 되고, 사랑이 없이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이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그러니까 하느님 나라에 비춰 우리가 사는 세상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겸손과 사랑으로 예언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제들로서 하느님과 세상 사이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왕직과 예언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
우리는 지난 일 년을 그리스도와 함께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이 길은 오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넘어 영원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오늘은 전례력으로 마지막 주일입니다. 교회는 이날을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이 주간을 성서주간으로 지냅니다.
오늘의 이 축일은 일 년의 전례를 종합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전 삶을 종합하고 있습니다. 곧 전 구원사를 장엄하게 압축하고 있습니다.
<제1 독서>는 다니엘서 7장에 나오는 사람의 아들에 대한 환시입니다. 이 환시에서는 영원한 왕의 다스림 속에서 하느님의 창조계획과 구원계획이 완성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곧 천지창조 이래 펼쳐진 구원의 모든 사건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고백합니다. 곧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그 나라가 주어지고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다니 7,14)고 선언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 부여한 왕이라는 의미가 한 시대나 한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권자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 우주의 전권을 지니신 하느님의 권능과 천상적 신비를 드러냅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우주론적인 선상에서, 그리고 전 역사를 함축한 종말론적인 입장에서 왕으로 선포됩니다.
<제2 독서>는 요한이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쓴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이 편지에는 그리스도가 왕이라는 것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곧 왕이신 그리스도를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분”,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시며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를 죄에서 풀어주신 분”, “우리가 당신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분”, “구름을 타고 오시는 분”, “알파요 오메가이신 분”이라고 선언합니다.
곧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하느님이시며, 창조주요 동시에 완성자이시오, 우주의 통치자이시며, 우주공간을 넘어 시간의 왕이심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진정 예수님은 왕이신가? 대체 어떤 왕이신가? 예수님께서는 “랍비, 스승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요한 1,49)라는 나타나엘의 고백을 허용하셨지만,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 후에 군중이 왕으로 추대하려 했을 때는 자리를 피하셨고(요한 6,15), 예루살렘 입성 때는 왕으로 환호하는 것을 허용하셨지만(요한 12,13;루카 19,38), “당신이 유다인의 왕이요.”(요한 18,33.37;마태 27,11;마르 15,2;루카 23,2)라는 질문에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8,36)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왕국은 세상의 왕국과는 다르며, 왕이신 당신의 존재는 세상의 왕이라는 존재와는 다름을 선언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단지 예수님을 “왕”이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왕직”의 신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곧 당신의 통치는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진리에 의한 것임을 말합니다. 그래서 당신께서는 왕으로서,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요한 18,37)
따라서 당신의 “왕직”은 세상의 왕들처럼 모든 이 위에 군림하는 힘을 행사하는 존재가 아니라, 진리를 증언하는 존재임을 말합니다. 곧 세상의 왕은 힘으로 세상을 자기 아래 복종시키려고 하지만, “그리스도 왕”은 진리로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고 건설합니다.
세상의 왕은 다른 이들이 자기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하고 자기를 위해 생명을 바치기를 바라지만, “그리스도 왕”께서는 먼저 신뢰로 사람들을 섬기시고 자신을 내놓으셨습니다.
곧 “종”으로서 섬김을 통해 왕직을 수행하십니다. 당신 스스로를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5;마태 20,28))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당신 왕국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참다운 왕의 모습입니다. 진리를 증거 하는 왕의 참모습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이 그리스도 왕국의 시민들입니다. 나아가서, 섬김으로 진리에 헌신하는 ‘그리스도 왕직의 계승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이 나라는 우리가 이웃을 섬기고 자신을 내놓은 곳에 이미 와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진리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될 때, 진정 우리는 그리스도의 왕국의 백성이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왕이십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18,36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주님!
당신의 나라가 세상 안에 있되
세상에 속하지 않듯,
당신께서는 위에 계시되
군림하지 않으시듯,
제가 세상 안에 있되
세상이 아닌 당신께 속하게 하고
섬김으로 세상을 비추게 하소서.
당신의 다스림을 받은
당신 나라의 시민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그리스도의 백성이 되는 법 : 진리에 속함으로
오늘은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전례력 상 일 년의 마지막 주간이며 지난주 종말에 이어 심판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종말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 계약을 기억하는 예배의 중요성이 사라진다는 데 있습니다. 심판도 이와 연결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주시는 분에게 우리는 그분의 계명을 따라야 합니다. 그분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빌라도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먼저 진리에 속해야 합니다.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오?”라고 묻고는 그대로 자리를 뜹니다. 진리에 속할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길이요, 생명입니다. 행복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길인 그리스도께서 참 진리이십니다. 그분께 속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그분의 말씀을 따르지 않을 것이기에 마지막 때 그분의 백성으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먼저 진리에 속해야 합니다.
무언가에 속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도 어딘가에 속할 수는 있습니다. 제가 보좌 신부를 할 때 군대에 들어가 자대에 같이 배치받은 줄 알았던 군인이 귀신이었다고 주장하는 군인과 통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군인의 이름을 말하니 그 부대에 있었던 인사계만이 화장실에서 자살했던 군인의 이름을 어떻게 아느냐고 놀랐다고 합니다. 그 군인이 일부러 그 사람의 이름을 찾아서 그런 척을 할 사람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구인은 왜 귀신이 보였던 것일까요? 그가 그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상에 속하려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외로웠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수준으로 떨어져 속하게 됩니다. 지옥에 속하는 것입니다. 제가 그냥 못 본 척하라고 했더니 며칠 뒤에 “흥, 재미없어!” 그러며 내무반을 나가더란 것입니다. 그것들은 모기처럼 괴롭히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래서 그것들에 무언가 해 주지 않아도 사람을 받아들입니다. 모기에겐 사람 자체가 이득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회사에 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거기에서 받는 만큼의 무언가를 내어놓아야 합니다. 월급을 받으면 그만큼 일해야지 그 회사에 속할 수 있습니다. 백종원 대표가 예산 국밥 거리를 떠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가 투자하는 것만큼 상인들이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골목식당에서 굉장한 빌런이 나왔었는데 ‘홍탁이네’ 사장입니다. 하도 말을 안 들어서 가르침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개과천선하였습니다. 이러한 각서를 가게에 걸었습니다.
“본인은 1년 안에 나태해질 경우 백종원 대표님이 저희 가게를 위해 지불해주신 모든 내용의 5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변상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리고 그는 성공하여 수도권 최고의 닭볶음탕 5위에 들고 돈도 많이 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속하는 방법입니다. 하느님께 속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하느님이 참 행복이요, 영원한 생명임을 믿으려면 그분이 내어주시는 만큼 나도 내어놓아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그분이 요구하신 일은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핵심은 어쩔 수 없이 ‘선악과’입니다. 선악과는 나중에 십일조로 드러나는데, 그만한 감사의 봉헌도 하지 않으면 저절로 뱀에게 속하게 됩니다. 뱀의 말을 듣고 그의 뜻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춘기 불만 가득한 아이들이 부모의 뜻을 잘 따를까요? 부모의 말이 들리지 않습니다.
먼저 진리에 속해야 하고 속하는 방법은 내어주는 만큼 나도 내어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교무금과 봉헌도 하지 않으면서 서로 사랑하라는 그분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하느님이 아닌 뱀에 귀 기울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미션’에서 로드리고 맨도자는 노예 상인이었고 동생까지 죽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팔아넘기던 원주민들에게 속죄하기 위해 칼과 갑옷을 끌고 높은 곳에 오릅니다.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그만한 희생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원주민들은 그를 용서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받아들인 원주민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습니다. 맨도자는 동생을 용서하지 못하고 죽였기에 용서가 바로 피 흘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생명엔 생명으로 갚아야 그 안에 머물 수 있게 됩니다. 진리이신 그리스도께 속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목숨을 내어놓아야 그분 목소리가 들립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분노에 사로잡힌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느 형제님으로부터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정치인에 대한 분노로 “때려죽이고 싶어요.”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정치인 때문에 지금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도 그런 마음이 들었냐고 물으니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하십니다. 또 그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은데, 그 사람들도 모두 죽여야 하냐고 물으니 역시 그렇지 않다고 답하십니다. 생각해 보니 자기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마음이 생겼는지 모르겠다며 머쓱한 표정을 지으십니다. 누군가 분노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분노는 숙주의 목숨을 앗아가는 기생충이다.’
분노를 갖게 되면 불행하게 됩니다. 분노를 벗어던지지 않으면 처음 가졌던 분노가 점점 몸짓을 키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대로 생활하지 못하게 하면서 분노에만 집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분노라는 감정을 계속 쌓아두어서, 이 감정에 잡아먹혀 불행하게 됩니다. 따라서 분노라는 감정을 벗어던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분노 등의 부정적 감정은 어디에 집중할 때 흐려지거나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 묵상 등의 신앙생활로 성찰하면서 주님께 집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땀을 흘리는 운동을 하거나, 또 악기 연주에 집중하는 것도 좋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선을 바꾸지 않고 계속 분노에만 머물게 되면 분명 불행해집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 서게 됩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스스로 ‘유다인들의 임금’이라 했다면서 고발한 것입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이란 말은 상당히 역사적인 뜻을 지니고 있는 호칭입니다. 기원전 168년에 마카베오 일가가 시리아의 통치에서 조국을 해방시키는 전쟁을 일으켜 승리함으로써 ‘유다인들의 임금’, ‘유다인들의 해방자’라는 명칭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예수님은 로마의 적대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나라는 이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에 군중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했을 때 그 자리를 피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고발합니다. 분노의 감정 때문입니다. 자기들과 함께하지 않으며, 자기들이 강조하는 율법을 사랑이라는 이유로 지키지 않는 모습에 분노한 것입니다. 그 분노가 하느님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도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온작 부정적인 생각에만, 또 자기만 옳다는 이기심이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어려울 때 우리는 가장 많이 성장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 조지 워싱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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