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신 어머니, 찬미받으소서. 당신은 하늘과 땅을 영원히 다스리시는 임금님을 낳으셨나이다.
주님,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를 영광스럽게 기념하며 공경하오니 저희가 그분의 전구로 주님께 풍성한 은총을 받게 하소서.
2024년 11월 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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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즈카 2,14-17)
딸 시온아, 즐거워하여라. 내가 이제 가서 머무르리라. - 오늘 복음
(마태 12,46-50)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 오늘 말씀 카드
(즈카 2,15)
나는 그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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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카 2,14-17
오늘 제1독서
딸 시온아, 즐거워하여라. 내가 이제 가서 머무르리라.
14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15
그날에 많은 민족이 주님과 결합하여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그때에 너는 만군의 주님께서 나를 너에게 보내셨음을 알게 되리라.
16
주님께서는 이 거룩한 땅에서 유다를 당신 몫으로 삼으시고 예루살렘을 다시 선택하시리라.
17
모든 인간은 주님 앞에서 조용히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셨다.
하느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은 행복하여라.
마태 12,46-50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그때에
4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47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48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49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1월 21일
박희전 루케시오 신부
✚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소개 00:06
✚ 미사시작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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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하느님 말씀을 따름으로써 진정한 부모의 사랑이 실현된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성모님의 관계를 묵상하게 합니다. 예수님과 성모님께서는 특별한 관계를 맺으시고 있지만, 이 관계는 단순히 혈연관계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며, 하느님의 뜻에 대한 충실성에 근거한다고 말합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어머니이시며, 교회의 본보기로서 특별한 공경을 받으시는 이유는 그 누구보다 하느님 뜻에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은 우리도 인간적인 혈연 이기주의에서 벗어나도록 요청하는 듯합니다. 많은 부모가 자녀와 관련된 일 앞에서 하느님의 뜻이 뒤로 밀려나는 경험을 합니다.
또한 많은 경우 가족 특히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에 죄인 줄 알면서도 잘못된 선택을 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은 복음적 삶에 따르는 역경과 환난에 맞설 각오가 되어 있지만, 자신의 자녀만큼은 이런 어려움 없이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인 줄 알면서도 가정의 안정과 안락을 위해서, 자녀의 미래를 위해서 옳지 않은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선한 마음이 죄의 동기가 되고 죄의 변명 거리로 전락해 버릴 때, 이는 사랑이 아니라 혈연 이기주의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오직 하느님 말씀을 따름으로써 진정한 부모의 사랑이 실현됩니다. 자녀에게 물질적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나 세속적 처세가 아니라, 영적 유산을 남겨 주어야 합니다. 자녀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하느님 뜻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힘입니다.
곧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곧은 마음, 다른 이에 대한 배려와 존중, 고통받는 이에 대한 공감과 연민, 영원한 가치를 볼 수 있는 지혜, 배려와 희생을 아는 성숙함 등입니다. 이 모든 것은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자라납니다. 신앙의 전달 안에서 부모와 자녀 관계는 거룩해지고, 진정한 의미의 성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봉헌과 은총
은총은 선물입니다. 거저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고, 일의 대가로 받는 것도 아니며, 공로의 상급으로 받는 것도 아니고, 애써 얻는 게 아니라 거저 받는 것이며, 그러기에 능동태가 아니라 완전한 수동태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본래 이런 것인데 오늘 성모 자헌 축일의 봉헌기도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성자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전구를 들으시어, 봉헌하여 은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게 하시고, 청원하여 응답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없게 하소서.”
그러니까 봉헌하여 은총을 받는 측면도 있다는 말이고, 오늘 축일을 지내는 성모님처럼 자신을 봉헌하여 우리도 은총이 가득한 사람이 되라는 기도입니다.
성모님처럼 아버지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완전한 순종의 수동태가 되는 것도 은총의 길이지만 성모님처럼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림으로써 능동적 사랑의 수동태가 되는 것도 은총의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능동적으로 수동태가 되게 하고, 사랑은 능동적으로 자신을 봉헌하게 하며,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갈망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사랑의 갈망이 은총을 받기 위한 능동적인 자세입니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이루어지라는 순종보다 더 적극적인 은총의 자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종보다 동정녀가 더 은총에 어울리겠지요? 이렇게 비유하면 어떻겠습니까? 종의 순종이 계곡 저 아래에서 은총이 물처럼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라면 동정녀의 사랑은 원천을 향하여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사랑과 은총의 원천을 향해 열정적으로 산을 치오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갈망하며 자신을 봉헌한 마리아에게 은총을 거절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우리가 마리아처럼 자신을 봉헌하며 은총을 청하면 우리에게도 거절하지 않고 은총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으로 은총을 갈망하고 청하는 우리가 되기로 결심하며 그 결심을 봉헌하는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입니다. 성모님께서 하느님께 봉헌된 것을 기리는 날입니다. 곧 성모님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실 때 가득했던 그 성령의 감도로 어린 시절부터 하느님께 봉헌되신 것을 기리는 날이다.
전승에 의하면, 성모님은 세 살 때, 그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에 의해 하느님께 봉헌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온 어머니와 형제들을 문전박대하십니다. 사실, 마리아는 이와 같이 아들로부터 냉대당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 잃었던 아들을 성전에서 찾았을 때,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라고 했을 때도 그러했고,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을 때,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 하였을 때도 그랬습니다.
이는 마치, 옷가지와 음식을 마련하여 찾아오는 어머니를 돌로 쫓았던 성철스님 이야기를 떠올려줍니다. 이는 참으로 불효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진리를 향한 결연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이다.”(마태 12,48-50)
이 말씀은 언뜻 보기에는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내치신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성모님에 대한 외적인, 가시적인 이해를 뛰어넘도록 해줍니다. 사실, 성모님께서는 육적인 혈연으로서만이 아니라, 영적으로 당신의 첫 번째 가족이셨음을 드러내줍니다.
왜냐하면 어머니 마리아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을 받고 아기예수님을 잉태하실 때 바로 그렇게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였습니다.
그렇게 성모님은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여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그러니 분명, 성모님께서도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분으로서 ‘예수님의 영적 가족’이 되셨습니다.
이처럼, 성모님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또한 아기를 잉태하는 순간부터 자신을 봉헌하고 또한 축성 받으셨습니다. 결국, 성모님도 예수님도 다 같이 아버지께 봉헌하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과 함께 하루하루를 아버지께 봉헌하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면서 살아야 할 일입니다.
오늘, 제 자신을 들여다봅니다. 성모님과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를 향하여 있는지, 그분의 뜻을 실행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12,48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주님!
당신께서는 당신의 혈통에
저를 입적시키셨습니다.
당신과 함께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형제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오니, 제 삶이 당신 신성으로
거룩해지게 하소서.
제 안에서 당신의 말씀이 자라나고
아버지의 뜻이 실행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 연수로 19(월)부터 23(토)까지 복음 묵상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
부부싸움을 안 하는 집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긴 남남이 만나서 서로 맞춰서 산다는 것이 절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 부부싸움 하시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큰 목소리가 날 때가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서로 물건을 부수면서 싸운다는 것도, 말다툼으로 며칠 동안 말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부싸움 후 이혼하고 싶어도 자식 때문에 이혼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자녀 때문에 억지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이혼해서 한 부모 가정으로 자란 아이의 정서보다 이혼하지 않고 같이 살면서 계속 싸우고 상대를 비난하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의 정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아이 때문이라는 말을 하려면, 절대 아이 앞에서 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상대 때문이라는 말을 하며 싸우지만, 그때 아이를 위한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 때문이라면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부모님의 함께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이제야 감사함을 깨닫습니다. 얼마나 좋은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셨을까요? 비록 배우자 없는 저의 삶이지만, 저 역시 좋은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며 최선을 다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에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주위 사람들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그들도 제게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성모님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실 때 은총을 가득히 채워주신 성령의 감도로 성모님께서 아기 때부터 하느님께 봉헌되신 것을 기리는 날입니다. 성모님의 봉헌은 성모님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큰 것은 성령의 감도이지만, 성모님의 부모님이신 요아킴과 안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실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이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당신을 찾아온 어머니와 형제들을 뒤로 하고, 당신 제자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되어 주위 사람에게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처럼, 우리가 모두 한 가족이 될 수 있도록 말이지요.
오늘의 명언
나무가 열매로 사람을 모으듯 어른은 성품으로 사람을 따르게 한다.
- 다산 정약용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봉헌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신 성모님의 삶을 만납니다. 세상의 많은 길 중에서 가장 뜨거운 길은 봉헌의 길입니다. 봉헌은 고정된 우리의 시각을 깨뜨리며 성장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봉헌은 확고한 우리의 믿음입니다.
신앙의 실천인 봉헌은 강한 유대감으로 너와 나를 이어줍니다. 이렇듯 봉헌의 삶은 자아를 비우는 사랑입니다. 비우지 못하면 갈등과 반목으로 치닫게 됩니다. 참된 모습인 봉헌의 사랑은 간절한 기도로 드러납니다. 끊임없이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는 어머니의 삶을 뜨겁게 만납니다.
무한한 실천의 자리가 우리의 현실입니다. 현실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끊임없는 봉헌입니다. 신앙인의 완성은 봉헌입니다.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봉헌의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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