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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11/20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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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재앙이 아니라 평화를 주노라. 나를 부르면 너희 기도를 들어 주고, 사로잡힌 너희를 모든 곳에서 데려오리라.

주 하느님, 저희를 도와주시어 언제나 모든 선의 근원이신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 섬기며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2024년 11월 20일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1월 20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1월 2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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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묵시 4,1-11
오늘 제1독서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

나 요한이 


보니 하늘에 문이 하나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들었던 그 목소리, 곧 나팔 소리같이 울리며 나에게 말하던 그 목소리가, “이리 올라오너라. 이다음에 일어나야 할 일들을 너에게 보여 주겠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곧바로 성령께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하늘에는 또 어좌 하나가 놓여 있고 그 어좌에는 어떤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거기에 앉아 계신 분은 벽옥과 홍옥같이 보이셨고, 어좌 둘레에는 취옥같이 보이는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그 어좌 둘레에는 또 다른 어좌 스물네 개가 있는데, 거기에는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쓴 원로 스물네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 어좌에서는 번개와 요란한 소리와 천둥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좌 앞에서는 일곱 횃불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또 그 어좌 앞에는 수정처럼 보이는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좌 한가운데와 그 둘레에는 앞뒤로 눈이 가득 달린 네 생물이 있었습니다.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둘째 생물은 황소 같았으며,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았습니다. 


그 네 생물은 저마다 날개를 여섯 개씩 가졌는데, 사방으로 또 안으로 눈이 가득 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밤낮 쉬지 않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 


어좌에 앉아 계시며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그분께 생물들이 영광과 영예와 감사를 드릴 때마다, 

10 
스물네 원로는 어좌에 앉아 계신 분 앞에 엎드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그분께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금관을 어좌 앞에 던지며 외쳤습니다. 

11 
“주님, 저희의 하느님, 주님은 영광과 영예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고 주님의 뜻에 따라 만물이 생겨나고 창조되었습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루카 19,11ㄴ-28
오늘 복음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때에 

11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14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5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16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18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주인은 그에게도 일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20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21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22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3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24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5 
─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 ─ 

2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27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28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1월 20일
김영인 요한사도 신부

 

✚ 미사시작 00:24

✚ 강론시작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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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자신만의 성소의 길

한 미나를 받아 수건에 싸서 보관한 종의 잘못은 게으름에 있습니다. 이 본문과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서는 이 종의 잘못이 어디에 있는지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알려 줍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마태 25,26) 

게으름은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악덕입니다. 무엇이든 시도해야 그 안에서 하느님의 활동이 시작됩니다. 실패든 성공이든 주님께서는 당신 섭리로 이끄시고, 그 섭리 안에서 열매를 맺으십니다. 그러나 게으른 종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게으름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을 냉혹하시고 무서우신 분으로 여겼기에, 자신이 실패하였을 때 그것을 다그치실 하느님이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이 종의 또 다른 잘못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자신만의 성소(부르심)와 사명이 있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미나를 맡긴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시며 사명을 맡기십니다. 

나라는 사람은 유일하고, 주님께서는 그런 유일무이한 나에게 나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명을 맡기십니다. 이처럼 모든 이에게는 자신의 성소가 있으며, 그래서 성소의 수는 그리스도인의 수만큼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그 사명을 통해서 거룩함으로 나아가고 또 세상에 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려움과 게으름으로 자신의 성소를 시작하지 못합니다. 두려움 없이 성소의 첫 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비록 실패처럼 보일지라도, 주님의 자비로운 섭리 안에서 언제나 어떤 열매든 맺으리라 믿으며, 담대하고 성실하게 성소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사랑이 두려움을 몰아내는데.

오늘 비유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이 임금이 될 귀족을 미워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귀족은 자기를 미워하는 종들에게 미나를 맡기는 셈이 됩니다. 저 같으면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미나를 맡기지 않을 텐데 주님께서는 당신을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맡기신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사랑하는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미워하는 사람이 미워하는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까? 사실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창조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도 최선을 다해 그 일을 하고, 자녀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녀를 위해 뭐든 하고 최선을 다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도 주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반대로 미워하는 사람은 파괴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에 파괴하는 일을 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거나일 것입니다. 

한 미나를 그대로 도로 가져온 종이 바로 이 경우입니다. 주인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마음이 없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오해가 마음 안에 단단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나무랄 때 오히려 속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냅니다.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그러고 보면 오해(誤解)이기도 하지만 불신입니다. 아니, 오신(誤信)이라고 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에게 주인은 사랑의 주인이 아니고, 그래서 선을 베푸는 분이 아닙니다. 주지도 않고 요구만 하는 분입니다. 

그러니 그런 그에게 주인은 냉혹한 분이고, 사랑할 수 없는 분이며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빛이 어둠을 몰아내듯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내는데 사랑이 없으니 불신과 두려움이 대신 자리 잡은 것입니다. 

주인으로서는 대단히 서운한 일이고 노여운 일입니다. 열 미나를 줄 마음이 있는 분인데 주지는 않고 요구만 하는 분이라고 하니 말입니다. 

주 하느님도 이렇게 믿는 대로 되시는 분입니다. 햇빛을 주시고, 비바람을 주시고, 온갖 것 다 주셨어도 주지 않으셨다니 그에게는 주님이 사랑이 아니고 전혀 좋은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 자기 손해입니다. 은총을 살지 못하고 두려움 가운데 사는 것이 믿지 못하는 자기 탓이요 그렇게 믿는 자기 탓입니다. 

만일 우리가 여태껏 하느님을 믿어왔는데 이런 신앙생활을 했다면 일생 살아왔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고 얼마나 불행합니까? 그래서 나는 열 미나를 더 받는 사람인지 한 미나마저 도로 뺏기는 사람인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 

갑자기 추워졌지만 이제 제 계절을 찾은 것 같습니다. 바자회 끝나고 제대로 감사드리지 못했습니다. 올해도 여러분의 기도와 참여 덕분에 곧 하느님과 여러분의 사랑 덕분에 잘 끝났고, 좋은 결과를 보고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도 올해와 똑같이 43명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장학생 선발에 대한 공지가 나가면 신청해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내년에는 바자회 대신 자선 음악회를 하기로, 한 해는 바자회, 다른 한 해는 음악회 이런 식으로 하기로 이번 이사회에서 결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실버 합창대를 가능한 빨리 조직하려고 합니다. 55세부터 75세까지 즐기며 자신의 사랑과 재능을 봉헌할 분들은 제게 연락(010-2340-5501)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올해도 김장을 해서 판매합니다. 11월 27일에서 28일 김장을 여기 밥상에서 할 계획입니다. 봉사해 주실 분과 김치 사실 분이 계시면 저희 사무국장(010-8345-6868)에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감기 몸살 걸리지 않도록 잘 돌보시길 바라고 빕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열매 맺는 나무

겨울의 길목입니다. 바퀴를 달고 달아나는 가을의 뒷모습이 을씨년스럽고, 길가에 군데군데 몰아다 놓은 가을의 노고, 가을의 땀방울이 쓸쓸합니다. 

그런데 잎이 떨어지고 꽃도 떨어지고 벌거숭이로 알몸이 되면, 그 나무가 속이 꽉 찬 나무인지 속 텅 빈 나무인지가 훤히 드러나 보입니다. 이 초겨울 우리의 몸을 치장하고 있던 가식과 허영의 옷들을 벗어버리고, 우리의 속내를 들여다보아야 할 때입니다.

오늘 복음인 “미나의 비유”는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당신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 이루어진 ‘하느님 나라’에 대해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곧 ‘하느님 나라’는 선물이요 은총임과 동시에, 그에 따른 과업과 소명이 주어집니다. 선물인 ‘미나’는 주인이 ‘벌이를 하라고 맡긴 것’(루카 19,13 참조)으로 주어집니다. 그래서 주인은 돌아오면 그 소명을 실현하였는지의 여부에 따라 심판을 하게 됩니다. 

이 비유에서 ‘왕권을 받으러 먼 고장으로 떠난 어떤 귀족’은 예수님의 승천을, ‘다시 돌아옴’은 재림과 종말을 암시해줍니다. 

이 비유는 겉보기에는 마치 결과에 따라 평가받는 것처럼 보여 지지만, 사실 결과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비유의 핵심은 결실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결심을 많이 맺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결실을 내는 나무’가 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곧 결실을 통해서 나무의 본질을 보는 데 있습니다. 결국, 어떤 나무가 결실을 낼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열매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는 나무’에 대한 비유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착한 종’은 선물과 선물을 주신 분에 대한 믿음으로 성실하여 열매를 맺게 되었지만, ‘악한 종’은 주인에 대해서 “냉혹한 분이어서 가져다놓지 않는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는 것을 거두어 가시는 분”(루카 19,23)으로 여겼기에 결국, 그에 따른 결과를 낳았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이 비유의 핵심은 ‘주인과 맺는 관계성’에 있습니다. 곧 주인에 대한 믿음과 순명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믿는 이’는 믿음의 열매를 맺을 것이고, ‘불신한 이’는 불신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니 먼저 우리의 마음을 ‘믿음’으로 가꾸어야 하고, 우리의 행실을 ‘순명’으로 채워나가야 할 일입니다. 주인의 ‘선물’을 악용하거나 혹은 자신의 안정과 보존에만 머물지 말고, 선으로 활용하고 충실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선물’(미나)을 주신 분에 대한 감사와 믿음을 간직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에 충실하고 있는지, 자신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활동하신 분의 힘을 믿고 있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명령에 순명으로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9,13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주님!
저에 대한 
당신의 믿음과 사랑이
열매를 맺게 하소서.

오늘도 제 희망이 아니라 
당신의 희망이
제 안에서 이루어지소서. 

제 안에서 활동하시는
그 크신 힘에 
감사할 줄 알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십자가는 자기 합리화의 도구가 아니다.

19(월)~23(토)까지 연수 관계로 복음 묵상이 없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리코의 소경은 구걸하며 앉아 있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는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소리소리 지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네가 뭔데 그렇게 소리를 질러?”하며 나무랍니다. 그러나 소경은 더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라고 물으시고, 소경은 다시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당시에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할 일이 없었고 그러면 가난해서 구걸하는 신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요즘 그런 상황이라면, “예수님도 가난하게 십자가에 돌아가셨으니, 너도 네 처지를 받아들이고 수긍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눈을 떠서 일해서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려는 그에게 믿음이 있고 그 믿음이 그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요즘에도 신앙이 약간은 지금 자신의 처지에 수긍하고 안주하게 만드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어떤 신자분들은 정말 사명을 깨닫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불쌍한 처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닮았다며 위안하기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에 따르면 신앙은 모든 것을 희망하고 모든 것을 믿고 믿는 것을 위해 지치지 않는 노력을 함을 의미합니다. 고 정주영 회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공은 노력, 끈기, 그리고 위험을 감수할 용기의 결과다. 성공의 열쇠는 포기하지 않고 항상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다. 성공으로 가는 여정이 항상 쉬운 것은 아니지만, 항상 가치가 있다. 성공한 사람은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저는 이 모습이 오늘 복음의 믿음으로 구원받은 소경의 모습과 더 닮았다고 봅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란 책이 있습니다. 1913년 이 책을 쓴 사람은 프랑스 한 마을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그 지역은 나무를 잘라 숯을 만들어 파는 동네였습니다. 당연히 산은 벌거숭이였습니다. 그리고 각자는 경쟁과 미움, 술과 향락 등에 빠져 전혀 행복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벌거숭이 산을 지날 무렵 한 양치기를 만납니다. 그는 도토리를 땅에 심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1910년부터 나무를 심어왔고, 3년 동안 매일 좋은 도토리만 골라내서 심어 10만 개의 도토리를 심어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쉰다섯 살의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이름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내와 자녀를 잃고 이 시골로 내려와 양을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도토리를 심기 시작한 이유는, 그곳에 나무가 없어서 그 땅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땅은 그에게 어쩌면 아내와 아들과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그 땅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밤에 매일 좋은 도토리 100개씩 골라내어 낮에는 양을 치며 곳곳에 그 도토리를 심고 있었던 것입니다. 도토리 10만 개 중 2만 개가 싹을 틔웠고 그중 만 개가 조금씩 자라고 있었습니다. 

지은이가 마지막으로 엘제아르 부피에를 만난 건 1945년 6월이었습니다. 그의 나이는 어느덧 여든일곱 살이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예전의 그 황무지가 있던 그 지역에 있었지만, 그곳은 더 이상 황무지가 아니었습니다. 

버스가 빠른 속도로 지나다니고 사람 사는 냄새,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이 부는 소리, 샘물이 흐르는 소리가 있는 살아있는 곳이 되어 있었습니다. 베르공 마을에서는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있었고, 공동작업을 한 희망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채소밭에는 열매들이 맺혀 있었고, 그곳에는 젊은 부부 네 쌍을 포함한 스물여덟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살아있는 곳이자, 살고 싶은 곳이 되었던 것입니다. 엘제아르 부피에는 여전히 예전의 그 황무지가 있던 자리에서 아직도 황무지인 것처럼 그곳에 묘목을 심고 있었습니다.

2023년 4층에 살던 두 아이의 아빠가 아래층부터 화재가 발생하여 7개월 된 아기를 안고 뛰어내리다가 아이는 살았지만, 아빠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 일이 있었습니다. 

아래에서 쓰레기 분리 수거장의 푹신한 포대를 깔아놓고 큰 아이를 던졌는데 살았습니다. 그다음은 아내가 뛰어내렸고 가벼운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아기를 안고 뛰려면 아빠는 아래에 위치할 수밖에 없었고 뇌진탕으로 죽고 만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와 같습니다. 아기에게 아빠와 같이 죽음의 십자가로 오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빠가 널 위해 죽었으니, 넌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소중한 존재야!”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보며 그분의 가난과 희생의 삶을 내가 꿈을 갖고 노력하지 않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참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처럼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믿음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삶 안에서 시간이 빨리 가고 끝이 좋은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은 빨리 가지만 끝이 좋지 않은 것을 선택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으로 자기 전에 유튜브를 본다면 어떨까요? 시간이 정말로 빨리 지나갑니다. 문제는 잠이 잘 오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끝이 좋지 않습니다. 소파에 누워서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립니다. 이 역시 시간은 정말 빨리 지나가지만, 무엇을 했는지 모르면서 허탈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밖에도 시간이 빨리 가지만, 끝이 좋지 않은 경우는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끝이 좋은 경우도 분명히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운동할 때…. 이렇게 시간도 빨리 가고 끝도 좋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후회는 늘 끝이 좋지 않았을 때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를 구분하기가 어려울까요? 아닙니다. 충분히 식별해서 가려낼 수가 있습니다. 끝이 좋은 경우를 선택해야 하는데, 단지 순간의 만족이 더 크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가장 끝이 좋을 수 있음을 알아도 그때까지의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흐르기 때문입니다. 
 
어느 운동선수가 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얻고자 합니다. 그냥 좋은 성적을 얻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될까요? 아닙니다. 힘든 훈련 시간을 거쳐야 합니다. 그 시간은 빨리 갈까요? 아닙니다. 아주 느리게 갈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간 없이는 좋은 끝은 있을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특별히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은 분명 끝이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 나라에 보화를 쌓는 것이 되어 끝이 가장 좋은 결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을 늘 뒤로 미룰까요? 순간의 만족만을 위한 이 세상 삶이 먼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힘든 지금의 순간을 이겨내기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느님 뜻을 멀리하면 분명 끝은 좋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미나의 비유 말씀을 하십니다.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라고 그들에게 이릅니다. 이 말을 충실히 따라서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인 사람,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든 사람은 칭찬받고 선물까지 얻게 됩니다. 그러나 한 미나를 수건에 싸서 보관만 해 둔 사람은 받은 그 한 미나마저 빼앗기고 맙니다. 누구의 끝이 좋았을까요? 주인의 말을 충실히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의 끝은 과연 어떨까요? 하느님의 선물이 이 세상에서 열매를 맺도록 부지런히 일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소홀히 하는 이들에게는 심판이 내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모든 날이 그해 최고의 날이었다고 생각하라.

- 랠프 월도 에머슨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삶의 길을 새롭게 개척해 나가시는 예수님의 삶입니다. 황무지를 일구어 복음이 되게 하십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된 삶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과 우리의 노력으로 변화될 수 있는 선물의 삶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참되고 성실한 정성의 마음입니다. 정성어린 기도가 현실의 아픔을 극복하는 우리의 지혜이며 우리의 힘입니다.

신앙은 현실과 동떨어진 영역이 결코 아닙니다. 노력하고 찾아가고 회개하는 내적 변화의 여정입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 삶의 중심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중심이 없는 사람은 삶의 기쁨 마저 빼앗길 것입니다. 시련이 있어도 행복할 수 있는 우리들 삶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생명의 시간입니다.

생명의 시간은 교만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깨어있는 감사의 삶이 됩니다. 진정한 감사는 완결이나 종착의 의미가 아니라 부단한 깨어있음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이와 같이 바람직한 삶의 방향은 노력과 실천입니다. 단정이 아니라 개척이며 포기가 아니라 용기이며 축소가 아니라 마음의 확장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넓혀나가는 가장 기쁜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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