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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11/27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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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백성, 당신께 충실한 이, 당신께 돌아오는 이에게 주님은 진정 평화를 말씀하신다.

주님, 믿는 이들의 마음을 일깨우시어 저희가 거룩한 구원의 열매를 풍성히 거두며 주님의 자비로 더욱 큰 은총을 받게 하소서.

2024년 11월 27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1월 27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1월 2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묵시 15,1-4)
    그들은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 오늘 복음
    (루카 21,12-19)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 오늘 말씀 카드
    (루카 21,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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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 15,1-4
오늘 제1독서

 

그들은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나 요한은 


크고 놀라운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난 것을 보았습니다. 일곱 천사가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하느님의 분노가 끝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또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 유리 바다 위에는 짐승과 그 상과 그 이름을 뜻하는 숫자를 무찌르고 승리한 이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수금을 들고, 


하느님의 종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주님께서 하신 일은 크고도 놀랍습니다. 민족들의 임금님, 주님의 길은 의롭고 참되십니다. 


주님, 주님을 경외하지 않을 자 누구이며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을 자 누구입니까? 정녕 주님 홀로 거룩하십니다. 모든 민족들이 와서 주님 앞에 경배할 것입니다. 주님의 의로운 처사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는 죽을 때까지 충실하여라. 내가 생명의 화관을 너에게 주리라.

 

 

루카 21,12-19
오늘 복음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1월 27일
김종욱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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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위기는 진리를 증언할 좋은 기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나중에 실제로 행하게 될 일을 예언하십니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루카 21,12-13)라는 주님의 말씀은 사도행전에서 글자 그대로 이루어집니다(5,32; 26,22 참조). 

사도들은 임금이나 총독 앞에 잡혀가지만, 그것을 기회 삼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며 복음을 선포합니다. 박해는 복음 선포의 위기 상황이지만, 오히려 그 위기를 통하여 복음은 더 분명하고 더 멀리 선포됩니다. 

이처럼 사도행전은 위기를 ‘통하여’ 실현되는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위기에 ‘그럼에도’ 주님의 말씀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위기가 기회가 되어 주님의 말씀이 실현됩니다.

오늘날에도 교회를 위협하는 박해가 있습니다. 낙태, 안락사, 배아 복제 등 생명권에 대한 교회 입장에 대한 경멸과, 정결, 순명, 포기와 같은 그리스도교적 가치에 대한 냉소, 그리고 인간 존엄성에 대한 물신주의적 비웃음 등 교회가 부딪치게 되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 위기는 진리를 증언할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루카의 신학대로라면, 이러한 위기에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위기를 통해서 주님의 말씀이 퍼져 나갑니다. 

이러한 박해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체험하고, 믿음을 증명하며, 세상에 복음을 증언할 기회가 됩니다. 세상의 반대에 낙담하고 좌절하기보다 이 반대가 복음을 선포할 기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제자다운 행복오기

오늘 주님께서는 박해의 때에 제자들에게 일어날 일들에 대해 예고하십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려갈 것이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까 제자라면 박해를 피할 수 없다는 말씀이고, 제자라면 이런 일들을 피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오히려 각오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뒤집으면 박해 때 내가 박해를 피하거나 박해받는 일이 내게 없다면 나는 주님의 진정한 제자가 아닌 셈입니다. 

그러므로 꼭 박해 때가 아니더라도 내가 주님의 제자가 되길 원한다면 우리도 주님 때문에 임금들이나 사람들 앞에 끌려갈 각오를 할 것이고, 더 나아가 오히려 주님을 증거 할 기회로 그 상황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상황 반전, 제자의 상황 반전입니다. 제자라면 역경을 순경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역경을 기회로 바꾸는 것, 이것이 진정 주님의 제자답게 상황을 반전시키는 능력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도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상황이 이래서 어쩔 수 없었어!’라고 하는 것은 참 제자에게는 있을 수 없는 핑계이고 무기력한 자세이며, 어떤 상황에도 자기의 행복과 구원을 일구어가는 적극적인 자세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주님의 제자다운 오기가 필요합니다. 주님의 제자라면 주님의 가르침대로 ‘행복 오기’와 ‘구원 오기’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여러 번 말씀드린 대로 ‘나는 무조건 행복하다.’라고 하는 오기 말입니다. 

가난해도 행복하고 부유해도 행복합니다. 울지라도 행복하고 웃을지라도 행복합니다. 박해받아도 행복하고 평화로워도 행복합니다. 나의 행복과 구원에 조건이 없다는 것이 무조건 행복의 오기이고, 이렇게 반전시키는 것이 제자다운 상황 반전임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어제 많은 분이 저의 축일을 축하애주셨는데 제가 일일이 감사의 답장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리며, 이렇게 감사 드림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인내는 하는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통로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에 이어,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신 담화, 곧 종말에 대한 말씀으로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으켜줍니다. 

먼저, 박해와 박해 가운데에 있게 될 증언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그러나 언변과 지혜를 내가 주겠다.”(루카 21,12-15)

박해가 오히려 당신을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깨우치십니다. 곧 박해를 당하게 되면, 오히려 하느님의 능력과 현존을 체험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보호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눌변인 모세의 입과 함께 계셨듯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탈출 4,11-12.15-16). 그러니 박해를 통하여, 오히려 우리는 신앙이 굳세어지고 새로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위기의 순간은 가장 좋은 기회의 순간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7-18)

이는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미움이나 배척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미움과 배척을 통하여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곧 미움과 박해를 벗어나게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보호해주고 지켜주실 것이니, 인내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는 미움 받거나 배척받게 되면 힘들어 합니다. 고난과 시련, 어려움이나 귀에 거슬리는 말이나 힘든 것은 피하고, 편하고 좋고 즐거운 것, 듣기 좋은 말에 더 맞들이고 쉽게 기울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려움과 인내를 통하여, 구세주와 협력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신기하게도, 어려움과 인내에는 고통을 변화시켜 하느님과의 만남이 되게 하는 묘한 이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고난을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하는 특권을, 곧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하여 고난까지 겪는 특권을 받았습니다.”(필리 1,19)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9)

성 베네딕도 역시, ‘인내’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통로요,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하는 한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에 인내로써 한몫 끼어 그분 나라의 동거인이 되도록 하자.”(수도규칙 머리말 50)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고 있으니 영광도 그와 함께 받을 것이다.”(필립 3,10;로마 8,17).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21,17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주님!
고난과 시련이 
당신을 증언할 
기회가 되게 하소서.

그 속에서 당신의 능력과 
현존을 체험하게 하소서.

오히려 굳세어지고 
새로워지게 하소서.

바로 그 순간이 
위기의 순간이 아니라, 
기회의 순간이 되게 하소서.

그 어떤 미움도 배척도 
당신과 함께 받고, 
당신의 영광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박해가 아니라 박해받지 못함을 두려워해야!

저는 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신부들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거기 있던 대부분 신부들이 저를 안 좋게 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살이 아니라 ‘순교’라고 어떤 분은 저를 야단치듯 말했습니다. 저는 어쨌거나 ‘자살은 자살 아닌가?’라는 생각은 하면서도 더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반면 미국에선 바이든 대통령이 낙태를 찬성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성체를 거부한 사제가 있었습니다. 그 사제는 분명 바이든 대통령의 정당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비난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이도 저도 아닌 입장으로 박해를 피한 태도가 부끄럽게 여겨졌습니다. 

이런 일이 점점 많아질 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진짜 걱정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박해를 두려워해야 할까요, 아니면 박해를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할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 당신의 제자들이 박해당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때 진정한 믿음을 가진 이들이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 것? 만약 마지막 때 원숭이들이 믿음이 생겨서 성당에 모여 성체조배를 한다면 박해할까요? 신기해서 구경하기 위해 많이 몰려들 것입니다. 

박해받는 이유는 하느님의 존재를 믿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믿는 이들이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느님의 뜻을 주장함으로써 말입니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2017)는 이런 세상 말기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이때가 되면 사람들은 세속-육신-마귀를 거의 신적으로 섬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와 반대되는 사랑의 계명을 말하고 실천하는 이는 박해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눈엣가시처럼 여겨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말을 못 하는 장애를 가진 비밀 정부 시설의 청소부입니다. 이때 그 정부 시설에서는 아마존의 수륙양용 인간형 생물을 포획합니다. 이 생물은 지역 주민들에게 신으로 숭배되지만, 가학적인 리차드 스트릭랜드 대령이 대표하는 미국 정부에 의해 잔혹한 실험을 당합니다.

엘리사는 그 생물과 깊은 유대감을 형성합니다. 그녀는 수화, 음악, 음식을 통해 그것과 소통합니다. 점점 더 커지는 그들의 관계는 다른 사람들이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 생물의 지능과 감정을 드러냅니다.
 
미국은 그 생물을 죽여 해부하여 군사력을 증가시키려 하고 러시아는 몰래 스파이를 시켜 그 생물을 죽이라고 합니다. 이 상황에서 엘리사는 청수부에 불과하지만, 그 생명체를 몰래 빼내는 작전을 수행합니다. 이렇게 되면서 미국과 러시아의 적이 됩니다. 결국 리차드 대령의 총에 맞아 그 생물도 죽고 엘리사도 죽습니다. 

조선시대 때 가톨릭교회를 믿는 이들이 왜 박해받았습니까? 그들이 하느님을 믿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하느님 뜻 때문이었습니다. 평등은 사랑입니다. 믿음은 곧 그 믿는 대상의 뜻을 실현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기득권들이 그들을 가만히 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박해가 심해질수록 더 종말이 가깝습니다. 지금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수많은 박해가 일어납니다. 20세기에 순교한 이들이 19세기 동안 순교한 이들을 다 합친 수보다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은근슬쩍 진리를 말하지 않고 그들 편에 서서 박해를 피해야 할까요, 아니면 박해 때 성령께서 말씀하시도록 우리를 맡기는 연습을 해야 할까요? 이때 주님 편이 안 되면 적들 편에 서게 됩니다. 

이 시험의 때가 가깝습니다. 요즘 교회의 모습도 참 진리보다는 내가 믿는 정당에 더 큰 표를 주는 듯하기도 합니다. 박해가 아니라 박해를 두려워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더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입니다. 한 친구가 쉬는 시간에 지우개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칼로 지우개를 깎아내면서 도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만든 지우개 도장에 사인펜으로 까맣게 칠한 뒤, 자기 공책에 힘껏 누르니 자기 이름이 새겨지는 것입니다. 친구들 모두 감탄했습니다. 사실 초등학생인 우리 중에 자기 도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 도장이 있으면 마치 어른이 될 것 같았습니다. 친구에게 도장 만드는 법을 배운 뒤, 반 친구 거의 모두가 지우개 도장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이름이 새겨진 도장이 생겼지만 처음 만들어 보는 것이라 아주 허접했습니다. 더군다나 실패를 반복해서, 큼지막했던 지우개는 조그마한 지우개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엄청나게 혼났습니다. 쓸데없는 행동을 했다고 말이지요. 
 
도장 파는 곳에 가면 더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비용이야 지우개 도장이 훨씬 싸겠지만, 질적인 면에서 비교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나의 도장을 직접 만들었다는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하시는 일과 제가 하는 일을 비교해 보았으면 합니다. 일의 결과는 당연히 주님께서 직접 하시는 일이 뛰어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가 직접 하길 원하십니다. 일의 결과보다는 그 과정 안에서의 기쁨과 그 부족한 결과도 큰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따라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우리의 적극적인 삶임을 깨닫습니다. 미루는 삶, 포기하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박해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임금들과 총독들을 포함한 적대자들뿐이 아닙니다.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박해자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십니다. 하느님의 일은 분명히 좋은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스스로 당신의 일을 하시면 어떨까요? 적대자들도 그 힘에 눌려서 꼼짝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역할을 강조하십니다. 
 
사실 하느님의 일은 세상의 일과 충돌을 일으킵니다. 바라보는 바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사랑만을 바라보고 있고, 세상의 일은 욕심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 하느님의 일이지만, 그 세상을 우리가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진정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어떤가요? 세상의 일과 충돌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하느님의 일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청렴은 백성을 이끄는 자의 본질적 임무요, 모든 선행의 원천이요, 모든 덕행의 근본이다.

- 다산 정약용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는 인내로써 희망을 얻어라.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간절한 인내의 희망이 솟아납니다. 어려움을 이기시는 인내의 본보기가 되시는 주님이십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인내입니다. 꼭 필요한 인내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우리들 삶입니다. 인내를 잃어버리면 삶의 진정한 안목도 잃어버립니다.

인내의 결과가 생명을 얻는 복음의 기쁨입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참고 인내하는 십자가의 여정이 바로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가 됩니다.

십자가의 향기는 인내로 빚어집니다. 시련이 거셀수록 우리가 받는 은총도 풍성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로 신앙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인내는 기도하는 마음이 됩니다. 그래서 인내는 생명을 치유합니다.

하느님의 때를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고 하느님의 은총에 응답하는 새로운 날 되십시오. 인내는 원망이 아니라 끊임없이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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