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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11/28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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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백성, 당신께 충실한 이, 당신께 돌아오는 이에게 주님은 진정 평화를 말씀하신다.

주님, 믿는 이들의 마음을 일깨우시어 저희가 거룩한 구원의 열매를 풍성히 거두며 주님의 자비로 더욱 큰 은총을 받게 하소서.

2024년 11월 28일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1월 28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1월 2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묵시 18,1-2.21-23; 19,1-3.9ㄱㄴ)
    무너졌다, 대바빌론이!

  • 오늘 복음
    (루카 21,20-28)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 오늘 말씀 카드
    (시편 100,4)
    그분을 찬송하며 그 이름을 찬미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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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 18,1-2.21-23; 19,1-3.9ㄱㄴ
오늘 제1독서

 

무너졌다, 대바빌론이!

나 요한은 


큰 권한을 가진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의 광채로 땅이 환해졌습니다. 


그가 힘찬 소리로 외쳤습니다. “무너졌다, 무너졌다, 대바빌론이! 바빌론이 마귀들의 거처가 되고 온갖 더러운 영들의 소굴, 온갖 더러운 새들의 소굴, 더럽고 미움받는 온갖 짐승들의 소굴이 되고 말았다.” 

21 
또 큰 능력을 지닌 한 천사가 맷돌처럼 큰 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며 말하였습니다. “큰 도성 바빌론이 이처럼 세차게 던져질 터이니 다시는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22 
수금 타는 이들과 노래 부르는 이들, 피리 부는 이들과 나팔 부는 이들의 소리가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않고 어떠한 기술을 가진 장인도 다시는 네 안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맷돌 소리도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않을 것이다. 

23 
등불의 빛도 다시는 네 안에서 비치지 않고 신랑과 신부의 목소리도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않을 것이다. 너의 상인들이 땅의 세력가였기 때문이며 모든 민족들이 너의 마술에 속아 넘어갔기 때문이다.” 

19,1 
그 뒤에 나는 하늘에 있는 많은 무리가 내는 큰 목소리 같은 것을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권능은 우리 하느님의 것. 


과연 그분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우시다. 자기 불륜으로 땅을 파멸시킨 대탕녀를 심판하시고 그 손에 묻은 당신 종들의 피를 되갚아 주셨다.” 


그들이 또 말하였습니다. “할렐루야! 그 여자가 타는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간다.” 


또 그 천사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

 

 

루카 21,20-28
오늘 복음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된 것을 보거든, 그곳이 황폐해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라. 

21 
그때에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고,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라. 시골에 있는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 

22 
그때가 바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징벌의 날이기 때문이다. 

23 
불행하여라, 그 무렵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 이 땅에 큰 재난이, 이 백성에게 진노가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24 
사람들은 칼날에 쓰러지고 포로가 되어 모든 민족들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25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1월 28일
김시몬 시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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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징벌의 날과 속량의 날

묵시 문학은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아무리 해도 바꿀 수 없으며 어떻게 벗어날 도리가 없는 억압의 굴레와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느님께서 개입하신다는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하느님 말씀을 거슬렀던 이들에게 이 상황은 두려움이며, 하느님 말씀을 충실히 따랐던 이들에게는 위로와 희망입니다. 믿음 안에서 마지막 날을 잘 준비한 이들은 이 마지막 날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희망하며 기다립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종말의 날을 전혀 다른 두 가지 말로 표현하십니다. ‘징벌의 날’과 ‘속량의 날’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이들은 심판과 벌을 받을 것이고, 주님을 믿고 회개한 이들은 구원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의 요한 묵시록도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다다랐을 때, 악을 상징하는 바빌론은 파괴될 것이고, 하늘에 있는 무리들은 승리에 기뻐하며 하느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 마지막 날은 주님을 믿고 따르던 사람들에게는 삶의 완성과 구원의 날, 그러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파괴와 징벌의 날이 됩니다.

개인적 차원에서 본다면, 개인 역사의 끝은 죽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하여 달려가는 존재입니다. 죽음이 누구에게는 조금 이르게 올 수도, 누구에게는 조금 늦게 올 수도 있지만, 모든 이가 받아들여야 할 순간입니다. 

죽음으로 맞는 마지막 날이 나에게 두려움이 아닌 희망이 되도록 잘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며 산다면 그날은 기쁨과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무엇 앞에 그리고 누구 앞에 있을 것인가

“그곳이 황폐해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라. 그때가 바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징벌의 날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제 미사 강론 중에 종말이 닥치면 어떻게 받아들일지 여쭈었을 때 한 분이 당신은 생명의 시작으로 받아들인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분이 그렇게 답하면 지극히 교리적인 답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제가 아는 그분은 실제로 그렇게 받아들이셨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죽음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기 전의 그분은 얼굴이 어둡고, 고통과 죽음 앞에 있었으며 두려움도 있었지만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난 뒤에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기 전에는 하느님 앞에도 있다가 고통과 죽음 앞에 있다가 했는데 신앙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난 뒤에는 온전히 하느님 앞에 있고 생명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징벌의 날에 관해 얘기합니다. 그리고 속량의 날에 관해서도 얘기합니다. 어떤 사람은 징벌의 날에 징벌을 받지만 어떤 사람은 징벌의 날에 속량을 받습니다. 징벌 앞에 있는 사람은 징벌을 받지만 회개하여 하느님 안에 있는 사람은 속량을 받습니다.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친” 자는 징벌을 받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도 하느님 안에서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든” 자는 속량을 받습니다.

무엇 앞에 있을 것인가?
누구 앞에 있을 것인가?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그리스도의 오심

우리는 지금 <전례시기>의 막바지에 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마지막 날’에 벌어질 무시무시한 표징들을 듣습니다. 곧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예고’와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에 대한 표징들입니다. 

이는 ‘종말’, 곧 ‘구원’은 올 것이라는 사실과 하느님께서 그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그때에 그 어떤 시련을 당하더라도 절망하지 말라는 희망의 메시지로, 그리스도께서 오실 길을 준비하도록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카 21,28)

이는 ‘종말’ 그날이 우주의 파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생활이 새롭게 창조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곧 그날의 대재앙은 단순히 미래를 앗아가는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를 “속량”하신다는 것을 통해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그래서 떼이야르 드 샤르뎅은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의 종말은 집단적 죽음이나 멸망, 결별이 아니라, 하나의 변형이 될 것입니다. 곧 인간의 종말은 분열과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와 새로운 탄생이 될 것입니다. 

곧 대재앙이 아니라, 정신적 역전이 될 것입니다. 정신은 역전하고 다른 영역으로 들어갈 것이며, 세계는 순간적으로 변모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 안에서의 희열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종말론적인 표현들을 미래의 세상 종말에 대한 지식을 전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삶에 대한 태도를 말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종말론적인 표징들은 우주론적인 표현이라기보다 신학적인 표현으로 알아들어야 할 일입니다. 

사실, 그분은 먼 미래에 오시는 분이 아니라, 이미 오셨고, 세상은 이미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완성의 때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그분을 맞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헨리 나웬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님은 오십니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 내년이 아니라 올해, 우리의 비참함이 다 지나가고 난 뒤에가 아니라 그 비참함 한가운데로,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이곳으로 주님은 오십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우리의 삶 안에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통하여 들어옵니다. 곧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질 때, 그 십자가에서 하느님의 영광과 완성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때”에 결정적으로는 드러날 것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21,28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주님!
새롭게 하소서.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게 하소서.

변형되게 하소서. 
당신의 속량을 입게 하소서.

제 삶이 역전되고 
당신 승리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왜 예언은 모호하게 쓰였을까?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미래 세계에서 프리 크라임이라는 혁신적인 범죄 예방 시스템을 채택했다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이 시스템은 살인이 일어나기 전에 예측할 수 있는 프리코그(Precogs)로 알려진 세 명의 심령술사의 능력에 의존합니다. 가끔 헤로인에 찌든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예지능력을 지닌다고 합니다. 그들의 비전을 통해 경찰은 범죄가 발생하기 전에 잠재적 범죄자를 체포하여 도시에서 살인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습니다. 

프리 크라임 경찰 반장인 앤더튼은 이 시스템을 확고히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예언에 따르면 그가 36시간 이내에 살인을 저지를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충격을 받고 자신이 왜 누군가를 죽이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앤더튼은 도망자가 되어 진실을 밝히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로 결심합니다.

자신이 속한 프리 크라임 팀의 체포를 피하면서 앤더튼은 시스템의 무오류성에 대한 답을 찾습니다. 그는 프리 크라임의 창시자인 이리스 박사로부터 시스템이 때때로 지배적인 예측과 다른 결과를 내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생성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실 앤더튼도 그러한 오류를 발견함으로써 모함을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사실 인권의 보호를 위해 더 많은 범죄자를 감옥에 집어넣는 것보다는 한 사람의 무고한 죄인이 벌을 받게 해서는 안 된다는 법칙이 적용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프리 크라임 팀은 이 오류를 깊이 숨기고 있었고 그 책임자인 버제스에 의해 그 사실을 알게 된 앤더튼이 제거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앤더튼은 자유 의지로 예언되어 있던 살인을 하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요나에 의해 한 달 뒤 멸망하기로 되어 있던 니네베가 멸망하지 않게 된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의 마지막을 굳이 알려고 하지 말라고 하시며 그 정확한 시간은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하십니다. 만약 예언이 명확하면 그것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는 이들이 생깁니다. 버제스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어디나 시한부 종말론을 내세워 사람들의 재산 등을 가로챘던 사이비 교주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왜 예언은 모호한가?’를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멸망을 말씀하시다가 마지막 세상의 종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모든 예언이 이런 식입니다. 어떤 채널에 보니 ‘구약성경은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한 적이 없다’라는 제목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중에 한 지구 멸망의 이야기는 예언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예를 들어 구약에 이사야 7,14에는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인데 그 이름이 ‘임마누엘’이 될 것이라 합니다. 미카 예언서 5,1에서는 그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이라 예언합니다. 이 예언은 분명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이전 수백 년 전에 쓰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예언은 모두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할 위기에 처한 남 유다에 새로운 희망을 주는 말씀 안에서 나온 예언들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그리스도의 탄생 이야기는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언이 악한 이들에게 명확한 사실로 인지된다면 그들은 그것을 이용해 많은 이들을 미혹하게 될 것입니다. 악한 이들은 아무리 좋은 것도 악용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이 예언이 온전하게 해석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착한 뜻을 가진 이들에게는 교회나 성령 충만한 이들의 해석에 의해 도움을 받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이사야 예언자를 악인들 가운데 보내며 이렇게 예언하라고 하십니다. 

“너는 가서 저 백성에게 말하여라. ‘너희는 듣고 또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마라. 너희는 보고 또 보아라. 그러나 깨치지는 마라.’ 너는 저 백성의 마음을 무디게 하고 그 귀를 어둡게 하며 그 눈을 들어붙게 하여라.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치유되는 일이 없게 하여라.”(이사 6,9-10)

악인들이 예언을 듣고 깨치면 큰일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헤로데를 방문했을 때 헤로데는 예언을 통해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이렇게 도움을 받았지만, 헤로데는 그 지식으로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이처럼 교회도 예언을 악인들에게 해석해 주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언제 세상이 멸망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그 명확한 표징을 말씀해주십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이방인들의 시대가 있을 것이고 그 시대가 다 찰 때가 올 것이란 예언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같은 예언을 하였습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신비를 알아 스스로 슬기롭다고 여기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 신비는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일부가 마음이 완고해진 상태는 다른 민족들의 수가 다 찰 때까지 이어지고 그다음에는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로마 11,25-26)

현재 이스라엘은 재건되고 있습니다. 아랍 민족들이 다 들고일어나도 지금의 이스라엘을 어찌할 힘이 없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들이 무엇이든 거의 휩쓸다시피 한다는 것은 우리가 다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 그들이 아직 그리스도께 완벽히 회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무서운 징조도 아직은 없습니다. 그때가 되면 정말 완벽한 마지막일 것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준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준비는 언제나 ‘회개’에 있습니다. 니네베 사람들은 회개하여 살았습니다. 회개는 에덴동산에서처럼 십일조를 봉헌하고 선교로 하느님 백성을 탄생시키는 본래의 일로 회귀하는 일입니다. 그 일을 하는 이들에겐 마지막이 마지막이 아닌 희망이 날이 됩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카 21,28)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많은 사람이 메밀을 좋아합니다. 메밀에는 다양한 영양소와 생리활성 물질이 들어 있어 건강에 이로운 음식이라고 하지요. 고혈압 예방, 성인병 예방, 혈관 건강, 혈당 조절, 변비 해소, 이뇨작용 등 장점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래서 메밀국수, 막국수, 메밀묵, 메밀전병, 메밀전 등의 음식이 유명합니다. 또 예쁜 메밀꽃도 좋아합니다. 
 
구전에 따르면 메밀은 고려 말 중국 원나라의 지배를 받을 때, 제주도에 들어왔습니다. 당시만 해도 메밀은 소화도 안 되고 독성이 있는 작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실제로 살리실아민이라는 독성 물질이 있습니다. 원나라는 제주도 남자들의 씨를 말리기 위해서 제주 전역에 메밀을 심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선조의 지혜는 이를 오히려 약으로 바꾸었습니다. 무와 함께 먹으면 간단히 중화된다는 것을 알고, 무를 메밀밭 옆에 심었고 또 메밀을 무와 함께 먹었습니다. 독을 이 나라에 뿌렸지만, 반대로 고마운 약이 된 것입니다. 
 
원나라의 지배를 받고 또 독성이 있는 메밀이 산천에 심었을 때, 가장 안 좋은 상황처럼 느꼈을 것입니다. 이때 만약에 그냥 좌절해서 포기했다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이겨내려는 마음에서 최악의 상황을 최선의 상황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삶 안에서도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통과 시련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이라면서 그냥 절망하면서 포기해야 할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변화도 가져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이 또 다른 기회라고 여기면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고통과 시련이 오히려 기쁨과 행복의 순간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 마지막 때를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될 때라고 하시면서 이때가 바로 징벌의 날이라고 하시지요. 모든 민족들에게 끌려가고, 짓밟힐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순간 예수님 말씀처럼 ‘불행하여라’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절망의 순간만을 말씀하시는 것 같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언제나 오늘이 마지막인 날인 것처럼 주님께서 오심을 꾸준한 기도 그리고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의 삶으로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새로운 시간 속에서 새로운 마음을 담아야 한다.

- 아우구스티누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가까워진 속량의 손길을 뿌리칠 수 없습니다.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 주님의 십자가를 맞이합니다. 속량이 필요한 우리 존재의 참모습입니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를 풀어주는 속량에서 배웁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계절이 멈추어 있지 않듯이 삶의 시간도 멈추어 있지 않습니다. 모든 삶의 여정을 소중히 여기시는 예수님을 향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삶의 존재방식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다시금 십자가에서 만납니다. 예수님의 인격 안에서 온전히 만나는 참된 속량이며 구원입니다. 우리 존재의 실상을 알기에 기도와 회개로 하느님께 나아갑니다.

절실한 실상이 거짓의 허상을 보게 합니다. 속량이 지나간 자리에 있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 믿음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바라보는 은총의 새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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