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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10/12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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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권능 안에 있어, 당신 뜻을 거스를 자 없나이다. 당신이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을 만드셨으니, 당신은 만물의 주님이시옵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 공로와 소망보다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양심의 가책을 받은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감히 청하지 못하는 은혜도 내려 주소서.

2024년 10월 12일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0월 12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0월 1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갈라 3,22-29)
    여러분은 모두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1,27-28)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는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 오늘 말씀 카드
    (시편 105,3)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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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 3,22-29
오늘 제1독서

 

여러분은 모두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22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이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갇혀, 믿음이 계시될 때까지 율법의 감시를 받아 왔습니다. 

24 
그리하여 율법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25 
그러나 믿음이 온 뒤로 우리는 더 이상 감시자 아래 있지 않습니다. 

26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27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28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29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입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하느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은 행복하여라.

 

 

루카 11,27-28
오늘 복음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는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7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2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0월 12일
오세찬 스테파노 신부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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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 팔로티회 : 미사(15:00) 후 성시간(16:00)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아직도 감시가 필요한 미성년자

바오로 사도는 믿음이 오기 전에 율법이 “감시자” 노릇을 하였다고 말합니다(갈라 3,24 참조). 『200주년 신약 성서』에서는 같은 단어를 “후견인”으로 옮깁니다. ‘파이다고고스’라는 이 그리스 말 낱말은 어원적으로는 ‘파이스’ 곧 아이에게, ‘아고고스’ 곧 길을 안내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상류층의 사람들이 믿을 만한 종에게 아이의 생활을 돌보고 가르치는 일을 맡겼고, 그 일을 하던 사람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이들은 교사 또는 스승과는 달랐으며, 어느 정도 나이가 될 때까지 바른 생활을 가르치며 훈육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어린 아들은 종보다 신분이 높지만 감시자인 종에게 교육을 받습니다. 성인이 되었을 때 자유인으로서 올바로 살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는 종인 감시자에게 매여 있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이 있었던 것도, 우리에게 율법이 절대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3,24) 준비가 필요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 나온 낱말들로 표현하여 본다면, 율법은 한편으로는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여 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약속”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에서 해방되어야 하는지를 알게 하면서 거기에서 벗어나게 되리라는 약속도 주었던 것입니다.

어린아이였던 우리가 성인이 되었을 때, 참으로 성숙해졌다면 우리에게는 감시자가 필요하지 않아야 합니다. 제멋대로가 아니라, 감시자가 없어도 자유를 사용하여 사랑으로 서로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5,13 참조). 거기에 이르지 못하였다면 그것은 아직도 감시가 필요한 미성년자라는 뜻일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오히려 더 행복한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결혼생활을 몇십 년 하고도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다. 하고 말할 수 있다면 그 결혼생활은 행복하고 성공한 결혼생활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데 이런 부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하겠냐는 물음에 대부분이 특히 여성들은 선택하지 않겠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자식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부모 특히 엄마들은 다시 태어나도 다른 유명한 이가 아니라 자기 자식을 사랑할 거라고 얘기할 것입니다. 어쨌거나 행복한 부부관계와 부모 자식 관계는 자신들에게도 행복이고 보는 이들에게도 아름답고 귀감이 되지만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제가 가끔 곤란한 질문을 어머니들께 드립니다. 죽어 천국에 갔을 때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는 것과 다시 지금 내 아들의 어머니 되는 것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왜 이런 곤란한 질문을 드리냐 하면 오늘 복음의 여인은 예수님의 어머니가 행복하다고 하며 부러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도 다시 진지하게 질문을 드립니다. 지금 내 아들과 딸의 엄마와 아버지가 되는 것 대신, 주님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될 수 있다면 되시겠는지. 이렇게 질문에 많은 분이 되물으실 겁니다. 꼭 그렇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지? 주님의 어머니도 되고 지금 내 아들의 어머니도 될 수는 없는 것인지?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과 저세상을 동시에 소유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 불가한 이유를 여러 곳에서 말씀하셨지요.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는 부자 청년에게는 이 세상 모든 것을 팔 것을 요구하셨고, 주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가진 모든 것과 부모와 형제와 자녀마저 버리라 하셨고, 그리고 하느님 나라에서는 이 세상에서처럼 시집 장가가는 일이 없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원칙적으로는 그렇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그리고 이보다 먼저 어머니와 형제들이 당신을 찾아오셨을 때도 “내 어머니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라고 하셨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비록 지금 육신으로는 내 아들의 어머니지만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천하면 영적으로 주님의 어머니가 되고, 육신의 어머니보다도 더 행복할 수 있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오히려 더 행복한 사람들이 우리는 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아들과 딸로도 나는 행복하고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 사는 동안입니다. 우리는 어차피 두고 떠나야 하고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합니다. 

저는 저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를 돌려드렸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저를 떠나신 것 같지만 실은 돌아가신 겁니다. 그런데 하느님께 돌아가셔야 할 분을 제 어머니라고 붙잡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저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이셨겠지요. 저를 놓지 못하셨다면 어떻게 하느님께 돌아가실 수 있으셨겠습니까? 

천상병 시인의 시구처럼 우리 인생은 이 세상 소풍을 왔다가 하늘로 돌아가는 인생이고, 우리는 같이 소풍을 즐기다가 더 즐거운 하늘로 돌아갈 인생들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어떤 행복이 참된 행복일까요?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의 ‘행복선언’을 들려줍니다. 오늘 <복음>의 앞부분(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마귀의 두목 베엘제불의 힘을 빌어 마귀를 쫓아내고 있다고 모욕하는 자들을 권위 있는 말씀으로 제압하셨습니다. 그러자 군중 속에서 한 여인이 너무도 감동을 받아 탄성을 올립니다. 

“당신을 낳아서 젖을 먹인 여인은 얼마나 행복합니까!”(루카 11,27) 

그러자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8)

여기서, 여인의 행복선언과 예수님의 행복선언은 사뭇 다릅니다. 이처럼, 모두 ‘행복’을 찾지만, 각자가 찾는 행복이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행복이 참된 행복일까요?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보낸 찬사를 떠올려봅니다.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복되십니다.”(루카 1,45)

아우구스티노 역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마리아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을 잉태한 것보다, 그리스도를 믿었던 점에 있어서 더욱 복됩니다.’ 

그렇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으셨습니다. 하여,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허용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승복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믿고 지키고 실행한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을 믿고 지키면 발생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믿을 때 우리에게서 발생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경청한 바를 믿는 일’, 그리고 ‘믿는 바를 지키고 실행하는 일’ 입니다.

‘말씀을 경청하는 일’, 그것을 우리는 성모님에게서 배웁니다. 그것은 먼저 “믿는” 일입니다. 말씀보다 앞서 ‘말씀하시는 분을 믿는 일’입니다. 그래서 비록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하더라도 ‘그분을 믿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베네딕도의 [규칙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들어라. 아들아, ~마음의 귀를 기울이고 .~기꺼이 받아들여 보람 있게 채움으로써 ~순명의 노고로 되돌아가라”

이는 ‘귀담아 듣는 것, 마음의 귀로 듣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우리가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것은 들려주는 대로 듣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듣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듣는다는 것은 ‘마음의 귀로 듣는 일’, 곧 ‘말씀하시는 분의 마음에 주파수를 맞추는 일’, ‘마음의 귀를 경작하여 사랑과 믿음으로 듣는 일’입니다. 

그것은 ‘먼저 사랑하고 믿는 일’, 말씀보다 앞서 ‘말씀하시는 분을 사랑하고 믿는 일’입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받아들여지면, 그 믿음의 능력으로 말씀이 성취되고 실현될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진정 참된 행복을 바란다면,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들은 바를 사랑과 믿음으로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곧 ‘주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일’입니다. 그러면 행복할 것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1,28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주님!
들은 말씀을 
잉태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으로 잉태하게 하소서.

하여, 말씀을 품은 
감실이 되게 하소서.

또한, 품은 말씀을 
지키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말씀을 알아듣지 못할 때도 
사랑으로 지키게 하소서.

또한, 말씀을 
경작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다름 아닌, 
당신의 희망이 이루어지도록 
경작하게 하소서.

주님, 오늘 저를 경작하여 
당신 말씀을 이루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상속 문제로 형제가 서로 원수지간이 되는 경우가 꽤 있는 것 같습니다. 형제들 간의 재산 문제를 중재해달라고 요청하시는 분도 있었고, 상속 다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냐면서 방법을 가르쳐달라는 분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사제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더군요. 실제로 가족을 만난 적도 있지만, 첨예한 갈등으로 인해 서로 원수가 되고 맙니다. 이런 갈등이 생각납니다. 
 
큰아들이 제사를 지내줄 것이라면서 전 재산을 큰아들에게만 물려준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은 부모님께서 돌아가셨을 때까지 모셨던 사람은 큰아들이 아니라 막내아들이었는데, 막내아들에게는 어떤 재산도 남기지 않으신 것입니다. 
 
형제들은 공평한 재산 분배를 요구했지만, 큰아들은 부모님의 유언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재판까지 가게 되었고, 재판 이후 형제들은 서로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신 보지 말자고 선언했고, 실제로 재판 이후 만난 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상대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만나지 않는 것입니다. 피로 맺어진 혈연관계인데도 말입니다. 이렇게 서로에게 체념한 상태에서 열정을 간직할 수 있을까요? 깊은 슬픔만 그 자리에 남게 됩니다. 재산이, 물질적인 재화가 과연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할까요? 사랑이 사라지고, 체념 속에서 슬픔을 간직하면서 이 세상을 힘차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사람 중에서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을 행복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성모님의 행복이 과연 예수님을 낳고 젖을 먹인 것에서 온 것일까요? 피로 맺어진 혈연관계만으로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혈연관계만으로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성모님의 행복도 예수님을 낳고 키운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켰기 때문에 행복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행복을 어디에서 찾고 있는지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지금 많은 것을 가지고 높은 지위를 누리고 있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또 세속적으로 성공한 부모를 두었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녀가 세속적인 성공을 했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면서 참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 때 이루어집니다. 세상의 기준만을 내세우다가는 큰 슬픔 속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 기준을 따르면 분명한 기쁨을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새로운 시간 속에서 새로운 마음을 담아야 한다.

- 아우구스티누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시월의 가을 꽃길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하느님의 말씀 하나로 행복할 수 있는 우리들 마음입니다. 행복은 분명히 있습니다. 행복의 출발점은 우리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말씀에 있습니다. 사람의 행복은 말씀을 듣고 지키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삶을 지키는 것은 말씀입니다. 

지킨다는 것은 정성을 다하여 나눈다는 것입니다. 행복은 말씀과 함께 살아갑니다. 행복은 실천의 길로 우리를 이끕니다. 행복은 기도와 깨끗한 행위로 이어집니다. 말씀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모두가 형제이며 모두가 어머니입니다. 

매 순간을 가장 소중한 순간으로 만들어주는 올바른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하느님께서 주신 행복의 시간입니다. 행복의 시간은 말씀을 듣고 지키며 모든 사람들을 이롭게 합니다. 듣는 행복과 지키는 행복이 하느님의 말씀에 있음을 되새기는 행복한 가을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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