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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10/09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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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권능 안에 있어, 당신 뜻을 거스를 자 없나이다. 당신이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을 만드셨으니, 당신은 만물의 주님이시옵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 공로와 소망보다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양심의 가책을 받은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감히 청하지 못하는 은혜도 내려 주소서.

2024년 10월 9일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0월 9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0월 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갈라 2,1-2.7-14)
    그들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을 인정하였습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1,1-4)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 오늘 말씀 카드
    (루카 11,2)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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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 2,1-2.7-14
오늘 제1독서

 

그들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을 인정하였습니다.

형제 여러분, 


십사 년 뒤에 나는 바르나바와 함께 티토도 데리고 예루살렘에 다시 올라갔습니다. 


나는 계시를 받고 그리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내가 다른 민족들에게 선포하는 복음을 그곳 주요 인사들에게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전에 한 일이 허사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베드로가 할례 받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듯이, 내가 할례 받지 않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할례 받은 이들을 위하여 베드로에게 사도직을 수행하게 해 주신 분께서, 나에게도 다른 민족들을 위한 사도직을 수행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기둥으로 여겨지는 야고보와 케파와 요한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을 인정하고, 친교의 표시로 나와 바르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가고 그들은 할례 받은 이들에게 가기로 하였습니다. 

10 
다만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기로 하였고, 나는 바로 그 일을 열심히 해 왔습니다. 

11 
그런데 케파가 안티오키아에 왔을 때 나는 그를 정면으로 반대하였습니다. 그가 단죄받을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12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오기 전에는 다른 민족들과 함께 음식을 먹더니, 그들이 오자 할례 받은 자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몸을 사리며 다른 민족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13 
나머지 유다인들도 그와 함께 위선을 저지르고, 바르나바까지도 그들과 함께 위선에 빠졌습니다. 

14 
그러나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에 따라 올바른 길을 걷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케파에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유다인이면서도 유다인으로 살지 않고 이민족처럼 살면서, 어떻게 이민족들에게는 유다인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우리는 성령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네.

 

 

루카 11,1-4
오늘 복음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0월 9일
오세찬 스테파노 신부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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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 팔로티회 : 미사(15:00) 후 성시간(16:00)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날마다 바치다 보니 쉽게 느껴지는, 아직도 배워야 할 기도

제자들이 이미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를 청하였고, 예수님께서 주님의 기도를 알려 주셨는데, 우리는 지금도 기도하는 법을 묻습니다. 어쩌면 주님의 기도를 아직 다 배우지 못하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진심으로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친밀함이 있어야 하고, 또한 그분을 아버지로 부르는 모든 이를 형제로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드러나고 아버지의 나라가 오기를 기도하려면, 먼저 내 안에서부터 그 나라를 가로막는 모든 요소를 없애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보다 내가 바라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은, 때로 우리에게 작은 겟세마니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루카 11,2)라고 기도한다는 것은 그 나라가 오도록 내가 십자가를 져야 할 때에도 아버지의 나라를 바란다는 것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아버지의 나라가 오기를 바란다면,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날마다 (“저에게”가 아니라) “저희에게”(11,3) 양식을 주시기를 청한다면 오늘 양식이 없는 이에게 양식을 마련하여 주어야 하고. 우리에게 하루하루의 양식을 주시는 분이 아버지이심을 믿고 내일을 맡겨 드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용서되기를 바란다면 우리에게 잘못한 “모든 이”(11,4)를 용서하여야 합니다. 우리 형제의 죄는 하느님께만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용서받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한다면 자신이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싸워야 합니다. 

날마다 바치다 보니 쉽게 느껴지는 이 기도는 아직도 배워야 할 기도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느님 앞에? 사람들 앞에?

오늘 갈라티아서는 베드로와 바오로가 복음 선포에 있어서 역할 분담하게 된 과정을 전하면서 그것은 자기들이 역할 분담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위임해 주신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베드로가 할례받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듯이, 나는 할례받지 않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다.” 

참으로 아름답고 위대한 모범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초대교회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발전해나갔습니다. 그런데 앞부분에서는 이렇게 아름답고 위대한 모범을 전하면서 뒷부분에서는 그 반대의 모습도 있었음을 바오로는 전합니다. 

할례받은 유대인들이 왔을 때 베드로가 “할례받은 자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몸을 사리며 다른 민족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였다.”라고 전합니다. 이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는 두 가지를 봅니다. 하느님 앞에 있음과 사람들 앞에 있음. 하느님 앞에 있을 때는 당당할 수 있었는데 사람들 앞에 있게 되자 눈치 보고 비위 맞추려 하고 심지어 두려워합니다. 

당연합니다. 하느님 앞에 있으면 하느님만 보기에 눈치나 비위 맞추기는 하지 않고, 사람들 앞에 있으면 사람들 눈치 보지 않을 수 없고 비위 맞추지 않을 수 없지요. 그렇습니다. 하느님 앞에 있지 않고 사람 앞에 있으면 첫째 눈치를 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눈치는 있어야지만 눈치를 봐서는 안 됩니다. 눈치가 있다는 것은 너의 필요를 읽는 눈이 내게 있는 것이며 일종의 사랑이랄까 감각이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눈치를 본다는 것은 상대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며 결코 사랑이 아니고 오히려 두려움에 가깝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눈치 보는 것은 비위 맞추기보다는 소극적인 것입니다. 비위 맞추기는 눈치 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상대방의 입맛에 맞추는 대응을 하는 것이며 그러다가 아첨도 아부도 아양도 하게 됩니다. 

그제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다른 복음을 전하는 갈라티아 신자들을 나무라며 이렇게 심한 말을 하지요. 하느님의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런데 오늘 바오로가 비난하는 베드로는 더 초라한 모습을 보입니다. 할례받은 유대인들이 나타나자 두려워 이방인들과의 만남을 피합니다. 이것은 지난주일 독서의 기도에서 그레고리오 교황의 사목 지침을 떠올립니다. 

여기서 교황은 “목자는 침묵을 지킴으로써 분별력 있는 자가 되어야 하고, 말해 줌으로써 유익을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지침을 주면서 “목자가 바른말 하기를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자기 침묵으로써 원수에게서 도망치는 게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라고 일갈을 합니다. 

그런데 주님 교회의 반석이요 으뜸 사도인 베드로가 우리와 비슷하게, 초라한 모습을 보이며 바오로 사도에게 지적을 따끔하게 받는 겁니다. 주님은 안 보고 풍랑을 보다가 두려움 때문에 물에 빠졌던 사도 베드로가 다시 하느님 앞에 있지 않고 사람들 앞에 있음으로 두려움에 빠진 겁니다. 

베드로 사도도 이러하니 의식하지 않으면 우리는 더더욱 주님 앞에 있지 않고 사람들 앞에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의식하지 않으면! 
정신 차리지 않으면!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올바르게 사는 것은 올바른 기도에 달려 있다.

‘기도’는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는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기도를 “욕망의 해석자”라고 표현했습니다. 

그의 기도를 보면, 그 사람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고,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십계명’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며,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주님의 기도’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가장 완전한 기도이다.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올바르게 바랄 수 있는 것을 모두 청할 뿐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청해야 할 것을 순서대로 청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기도는 청해야 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줄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정서까지도 형성시켜준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드림으로써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를 알고, 욕망을 훈련시켜 하느님의 목적과 조화를 향하도록 변화한다.”

그렇습니다. ‘기도’를 보면, 그 사람이 보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이 기도에 담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기도 안에는 그 사람이 담겨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기도”에는 예수님이 담겨 있습니다. 곧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당신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 담기기를 바라시는 것들이 무엇인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 이 기도문에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자 하셨던 것들이 수정처럼 농축되어 있습니다. 이 기도문은 비록 짧지만, 그리스도교 신학과 신앙의 근본과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참으로 복음 전체를 요약한 것이다.”

진정, “이 기도”는 ‘주님께서 직접 가르쳐준 기도’로서, ‘예수님의 기도’라는 사실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기도를 드릴 때,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께 기도드리게 됩니다. 그러니 이 기도의 배후에는 언제나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 ‘동행’ 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드님을 통하여, 비로소 ‘아빠, 아버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처럼, 이 기도는 우리에게 ‘아빠, 아버지’를 선사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느님의 아들이 되게 합니다. 곧 성자의 반열에 들게 하고 하느님이 되게 합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놀라운, 고귀한 기도인지요? 그러니 올바르게 사는 것은 올바른 기도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1,4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주님!
유혹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게 하소서.

없애려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속에서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는 
당신의 사랑을 볼 수 있게 하소서!.

스스로 구원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구원자이신 
당신께 의탁하게 하소서. 

그 속에서 제 마음을 드리게 하시고 
당신께 속한 자로 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세일즈 하듯 기도하라.

한 수도자가 산에 올랐다가 그만 길을 잃었는데, 사람이 살지 않을 듯한 깊은 산중에서 다행히 인가를 찾아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의 주인이 하는 기도를 듣고, 수도승은 그만 어처구니가 없어졌습니다. 

“신이시여, 어제도 저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혹시 등이 가렵거나 허리가 아프시진 않은가요. 그럼 제가 등도 긁어드리고 허리도 만져드릴 수 있을 텐데. 혼자 하기는 힘든 일이잖아요. 혹은 발을 씻겨드리면 참 좋을 테고요….”

수도승은 그만 더 참지 못하고 기도를 멈추게 했습니다.

“이봐요, 잠깐. 날 살려준 건 감사하지만, 하느님께서 등이 가렵거나 허리가 아프다고요? 대체 어떻게 그런 무례한 언사를 한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기도서를 주며 기도하는 자세와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이튿날 수도승은 그 집을 떠나왔습니다. 다행히 길을 찾아든 수도승이 산을 거의 내려온 찰나, 그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대는 이제, 내게서 가장 가까운 이마저도 멀어지게 만들었구나!”

기도는 하느님께 무언가 청하고 얻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주님께서 주시려던 은총도 얻지 못하게 됩니다. 기도는 마치 세일즈 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넥타이를 사려고 넥타이 판매대로 갔는데 점원이 와서는 “무얼 찾으세요?”라고 물으면 어떨까요? 당연히 넥타이에 관심이 있으니 그리로 오지 않았겠습니까? 벌써 그 사람은 ‘이 가게는 손님에겐 관심이 없구먼!’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여러 넥타이를 들었다 놓았는데 파란색 넥타이를 가장 오래 집고 있었다면 뭐라 해야 할까요? “파란색의 다른 상품들을 제가 찾아볼까요?”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노란색 넥타이를 손에 감으며 예쁘죠?”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파란색을 원해요.”라고 할 때 “우리는 그런 재고가 없고, 요즘 누가 파란색 넥타이를 합니까? 그건 유행이 지났어요!”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상품을 사러 온 사람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냥 나가려고 할 때 관심도 없는데 쓸데없이 멜빵을 보여주며 “이건 관심 없으세요?”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그 가게는 절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손님은 가게 점원이 무엇을 원하는지 압니다. 바로 판매로 돈을 벌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것만 주장하면 사려고 하는 사람은 기분이 나쁩니다. 사려는 사람도 무언가 얻는 게 있어야 합니다. 바로 영광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께서 영광스럽게 되기를 청하는 기도입니다. 당신이 아버지라 불리고 당신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당신 나라가 임하고 당신 뜻이 이루어지며 당신이 매일 양식을 주시는 분이시고 당신 때문에 이웃을 용서할 수 있으며 당신 때문에 죄를 짓지 않게 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얼마 전에는 반려견을 계속 데려오며 병이 낫게 안수해 달라고 청하는 자매가 있었습니다. 사람에게 안수하고 있는데 개에게 또 안수하려니 좀 그랬습니다. 물론 반려견에 너무 의지하고 있기에 강아지가 나으면 좋은 일이라 몇 번은 해 드렸습니다. 

그러나 매일 그러는 건 좀 그래서 이제 마지막이라고 했더니, “개가 나으면 50만 원 드리려고 했는데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개에게 안수하여 돈 버는 사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어떻게 은총을 얻어낼 수 있을까요? 주님의 기도를 의미를 음미하며 정성껏 바치면 우리의 자세가 주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게 되어서 많은 은총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미국 시카코에서 태어난 ‘워너 솔맨’(Warner Sallman: 1892–1968)은 미국이 자랑하는 화가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얼굴”이라는 유명한 예수님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담긴 그의 그림책은 1940년도에 500만 부 이상이 인쇄되었고, 오늘날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가 있었는데 1917년 결혼하고 얼마 안 된 젊은 나이에 중병에 걸렸습니다. 의사가 “당신은 임파선 결핵입니다.”라고 진단하고 “당신은 길어야 석 달 살 것입니다.”라고 통지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솔맨의 마음은 절망적으로 되었습니다. 유명한 가수였던 그의 아내는 그때 임신 중이었으므로, 솔맨은 아내에게 더욱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었고, 곧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면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괴로웠습니다. 그가 몹시 괴로워하며 매일같이 절망에 빠져 신음하고 있을 때, 그의 아내가 그를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여보! 3개월밖에 못 산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3개월을 허락해 주셨다고 생각하고 감사하며 살아갑시다. 그리고 아무도 원망하지 맙시다. 3개월이 얼맙니까? 천금 같은 그 기간을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 봅시다. 3개월이나 되는 기간을 살게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솔맨은 아내의 말을 곰곰이 생각한 끝에 더 이상 원망과 불평의 말을 하지 않고, 아내의 말대로 남은 3개월 동안 오직 감사하며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아주 작은 일부터 감사를 시작하면서 모든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애에 마지막 작품이라 생각하고, 예수님의 얼굴을 그렸는데 그에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3개월이 지났는데도 몸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몸이 더 건강해져서 병원에 가서 다시 진단해 보았더니, 임파선 결핵이 깨끗하게 사라진 것입니다. 

기도는 무언가를 하느님께 청하는 것입니다. 청하는데 나의 것만을 청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나의 청을 들어주면 그분이 무엇이 좋은 건지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청을 들어주되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청을 들어주기 때문입니다. 

강요하듯 물건을 파는 것에만 집중하지 말고 전문 세일즈맨처럼 그 물건을 사면 손님에게 무엇이 좋은지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장사가 저절로 잘 될 것입니다. 은총도 그렇게 끊임없이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주님의 기도

지금으로부터 한 15년 전 일 것입니다. 수학능력 평가를 마친 본당의 고3 수험생들을 데리고 강화도로 1박2일 여행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험을 보느라 수고한 아이들에게 쉼의 시간을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낮에는 강화도의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저녁에 펜션으로 가서 저녁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아이들이 알아서 할 일을 분담했습니다. 야채 씻고 다듬는 조, 고기 굽는 조, 밥을 하는 조 등으로 나눴습니다. 그런데 밥하는 조가 걱정되었습니다. ‘밥을 해 본 적이 있을까?’라는 걱정입니다. 아이들이 밥 조의 아이들은 못 하는 것이 없다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더군다나 전기밥솥인데 못하겠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고기를 함께 구워 먹다가 ‘뻥’하는 큰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전기밥솥의 뚜껑이 날아갔습니다. 밥을 할 줄 몰랐던 아이들은 사람이 많다고 쌀을 밥솥 맨 위까지 가득 넣은 것입니다. 주방에는 여기저기로 튄 밥알로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잘할 것이라고 말한 아이에게 “밥 잘할 거라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말합니다. 
 
“저 친구들이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또 잘 놀아요.” 
 
다 잘하는 친구였습니다. 뭐든 다 잘하니까 밥도 잘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경험이 없다면 잘할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너무 바쁘고 할 일이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언젠가 시간이 여유로워지면 그때는 신앙생활을 아주 열심히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가능할까요? 저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진정한 경험 없이 잘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여러 예언자나 율법 교사처럼 예수님에게서 멋진 기도 방법을 배우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제자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럴듯하게 보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특별하고 화려한 기도를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가 지금도 바치고 있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어떤 처지에서도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고, 단순한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기도는 특별한 것이 아님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기도란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라고 하지요. 대화를 나누는데, 특별한 장소에서만 할까요? 또 특별한 시간에만 할까요? 바쁘고 여유가 없을 때는 대화하지 않나요?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주님과 계속적인 만남의 경험이 축적되지 않는다면, 주님과의 좋은 관계는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의 명언

돈이란 써야 돈값을 한다. 쓰지 않는 돈을 모아서 무엇에 쓰려는가.

- 백선행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 삶에 가장 든든한 기도인 주님의 기도를 예수님께서는 자상하게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 인생을 깨우며 오늘을 기쁘게 살게하는 가장 건강한 기도인 주님의 기도를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삶을 지탱하는 것은 분명 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먼저 아버지 하느님을 찾고 아버지 하느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우리에게 오늘을 내어주시고 기꺼이 용서를 건네시는 분이십니다. 

기도가 무너지면 삶이 무너집니다. 기도를 놓치지 않는 기도의 자녀이길 간절히 바라십니다. 주님의 기도는 용서하시는 아버지 하느님과 하나되는 일치의 기도입니다.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실천하며 바른 삶을 사는 것이 삶을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의 삶은 다름 아닌 기도로 다듬어집니다. 주님의 기도를 사랑하고 실행하는 것은 삶을 받아들이고 삶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는 가장 좋은 사랑의 베풂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기도를 드리는 새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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