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모든 것이 당신의 권능 안에 있어, 당신 뜻을 거스를 자 없나이다. 당신이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을 만드셨으니, 당신은 만물의 주님이시옵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 공로와 소망보다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양심의 가책을 받은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감히 청하지 못하는 은혜도 내려 주소서.
2024년 10월 11일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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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갈라 3,7-14)
믿음으로 사는 이들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1,15-26)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 오늘 말씀 카드
(루카 11,20)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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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갈라 3,7-14
오늘 제1독서
믿음으로 사는 이들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형제 여러분,
7
믿음으로 사는 이들이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알아야 합니다.
8
성경은 하느님께서 다른 민족들을 믿음으로 의롭게 하신다는 것을 내다보고, “모든 민족들이 네 안에서 복을 받을 것이다.” 하는 기쁜 소식을 아브라함에게 미리 전해 주었습니다.
9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이들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10
율법에 따른 행위에 의지하는 자들은 다 저주 아래 있습니다. “율법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한결같이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저주를 받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1
그러니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12
율법은 믿음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 규정들을 실천하는 이는 그것들로 살” 따름입니다.
13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저주받은 몸이 되시어,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성경에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모두 저주받은 자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4
그리하여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다른 민족들에게 이르러, 우리가 약속된 성령을 믿음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이제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밖으로 쫓겨나리라.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이리라.
루카 11,15-26
오늘 복음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군중
15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24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25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26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0월 11일
김정욱 마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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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많은 의심과 불신 속에서도 하느님의 나라는 온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태평하여 보이십니다. 사람들이 그분께서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루카 11,15)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낸다고 말하여도 크게 동요하시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베엘제불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신다면 사탄의 나라는 이미 분열되어 서로 싸우고 있는 셈이니 곧 멸망할 것이고 그러니 크게 걱정할 것 없다는 식이십니다.
사실 오늘의 복음을 보면, 마귀를 쫓아내는 행위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하지는 않는 듯합니다. “너희의 아들들”(11,19)도 마귀를 쫓아내고 있고, 사람들은 마귀를 쫓아내시는 예수님을 오히려 의심합니다.
게다가 한 번 마귀를 쫓아낸다고 해서 꼭 상황이 좋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마귀 하나가 나간 빈자리에 더 악한 영이 더 많이 들어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를 쫓아내셔도 그것이 베엘제불의 힘으로 이루어졌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마귀를 쫓아내는 기적도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실 때 그들의 마음 안에는 의심만 생깁니다. “힘센 자”(11,21)이신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들어가시어 다시 마귀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지키시지만, 오히려 그들의 믿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예수님의 기적에 걸려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흔들리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그 자리에 와 있음을, 오고 있음을 적어도 그분께서는 스스로 분명히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의심과 불신 속에서도 하느님의 나라는 옵니다.
“이제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밖으로 쫓겨나리라.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이리라”(복음 환호송).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비채와 쫓차
제가 만들어낸 말이 있습니다.
‘비채’입니다. 몇 년 전 포르치운쿨라 행진을 하고 있는데 강원도 시골의 카페 이름이 ‘비움과 채움’이었습니다. 카페 들어가는 것을 그리 기꺼워하지 않는 저지만 그 아름다움과 의미 때문에 그곳만은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고, 그래서 그 의미를 간직하기 위해 두 음을 따 ‘비채’라는 말을 만들어냈습니다.
우리에게는 늘 비움과 채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욕망은 비우고 사랑은 채우는. 미움은 비우고 사랑은 채우는. 그런데 비우는 것보다 더 센 표현이 있습니다. 몰아내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악습을 몰아내는 덕’을 이렇게 노래했지요.
사랑과 지혜가 있는 곳에 두려움도 무지도 없습니다. 인내와 겸손이 있는 곳에 분노도 동요도 없습니다. 기쁨과 더불어 가난이 있는 곳에 탐욕도 인색도 없습니다. 고요와 묵상이 있는 곳에 걱정도 방황도 없습니다.
자기 집을 지킴에 주님의 두려움이 있는 곳에 원수가 들어갈 곳이 없습니다. 자비와 신중함이 있는 곳에 지나침도 완고함도 없습니다. 비슷한 표현이 있습니다. 쫓아내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이 표현을 많이 쓰십니다. 마귀와 같은 존재는 강력하게 쫓아내야 하는 것이지요. 악령이나 더러운 영은 물처럼 비우면 비어지는 것이 아니고 비우려고 할수록 더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악령 추방은 강력한 의지가 수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쫓아내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빈집처럼 우리 존재가 비어있는 채 있으니 다시 말해서 성령으로 가득 차 있지 않으니 더 많은 악령이 들어차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악령을 쫓아내려는 강한 의지도 있어야겠지만 성령을 모셔 들이려는 강한 정신도 있어야 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런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말 하나를 또 만들어내겠습니다.
‘쫓차’입니다. 악령은 쫓아내고 기도와 헌신의 정신은 차리자는 뜻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그리스도의 감실임을 잊지 말아야 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마귀를 쫒아내심으로써,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십니다. 이에 대한 유대인들은 세 가지로 반응합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권능을 보고서 놀라워하는 이들이요,
<둘째>는 예수님의 권위와 권능을 의심하고, 예수님을 대적하는 이들, 곧 예수님에게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루카 11,15)고 뒤집어씌우는 이들이요,
<셋째>는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표징을 구하는 이들입니다. 그야말로, 요한복음사가의 말대로 그들은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던 것입니다.”(요한 3,19).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두 가지 논거로 반박하십니다. 첫째는 만일 예수님께서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한다면, 결국 베엘제불이 자신의 세력을 제거해버리는 것이기에 모순이요, 둘째로는 자신들의 아들들이 마귀를 쫓아내는 것 역시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는 것이기에 모순된다는 것입니다. 고로,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는 비방은 완전히 부정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단지 그들의 비방과 모함에 대해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서 그 일로 이루어진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20)
그러니 예수님께서 사탄을 쫒아낸 ‘자리’를 눈여겨보아야 할 일입니다. 사탄이 쫓겨난 자리에 ‘하느님 나라’가 와 있음을 말입니다. 그 자리에 예수님이 계심을 말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사탄이 더 세고 맹렬한 힘을 갖추고 떼로 몰려올 것입니다.
사실, 사람의 영혼은 임자(주인)가 있어야 하는 집과 같습니다. 만약, 집이 비어 있고 임자가 없으면, 마땅치 않는 자들이 침범해 들어와 살 것입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집을 비우는 일이 아니라, 집을 빚으로 채우는 일인 것입니다.
만약 죄나 어둠을 비우고 깨끗해지고도, 그냥 그대로 있게 되면 그 자리는 즉시 또 다시 어둠이 찾아들게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어둠과 악이 동료들을 데리고 떼거리로 몰려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영혼의 집이 거룩함으로 채워져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혹 우리가 어둠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하더라도 혹 빛으로도 채워져 있지도 않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사실, 어쩌면 우리는 어둠으로도 빛으로도 채워지지 않은 채, 자기 자신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자기 자신이 자기의 주인이 되어 있을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거룩한 주인을 모셔야 할 일입니다. 거룩하신 분이 우리의 주인이 되고, 우리 영혼의 집이 ‘거룩한 분의 성전’이 되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아니,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그리스도의 감실임을 잊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1,20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주님!
제 안에는
당신 형상의 빈자리가 있습니다.
오로지 임자이신
당신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당신께서 제 안에 계시오니,
당신의 나라를 드러내소서.
제 영혼이 당신의 성전이오니,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모든 바람이 이루어지게 하는 유일한 바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성령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십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인들은 선을 위하여 하나가 되고 악인들은 악한 일을 위해 하나가 된다고 하시며 악마들도 악한 일에서는 갈라지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은 청하고 구하고 문을 두드리라고 하십니다. 그때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귀한 게 무엇일까요?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그러니 하느님의 손가락은 성령입니다.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나라가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행복인데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 14,17)
그렇다면 우리가 죽기까지 청해야 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청한다면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있을까요?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
그러니 먼저 우리 안의 악을 몰아내는 성령님을 청합시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세속과 육신과 마귀의 욕망을 몰아내십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머지는 다 곁들여 받게 됩니다. 내가 깨닫지 못하여 청하지 못하는 것도.
시에나의 성 가타리나(1347~1380)는 가톨릭교회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주목할 만한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그녀의 삶은 영적 평화와 연합을 추구하는 누군가를 통해 그녀의 가족을 포함해 누구라도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강력한 예입니다.
가타리나는 이탈리아 시에나의 부유한 대가족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25명의 자녀 중 25번째였지만, 그녀의 형제자매 중 상당수는 유아기까지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자코모는 부유한 양모 염색가였고, 그녀의 어머니 라파는 의지가 강하고 실용적인 여성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 가족과 마찬가지로 가타리나의 부모는 그녀가 결혼하여 존경할 만한 결합을 통해 가족의 지위와 부를 더욱 높이는 데 도움을 주기를 기대했습니다. 가타리나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의 사회적, 재정적 지위에 있어 잠재적인 자산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가타리나는 대부분의 아이들과 달랐습니다. 그녀는 불과 여섯 살 때 사도 베드로, 바오로, 요한과 함께 영광의 자리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의 신비스러운 환상을 처음으로 경험했습니다.
가타리나가 나이가 들자 그녀의 가족은 그녀에게 결혼을 강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같은 사회 계층의 젊은 여성들에게 있어서 정상적인 기대였으며, 가타리나의 부모는 잠재적인 구혼자를 주선했습니다.
그러나 가타리나는 결혼이나 가족이 꿈꾸던 세속적인 삶에 대한 욕망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미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행복을 대체할 행복은 이 세상에 없었습니다.
가타리나의 소망은 명성이나 영향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평화와 연합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성취하기 위해 그녀는 수녀원 밖에 있으면서도 기도와 봉사의 삶을 살았던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 평신도 공동체인 ‘만텔라테’(Mantellate)에 합류했습니다.
그녀의 금욕적인 생활 방식은 그녀의 가족을 걱정시켰고, 가족은 그녀가 극단적인 영적 수행을 버리고 좀 더 전통적인 삶으로 돌아가기를 계속 희망했습니다. 그녀의 신비로운 경험 중 하나가 그녀를 고독한 삶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위해 봉사하도록 부르면서 그녀의 삶은 극적인 전환을 맞이했습니다. 가타리나는 이에 순종했고 당시의 정치적, 종교적 혼란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해 글을 읽고 쓸 줄도 몰랐지만, 교회와 사회 모두에서 빠르게 강력하고 존경 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가타리나가 참여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 중 하나는 아비뇽에서 로마로 교황권이 복귀된 일이었습니다. 거의 70년 동안 교황들은 로마가 아닌 프랑스 아비뇽에 살았는데, 그로 인해 이탈리아와 그리스도교국 전체에 큰 정치적, 종교적 불안정이 초래되었습니다.
그녀는 교황 그레고리오 11세와 서신을 주고받기 시작하여 그에게 교황권을 로마로 돌려보내고 교회에 평화를 회복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가타리나의 지혜와 영적 권위에 감명받은 그레고리오 11세는 그녀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고 결국 1377년에 교황권은 로마로 돌아왔습니다.
그녀의 교황권에 대한 참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타리나는 이탈리아, 특히 교황권과의 갈등이 특히 심했던 피렌체의 다양한 전쟁 세력에 평화를 가져오려는 노력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그녀는 개인적으로 피렌체로 가서 평화 협상을 했습니다. 가타리나는 결코 권력이나 명성을 추구한 적이 없었지만,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가족은 그녀가 부와 사회적 지위를 누리며 살기를 기대했지만, 가타리나는 오직 영적인 평화와 연합만을 추구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헌신을 통해 그녀는 교회 변화를 위한 강력한 힘이 되었으며, 로마에 교황권을 회복하고, 전쟁 중인 파벌들에 평화를 가져오고,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 개혁과 거룩함을 촉구했습니다.
영적인 평화만을 원했던 가타리나는 로마에 교황권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 평화를 가져오며, 교회가 거룩함을 향하도록 영감을 주는 등 당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큰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학원도 보내고 돈을 많이 들이며 노력합니다. 하지만 먼저 하느님 나라를 구하면 다른 모든 것은 덤으로 받게 된다는 것은 믿지 않습니다.
성녀 가타리나처럼 마음의 평화, 하느님 나라를 먼저 구하면 나머지는 덤으로 받게 됩니다. 그녀는 ‘대화’라는 책을 써서 교회 학자도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녀에게 글을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먼저 하느님 나라를 소원합시다. 죽기까지 소원해야 합니다. 그러면 나머지 모든 것들은 생각만 해도 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요즘에는 많은 이가 스마트 워치를 차고 있습니다. 이 워치는 단순히 시간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 알림, 운동량, 스트레스, 혈압, 혈중 산소, 심지어 수면 상태까지 알려줍니다. 저 역시 스마트 워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혈압약을 먹게 되면서, 이제 건강에 신경 쓸 나이라는 주위 사람들의 조언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거의 차지 않습니다. 제 몸의 이상이 있는 것처럼 보내는 알림 때문입니다.
분명히 푹 잤는데, 수면 시간이 짧아서인지 수면 점수가 항상 낮습니다. 지난밤에 제대로 못 잤다면서 오늘 피곤할 것이라면서 ‘관심 필요’라는 알림을 제게 보냅니다. 문제는 이 알림을 받으면 정말로 하루 종일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또 갑자기 심박수가 올라갔다면서 큰 문제 있는 것처럼 진동이 울리기도 합니다. 제 건강에 특별한 이상이 생긴 것 같습니다.
외부에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사는 우리입니다. 그런데 그 영향을 차단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스마트 워치를 멀리하면 됩니다. 지금은 운동할 때를 제외하고는 스마트 워치를 사용하지 않다 보니, 피곤함도 없어지고 더 건강해진 것 같습니다.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굳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나의 행복을 외부에 위탁시키지 않겠다는 굳은 마음을 우리는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키울 수가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께 대한 믿음만 있다면 다른 것에 흔들릴 수가 없습니다.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는 예수님을 두고 사람들이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라고 말합니다.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 나쁜 일일까요? 만약 마귀를 쫓아내지 않고 사람들을 악으로 기울게 한다면 정말로 마귀 두목 베엘제불의 힘을 빌리는 것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귀 두목조차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분입니다. 그런 예수님께 이런 말을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예수님의 마음을 흔들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요?
사실 우리 인간들은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외부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습니다. 누군가가 나에 대해 비방을 하게 되면 어떠합니까? 좋은 의도를 가지고 행한 것을 나쁜 의도로 받아들이면, 다시는 그런 좋은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도 그럴 수 있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끊임없이 보여 주셨지만, 돌아오는 것은 비방과 악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외부의 영향보다 하느님의 뜻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외부의 영향을 계속 받게 되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하느님의 뜻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쓸모없는 실패는 없다.
- 토마스 제퍼슨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건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사는 사람의 훌륭한 인격입니다. 나의 것이 아닌 하느님의 것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비움은 세상과 이웃을 향한 나눔이며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 삶의 중심이 되는 일상의 생활화입니다. 자아의 이기심을 위한 비움은 처음보다 더 나빠지는 또 다른 교만의 결과를 낳습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점은 자아라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진심으로 섬기고 살지 않았던 우리 마음을 되비쳐 보는 시간입니다. 참된 복음의 변화는 하느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는 삶입니다.
바치고 버리고 버리고 바치고의 연속이 복음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바쳐 우리를 살리는 빵이 되고 밥이 되십니다. 아프고 괴로운 이들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삶이 참된 정화이며 참된 복음입니다. 깨끗한 믿음이란 자신을 버리고 빵이 되는 새로운 시작입니다.
새로운 시작은 새로운 마음입니다.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향하는 과정입니다. 새로운 마음은 하느님을 뵙는 겸손이며 기쁨입니다. 비우고 바쳐도 행복하지 않음은 또 다시 우리의 자아가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맨 처음보다 삶의 끝이 더 아름답기를 시작이며 마침이신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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