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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10/14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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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이스라엘의 하느님, 당신은 용서하는 분이시옵니다.

주님, 주님의 넘치는 은총으로 언제나 저희와 함께하시어 저희가 끊임없이 좋은 일을 하도록 이끌어 주소서.

2024년 10월 14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0월 14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0월 1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갈라 4,22-24.26-27.31─5,1)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1,29-32)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오늘 말씀 카드
    (갈라 5,1)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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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갈라 4,22-24.26-27.31─5,1
오늘 제1독서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

형제 여러분, 

22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여종에게서 났고 하나는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3 
그런데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육에 따라 태어났고,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난 아들은 약속의 결과로 태어났습니다. 

24 
여기에는 우의적인 뜻이 있습니다. 이 여자들은 두 계약을 가리킵니다. 하나는 시나이 산에서 나온 여자로 종살이할 자식을 낳는데, 바로 하가르입니다. 

26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의 몸으로서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27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즐거워하여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아! 기뻐 소리쳐라, 환성을 올려라, 산고를 겪어 보지 못한 여인아! 버림받은 여인의 자녀가 남편 가진 여인의 자녀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3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 

5,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루카 11,29-32
오늘 복음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때에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0월 14일
홍찬호 모세 신부

 

✚ 미사시작 00:24

✚ 강론시작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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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믿음을 확인하는 표징은 무엇인가?

요나 예언자의 표징을 보면 이 사람들이 믿을까요?

표징이라는 낱말을 보면서 몇몇 성경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요한 6,30) “예수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그토록 많은 표징을 일으키셨지만, 그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다”(12,37). 사람들은 표징을 청하지만, 표징을 보고서도 믿기를 거부하는 이들은 믿지 않습니다. 표징이 없는 믿음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이사야서에서는 오히려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표징을 청하라고 하시지만 그는 청하지 않습니다(7,10-12 참조). 그는 주님을 시험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표징이 주어지면 그 표징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하여야 하기에 자신을 그런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려 합니다. 주님을 시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시험을 당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표징이 없을 때는 자신의 불신을 감추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시]도록 정해졌습니다”(루카 2,34). 표징을 청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이라는 하나의 표징이 던져졌고, 이 표징 앞에서 사람들은 갈라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세대를 악한 세대라고 말씀하시지만 어쩌면 그 세대는 지금까지 세상에서 살았던 이들 가운데 가장 어려운 시험을 치른 세대입니다. 이날 저 날 미룰 수도 없이, 눈앞에 계시는 예수님 앞에서 결단을 내려야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표징은 주어져 있습니다. 그 표징은 나의 믿음을 확인시켜 줍니까, 아니면 나의 불신을 드러나게 합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늘을 한번 봅시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표징을 요구한 것 때문에 악한 세대라는 심한 욕을 주님께 듣습니다. 그런데 표징을 요구하는 것이 왜 악하다는 것인지 저는 저의 체험이 있기에 즉시 압니다. 종신서원을 앞두고 한 달 피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의 영적 상태는 이런 상태라면 서원을 도저히 할 수 없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하느님이 계신지,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시는지, 이 서원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지 아무 느낌이 없는, 다시 말해서 영적 무미건조 바로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피정을 통해 그것을 확인해야겠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피정에 임했고, 그래서 한 끼 한 숟가락만 먹는 단식 피정에 돌입했습니다. 한 십여 일 지났을 때 아주 일찍 잠이 깼습니다. 

그때 그곳은 조명시설이 열악했기에 불을 켜도 형광등이 바로 들어오지 않고, 제멋대로 그러니까 어떤 때는 즉시, 어떤 때는 십분 있다가 들어오곤 했습니다. 그래서 초와 성냥이 늘 머리맡에 있었는데 그날도 불이 바로 들어오지 않아 성냥에 불을 켜려는 순간 악마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곧 성냥 불을 켜는 순간 동시에 형광등 불이 들어오면 그때 저는 하느님께서 계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서원을 원하시는 것으로 알겠으니 그리 알고 표징을 보여달라고 오늘 복음의 사람들처럼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바라고 요구한 일이 일어났는데도 저는 기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두려움이랄까 압박감에 짓눌리어 몇 시간을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머릿속에서는 기적이라는 생각과 그렇지 않고 우연이거나 내가 알지 못하는 과학 현상이라는 생각이 계속 왔다 갔다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해가 뜨면서 몸이 풀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그때 마침 숲의 나무들 사이에서 붉은 해가 막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주님, 죄를 지었습니다.’라는 고백이 저도 모르게 흘러나왔습니다. 

매일 해가 떠오르는 것이 하늘의 표징이 아니냐? 저 해가 매일 떠오르도록 네가 한 것이 무엇이냐? 저 해가 매일 떠오르도록 너도 누구도 한 것도 없다면 다시 말해서 인간의 아무 수고 없이 저 해가 매일 떠오른다면 그것이 기적이 아니고 뭐냐? 이런 하느님의 꾸짖음 같은 내적 질책이 이어지면서 완고한 마음과 교만 때문에 널려있는 하늘의 표징은 보지 못하고 또 다른 표징을 요구했던 저 자신을 보고 반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솔로몬보다 더 지혜롭고, 요나보다도 더 강력한 하늘의 표징인 주님을 보고도, 다른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진정 마음이 완고하고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매일 청구서 없이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등록금 주는 엄마의 사랑에게서 사랑을 보지 못하고 특별한 사랑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철부지 격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한번 느껴봅시다. 

그리고 하늘을 한번 쳐다봅시다. 매일 내려주시는 햇살에서 하느님 사랑을 느껴봅시다. 고집스럽게 땅만 보고 악한 사람들만 보느라 하늘을 보지 못하는 자신을 보고 하늘을 보며 널려있는 하늘의 표징들을 한번 봅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하느님의 자비를 보는 눈

오늘 <복음>은 앞 장면의 내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앞 장면에서,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자, 어떤 사람들은 놀라워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저자는 마귀의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루카 11,15)고 말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카 11,29)

“악한 세대”라는 말은 <마태오복음>에 비추어 보면, 단지 마음이나 행실이 악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마태 17,17)를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한 그들의 완악함과 비뚤어진 마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루카 11,16 참조). 

사실, 이방인인 니느웨 사람들은 회개했건만, 막상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이방인 남방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찾아 달려왔건만, 막상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유대지역에서는 이미 그들 가운데 와 계신 지혜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그분을 시험하려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요청에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징을 말하실 뿐입니다. 곧 “이제 사십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요나 3,4)고 외치는 회개의 때가 왔다는 것과 그가 바다에 빠져 고래 배속에서 사흘째 날에 다시 밖으로 나온 일, 곧 사람의 아들이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째 되는 날에 다시 살아나는 것을 표징으로 말씀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루카 11,32).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루카 11,31)

사실, 요나와 솔로몬은 예수님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요나는 소생했을 뿐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솔로몬의 번영과 지혜는 사라질지라도, 예수님의 지혜는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줍니다. 곧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드러냅니다.

그러니 필요한 것은 표징을 볼 줄 아는 눈, 곧 ‘믿음으로 보는 눈’입니다. 사실 믿음으로 보면, 모두가 신비요 사랑이요 자비요 기적입니다. 모두가 다 하느님의 활동이요 현존입니다. 

그것은 기이한 일을 보는 눈이 아니라, 그 속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보는 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언가 불가사의한 일로 우리를 놀라게 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크나 큰 사랑과 그 자비를 선포하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리스도인인 것은 하느님의 자비를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며, 믿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1,29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주님!
제 눈이 기적을 보기보다 
당신의 자비를 보게 하소서. 

오늘도 제 안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당신의 사랑을 보게 하소서.

모든 것을 믿음으로 
보는 눈을 주시어

모든 것을 통하여 주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사이비 : 거짓말이 만드는 인간

먼저 공지 하나 드리겠습니다. 제가 추계 사제 연수 들어가는 바람에 화~금요일(10월 15~18일) 복음 묵상은 쉬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표징을 요구하는 이 세대를 악하다고 하십니다. 왜 표징만 요구하는 이들이 악할까요? 저도 사제가 되라고 불러주실 때 예수님이 나타나시든가 하는 표징을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때 새벽에 성당에 올라갔을 때 성모상에서 이전까지 느낄 수 없었던 표징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냥 술 취해서 헛것을 본 거야!’라고 생각하며 내려왔습니다. 이때 느꼈던 게 있습니다. 저는 신학교에 들어가기 싫었습니다. 그 이유를 표징이 없는 것으로 합리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것을 하느님 탓으로 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표징까지도 필요가 없었습니다. 저는 할머니께서 돌아가실 때 ‘행복’이라는 모토로 죽음의 공포를 이기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행복을 위해 결혼을 생각했다가 이제 ‘하.사.시.’를 읽고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더 큰 행복으로 보이게 된 것입니다. 이것 자체가 표징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행복으로 부르고 계셨던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더 행복해져야 한다는 마음에 저절로 지적인 호기심이 누구보다 컸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해지려는 이는 그 방법을 찾게 마련입니다. 그러던 중 ‘하.사.시.’를 만나게 되었고 참 행복의 지혜를 얻었습니다. 참 행복의 지혜가 표징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결혼하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제가 되기로 완벽히 결심하게 만든 책은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었습니다. 주님은 표징보다는 참 행복의 길로 이끄는 방법으로 지혜를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그 지혜를 찾으려고 하지는 않으면서 표징만 요구한다면 그 마음 안에는 믿지 않는 합리화만 하는 것과 같습니다. 표징으로는 마음을 바꿀 수 없습니다. 지혜가 오히려 마음을 바꿉니다. 사실 표징은 내가 지혜로 마음의 결단을 내리게 되었을 때 나중에 보여주십니다.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

예수님 시대에 하느님을 믿던 이들도 다 신앙이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다가오기는 주저하였습니다. 그들은 표징을 요구합니다. 사실 지혜가 예수님께로 이끄는데 말입니다. 

이런 까닭에 예수님은 니네베 사람과 남방 여왕의 예를 듭니다. 니네베 사람들은 요나의 표징이 아닌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고 남방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그 먼 길을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지혜의 말씀이 주님께 있는데 그분에게 표징을 요구한다는 말 자체가 그분을 믿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런 이들을 ‘사이비’라 합니다. 같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르다는 뜻입니다. 신앙인 같지만, 실제로는 주님 뜻을 따를 마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이비를 만드는 이들이나 사이비에 빠지는 이들은 지혜를 원치 않는 이들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거짓말’에 있습니다. 피노키오가 거짓말할 때는 제페토 할아버지의 지혜는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신천지는 어떻습니까? 포교를 하는데 거짓말을 정당화합니다. 열매가 방법을 정당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TV 뉴스도 보지 못하도록 합니다. 정보의 유입이 얼마나 큰 해를 입히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르치는 것에만 집중하도록 합니다. 거기에는 마치 표징과 같은 놀라움이 있습니다. 사실 성경의 필요한 부분만을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짜 맞춰서 가르치는 것인데도 사람들이 속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짜 지혜를 찾기를 원치 않는 사이비에 적합 화 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는 모든 사이비들에게 적용됩니다. 광주 대교구 최창무 주교님이 나주 율리아의 모든 것들이 거짓된 것임을 교령으로 반포하셨습니다. 나주 율리아를 제가 처음 접했을 땐 저도 매우 신기했었습니다. 성체가 입 안에서 피로 변하였다가 다시 성체로 변하는 모습 등을 비디오를 통해 보았을 땐 정말 믿음이 더 깊어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차차 하늘에서 성체가 떨어진 것은 자신이 쥐고 있던 제병을 던진 것이라는 증언과 자료를 보고 또 입에서 성체가 피로 변하는 것은 입 안에 나 있는 상처를 터뜨려 피가 나오게 했다는 것을 들었고, 몸에서 향기가 났다는 것도 그녀가 묵고 간 곳에서 향수병이 발견됨으로써 거짓이었다는 것 등을 듣고 나서는 그녀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특히나 그녀가 미장원을 할 때부터 많은 거짓말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또 그녀의 오줌을 사람들이 나누어 마시는 것 등을 보았을 때는 그런 것들에 광신적으로 빠져있는 신자들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사이비에는 항상 거짓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들어갑니다. 

수원 교구에서도 최덕기 주교님께서 미리내 상주 데레사의 모든 것들도 거짓임을 교령으로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본당에 있을 때도 수녀님들에 의해 그 계시 받아 그린 그림들을 보고 글을 읽어보며 신기해했었습니다. 역시나 그런 것들로 믿음이 커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신학을 배우며 그때 보았던 많은 것들이 신학적으로 오류가 크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그것들이 마귀에게 속았거나 거짓으로 꾸며 낸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미리내 중앙에 있는 삼위일체상도 계시를 통해 보고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간단히만 말하면 예수님은 인성을 취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모양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아버지께서 사람의 모양으로 보인다는 것은 신학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시간과 공간을 지으신 분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받고 있다는 뜻인데 하느님께서 무엇에 제약받으신다면 더 이상 하느님이 아닙니다. 

또 성경에서도 하느님은 영(靈)이시고 (요한 4,24) 아들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본 이가 없다고 하고 (요한 1,18: 6,46) 교회의 가르침도 아버지는 볼 수 없는 분이라고 가르치는데 아버지를 보았다고 한다면 스스로 그리스도와 동급이 되려는 것이고 하느님을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현대는 사이비가 점점 강하게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제 지혜가 아닌 표징만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표징만 요구하는 세대가 된 이유는 거짓말을 허용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도 바로 그러한 세계관을 가집니다. 사이비 새진리회는 표징을 통해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에 맞서는 이들은 지혜로 하나하나 설명하려 듭니다. 둘은 적대관계가 되어 서로 싸웁니다. 

제가 오랜만에 본당에 왔을 때 정말 놀랐던 것은 성경, 그리고 기도서나 성가책을 제외하고는 성물방에 책이 한 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하.사.시.’를 읽게 된 이유는 당시 성물방 책장에는 엄청난 책이 진열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지 않게 되고 지혜를 찾지 않게 된 이 세상은 이제 사이비가 만연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말합니다. 

“독서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새로운 일을 도모하십시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집무실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누군가가 집무실 문을 두드립니다. “네, 들어오세요.”라고 말하자, 어떤 자매님께서 “신부님! 사무실 컴퓨터가 이상해요. 직원이 없어서 신부님께 물어보러 왔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컴퓨터를 켜니 익숙한 윈도우 화면이 아닌 파란색 화면에 알 수 없는 영어가 가득 채워 있다는 것입니다. 얼른 가서 보니 CMOS 설정이 켜져 있습니다. 

이 설정은 주로 컴퓨터의 시스템 시간, 날짜, 하드웨어 구성 정보를 저장하는 데 사용되며, 시스템 부팅 시 하드웨어를 인식하고 초기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아마도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른 뒤에 키보드를 꺼내면서 실수로 CMOS 설정으로 들어가는 F2 키를 누르신 것 같습니다. 
 
간단히 ESC 키를 누르고 yes 버튼을 누르면 해결되는 것이지만, 이 자매님께서는 처음 보는 화면이라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저를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1983년부터 컴퓨터를 만져본 저로서는 이 CMOS 설정이 너무나 익숙했고, 그래서 쉽게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익숙하면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으면 두려움부터 몰려옵니다. 온갖 부정적 생각이 함께하게 됩니다. 주님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잘 알아서 익숙한 사람은 자기 삶 안에서 편안해집니다. 그러나 주님을 잘 모르고 그래서 익숙하지 않으면 불안과 걱정 등이 떠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을 잘 알도록 만드는 기도가 중요하고, 더불어 주님을 알기 위해 성경 읽기를 비롯한 신앙생활이 중요합니다. 
 
삶 안에서 특별한 상황은 너무 자주 일어납니다. 그때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그냥 포기하고 좌절하는 무기력한 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계시기에 힘차게 그리고 감사하면서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잘 알아야 하고, 익숙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고향 사람들에게 구원을 보여 주시지만 그들은 알아보지 못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자기들 기준으로 판단하면서 구원의 길과 멀리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구원의 표징보다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표징만을 추구할 뿐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요나의 표징은 이방인인 니네베 사람들을 구원하려는 하느님의 자비였습니다. 그 자비를 알아들었기에 이방인이었던 니네베 사람들이 요나의 말에 모두 회개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구원은 계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표징을 보고 회개하고 하느님의 뜻에 맞춰서 살고 있나요?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주님께 익숙하지 않는다면 구원의 표징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오늘의 명언

만약 누군가를 당신의 편으로 만들고 싶다면, 먼저 당신이 그의 진정한 친구임을 확신시켜라.

- 에이브러햄 링컨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사람은 회개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 속에 계시며 사람을 인도하시는 하느님을 만납니다. 길이 되시고 사랑이 되시고 삶의 반성이 되십니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 사랑을 배우고 회개를 배우고 행복을 배웁니다. 그만큼 사람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이렇듯이 하느님의 사람으로 성장하는 기쁨이 최고의 기쁨입니다.

거짓을 벗겨주는 회개가 필요한 우리들 삶입니다. 신앙은 회개로 사는 사람들의 진실한 이야기입니다. 회개가 없는 신앙은 모순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이 진실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돌보는 것은 분명 회개입니다. 

사람의 진정한 삶은 회개로 다시 시작됩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바라보고 오늘을 사랑하는 성장의 날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솔로몬보다 요나보다 더 크신 사람의 아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사랑은 회개로 깊어지고 맑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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